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담을 뛰어넘기를 포기할 날이 올 거다. 그때부터 난 팍 늙을지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더는 무엇도 새롭지 않고, 낯선 도전이나 경험을 거부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익숙해지는 것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나의 반경을 축소하여 그 좁은 틀 안에서만 세상을 사는 것. 그리고 나를 넓히고 넓혀 세상 어디에 가든 낯섦이 껄끄럽거나 아프지 않게 되는 것. 그래서 그 낯섦을 순리로 보고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르는 것. (16-17쪽)
갈비뼈를 내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리하고 멀리 달아날 것.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지막 결정적인 지점에선 묵묵히 바라만 볼 것. 자식이 맞이해야 할 고난과 역경을 부모가 대신 맞아주지 말 것. 남의 인생을 결코 대신 살아주려고 애쓰지 말 것. 남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는 자, 결국 상대의 자존을 빼앗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71쪽)
진실을 계속 덮고 거대한 거짓의 산 위에 축조한 사회에서는 아무도 더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그런 사회에서 진실은 힘을 잃고, 세상과 타헙할 줄 모르는 바보들의 고집스러운 선택으로 남겨지고 만다. 진실을 추적하는 삶은 그래서, 삶을 가장 열렬히 사랑하는 삶이다. 현재의 삶을 100퍼센트로 살아내기 위해 우리가 축적해온 과거의 허수들을 하나둘 걸러내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함께 짊어져야 할 과제다. (106쪽)
사랑은 인간이 인간을 품을 수 있게 해주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이유이다. 인간 행동의 동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거기에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대신해줄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다. (112쪽)
인간이 자연의 섭리대로 살던 시절에는 해가 떨어지면 일하지 않고, 추운 겨울엔 조용히 소일하며 지냈다. 인간은 그렇게 수천 년을 살았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쉼 없이 작동하는 기계로 바꿔놓은 것은 고작 1~2세기 남짓한 일이다. 그 쉼 없는 노동은 과잉 생산, 과잉 소비를 낳고 잉여 생산물은 극소수의 인간의 곳간에 축적되거나 버려진다. 파업은 인간성을 심각히 훼손당한 현대사회가 그나마 덜 미쳐 돌아가게 하도록 노동자들이 기꺼이 밟아주는 ‘브레이크‘이다. 그 브레이크마저 없다면 자본이라는 기계 속으로 인간이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기계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123쪽)
선진국이란 들춰보지 않아도 약속대로 사회 구석구석이 제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그 무엇하나 법대로, 원칙대로,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고, 뒤구멍을 통해 수를 쓰면 다른 결과가 나오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독재의 기억이 비정상적인 힘, 법 이외의 관행에 의해 사회가 굴러가는 것을 내버려 둔 것 같다. (128쪽)
이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 가운데, 그 무엇 하나 사람들이 피흘리고 싸워서 얻어내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 하나가 공격을 당했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달려들어 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명렬한 목소리를 낸다. (189쪽)
많은 유럽 사람들은 ‘하나의 유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독재의 사령부가 된 유럽을 반대한다. 유럽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상생의 공동체로 거듭날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그런 이상주의자들은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 사람들에게 원망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희망도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유럽연합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개혁이 불가능한 집단임이 분명해진다면, 그 어떤 언론의 선동이 있더라고 유럽인들은 유럽연합을 버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231쪽)
높은 곳에 있을수록 덜 자유롭다. 떨어지기를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높을수록 진실에서 멀어진다. 발이 땅에 닿지 않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자들에게는, 머리를 날려 허공에 떠 있는 자들이 현실을 깨닫도록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임무가 있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계급투쟁이라 불렀다. (240쪽)
두 성인 남녀가 자신들의 인생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새로운 삶을 꾸리는 결정에 대해 사회 전체가 합류하여 가치 판단에 나선다는 것은, 도덕과 윤리로 위장된 가부장제를 수호하려는 집단적 폭력이었다. 여성이 마침내 가부장제가 채워준 족쇄에서 벗어나 평등한 인류로서 세상을 함께 보듬어 나가는 주체가 되는 것이 ‘여성 해방‘이라면, 이를 위해 남성은 ‘남성 기득권‘으로서의 가부장제를, 여성은 ‘남성이 허락해준 피난처‘로서의 가부장제를 허물어야 한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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