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공간


1년에 한 번씩 애들 엄마가 독일로 출장가는 시기가 돌아왔다. 나와 사귀기 전부터, 나와 결혼하기 전부터 해왔던 일이었고, 큰 아이가 태어난 다음 해에도, 작은 아이가 태어난 해에도 다녀왔었던 일이었다. 이혼 여부와 별개로 이 기간이 되면 달리 애들을 맡길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혼 전과는 달리 아이들과 10일 이상 같이 지내야하는 이 상황이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좋기 때문에 당연히 이 기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임에 틀림없지만, 다만 아이들이 우리 집을 싫어하고, 평소 더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 애들 엄마와 같이 지내는 공간, 즉, 이혼 전까지 나와 함께 살았던 집에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만 이 집에 다시 돌아와 지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낯설고 또 한 편으로 싫은 느낌이다.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아마 작년이나 재작년에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여기 알라딘 서재에 두드려 놓았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이 공간에 다시 돌아와 며칠을 지내야하지만, 이 낯선 느낌이 너무 싫다고. 일상이 다 싫은데 그 중 최악은 음식을 만들 때다. 아이들은 기특하게도(혹은 신기하게도)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주는 걸 좋아한다. 보통 아이들은 밖에서 사먹는 패스트푸드 같은 걸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우리 아이들은 참 다르다. 암튼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애들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집 주방이 왜 이렇게 낯선 건지. 분명 4년 하고 몇 개월 전까지 나도 이 집 주방에서 자주 음식을 만들었었다. 그 사이 익숙했던 몇몇 냄비와 프라이팬 등 조리기구가 없어졌고, 못보던 조리기구가 생기긴했지만.


그런데 뭐 간단한 반찬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소금이나 식초나 이런저런 기본적인 재료들이 뭐가 어디 있는지 도통 찾지를 못하겠다. 매번 큰 아이를 부르거나, 작은 아이를 불러서 엄마가 이걸 어디 놔뒀을까를 물어야 한다. 물론 당연히 애들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며칠 전에는 심지어 밥 짓기를 실패했다. 대학시절 자취했던 때부터 밥을 해먹은 입장에서 평생 밥 짓기에 실패한 경우는 처음이다. 애들 엄마가 주로 쓰는 압력 밥솥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밥을 태워서 누룽지를 끓여보았다. (누룽지는 맛있었다. 큰 아이도 누룽지가 맛있다고 더 달라고 했다.) 이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인데, 도통 실패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다시 그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기가 두렵다. 그래서 집에 가서 내가 쓰던 압력 밥솥을 가져왔다. 이해할 수 없을 때는 그냥 포기해야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조리기구를 사용하면 되는 것을.


어제는 탕을 하나 끓이고, 나물을 무쳤다. 아주 오랜만에 해본 시도였다. 평소라면 귀찮아서 절대 하지 않았을텐데, 왠지 이 집 주방에 서면 예전에 내가 해준 잡채나 나물 무침 등을 맛있게 먹었던 가족들 생각이 나서 자꾸 오랫동안 안 해본 음식을 다시 해보고 싶은 욕심을 내게 되는 것 같다. 문제는 앞서도 말했듯 이젠 이 집 주방이 낯설다는 점이다. 예전의 그 맛이 나오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내가 만든 음식이 맛이 없을 리가 없는데. 내가 귀찮아서 안 해서 그렇지 맘 먹고 하면 못하는 음식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그래도 맛있다고 먹어주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고마울 뿐이다.


제일 견디기 어려운 건, 이 집 곳곳에 배어있는 추억들이 불시에 뇌리에 떠올라 괴로운 것과 이 집에서 나와의 기억이 비교적 적은 작은 아이가 자꾸만 "우리는 이렇게 해" 라고 애들 엄마가 정한 어떤 방식을 나에게 가르치려고 들 때다. 그때마다 내가 "엄마는 그렇게 하지만, 이렇게 해도 틀린 건 아니야. 이렇게해도, 저렇게해도 다 괜찮아." 라고 말해도 아이는 듣지 않는다. 그저 애들 엄마와 함께 지내며 익숙해진 그 방식만을 고집할 뿐. 그게 사소한 일일수록 나는 더 괴롭다.


사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점점 더 아빠와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혼에 대해 논의 할 때, 무조건 반반 아이들과 지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줄 것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걸었었다. 만약 아이들 양육권으로 소송을 해야 했다면, 아무리 가난한 상황이었어도 무조건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은 점점 우리 집에 오기를 싫어했고, 처음에 반반이었던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젠 일주일에 이틀. 그마저도 주말에 친구들과 노느라 시간을 보내는 큰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렇게 아이들은 점점 아빠와 멀어지는 구나 생각하면 정말 서글프다.


지긋지긋한 갑질


아침엔 조선일보 앞에서 왜곡 보도 규탄 기자회견을 했고, 오후엔 신규 발전소 건으로 공무원들의 어이없는 갑질 때문에 수십통의 전화와 문자와 이메일을 보내며,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애쓰느라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나의 질문에 화를 내며 갑질하는 공무원. 그가 어린 여성이라서 더 화가 나는 건 아니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나이 많은 남성과 나이 어린 남성의 갑질 때문에 이번 보다 더 화가 났었다. 그땐 오히려 공무원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은 마음에 더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어린 여성이라서 더더욱 말을 조심하느라 단 한 번도 먼저 강한 어투로 말을 건 적 조차 없었다. 약 3달 전, 그가 막 이 부서로 발령받았다고 업무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며칠 후에 연락 달라고 했던 그 때부터 나는 계속 그를 존중해왔다. 그냥 무심코 질문을 하려다가도 한 번 더 생각해서 최대한 예의를 갖춰 단어를 선택하곤 했다. 그랬기에 오늘 그가 언성을 높이고 내게 화를낸 순간, 그 화를 견디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쥔 손이 덜덜 떨렸고, 말이 빨라졌고, 나도 그를 따라 언성이 높아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목소리까지 떨리는 걸 감춰보려 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몇 시간 후에 그가 다시 전화를 했는데, 내 질문과 요청 사항을 검토 중이니 며칠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몇 시간동안 안정을 되찾았기에 평소처럼 예의를 갖춰 내가 물어야 할 질문들을 던졌다. 그는 자세한 대답을 피한 채 현재 검토중이니 기다리라는 너무나도 형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다가, 내 계속되는 질문에 잠시동안 다시 언성을 높이려는 듯 했으나, 참는 것 같았다. 바라지도 않았지만, 끝까지 본인이 화를 낸 것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아마 본인은 잘못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말 본인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너무나도 공무원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인데, 말이 잘 안 통하는 어떤 남성이 자꾸 꼬치꼬치 캐물어서 불쾌했다고 여길 것이다. 딱 거기까지가 그 사람의 한계일 것이고, 이 나라 공무원의 한계일 것이다. 


예전에 했던 환경단체, 시민단체 그리고 출판사 일도 힘들었지만, 약 5년동안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 바로 공무원 갑질을 견디는 일이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시절에는 절대 갑질을 견딜 이유가 없다. 그냥 싸우면 되는 일이었다. 만약 공무원이 갑질을 하면 공무원 복무규정을 비롯해 온갖 법규를 다 동원해 그를 뭉개버릴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공무원이 아닌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 도매상 담당자들의 갑질이 있었지만, 그걸로 굳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그건 시스템의 문제였고, 나는 그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끔 술을 사주고, 가끔 식사를 대접하면서 내가 필요한만큼만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는 완전히 달라졌다. 단체에 있을 때처럼 공무원을 묵사발 내버릴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 사업이 되도록 만들어야 했으니까. 언젠가부터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내가 탁구공이 된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부서에서 핑 치면, 저 부서에서 퐁 치는 탁구공. 여기 관공서, 저기 관공서, 이 주무관, 저 사무관, 이 시공사, 저 전문가 중간에서 조율하느라 하루종일 전화통을 붙들고, 끼니도 제 때 못 챙겨먹으면서 여기 저기 회의와 미팅을 쫓아다니는데, 정작 일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 그게 지난 5년동안 계속 반복되고 있다.


가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짧은 시간에 확 늙었냐고 묻는다. 흰 머리가 많이 늘었고, 머리 숱도 눈에 띄게 줄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이젠 내 나이보다 더 늙어보인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게 다 공무원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어떤 날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분하고 짜증이 나 견디기 힘들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겠지. 벌써 1시를 훌쩍 넘기도록 이 글을 두드리고 있으니. 정말 하루라도 빨리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수천번째 반복해본다. 이 일을 그만둬야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양육비다. 매달 애들 양육비로 보내야 하는 돈이 최저임금을 맞춰 받는 내 활동비의 절반이다. 그것도 최저임금이 올라서 지금은 절반이지만, 그 전에는 그 비중이 더 컸다. 암튼 고정적으로 받는 수입이 없으면 양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짓눌려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매일 매일 다른 답을 찾아보려 고민하지만, 늘 그때마다 떠오르는 건 이 나이에 무슨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나마 이 분야에서 인정 받는 게 어딘가 하는 너무나도 보수적이고, 매너리즘에 빠진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조금이라도 더 젊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술과 담배가 없었다면 어찌 견뎠을까?


이 힘겨운 삶을 견뎌낸 건 전적으로 술과 담배 덕분이다. 남들은 술과 담배가 건강에 나쁘다고 말하겠지만, 내게는 반대다. 만약 그 둘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자살을 선택했거나, 아예 정신이 나가버렸을지도 모른다. 자주 함께 술을 마시는 후배들에게 늘 고맙다고 말한다. 그들이 술 자리에서 내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담배가 없었다면, 나는 일과 시간을 무사히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오전 중에 2건의 회의를 채 마치기도 전에 넋이 나가버리지 않았을까? 담배가 있었기에 정신을 추스리고, 해야 할 일을 다시 정리하고,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지만, 올해들어 자꾸 이유없이 여기저기 관절이 아픈 이후로 마시는 양과 마시는 빈도를 많이 줄였다. 담배는 오래 전, 그러니까 애들 엄마가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잠시 끊었다가 몇 년 후에 다시 피우게 된 이후로 양이 확 줄었고, 이후에 거의 늘지 않았다. 담배 한 갑을 사면 대개 일주일 이상을 피운다. 담배를 가장 많이 피운 시기였던 자취 시절, 하루에 2갑씩 피웠던 걸 생각하면 지금은 거의 어디가서 흡연자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술과 담배는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산소마스크와 같은 역할, 즉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란 말이다.


운동과 술


이유 없이 여기 저기 아픈 관절 통증으로 운동을 못 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침마다 손가락, 손목, 발목, 무릎, 어깨 등 비정기적으로, 간헐적으로 통증을 느끼며 매번 생각하는 건, 스트레스와 피로와 술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도무지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깨닫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술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 또 숙취와 피로와 관절 통증을 느낀다. 이 악순환은 이 일을 그만둬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주말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날에는 술도 담배도 없이 이틀 이상을 아무런 문제 없이 보낼 수 있다. 아니 그 기간이 한 달이던, 두 달이던 일에 의한 스트레스가 없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실제로 연휴 며칠 동안 그렇게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무척 운동이 하고 싶다. 피로와 관절 통증으로 매번 간단한 동작조차 제대로 된 자세가 나오지 않아 포기한 날들이 얼마던가? 


아이가 내민 상추쌈


이렇게 서재에 주저리주저리 글을 두드리고 있는 건, 아마도 조금 마신 술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하루 너무나도 갑작스레 어이없는 상황을 맞아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들였고, 그래서 퇴근 무렵 너무나도 지친 상태였다. 도저히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줄 수 있는 몸과 마음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걸어 외식을 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오늘만큼은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상태였기에, 뭔가 술과 함께 먹을 음식이 필요했다.


예전에 자주 갔던, 한동안 거의 가지 않았던 보쌈집을 찾아갔다. 큰 아이는 그 집이 싫다 했고, 작은 아이는 오랜만에 간다고 좋아했다. 억지로 큰 아이를 끌고 찾아갔건만, 그 집은 이제 배달이나 포장 주문만 받고, 식당 안에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어쩔수 없이 돌아나와서 다른 식당을 찾아 돌아다녔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나도 아이들도 지쳐갔다.


역시 한때 가끔 가곤 했던 갈비집 앞에서 아이들의 의사를 물었더니, 둘 다 좋다고 했다. 돼지갈비 2인분을 시켜놓고 잠시 반성과 자기 합리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 기후 위기 시대에 육식을 줄여야 하건만, 그럼에도 오늘 같은 날엔 고기와 술을 좀 먹어줘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이런 고기집에 오면 나는 늘 고기를 구워 아이들을 먹이느라 초반에는 거의 먹지 못한다. 어느 날 그런 사실을 깨달았는지, 큰아이가 말없이 상추에 고기와 마늘 등을 얹은 쌈을 내 입에 넣어주곤 했다. 매번 그 상추쌈을 받아 먹을 때마다 나는 고마움과 뿌듯함을 느낀다. 말없이 아빠를 위해 행동하는 딸이 되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그런 딸을 키웠다는 자부심이 든다.


오늘도 아이가 말없이 내민 상추쌈을 받아 먹으며, 그리고 바로 이어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하루 종일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런 맛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거지. 


우울한 날, 우울한 감정


영화나 소설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아마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힘들다. 하물며 실제 겪는 누군가의 죽음은 더욱 힘들 수 밖에 없다. 그 누군가가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해도, 스쳐 지나는 뉴스 속 한 줄이라해도 그렇다. 


'설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우연히 출판사 후배가 들려준 노래, 불나방 스타 소세지 클럽이라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짝퉁이란 느낌이 물씬 드는 밴드의 노래를 들었을 때였다. 어느날 보았던 유튜브 영상에서 유희열이 너무나도 좋아해서 라디오 방송에서 두 번씩 틀기도 했다고 소개했던 [알앤비]라는 노래 중에 '설리'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 노래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설리라는 이름이 뭔지 무척 궁금해져서 검색해봤더니 아이돌 출신의 여성이라고 결과가 나왔다.


사실 누구나 각자의 취향이란 게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생각해도 내 눈에는 별로인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내겐 몇몇 배우나 가수가 그랬다. 다들 예쁘다고 난리여도, 내 눈에는 글쎄 였다. 설리도 내 취향은 아니어서 별로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희열 뿐 아니라 내게도 무척 좋아하는 노래가 되어버린 그 노래 가사는 아쉽게도 그닥 설득력을 갖지는 못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가 나온 영화를 봤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아마 평소라면 절대 보지 않았을 영화였겠지만, 어쩌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봤다. 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이 영화에 설리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에서 이 영화 제목을 보기 전까지는. [리얼]은 그 악명을 익히 듣고 난 후에, 대체 얼마나 못 만든 영화길래, 얼마나 엉망이기에 다들 저런 반응이지 하는 궁금한 마음에 뒤늦게 봤다. 아,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그가 나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니 모를 수 없었다고 표현해야 할까? 짧게 나온 그의 눈부신 몸매 때문이었다.


아, 이런 표현은 결국 그를 특정한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시선이나 심지어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갔을 거라고 추정하는 (아직 그 죽음에 대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들었다.) 악플과도 다르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냥 내 입장에서 솔직한 감상을 표하는 것이다. 그 영화에서 다른 걸 찾을 수도 없지 않은가?


암튼 그렇게 내게는 거의 모르는 사람과도 다름 없는 누군가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그가 연예인이어서, 내가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어서 아마 더 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사회면에서 단 한 줄 언급한 어느 이름 모를 노동자의 죽음이었으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여기 서재에 여러번 언급했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자주 자살 충동을 느꼈고, 진보신당 박은지 부대표의 선택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마음을 느꼈듯이, 나는 자살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나쁜 선택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선택할 수도 있는, 여러 갈림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 그 죽음이 자살이라고 결론나지 않았지만) 만약 설리의 죽음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 해도 충분히 존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온전히 그의 선택이니까.


그래서 혹 언젠가 내가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내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싸움에서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내 인생의 여러 선택 중 하나를 택했을 뿐이라고. 그 선택에는 분명 그에 합당한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봤다. 한 번에 다 본것이 아니라 5일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이어서 봤다. 이 영화를 좋아해서 여러 번 다시 본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걸 다 쓰려면 또 엄청난 시간과 분량이 필요할테니 다음으로 미뤄두고, 이번에 다시 보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몇몇 감정선이 보였다. 이것도 다 나이가 들어가는 입장에서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는 또 감정이 울컥했다. 우울한 날에 우울한 결말을 맺는 영화라니. 이 영화의 여운이 아이들을 재우고, 이 글을 두드리게 만들었고, 이 시간까지 온갖 잡다한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무실에 두고 온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2시 반이다. 내가 좋아하는 Lady Antebellum 의 [Need you now] 에 나오는 가사 quarter after 1(새벽 1시 15분) 보다 1시간 15분 더 지났고, 내가 좋아하는 책 [세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보다는 30분 전이다.  


내일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서, 뭔가를 간단히 먹여서 학교를 보내고 출근하려면 이젠 자야할텐데, 웬지 술이 모자라서 잠을 자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이 글은 이만 마무리해야겠지. 쓰고 싶은 글이 많은데, 늘 시간은 부족하다. 언젠가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구상해놓은 소설을 써야지. 오늘 밤엔 머릿속에서 소설을 쓰며 잠을 청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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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10-16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t‘s half past five~ ^^
좀 주무셨나요?
저는 평소 잘 안꾸는 꿈을, 그것도 2시간 짜리 특강 듣는 꿈을 다 꾸었네요.
아마 어제 2시간 짜리 어떤 수업을 땡땡이친 것 때문에 찔렸나봐요.
아이들과의 길지 않은 시간, 잘 보내시기를.
피곤하실텐데 아이들이 좋아하니 직접 식사 준비를 해주는 아빠, 아이들 아침 먹여 학교 보낼 생각하며 잠을 청하는 아빠.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감은빛 2019-10-17 18: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자려고 누웠는데도 잠이 안와서 한참을 뒤척이다 잠들었어요.
얼마 못 자고 일어나야해서 어제는 많이 피곤했어요.
남겨주신 말씀 하나하나 모두 고맙습니다! ^^

책읽는나무 2019-10-16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 보니 이 새벽에 괜히 눈물이 핑 도는 듯 합니다.
지금 창밖엔 일출이 시작되려고 산너머 하늘께가 붉어졌습니다.
일출을 보려고 부러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중입니다.그러면 하루가 좀 더 다르게 느껴지는 기분이랄까요!!
암튼 고단하실테지만 하루,하루가 감은빛님께 좀 더 나은 날들이 되길 바랍니다.

감은빛 2019-10-17 18:4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일출을 보려고 일찍 일어나신다니,
절대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없는 저로서는 부럽습니다.
말씀 덕분에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19-10-16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일들이 있었군요. 삶의 고단함이 전해져 옵니다. 하지만 부디 힘내세요. 오늘 저도 이런저런 생각하다 어떠면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고 대단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춘기 아이는 다른 이유지만 엄마와도 멀어진답니다.--;;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세상 전부였던 시간들 생각하면 갑자기 울컥울컥 할 때가 많아져요. 화이팅하세요.

감은빛 2019-10-17 18:4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네, 말씀처럼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차라리 그냥 죽음을 선택하면 괴롭거나 힘든 일은 이제 더 생기지 않을테니까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또 망설이게 되는 것 같아요.

사춘기 아이는 정말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아요.
금방 화냈다가, 다시 금방 또 배시시 웃으면서 다가오곤 하더라구요.

큰 아이가 엄마와도 이런저런 일로 다툼이 있었던 걸 알고 있어요.
어떤 면에선 오히려 애들 엄마가 저보다 더 큰 아이 대하는 걸 힘들어하더라구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2019-10-16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7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9-10-1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맘 고생이 많으시네요.그래도 화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19-10-17 18:4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yrus 2019-10-17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공무원은 전화를 받는 태도가 불친절해요. 예전에 할머니 이름으로 소유한 땅 때문에 토지 관리하는 공공기관에 일하는 공무원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어요. 부동산과 토지 관리에 대해 잘 몰라서 전화를 한 것인데 공무원이 알려준 설명이 이해가 안 돼서 양해를 구하고 다시 질문을 했어요. 공무원은 다시 설명하는 것이 귀찮았는지 약간 짜증을 내면서 대답했어요. 감은빛님이 느꼈을 심정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감은빛 2019-10-17 18:51   좋아요 0 | URL
네, 시루스님.
전화 받는 태도 뿐 아니라 뭐랄까 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 같은 것이
안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냥 주어진 자리에서 딱 주어진 만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데 실은 그 주어진 만큼조차 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고 느껴요.
물론 모든 공무원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가 운동을 시작했던 약 20년 전부터 여러가지 일로 만나본 대다수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요즘 특정한 공무원들 때문에 너무 머리가 아프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