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몸을 깨워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34년 가까이 일하면서 쓰러진 3일을 제하고는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 금요일 종업식을 한 후 명퇴 결정도 들었다. 더 이상 올 수 없는 곳을 휘 둘러보고 나왔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몇번이나 묻고 또 물었다. 이제 와서 어쩔까마는, 치열하게, 당당하게, 잘 해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했다. 주변인의 시선보다 내면의 나의 시선이 너무 강했고, 기준치도 높아 어렵게 돌아 온 적도 있었다. 돌아보니 나로 인해 주변인도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은 두고 두고 기도로 갚을 일이다. 새해 들어 와 '철학의 위안(알랭드보통)', '고독할 권리(이근화)'를 번갈아 읽으며 바로 동해로 떠났다. 바다는 여전했다. 나도 여전히 똑같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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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 2019-01-1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해 전에 그런 마음으로 동해바다를 바라본 적이 있었습니다. 초가을이었지요. 옷을 제대로 못 입고 가서 움츠리며 바닷바람을 쐬었지요. 그래도 탁 트인 바다를 보니 내 마음의 무게가 별거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가슴에 큰 바위가 매달린 줄 알았는데, 넓고 깊은 바다 앞에선 돌멩이 수준밖에 안되겠구나..하는 마음이...무엇보다 건강하십시오. 마음이 무너지면, 몸도 주저앉습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집니다.

JUNE 2019-01-17 19:2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내것일때와 아닐때의 무게감은 엄청 다르지요. 그게 내것이 아님을 알기전에는.. 늘 바다는 많은 것을 주었지요..
몸을 잘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고독할 권리
이근화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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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되는 하루하루 일상들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끝도 없는 질문들을 퍼 올리며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의 삶에 대해 말을 보태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치열하게‘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은 ‘느긋하게‘였다.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말고, 명랑하게, 기꺼이 웃으며, 내 안의 것을 새롭게 발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싶었기 때문일까. 나는 나 자신도 지키지 못할 것들을 중얼거린 것은 아닐까. (15쪽)

바깥으로부터 규정된 정체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의문을 제기하는 것, 미완인 채 자신의 부족함을 끌어안는 것, 다른 사람과의 교섭과 대화를 통해 변화를 꿈꾸는 것, 자주 절망하지만 믿음 안에서 희미한 불씨를 되살려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이자, 사랑의 힘이 아닐까. 그 희망은, 나를 나 자신의 고유함 위에 놓는 것과 나 자신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사이의 긴장과 탄력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믿는다. (35-36쪽)

인간 세상에도 힘의 논리가 있고 먹고사는 일 이상으로 비대해지고 잔인하게 행사되는 것이 요즘의 사정인 것 같다. 본능과 관습과 문화를 이기는 경제 논리가 점점 강화되니 정말 두려운 것은 거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69쪽)

기억을 되돌려 지루한 고백을 하는 것은 무능력하고 볼품없는 누군가에게도 기회가 오고, 주변의 사람들이 도와 주면 그래도 살 만해지고 시 같은 것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누군가에게 조금 용기를 주고 싶다. 세상은 딱하고 개인은 불행하지만 조그마한 의지와 선행이 우연히 만나 한 삶을 문학적으로 이끌어 가기도 하는 것 같다. (147쪽)

말과 글의 즐거움은 나와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인간과 세계의 한계를 벗어나는 초월적 감정에까지 이르게 한다. 어떤 종류의 까발림은 즐거움과 위안, 초월의 감정 너머에 있는데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술함을 드러내면서 이 세계의 견고함이 사실은 수많은 금(균열)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5쪽)

사건 사고는 얼마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지,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기분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목숨이 위대로운 상황 속에서 인간의 판단 능력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생각하다 보면 한없이 초라한 기분이 들고는 한다. 인간이란 유치하고 겁 많은 존재들이라는 것, 약하고 물렁하고 불완전하다는 것, 그런데 인간들은 삶이 가지는 모호함이나 우연함에 기대어 참 잘도 살아간다. 사랑이나 믿음이라는 허울은 쉽게 벗겨지는데 말이다. 서로를 뒤흔들고 위협하는 본능과 사악한 쾌감은 인간의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인간들은 서로를 흉내 내면서 앞으로 잘도 나아간다. 이 본능적 모방의 능력은 인간의 나약함을 보충하고 스스로가 우월하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 같다. 나를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 너를 파괴하고 조정하는 잔인함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기술이다. (195-196쪽)

어느새 젊음은 내게서 빠져나갓다. 외모쯤이야 어때, 라고 말하는 당당하고 용감한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초라한 기분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젊음을 대신해서 내가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젊음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면 우아하게라도 늙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대신한다는 관념 자체가 마치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피해망상적 집착인 것 같아 스스로도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223쪽)

식사란 칼로리를 채우고 영양분을 보충하는 행위 딱 그것만은 아닌 셈이다. 뜻을 천명하기 위해 곡기를 끊는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간절함과 의지 이상의 선택이 거기 있는데 그 옆에 놓인 생수통과 소금 그릇 같은 것을 보면 인간이 인간임을 자처하며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더불어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가기 위해 우리가 선택하고 배제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복잡한 생각의 그물 속에 빠진다.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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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명견만리' 가 필요하다. 바빠서 책 한권을 겨우 읽은 12월이다.  

'만리 밖의 일을 환하게 살펴서 알고' 싶다. 부작용은 차치하더라도.

영어 회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엄마 팔순을 축하했고,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이제 2019년은 다음 영역에 필요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정치를 해야 한다. 공정한 자원분배가 되도록. 누구나 정치의 주인공이 일찍 될 수 있도록. 정치가 일상화가 되도록 관심을 둬야 한다. 써드에이지의 셀프부양을 위해 연대의 필요성과 인간의 정신이 진정으로 사용되어지는 영역, 인간이 정말 인간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능력, '왜' 라는 호기심을 존중하고 투자해야 한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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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명견만리 : 새로운 사회 편 - 정치, 생애, 직업, 탐구 편 명견만리 시리즈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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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를 매년 네 차례나 실시한다. 지자체에서는 매년 20여 차례의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2027년에 결정될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위해 2015년부터 12년동안 매년 50회씩 토론회를 연다. 한 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나, 한 사회의 일원으로 죽을 때까지 배우는 합의의 기술. (19쪽)

정치란 무엇인가. 여러 의미와 역할이 있겠지만, 정치학 교과서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구절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이 말이 혹시 낳설게 들리는가. 우리는 흔히 정치를 ‘권력을 탐하는 자들의 리그‘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 모두의 뜻을 공공의 자산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행위다. 다시 말해 자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바람직한지, 그 우선순위레 따라 정책 방향을 조정하는 일이다. 선거는 이 역할을 잘할 사람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행위다. 그런데 정치가 공정한 자원분배,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64쪽)

이제 120세 시대에 맞는 부양의 방식을 준비할 때다. 셀프부양은 사실 혼자만 잘살자는 이야기도, 혼자 힘으로 살아남으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진정한 셀프부양이란 역설적이게도 혼자의 힘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와 국가의 힘이 보태져야만 가능하다. 개인의 경제적 자립,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맡아야 할 제도적이고 항구적인 뒷받침,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친밀한 정서적 부양이 함께 어우러져야만 진정한 셀프부양이 완성된다. (149쪽)

창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대안이 없어서‘였다. 무려 8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먹고살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169쪽)

"기계가 일하도록 두세요. 그건 힘든 일이 아니죠. 힘든 일은 사회적 자본을 만드는 거에요. 교육, 문화, 의료, 환경 등 인간이 정말 인간을 필요로 하는 영역들이 많습니다. 힘든 일은 멸망으로 나아가는 이 지구를 구제하는 일이에요. 우리가 지구의 삶을 다루는 방식을 바꾸는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정신이 사용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227쪽)

한국의 인공지능 기반이 약한 이유는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기초연구에 투자하지 않으면 계속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 김성근 교수는 (중략) "선진국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연구비를 많이 타는 교수들의 특징이 해외 연구를 벤치 마킹하는 것인데, 그래서야 따라하기밖에 더 되겠나. 기초라는 건 당장의 사용처를 생각하지 않고 궁극적인 호기심으로 하는 연구다. 이것의 무서운 점은 언젠가 쓸모가 있다는 점"이라며 추격형 연구, 단기 성과형 연구가 아닌 호기심을 파고드는 창의적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47-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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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년에 대하여', '어쩌면 괜찮은 나이'를 읽다가 덮었다. 늙어가는 데 무슨 교재가 필요할까. 공부하면서까지 늙어야 할까, 될대로 되라, 마음이 가는대로 살자, 그냥 늙자 등등의 책을 덮는 이유가 꼬리를 물었다. '책이 너무 많아'는 경쾌하다. 나머지 인생 길을 또각 또각 소리내며 걸어 갈 수 있을 거 같다. 책과 같이 늙어면 되잖아. 양천도서관과 서울도서관이 있잖아. 새로운 세계가 무궁무진한데, 뭔 소리여. 책을 읽으면 최고로 행복하니까, 그거로 됐잖아. 그리고 시간도 많을건데. 야호, 신난다. 너무 많은 책에서 행복을 맛본 그녀를 따라해 보자.

옮긴이의 말에 백배 만배 공감한다.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다가도 웃음이 난다. 살다 살다 이렇게 많은 책에 둘러싸이다니.....가끔씩 대형 서점에 갈 때면 딱 보기 좋게 놓인 따끈따끈한 책들. 요 녀석들을 다 데리고 가서 만사 제쳐 놓고 책만 읽을 수 있다면......(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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