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서는 올바른 번역은 무엇보다도 번역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에서 비롯한다고 믿는다. (중략) 내 주장의 핵심은 바로 번역은 ‘다시 쓰기(rewriting)‘라는 얘기다. 외국어 텍스트의 내용(의미, 형식, 상황, 비유 등)을 먼저 파악하고(interpretation), 그 결과를 우리말로 다시 쓰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7쪽)
번역은 혼자와의 싸움이자 대화이지만 동시에 출판이라는 복잡한 과정의 일부다. 더욱 섬세한 조율과 조망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11쪽)
어쩌면 번역의 진짜 매력은 이런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잘 통제할 수 있다면 시공의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 번역가들한테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다. (49쪽)
내가 보기에 좋은 번역이란 ‘정확성‘과 ‘가독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번역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84쪽)
번역에는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에 따라 훈련하고, 그 기준에 따라 작업하며, 그 기준에 따라 올바른 번역과 잘못된 번역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103쪽)
번역도 별반 다르지 않다. 텍스트에서 무엇을 읽을지의 문제는 무엇을 번역할지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번역은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외국어로 표현한 상황을 우리말로 다시 쓰는 과정‘이다. 따라서 번역(translation)은 해석(interpretation)을 전제로 한다. (107쪽)
따라서 이 책이 지향하는 번역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최대한 우리말 체계와 언어습관에 가까운 번역, 번역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를 지향한다. 독자의 언어로 번역하라. (119쪽)
"독자의 언어로 번역하라"에서도 지적했듯이 어느 언어든 ‘시간과 논리 순서로 기록‘할 때 가장 자연스럽다. (171쪽)
"번역은 기술이다"라고 할 때 이는 몇 가지 전제를 암시한다. 첫째, 기술은 가르치고 또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번역이 기술인 한 당연히 표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르치고 배운다. 셋째, 기술은 시대 흐름에 맞아야 한다.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면서 18, 19세기 고전주의 기준에 맞춰 번역할 수는 없지 않은가. (19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