구글 포토
매일 아침 이맘때쯤 구글 포토는 과거의 오늘 찍은 사진이 있음을 알려준다. 앱을 열어 들어가보면 과거 오늘 뿐 아니라 이번주에 찍은 사진들까지 보여준다. 작년이었을 수도 있고, 재작년이었을 수도 있고, 15년이나 16년 전이었을 수도 있다. 왜 15년이나 16년일까 생각해보니 그 무렵부터 스마트폰을 그러니까 구글이 만든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안드로이드 폰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번도 아이폰을 쓴 적이 없으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모두 구글 포토에 모아져있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아니 과거에는 폰을 바꿀 때 마다 대리점에서 사진을 옮겨주거나 직접 옮기곤 했는데, 그렇게 축적된 사진들을 어느 순간부터 구글이 보관해줬던 것 같다. 처음부터 구글 포토 서비스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암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가며 과거의 오늘들을 돌아보는 일은 재밌다. 여기가 어디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점점 더 과거로 돌아갈수록 어려지는 아이들이 보인다. 내게 휴대폰의 카메라 기능은 아이들을 찍는 용도 외에는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주 가끔 음식 사진을 남겨놓기도 했고, 가끔 여행지에선 하늘이나 자연의 풍경을 남겨놓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아이들 사진이다. 내 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찍은 사진일테니 당연하겠지. 셀카를 즐겨 찍는 편도 아니니까.
사진을 넘기다보면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아이들 사진이 몇 컷 아니 대체로 한두 컷 나오고 말기 때문이다. 왜 더 많이 찍어두지 않았을까. 저렇게 예뻤는데 저 모습을 왜 겨우 한두 컷만 찍고 말았을까.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그렇지만 많지도 않은 사진들 속에 꾸준히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게 선물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는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으니, 이렇게 사진으로 밖에 돌아볼 수 없는 모습들. 어느 날엔 어떤 특정한 기억이 떠올라 그 기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멍하니 아침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너무 너무 귀여운 아이들 사진을 보다가 가끔 잘 나온 사진들을 발견하면 다운 받아서 아이들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아침에 그렇게 사진을 보내 놓으면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오후 늦게나 반응을 보이는데, 대체로는 심드렁한 태도로 느껴진다. 아이들은 저 어렸을 때 자신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만한데,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 없다. 그냥 아빠가 뭔가를 보냈으니 읽었다는 표시만 한다는 느낌이다.
페이스북
트위터는 비교적 일찍 접하고 초기에는 열심히 했는데, 금방 시들해졌다. 나는 짧은 글로 뭔가는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 그리고 접한 페이스북을 오래동안 사용하고 있다. 이것도 한때는 열심히 썼는데, 어느날부터 피로감을 느끼고 뭔가를 쓰지는 않고 다른 이들의 소식만 읽기 시작한 지 몇 해가 지났다. 이런 걸 눈팅이라고 부르더라. 쓰지 않고 눈으로 보기만 한다는 의미인 듯한데 팅이란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설마 미팅, 소개팅의 그 팅일까?
암튼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랫동안 페이스북을 쓰지는 않고 읽고 보기만 하고 있는데, 페이스북 역시 매일 과거의 오늘 내가 쓴 글과 공유한 사진을 보여준다. 과거 오늘 이런 일들이 있었고,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이런 걸 공유했었구나.
페이스북에서 과거의 오늘을 보다보면 한가지 재밌는 것을 깨닫는데, 내가 참 정치적이고 가식적이란 것. 간단히 말하자면 솔직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일부러 어떤 반응을 유도하거나 어떤 대상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걸 바로 깨닫는다. 그리고 댓글을 보면 내가 의도한 반응이 나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건 내가 페이스북을 철저히 어떤 목적으로 이용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 과거 어느 시점의 내가 페이스북에 뭔가를 쓰기를 멈춘 이유이기도 하다.
북플
언젠가부터 북플에도 과거 오늘 내가 쓴 글을 보여주는 기능이 생겼다는 걸 발견했다. 신기했다. 구글 포토와 페이스북과는 달리 알라딘 서재에 쓴 글들은 긴 글들이라 그 당시의 나를 훨씬 더 깊게 보여준다.
사진으로 남은 어떤 한 장면보다. 페이스북에 간단히 남긴 어떤 문장보다 서재에 남긴 긴 글을 통해 그날의 나를 아주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아쉬운 것은 글을 자주 쓰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 오늘 쓴 글을 자주 만나지는 못 한다는 것이다. 좀 신기한 것은 매년 특정한 날 글을 써야지 하고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글은 쓴 적이 있는 날엔 과거의 글이 여러개인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그게 특정한 기념일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도 아닌데, 그냥 일년 365일 중 하루일 뿐인 어느 날인데 거의 매년 그 날엔 글을 쓴 경우도 있더라.
구글 포토를 들여다보며 사진을 자주 찍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페이스북을 보곤 그보다 훨씬 더 뭔가를 공유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북플은 말할 것도 없이 더 뭔가가 없다.
내게 알라딘 서재는 두가지 측면이 있는데, 과거의 나는 여기에 거의 대체로 책에 대한 이야기만 남겼다. 그때는 내 일상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한 블로그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엔 출판계에 몸을 담고 있었기에 책에 대한 정보도 많았고 책과 관련해 뭔가 쓸 거리도 많았다.
어느날 이용하던 블로그가 문을 닫으며 몇 년간 써온 많은 글들이 사라져버렸다. 꾸준히 일상의 이야기를 써온 입장에서 블로그가 사라지니 허전했다. 그래서 한동안 방치했던 알라딘 서재를 다시 찾았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책 이야기를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출판계를 떠나면서 책과 관련한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되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오래전 그러니까 대학시절 만났던 여자친구가 여기 서평을 쓰면 책을 살 수 있는 포인트 같은 걸 준다고, 나처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책 이야기를 쓰면서 그 포인트로 책도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권했기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글을 쓰지는 않았다. 그깟 포인트 때문에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일종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알라딘에 실제로 그런 제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그러니까 그때 그 아이가 들려준 말 때문에 알라딘이란 온라인 서점에 서재라는 공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고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가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부터 서재를 이용하기 시작했었다.
그 서재를 이렇게 긴 시간 이용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비록 자주 들어와보지도 못하고 자주 글을 쓰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잊지 않고 꾸준히 들여다보는 건 알라딘 서재가 유일한 것 같다.
글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책도 그렇지만, 많은 것들이 온라인 환경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온라인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글들도 역시 그렇다. 영어의 touching 단어가 그렇듯이 누군가의 글이 내 마음을 건드려 마음이 움직인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내 글도 마찬가지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써놓은 내 글을 읽으며 아, 내가 이랬구나 하고 깨닫는다.
현대인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살고 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뭐든 빨리 해야하는 사람들은 그 빠른 속도 때문에 잃어버리는 것도 많다. 글을 쓰고 읽는 것은 그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한번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서재라는 공간은 그래서 내게 소중하다. 알라딘이 망하지 않기를 이 서재라는 공간이 오래 지속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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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구글 포토의 알림을 보고 클릭 한번 했다가 내친김에 북플을 열어 쉬지도 않고, 작아서 불편하기만 한 폰 자판으로 이 글을 써서 완성한 나라는 인간, 참 신기한 인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