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가 되도록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고 있는지, 긴 명절 내내 머리에 머문 문장이다. 인생의 모토가 뭐지. 개인의 행복이라고 누누히 말해오지만, 아울러 연대와 배려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나름 그들과 함께 해 왔고, 도움?을 주며 살았다는 내심 조금의 뿌듯함이 목수정의 글에서는 완전히 깨진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도 닫고 살다가 나의 불편을 위해서는 기꺼이 오감을 열었다는 사실만 확인될 뿐이다. 이 나라에 태어나 작금의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는 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가족에게는. 무엇을 얼마만큼 마음과 몸을 쓰고 더 나아가 돈을 써야 할까... 아주 작은 틈새를 메우는 일, 조금이라도 예방하는 일에 마음을 두고 싶다. 화가 나서 자꾸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의식을 마비시키고 어차피 안되는 일이고, 너는 할 수 없다는 내외부 소리에 그냥 맡기고 싶다. 그러면 안돼!! 그렇다고 큰 일을 도모하자는 게 아니고 그러지도 못하지만. 최소 내가 있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공감하고, 손내밀고 그러한 작은 일부터. 제일 먼저 할 일은 말을 되도록 하지 않고 듣기부터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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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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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담을 뛰어넘기를 포기할 날이 올 거다. 그때부터 난 팍 늙을지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더는 무엇도 새롭지 않고, 낯선 도전이나 경험을 거부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익숙해지는 것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나의 반경을 축소하여 그 좁은 틀 안에서만 세상을 사는 것. 그리고 나를 넓히고 넓혀 세상 어디에 가든 낯섦이 껄끄럽거나 아프지 않게 되는 것. 그래서 그 낯섦을 순리로 보고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르는 것. (16-17쪽)

갈비뼈를 내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리하고 멀리 달아날 것.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지막 결정적인 지점에선 묵묵히 바라만 볼 것. 자식이 맞이해야 할 고난과 역경을 부모가 대신 맞아주지 말 것. 남의 인생을 결코 대신 살아주려고 애쓰지 말 것. 남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는 자, 결국 상대의 자존을 빼앗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71쪽)

진실을 계속 덮고 거대한 거짓의 산 위에 축조한 사회에서는 아무도 더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그런 사회에서 진실은 힘을 잃고, 세상과 타헙할 줄 모르는 바보들의 고집스러운 선택으로 남겨지고 만다. 진실을 추적하는 삶은 그래서, 삶을 가장 열렬히 사랑하는 삶이다. 현재의 삶을 100퍼센트로 살아내기 위해 우리가 축적해온 과거의 허수들을 하나둘 걸러내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함께 짊어져야 할 과제다. (106쪽)

사랑은 인간이 인간을 품을 수 있게 해주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이유이다. 인간 행동의 동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거기에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대신해줄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다. (112쪽)

인간이 자연의 섭리대로 살던 시절에는 해가 떨어지면 일하지 않고, 추운 겨울엔 조용히 소일하며 지냈다. 인간은 그렇게 수천 년을 살았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쉼 없이 작동하는 기계로 바꿔놓은 것은 고작 1~2세기 남짓한 일이다. 그 쉼 없는 노동은 과잉 생산, 과잉 소비를 낳고 잉여 생산물은 극소수의 인간의 곳간에 축적되거나 버려진다. 파업은 인간성을 심각히 훼손당한 현대사회가 그나마 덜 미쳐 돌아가게 하도록 노동자들이 기꺼이 밟아주는 ‘브레이크‘이다. 그 브레이크마저 없다면 자본이라는 기계 속으로 인간이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기계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123쪽)

선진국이란 들춰보지 않아도 약속대로 사회 구석구석이 제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그 무엇하나 법대로, 원칙대로,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고, 뒤구멍을 통해 수를 쓰면 다른 결과가 나오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독재의 기억이 비정상적인 힘, 법 이외의 관행에 의해 사회가 굴러가는 것을 내버려 둔 것 같다. (128쪽)

이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 가운데, 그 무엇 하나 사람들이 피흘리고 싸워서 얻어내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 하나가 공격을 당했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달려들어 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명렬한 목소리를 낸다. (189쪽)

많은 유럽 사람들은 ‘하나의 유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독재의 사령부가 된 유럽을 반대한다. 유럽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상생의 공동체로 거듭날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그런 이상주의자들은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 사람들에게 원망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희망도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유럽연합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개혁이 불가능한 집단임이 분명해진다면, 그 어떤 언론의 선동이 있더라고 유럽인들은 유럽연합을 버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231쪽)

높은 곳에 있을수록 덜 자유롭다. 떨어지기를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높을수록 진실에서 멀어진다. 발이 땅에 닿지 않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자들에게는, 머리를 날려 허공에 떠 있는 자들이 현실을 깨닫도록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임무가 있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계급투쟁이라 불렀다. (240쪽)

두 성인 남녀가 자신들의 인생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새로운 삶을 꾸리는 결정에 대해 사회 전체가 합류하여 가치 판단에 나선다는 것은, 도덕과 윤리로 위장된 가부장제를 수호하려는 집단적 폭력이었다. 여성이 마침내 가부장제가 채워준 족쇄에서 벗어나 평등한 인류로서 세상을 함께 보듬어 나가는 주체가 되는 것이 ‘여성 해방‘이라면, 이를 위해 남성은 ‘남성 기득권‘으로서의 가부장제를, 여성은 ‘남성이 허락해준 피난처‘로서의 가부장제를 허물어야 한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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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 사이 엄청 큰 변화가 있었다. 아들이 군대를 갔다. 나의 모든 감각이 마비되어 그 어떤 맛도 느끼도 못하고, 소리도 웅웅대고, 말은 제대로 된 문장이 아니라 제대로 듣지 못하니 버벅대었다. 어찌 이럴수가. 아들을 논산에 내려놓고 채석강의 일몰을 보고 바닷물이 철석대는 소리를 밤새 들으며 잠들었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오크밸리에서 부모님 생신을 축하했다. 눈내린 창밖의 경치를 통창문을 통해 보면서 바람소리 들으며 즐겼다. 눈내리는 풍경까지 좋았다. 오는 길은 느릿느릿 왔다. 부대에서 온 아들의 옷과 편지에 눈가가 촉촉하고. 분명 포상으로 했을 전화를 운전중이라 못 받은 것이 엄청 견디기 힘들었다. 보이스피싱일거라고 주변의 위로가 있었지만... 한주 후 부대 홈피에서 본 의젓한 모습, 열한명의 분대원 중에 가장 잘생긴 아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친구에게 가장멋진 군인을 찾아보라 했더니, 웬걸 모두 다 멋있단다. 얘일까? 저애일까? 하여 여기 제일 잘생긴 아들을 일러주며 씩씩대며 웃었다. 자식에 대한 콩깍지는 영원할거다. 서로가 즐겁게 견디는 바램으로 도서관을 오가고 있다. 그곳에 가면 나의 미래가 보인다. 어르신들이 많다. 오랜시간 책을 가까이 하여야만 그 자리에 오셔서 책과 마주하고 있으리라. 책냄새와 더불어 나이들고 싶다.

김영하가 말한다. "견고한 내면을 가진 개인들이 다채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될 때 성공과 실패의 기준도 다양해질 겁니다. 문학은 태생적으로 개인주의적이며 우리에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도 모두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세계입니다. 모든 것이 털리는 저성장 시대, 감성 근육으로 다져진 영혼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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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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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서 얻을 수 잇는 즐거움이 아니라 뭔가를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입니다. 즉, 구매가 아니라 경험에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28쪽)

우리 사회에는 자기 스스로 느끼기보다는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내 감정은 감추고 다중의 의견을 살펴야 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겠죠.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느끼는가. 뭘,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 (35쪽)

서재는 오래된 목소리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혼에 접속하는, 일상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타자를 대면하는 공간입니다. 사실 우리가 낯선 것을 가장 안전하게 만나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에요. (80쪽)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이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이들. 기술의 발전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아니라고 믿는 이들. 현대화된 이사 서비스는 과연 집에 대한 인간의 오랜 신화적 두려움도 없앨 수 있을까요? 벼락이라는 자연 현상은 피뢰침의 발명으로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제가 묻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 오직 문학만이 답변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저의 관심사입니다. (126-127쪽)

독자는 문학작풍이라는 이 기묘한 상품을 사서 그것과 고유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여기에 작가의 자리는 없습니다. 반면 작가 역시 자신의 작품과 나름의 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작가 역시 자아를 해체하면서 작품을 완성해나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 독자라는 추상적 존재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작가-작품-독자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작품......작품-독자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169쪽)

소설을 쓴다는 것은 가장 적극적인 방식의 ‘듣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써나가는 동안 작가 자신이 해체됩니다. 해체되지 않고 새로운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가장 낯선 곳에서 작가는 일을 시작합니다.......어쨌든 작가는 매번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규칙으로 새로운 인물들을 겪어야 합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작가의 말 따위는 듣지 않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그들은 마치 들리지 않는다는 듯 딴전을 피워댑니다. 마침내 작가는 깨닫게 됩니다.....따라서 ‘듣기‘는 윤리이기 이전에 작가가 직면한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신념, 지식, 습관, 정치적 성향, 취향)을 서서히 해체하면서 엄청난 노동을 투입하여 한 세계를 만들어가는데, 지나고 보면 그것이 결국 ‘받아적기‘ 혹은 ‘듣기‘였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173-174쪽)

한국소설의 세계화와 관련해서도 ‘한국소설은 뛰어난데 번역 때문에 알려지지 않는다‘고 주장하시는 분이 많은데, 물론 뛰어난 소설들이 있겠지만 ‘잘 썼다, 잘 번역했다‘고 해서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는 소설은 여러 문화으 혼종을 통해 빚어진 변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돌연변이의 산물이기 때문에 미리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고, 기획하여 생산하는 것도 어려울 겁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게 만약 실현된다면, 그 주인공은 아마도 한국의 정서를 잘 살린 문학이 아니라 이상한 것, 어지럽게 뒤섞인 것, 도저히 우리가 한국문학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정말로 한류를 지속시키기를 원한다면 더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이상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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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의 글은 철학적이고 사변적이고 고급진 언어로 집중하지 않고는 따라가기 어렵다. 쉽지 않은 문장을 읽으면서 글에서 권력이 느껴진다면,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이들의 예시를 들어 우리나라 기독교의 현실을 보여준다. 노숙자에 가까운 예수를 생각만 해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예수를 만남이 생을 뒤집는 혁명의 시간이 될 정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갈 정도가 되어야, 좁은 문의 희망을 구체화 하려는 노력을, 생활을 돕는 종교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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