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너무 많아
사카이 준코 지음, 김수희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에는 온통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분이다. 노인이 되어서까지 귀여운 척을 해야 하나 싶어 진저리 치지만, 뭔가 ‘긑까지 관철하는 것‘이 있다면 굳이 타인에게 아양 떨지 않아도 되겠지.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루시 리의 자태와 작품이다. (30쪽)

그토록 탐구심 왕성한 중국인이 누드나 성인 화보마저 금지인 상황에서 만족할 수 있을까. 심히 의문이지만 어쩌면 그들은 억압이라는 상황에 에로스를 느끼는 측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전족이든 환관이든, 무언가를 빼앗는 것에 의해 생기는 다른 효과를 그들은 알고 있었다. (65쪽)

소녀 시절은 감미로운 기억과 함께한다. 그러나 너무 단 과자는 때로는 치아에 아프게 느껴지는 것처럼 소녀의 주변에 감도는 달콤함 또한 아픔과도 가깝다. (118쪽)

실제로 우리는 그다지 현명하지 않다. 많은 미국인이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삼고 있지만‘ 스스로가 정치에 관여하는 혹은 감시하고 싶지 않은, 요컨대 자신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민주주의가 수호되길 바라는‘ 경향의 소유자인데, 그에 대해 미국의 어느 정치학자는 ‘비밀 민주주의‘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정치가의 이미지이며, 이미지 형성에 크게 관여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는 ‘어떻게‘ 말하는가다. (129-130쪽)

그러나 ‘여직원을 대상으로 한 잡지에 실린 가방이 40만 엔‘이라는, 현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라미프 스타일에 끊임없이 노출되다 보면 ‘어느 순간 엄청 피곤해진다. 있을 수 없는 설정에 악영향을 받아 그것을 실현하지 못한 내 쪽에 문제가 있는 듯한 생각이 들며 자기 비하에 빠진다. 사회는 허들이 너무 높아 나 따위는 도저히 진출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점점 우울해진다. (145-146쪽)

가족만큼 서로에 대해 모르는 사이는 없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오로지 서로 피가 통하기 때문에 함께 있을 뿐,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해서 같이 사는 관계가 아닌 것이 부모 자식이다. 부부는 과연 어떨까. 애당초 타인이다. (157쪽)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면서 어디든 끝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정보화나 국제화는 끝을 없애는 기능을 하지만 ‘끝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는 나를 포함하여 사람들 안에 여전히 강하게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210쪽)

성지라고 불리는 장소에 갔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그 땅이 본시 가지고 있는 힘 이외에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땅을 지켜왔던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덕분이지 않을까. 성지란 신과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성지란 애당초 고생하며 가는 장소, 즉 순례의 결과로 도달하는 장소였다. (240쪽)

간병이란 보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간병하는 것이 괴로운 까닭은 그 사람이 생으로부터 한 걸음씩 멀어지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259쪽)

남편과 아내가 인생의 모든 것을 함께하는 건 아니다. 남편은 아내가 모르는 시간을 살고 아내는 남편이 모르는 생각을 품는다. 모르는 부분을 모른 채 남겨두는 것도 사랑의 형태이기는 하지만 알지 못하는 부분을 알려는 노력 또는 사랑이다. (277쪽)

사람이 행복해지는 이야기, 특히 실화는 자칫하면 타자에게 초조함을 부여한다. 때로는 질투나 선망, 나아가서는 ‘타인의 행복을 솔직하게 기뻐할 수 없는 나는 이 얼마나 편협한 인간이란 말인가‘ 하는 죄의식도. (323쪽)

그리고 우리는 대지진을 거울 삼아 ‘문명화 속도‘에 대해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과연 앞으로 나아갈수록 좋은 것일까......? 이런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그럼 어디에서 멈추면 딱 좋을까?‘라는 정답은 없다. (345쪽)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생생함이라는 문제. 이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평소에는 감추어야 한다는 예민함을 품고 있다. 그런 ‘생생한‘ 부분을 주저 없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노출하는 것이 조각이라는 세계다. 조각상들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훌훌 벗은 채 모조리 노출한 모습을 보면 보고 있는 이쪽이 오히려 더 부끄러워지기 마련이다. (347쪽)

‘대부분의 학교는 외향형 아이들에게 맞게 만들어져‘ 있고 ‘내향형 학생들에게는 좀 더 외향적이 되어라, 사교적이 되어라,라고 조언하는 것 이외에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부분을 읽고는 수업 중에 대답을 알고 있어도 손을 들 수 없었던 나날이 떠올랐다......다행스럽게 나는 그 후 아무리 내향적이어도 어떻게든 되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외향적이 되려는 노력 부족‘으로 간주 될 뿐,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내향적 인간이 많지 않을까. (402쪽)

‘절망‘이란 자신의 입장이 너무 자유로웠던 탓에 생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42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몇 십년 하던 일을 그만 둔다는 마음을 정한 순간부터 시간은 아주 느리게 지나간다. 그래서 요일별로 세고 있다. 월요일이 며칠 남았다 등으로 손을 꼽는다.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고 싶다. 여전히 일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퇴직 후 꼭 하고 싶은 일 중에서 번역이 단연 으뜸이다. 누군가는 번역은 뼈를 깍는 일이라고, 나이도 있는데 만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흥미와 적성'을 따져 진로탐색을 하듯, 분명 내게는 두 가지 모두 있다고 믿는다. 믿고 싶다. '여백을 번역하라', 즉 '독자의 언어로 번역하라', 번역과 관련 일에 기웃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여백을 번역하라 - 원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글맛을 살리는 번역 특강
조영학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으로서는 올바른 번역은 무엇보다도 번역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에서 비롯한다고 믿는다. (중략) 내 주장의 핵심은 바로 번역은 ‘다시 쓰기(rewriting)‘라는 얘기다. 외국어 텍스트의 내용(의미, 형식, 상황, 비유 등)을 먼저 파악하고(interpretation), 그 결과를 우리말로 다시 쓰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7쪽)

번역은 혼자와의 싸움이자 대화이지만 동시에 출판이라는 복잡한 과정의 일부다. 더욱 섬세한 조율과 조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11쪽)

어쩌면 번역의 진짜 매력은 이런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잘 통제할 수 있다면 시공의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 번역가들한테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다. (49쪽)

내가 보기에 좋은 번역이란 ‘정확성‘과 ‘가독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번역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84쪽)

번역에는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에 따라 훈련하고, 그 기준에 따라 작업하며, 그 기준에 따라 올바른 번역과 잘못된 번역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103쪽)

번역도 별반 다르지 않다. 텍스트에서 무엇을 읽을지의 문제는 무엇을 번역할지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번역은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외국어로 표현한 상황을 우리말로 다시 쓰는 과정‘이다. 따라서 번역(translation)은 해석(interpretation)을 전제로 한다. (107쪽)

따라서 이 책이 지향하는 번역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최대한 우리말 체계와 언어습관에 가까운 번역, 번역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를 지향한다. 독자의 언어로 번역하라. (119쪽)

"독자의 언어로 번역하라"에서도 지적했듯이 어느 언어든 ‘시간과 논리 순서로 기록‘할 때 가장 자연스럽다. (171쪽)

"번역은 기술이다"라고 할 때 이는 몇 가지 전제를 암시한다. 첫째, 기술은 가르치고 또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번역이 기술인 한 당연히 표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르치고 배운다. 셋째, 기술은 시대 흐름에 맞아야 한다.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면서 18, 19세기 고전주의 기준에 맞춰 번역할 수는 없지 않은가. (19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을 책을 고를 때는 그때의 상황에 따른다. 몸의 흐름이 흐트러지고 상태가 많이 안 좋을 때 분명 펼쳤으리라... 한 남자의 십대에서 죽을 때까지 내용이 들어 있는 진솔한 일기로써, 자신의 몸에 대한 성찰이다. 몸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고 행동으로 나아간다. 일기를 써온 이유를 몸과 마음을 같은 축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듯이, 몸에 관한 이야기지만 저자의 전생애가 녹아있다. 현재 내가 지나고 있는 50~64세까지 부분과 그 후의 일기에 관심이 많이 갔다. 손자를 잃은 후 일기와 그 후 7년간의 공백에서는 눈물이 났다. 떠나간 사람들을 금방이라도 만질수도 만날수도 없는 '그들의 몸'과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한다는 죽음의 의미를 절절히 이해하도록 해줬다... 어제는 '필름스타 인 리버플'을 보았다... 이제 밀리는 월요일 출근길도 몇번만 남아있다. 조만간 그리울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시대의 몸은 분석을 하면 할수록, 겉으로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덜 존재한다는 거야. 노풀과 반비례하여 소멸되는 거지. 내가 매일 일기를 쓴 건 그와는 다른 몸, 그러니까 우리의 길동무,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해서란다. (11쪽)

내 몸은 모둔 것에 반응한다. 하지만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35쪽)

인간은 자기 몸에 관해 무엇이건 다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모조리 다. 걷는 법, 코 푸는 법, 씻는 법. 누가 시범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될지 모른다. 처음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아무것도. (42쪽)

우릴 가장 잘 알던 사람도 우리가 커버리면 더 이상은 우릴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모든 게 비밀이 되어버린다. 그러다가 죽는 순간엔 다시 모든 게 다 드러난다. (72쪽)

"사람이 살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서로 싸우느라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지." (136쪽)

몸은 사랑의 에너지 덕을 어느 정도로나 보는 걸까. 요즘은 모든 게, 정말 모든 게 다 잘 풀린다. 직장 일에서도 지치는 법이 없다. (177쪽)

아버지가 된다는 건 팔을 못 쓰는 장애인 신세가 되는 것이다. 한 달 전부터 내겐 팔이 하나밖에 안 남아 있다. 다른 팔로는 브뤼노를 안고 있다. 하루하루 그렇게 살다 보니 익숙해지긴 한다. (186쪽)

우리 몸에서 풍겨나오는 것들, 즉 실루엣, 걸음걸이, 목소리, 미소, 필체, 몸짓, 표정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 곁에 있다 사라진 사람들을 떠올려볼 때,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흔적들인 것이다. (210쪽)

그 무엇에도 집중이 안 된다. 극도의 산만함, 어설픈 동작, 어설픈 문장, 어설픈 숙고, 이무것도 마무리되는 건 없고, 모든 게 내면을 향해 파고든다. 불안은 끊임없이 불안의 중심으로 되돌아간다. 그건 아무의 잘못도 아니다. (238쪽)

‘늙은‘이라는 형용사가 들어간 단어나 관용구를 보면, 노화를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도대체 언제 노년기로 들어가는 거지? 어느 순간에 늙은이가 되는 거지? (259-260쪽)

이제 막 모두의 동의를 얻으려는 찰나......돌연 말문이 막혔다! 기억이 차단된 것이다. 발밑의 함정에 빠진 기분. 그런데도 난 다른 표현을-찾으려 하는 대신, 미련하게도 문제가 된 그 단어만 찾고 있었다. 도둑맞은 주인처럼 분노를 느끼며 기억을 추궁했다. 원래의 단어를 내놓으라고 떼를 썼다! (288쪽)

인간이 진정으로 겁을 먹는 건 오로지 자기 몸에 관해서뿐이다. 자기가 말로 한 걸 누군가가 진짜 행동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다. (315-316쪽)

아주 자주, 난 어린아이가 된다. 내 안의 아이는 내 힘을 과대평가한다. 우린 모두 이 어린 시절의 충동에 꼼짝 못하고 딸려간다. 나이를 잔뜩 먹어서가지도. 아이는 끝가지 자기 몸의 존재를 드러내려 한다. 무장을 풀지 않은 채로 있다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달려드는 것이다. 그런 순간들에 내가 쓰는 에너지는 이미 지나간 시절의 것이다. (325쪽)

그러나 가장 절망스러운 건, 금방 대화를 시작해놓고도 내가 말하려는 걸 잊어버릴까 봐 겁이 나서 긴장해 있는 바보 같은 상태이다. 내 기억력이 도무지 미덥지 않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내게 교육시켰던 내용도 분명히 기억하긴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머지 세부 사항은 다 잊어버린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중략) 오늘, 내 기억력은 오로지 기억력의 감퇴를 기억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네 기억력이 없다는 걸 기억해! (353쪽)

사실 이 일기를 써온것도 끝없는 조절의 훈련이었는지 모른다. 흐릿함에서 벗어나기, 몸과 정신을 같은 축에 유지하기...... 난 ‘상황을 똑바로 보기 위해 애쓰며‘ 내 인생을 다 보냈다. (379쪽)

장례는 단지 의례였을 뿐, 난 홀로 분노를 곱씹으며 슬픔을 키워갔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죽을 때 우리에게서 뭘 앗아가는지 알아채기란 쉽지 않지. (중략) 그들은 몸이 살아 있는 동안 기억할 거리들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내겐 그 기억들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내가 그리워한 건 그들의 몸이었으니까! 내 앞에 마주하고 있어 손만 뻗치면 만질 수 있는 몸, 그거야말로 내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447-44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