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교통사고에 대한 글을 하나 쓰고 이어서 다음 글을 쓰려고 했으나, 두 가지 이유로 일주일이 지난 오늘(또 다시 금요일) 자판을 두드린다. 우선 사고 이후 일상과 여러가지 생각들을 모아놓은 글은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개인정보를 포함해 쓸데없이 자세하고 복잡해서 이곳 알라딘에 공개하려면 글 자쳬를 다시 써야하는데, 그걸 어느 정도로 정리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사실 며칠 전에 아주 자세하게 글을 쓰다가 그냥 지워버리고 며칠이 지났다. 


두 번째 이유는 몸 컨디션이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정도로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태풍이 한 몫하기도 했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태풍을 대비해 태양광발전소 비상 점검을 나가야 한다. 실무책임자인 나를 대신해 현재 모든 업무를 맡고 있는 후배 활동가는 일을 무척 잘 하는 편이라 무척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경험의 차이는 어쩔수 없는 것 같다. 병실에 있을 때부터 가끔씩 조언과 아주 자세한 업무 설명도 해주고 있는데, 이번 태풍 바비가 워낙 강하다는 뉴스를 듣고 뒤늦게 그리고 급하게 그에게 발전소 점검을 꼭 해야 한다고 자세히 알려줬는데, 이미 늦은 상황이라 사전 준비가 어렵고 바로 점검을 나가야 할 상황이었다. 사다리도 여러 개 빌려야 하고, 사다리 및 장비를 실고 움직일 트럭도 빌려야 하는데, 연락처들을 알려줬는데, 연락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어쩔수 없이 내가 나서서 트럭과 사다리를 빌렸고, 점검을 나갈 사람이 이사님 한 분과 그 활동가 밖에 없는 상황이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동행하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직접 사다리를 올라가서 볼트와 너트를 조이는 노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경험에 따른 조언을 하고, 상황 판단을 해주고, 옆에서 작은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두 분이 점검하는 속도를 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걸렸고, 그 더위에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결국 나도 사다리에 올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수백개의 모듈을 점검하는 것은 힘든 노동이었고, 3시간째에 접어들고 나서는 다친 부위들과 수술 부위 등의 감각이 이상함을 느꼈다. 결국 무리를 하고 말았구나 싶었다.


결국 다음날부터 꼬박 3일을 컨디션 문제와 약간의 몸살기운으로 힘들게 보냈다. 마침 병원에서 처방해준 가장 효력이 강한 진통제가 다 떨어졌고, 의사 선생님은 이 진통제가 너무 쎈 거라 오래 먹으면 오히려 안 좋으니, 이젠 이거 없이 버텨보자고 했었다. 한참 통증이 심할 때는 이거 딱 한 알만 있었어도 버틸만 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그렇게 책상 앞에 앉지 못하고 며칠을 훅 지나 버렸다.



#3. 2020년의 교통사고


지난 주 30년 전의 교통사고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봤고, 이제 이번 교통사고에 대해 쓸 차례다. 사고의 원인과 경위에 대해서는 지금 경찰서와 보험회사 등을 상대로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라 일단 이 글에서 공개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혹시 나중에 소송까지 갈 지 모르니 이 부분을 지금 쓸 수는 없다.


이 글과 앞으로 쓸 글들 전체에 해당하는 내용이 될텐데, 나는 병원 내부 시스템을 잘 모른다. 그래서 내게 뭔가 정보를 주거나, 나를 치료해주거나, 나를 보살펴 준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고, 헷갈리기도 한다.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나 이런 분들은 오히려 명확하고 옷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의사들은 헷갈린다. 특히 전문의 밑으로 레지던트부터 인턴으로 가면 알수가 없다. 그래도 일단 전문의(혹은 전공의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는 구분이 가능한데, 해당 과에서 나를 진료하는 책임자 딱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밑에 여러 명의 레지던트와 인턴들이 있고, 사실 그 분들이 내게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기도 하지만, 그 분들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글에서 의사를 언급할 때 명확하게 전문의인 경우에는 전문의라고 쓰고, 나머지는 그냥 의사라고 통칭하거나, (레지던트와 인턴을 구분할 수 없으니 그냥 묶어서) 레지던트라고 부르려고 한다. 


일단 피해자로서 내가 입은 피해를 먼저 공개한다. 8/6(목) 퇴원 당시에 내 주치의였던 외상외과 전문의가 작성해 준 진단서 상에는 총 9가지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한편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폰으로 연락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된 후에 걱정하시는 몇 분들에게 내가 정리해서 보낸 내용에는 총 8가지 상해를 입은 것으로 적었었다. 내 몸에 입은 상처니까 내 기준으로 내가 정리해보겠다.


-01 안와하벽 및 내벽 골절 / 안과, 성형외과


왼쪽 눈 밑 뼈가 부러졌다. 그래서 눈에도 충격을 어느 정도 입었다. 처음 실려간 병원 응급실에서 아마 뼈가 부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고 당한 날 저녁에 옮겨간 병원에서 CT 촬영 후에 정확하게 나온 진단이 소제목으로 적은 내용이었다. 쉽게 얘기해 눈 밑 뼈가 산산조각 부러져서 안구가 살짝 내려 앉았고, 시신경의 일부가 내려 앉았다고 했다. 그리고 눈동자에 빨갛게 피가 맺혀 있었다. 그건 오른쪽 눈도 마찬가지였는데, 얼굴 오른쪽은 거의 손상이 없었음에도 오른쪽 눈동자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 이 맺혀있던 피는 사고 후 약 2주쯤 지난 시점부터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후로는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안과 외래 진료를 받아보니 아직도 왼쪽 눈동자 한 쪽 구석에는 피가 맺혀있다고 했다. 


눈은 신체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당장 눈이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 남은 인생을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야말로 절망적일 것이다. 처음 실려간 병원 응급실에서부터 옮겨간 병원까지 안과 전문의가 내 눈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어려서부터 눈이 나빴고, 근시와 난시가 심해 안경이 없으면 거의 눈에 뵈는 게 없는 수준이었던 나는 병원에 머무는 내내 안경 없이 지냈다. 아마 중학교 시절 처음 안경을 맞춘 후로 가장 오랫동안 안경 없이 지낸 것 같다. 대학 시절 사막화방지 운동 차원에서 몽골에 갔다가 실수로 안경이 부러졌었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안경을 맞추기까지 한 나흘이나 닷새 정도 안경 없이 지낸 것이 그 전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아, 신병교육대에서 사격하다가 안경테가 부러졌던 경험도 있는데, 그땐 부러진 부위를 실로 꿰매어 쓰고 다녔으니, 엄밀히 말해 안경 없이 지냈던 건 아니었다.


잠시 이야기가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처음 응급실에 있을 당시부터 무척 다양한 방법의 검사를 받았다. 앞서 말했듯 어려서부터 눈이 나빴기 때문에 눈과 관련한 검사는 꽤 많이 받아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다양한 방법의 검사들이 있었다. 그때 응급실에서는 전문의가 손에 들고 와서 할 수 있는 검사만 했는데, 나는 꼼짝도 못하고 누워서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그 안과 전문의의 태도가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도구를 갖고 와서 한참을 검사하다가 돌아가고 한참 후에 다시 뭔가 다른 도구를 갖고 와서 검사하고는 다시 사라졌다가 시간이 좀 지나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대여섯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여러가지 검사를 했다. 처음부터 도구들을 다 가져와서 하나씩 차례로 검사했다면 훨씬 더 시간을 절약하지 않았을까? 암튼 가장 기본적인 시력 검사부터 색맹(색약) 검사까지 여러 감사를 마친 후 천만 다행으로 시력과 시신경에 문제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때 사고를 당한 첫 날이었고, 몸의 일부를 전혀 움직이지 못했고, 엄청난 고통에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 쉬려고 하면 다시 나타나 괴롭히는 그 전문의가 밉기도 하고, 그런 모양새가 우습게 여겨지기도 했다. 암튼 결론을 듣고 눈에 이상이 없다는 것에 안도하긴 했다.


그런데 병원을 옮겨가니 다시 그 과정을 반복했다. 여기 병원 안과 전문의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에 한 가지 도구를 가져와서 검사하고 돌아가더니 한참 있다가 다른 도구를 가져와서 검사하기를 반복했다. 이때는 그래도 중환자실을 벗어나 일반 병실에 있을 때였고, 초기에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로 눈곱이 끼곤 했던 상태를 벗어나 있었다. 이미 이전 병원 응급실에서 다 받았던 검사였고, 그렇게 말했지만, 이 병원 전문의는 그 이야기를 듣고도 그 과정을 다시 다 반복했다. 한 번에 한 가지 도구를 가져왔다가, 돌아갔다가, 한참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와 검사하기를 반복하는 것도 똑같았다. 암튼 이때는 비교적 여유가 생긴 후라서 별다른 감정 없이 성싷하게 검사에 임했다. 눈의 상태도 많이 좋아졌는지, 응급실에 있을 때보다 뭔가 더 잘 보이고, 이게 이런 검사였구나 하고 깨닫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두 번의 수술 후에 혼자 걸어다닐 수 있게 된 후에는 안과 외래 진료실에 내려가 제대로 된 안과 검사를 몇 가지 받았다. 여기서도 결론은 시력과 시신경에 약간의 손상은 있지만, 일시적인 것으로 치료가 필요한 수준은 아니며, 지켜보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과에서는 약을 쓰거나 치료하지는 않았고, 단지 인공눈물을 처방하면서 수시로 넣으라고 주문했다. 처음 병원 응급실에서도 인공눈물을 처방 받았는데, 이 병원에서도 초기에 한 번 그리고 중간에 한 번 이렇게 두 번이나 인공눈물을 처방 받았다. 초기에는 내가 상체를 일으킬 수 없어서 혼자 스스로 이 인공눈물을 넣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넣어줘야 했는데, 어떤 간호사는 꼼꼼하게 챙겨 넣어줬지만, 어떤 간호사들은 이것까지 챙기지는 못해서 의외로 넣지 못하고 넘어가는 날이 많았고, 나중에 혼자 걸어다니게 된 후에는 내가 수시로 챙겨 넣었다. 그래도 한참 많이 남았고, 퇴원할 때 뜯지도 않은 새 박스를 하나 그대로 갖고 퇴원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또 한 박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있던 것이 제일 먼저 받았던 첫 병원 응급실에서 처방 받은 것이었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인공눈물 부자가 되었다. ㅎㅎ


아까 잠시 언급했지만, 사고 초기에는 눈에 충격을 받아서 눈동자에 온통 빨갛게 피가 맺혀 있었고, 눈곱이 아주 심하게 끼어 잠들었다가 깨면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누군가 눈곱을 떼어줘야 간신히 눈을 떠서 주위를 볼 수 있었다. 안그래도 얼굴을 심하게 다쳐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텐데, 눈은 시뻘겋고, 눈곱이 엄청나게 끼어대니 얼마나 보기 흉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암튼 그래서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 잠들었다가 깨면 혼자 눈꺼풀을 들어올려 스스로 볼 수도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도 많이 느꼈다. 그때는 눈곱을 떼서 눈을 틔여주는 간호사가 제일 고마웠다.


병원에서는 일부러 눈의 안정을 위해 눈의 피로를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몸이 회복된 후에는 무척 심심했는데, 책을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가 그냥 아니라고 갖고 오지 말라고 했다. 남들이 다 티브이를 볼 때도 나는 소리만 듣고 화면을 보지 않았다. 나중에 폰을 받은 후에는 폰에다 기록을 남기느라 작은 화면을 좀 오래 들여다보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최대한 눈이 무리하지 않도록 애썼다. 그런데 퇴원 후에는 혼자 집에서 너무 심심하니까 자꾸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왼쪽 눈이 쉽게 피로해졌다. 남아도는 인공눈물을 수시로 넣긴 했지만, 그건 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으니. 오른쪽은 괜찮은데, 왼쪽 눈만 피로감이 크고 가끔 안에서 찌르는 듯한 이상한 느낌도 들어서 안과 외래 진료를 받았다. 두 번에 걸쳐 다양한 검사들을 받았다. 또 한 번 느꼈다. 안과 검사들은 정말 다향하구나. 내가 몰랐던 검사들이 또 있었구나. 암튼 두 번이나 병원을 방문해 검사들을 받은 결론은 아직 사고로 인한 충격에서 온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안구 한 구석에 빨갛게 피가 맺힌 부위가 여전히 남아있다. 시력과 시신경의 기능 중 일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심각하지 않아 치료를 요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상태로는 시간이 지나 점차 회복될 지 혹은 더 나빠질 지 예측하기 어렵다. 정기적으로 살펴보는 방법 밖에 없다며, 한 달 뒤 진료를 예약하고 나왔다.


여기까지가 안과 영역에 대한 내용이고 이제 성형외과 영역을 정리해보자. 성형외과에서는 얼굴의 주요 부위 손상 중 두 가지 골절(아래 언급할 비골 골절)을 동시에 수술로 해결하겠다고 내게 설명했다. 그리고 수술 날짜를 통보하고 동의서에 싸인하라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만해도 잘 움직이지 않았던 오른손으로 펜을 쥐고 힘겹게 싸인을 했다.


여기서 잠시 내가 진료받은 5개 과 전문의 중에서 이 성형외과 전문의가 가장 불친절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넘어가야겠다. 퇴원하고 외래 진료를 받으면서 깨달았는데, 나를 진료한 5명의 전문의들이 대체로 젊은 편이라는 것, 아마도 나와 비교해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특히 나와 자주 접할 수 밖에 없었던 외상외과와 흉부외과 주치의는 외래에서 만났던 날에 의사로서라기 보다는 약간 친구 같은 태도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전적으로 내 느낌이라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입원 당시부터 만날 때마다 무척 털털한 성격을 보였던 정형외과 전문의도 외래에서 만나니 훨씬 친근하게 대했다. 이렇게 3명은 다 남성이고 내 추측으로 나이가 나보다 살짝 많은 정도일 거라고 여겨졌다. 안과는 처음 병실을 오르내리며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나중에 진료실에서 검사하고 결론을 내린 분은 여성이었지만, 외래 진료는 날짜를 맞추다보니 남성 의사로 바뀌었다. 처음 여성 의사는 확실히 친절했다고 기억하는 것이 이번 병원에서 다 검사 받았던 거라고 얘기할 때도 그래도 다시 해야 하는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해줬고, 내가 물었던 여러 질문들에 차근차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줬다. 그리고 외래로 두 번 만난 남성 전문의도 처음 여성 전문의 보다는 덜하지만, 그건 굳이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비교적 괜찮았다. 


그런데 유독 성형외과 전문의는 처음 만남부터 마지막 외래 진료 날까지 일관되고 아주 불친절했다. 사실 내가 가장 크게 다친 곳이 얼굴이고, 가장 크게 고통받는 곳도 얼굴이며, 앞으로 어떻게 회복될 지 가장 걱정이 되는 곳도 얼굴이라, 이 성형외과에 제일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이 의사는 그런 말을 원척적으로 막아버린다. 자기가 딱 필요한 설명만 하고 바로 진료가 끝났다는 신호를 간호사나 레지던트에게 보내 나를 내보내는 것이다. 내가 나가지 않고 질문을 하면 아주 짧게 건성으로 답하고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러면 0.1초도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나오시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러번 어떻게 하면 이 의사에게 내가 궁금한 점들을 다 물어볼 수 있을지 궁리하기도 하고, 들어가기 전에 연습하기도 하곤 했는데, 매번 실패하고 씁쓸한 기분으로 나오곤 했다. 이 여성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맨 마지막에 시도한 것은 처음부터 몇 가지 질문이 있다고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질문을 다 할 때까지 답을 하지 못하게, 내 질문이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만다는 것이었다. 그 방법이 유일하게 성공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꼭 알아야 할 필수 정보만 간추려서 질문했을 뿐, 원래 묻고 싶은 사소한 궁금증은 훨씬 더 많았다. 그렇게 꼭 필요한 질문에 대한 아주 건성인 답변을 받고 진료를 종료했는데, 다른 전문의들은 다 얼굴이 기억나는데, 이 여성 만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암튼 성형외과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전신마취 수술이었고, 얼굴 부위라서 긴장을 많이 했었다. 수술이 끝나고 당황스러운 점이 있었는데, 그 전에 흉부외과 수술을 받았을 때는 회복실에서 레지던트가 수술 결과를 간단하게라도 알려줬고, 이후 다음날 회진을 돌 때 전문의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복실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혼자였고, 한참을 회복실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 통증을 참고 있다가 회복실 간호사가 어쩌다 내가 깨어났음을 깨닫고 나를 병실로 올려줬다. 아무도 수술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고, 심지어 성형외과 의사들은 회진도 돌지 않았기 때문에 며칠일 지나도록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수술 후 일주일만에 외래 진료실로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갔더니 수술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치료실에 눕혀놓고 수술 부위 소독을 시작했다. 소독이란 것은 늘 통증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나는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통증을 참는데에 집중했고, 결국 아무런 설명도 없이 돌아갈 뻔 했다. 마지막에 진료실을 나가기 직전에 수술 결과를 무었더니 짧게 아주 짧게 설명해줬다.


왼쪽 눈 아래 뼈는 산산조각 나서 조각들을 다 꺼내고 인공뼈를 넣었다고 했다. 아마 안와하벽에 대한 설명이라 여겼는데, 안와내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그리고 코뼈인 비골은 잘 세워놓았다고 말하고 말았다. 왜 내가 그렇게 결과를 궁금해할 수 밖에 없었는가 하면, 수술 후 코 위에 보호대를 덮어 반창고로 붙여놓아서 코가 어떻게 되었는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눈으로 코의 상태를 볼 수 있었다면 그렇게 궁금해 했겠나? 


이 의사가 짜증나는 또 다른 이유는 이거다. 나중에 코 보호대를 잠시 떼어내고 거울을 봤다. 사고 초기에 코가 완전히 뭉개져있을 당시에 나는 일부러 거울을 피했다. 유리나 매끈한 표면의 금속에 얼굴이 비춰보이면 일부러 시선을 돌렸고, 특히 코와 그 아래 찢어진 상처는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망가진 내 얼굴이 내 기억 속에 남는 것이 두려웠다. 유난히 악몽을 자주 꾸는 편인데, 밤마다 내 망가진 얼굴을 거울로 보고 절망하는 악몽을 꾸게 될까봐 두려웠다. 암튼 수술 후 일주일 하고도 며칠이 더 지나서 처음으로 보호대를 벗기고 얼굴을 보았는데, 보기 직전까지 어느 정도 옛 얼굴이 회복되어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었었는데, 그 희망이 산산히 부서졌다. 내 코는 평생 보아온 그 코가 아니었다. 얼마 전 후배에게 이런 말을 했다. "뭐 원래 내 코가 그리 높지도 않았지만, 사고로 완전히 뭉개져서 코가 거의 없어졌어. 그걸 수술로 세웠는데, 의사 표현으로는 세워는 놓았다고 하더라고." 그랬다. 의사 표현이 그랬다. 세워는 놓았다. 그리고 외래 진료로 방문하면서 엑스레이를 찍고 왔더니 수술 전과 수술 후 엑스레이를 비교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원래도 코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수술로 코를 세워놓았던 것이 잘 아물고 있네요." 아니! 사고 당하기 전에 내 얼굴을 본 적도 없으면서 내 원래 코가 높았던지 낮았던지 딱 그만큼만 회복되기를 바라는 건데, 이 여자 말투는 원래도 높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세워줬으면 그냥 만족해라 뭐 이런 느낌으로 들려서 무척 기분이 나빴다. 


어쨌든 눈 밑 뼈는 인공뼈로 대체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런 말을 들어서 이상하게 이질적인 느낌이 더 드는 것인지 몰라도 아직 붓기가 덜 빠진 왼쪽 뺨 위쪽은 자꾸 이상한 감각이 들어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이 부분은 나중에 얼굴 열상(찢어진 상처) 부분에서 다시 다루겠다. 그리고 코는 의사 표현대로 세워는 놓았다는데, 원래 내 코보다는 낮아서 보기에도 싫기도 하고, 내가 원래 끼고 다니던 안경도 주루륵 흘러내려 안경을 쓸 수가 없다.


코는 나중에 다시 성형수술을 받아 적어도 내 원래 코와 비슷한 정도로는 만들 생각이다. 문제는 여기 병원에서는 사고로 인한 재건 수술만 할 뿐 미용성형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내 원래 코와 비슷하게 만드는 것을 재건의 개념이 아닌 미용의 개념으로 언급하더라. 그 의사가. 그러면서 나중에 성형외과를 알아봐서 수술 받으라고 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찢어진 상처를 꿰매었던 흉터를 없애는 것도 미용성형이니 그것도 다른 곳에서 수술 받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고로 인한 붓기가 빠지고 상처가 아물고 뼈가 붙으려면 적어도 6개월에서 길면 1년 넘게 걸리기도 하니 그때가서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몸의 회복에 비해 얼굴의 회복이 유독 더디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직 얼굴은 붓기가 다 빠지지도 않았고, 신경이 손상되어 감각이 다 돌아오지도 않았지만, 외관 상으로 어느 정도라도 회복되려면 적어도 6개월 길면 1년이 넘게 걸린다고. 이제 겨우 1달하고 2주 가까이 지났을 뿐인데.


음, 8가지 종류의 손상에 대해 적어야 하는데, 얼굴의 주요 손상 3개 중에 아직 첫번째 밖에 쓰지 못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났고, 글도 그만큼 길어졌다. 애초 의도는 8개 주요 손상을 다 적고 오늘 글을 마치려고 했고, 중간에 글이 길어지고 있음을 깨달은 후에도 얼굴 손상 3가지는 다 적고 끝내야지 생각했는데, 도저히 못 마치겠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하고, 나중에 다시 나머지를 써야겠다.


책상 앞 창문에 반달보다 조금 더 뚱뚱한 달이 보이더니, 지금은 구름 속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보름달이 되어가는 걸까? 아님 보름달에서 점점 작아지는 중일까? 음력 날짜가 10일인 걸 보니 보름달로 점점 살이 찌는 중이구나.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쓰자. 사고를 당하기 전에 루마니안 백도 새로 구비하고, 케틀벨도 무게를 늘려 새로 질렀고, 한참 운동에 재미를 더해가는 중이었는데, 사고 이후로 한달 반 가까이를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뼈가 다 붙기 전까지는 운동을 할 수 없다. 다만 사고로 다친 부위 외에 맨몸 운동 중심으로 운동 흉내는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거의 손상이 없었던 하체 중심으로 조금씩 운동 흉내를 내 보기도 하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줄어드는 근육을 지켜보는 것은 괴롭다. 입원해 있을 때부터 먹는 양이 적어서 위가 줄어들어서인지 퇴원 후에도 많이 먹지를 못해 사고 이전보다 복근이 더 선명해진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할까? 아니 10대 후반 이후로 늘 내 자랑이었던 흉근과 광배근 그리고 승모근이 하루가 다르게 크기가 줄어들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선명해지는 복근 따위가 뭐가 중요할까! 뼈가 다 아물고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건 아마 3달 후 쯤 되러냐? 그때가 되면 왠지 근육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은 말라깽이가 거울에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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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8-2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큰일을 당하신.. 회복은 다 되신 건가요..? 에궁... 고생이 많으실 거 같아요 ㅠㅠ

감은빛 2020-09-02 22: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비연님.
많이 회복되었지만, 아직 다 되진 않았습니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2020-08-28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2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0-08-29 0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정말 큰일 겪으셨네요.
근육은 앞으로 만들면 되니까 지금은 다친 곳부터 차근차근 잘 회복해나가셔야죠.
저도 오늘 달을 보며 ˝좀 뚱뚱한 반달이네~˝ 했답니다.

감은빛 2020-09-02 23: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신기하네요. 뚱뚱한 반달이란 생각을 같이 떠올렸다니.

말씀처럼 먼저 회복하고 근육은 나중에 걱정해야 할 일이 분명 맞는데요.
사람 마음이란게 또 그렇지가 않네요.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근손실‘이란 단어일 거예요.
물론 저는 뭐 그 정도로 운동하는 사람도 아니긴 하지만,
긴 세월 잘 만들어놓은 근육이 단기간에 눈에 띄게 줄어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네요. ㅠㅠ

말씀 남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잘잘라 2020-08-29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이번 글은 세 번 읽었어요. 연이어 세 번인데 그때마다 다른 느낌이예요. 역시 콧대 이야기가 가장 궁금해요. 콧대는 소중해요. 미용성형이든 뭐든 감은빛 님이 콧대를 멋지게 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꼭이요.

감은빛 2020-09-02 23: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잘잘라님.
이 길고 재미 없는 글을 세 번이나 읽으셨다니.
괜히 제가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네, 말씀처럼 꼭 재 수술을 받아서 제가 원하는 얼굴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게요.
공감과 응원의 말씀 고맙습니다!

syo 2020-08-29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도 코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지랄.....-_-

그나저나, 이런 와중에도 근육과 운동에 대한 애착, 역시 감은빛님...^-^b


감은빛 2020-09-02 23:08   좋아요 0 | URL
쇼님의 ˝이 지랄˝ 이 한 마디가 여러가지 감정을 불러일으켜 주네요. ㅎㅎ

이 와중에도 근육 애착은 어쩔 수 없나봐요.

오랫동안 잘 만들어놓은 근육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가고 있어요.

앞으로도 또 몇 달 동안은 제대로 운동을 할 수 없을텐데,
또 얼마나 더 근육이 줄어들지 알 수가 없네요. ㅠㅠ

나와같다면 2020-08-3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쾌유를 기원합니다
몸도 마음도 어여 나으시기를

감은빛 2020-09-02 23: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나와같다면 님.

응원의 말씀 고맙습니다!
몸도 마음도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