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렌즈를 통하여 본 확실하고 분명한 실체, 아주 가까이서 그렇게 보지 않고서야 이 책에서 마주하는 곳곳의 상황에 대하여 내가 생각하는 범위와 깊이를 넘어 설 수 없다. 글을 읽다 보니 이게 아니었네. 그럼 이거? 그것도 아니네. 오해와 편견이 넘쳐난다. -광부들. 무슬림. 난민. 죽음을 앞둔 사람들. 달동네.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시골분교. 철거민. 떠돌이 영화감독. 장애인. 독거노인. 단원고. 야학. 신가족 그룹홈. 연평도민.- 과연 이들을 만났을 때 내 생각의 꼭지들은 어떨까를, 멈출수 밖에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이 무지였다는 거.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게 악이라는 시선으로. 제대로 본다는 거. 보려고 얼굴을 돌리는 거조차 외면했다는 거. 나와 무관한 일로 치부했다는 거. 그러니 제대로 생각이나 했겠냐구. "OO은 ***하다."라는 일반적인 오류로 한꺼번에 정의내린 문장으로 그들을 바라본 거다. all or nothing/ 선악/ 좋다나쁘다/ 옳다그르다/ 높고낮다/ 많다적다/ 나와 너의 양끝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꾸만 고정되고 굳어져 가고 있는 나의 생각과 몸을 잠시 멈추게 한 글이다. 소싯적에 재활원에서의 몇시간 봉사와 맹인선생님과의 대학원공부 등이 기억난다. 그냥 가만히 조심만 했던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조심이 편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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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편견을 부탁해 - 낯선 생각을 권하는 가장 따뜻한 사진
강윤중 글.사진 / 서해문집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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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지와 그로 인한 숱한 편견을 인정하는 것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나는 가난하지 않아 가난한 이의 한숨을 모르고,이성애자라 동성애자의 고통을 모르고, 늙지 않아 나이 든 어르신의 외로움을 모른다. 죽음을 부르는 병에 걸린 적이 없어 죽음을 앞둔 이의 두려움을 모르고, 남의 땅에서 일해 보지 못해 이주노동자의 절망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나는 `안다` 또는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무지와 편견으로 무장한 채 누군가의 삶에 대해 참 쉽게 말하며 살아온 것이다. (4쪽)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고시합격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난민 인정에는 야박하고 인색하다. 2001년 우리나라 첫 난민 인정자가 된 에티오피아 출신 데구는 차별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갔다고 한다. (68쪽)

재개발 광풍에 서울의 달동네들이 사라진다. 달동네를 밀어낸 자리엔 예외 없이 아파트가 솟는다. 달동네가 자취를 감추면서 그곳에서 몸을 부비고 살던 삶도 함께 흔들리며 쓸려 간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쯤 되는 변두리에서 또다시 밀린 삶은 서울 밖 어느 먼 곳에서 다시 남루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신림동, 봉천동, 옥수동 등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들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배갓마을은 아직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린다. (94쪽)

게이들을 만나면서 "그건 선입견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야 했다. 해영 상처가 될까 말을 가려 한다고 했지만 참 어려웠다. 게이들을 만나며 머리에서 또 입 안에서 지우고 삼켜 버린 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성애자들이 말하는 `게이는 OO인 것 같다`는 식의 문장은 웬만하면 편견에 기인한 것들이었다. 이성애자들의 특성을 쉽게 정의하지 않듯이 동성애자도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개성의 소유자인 것이다. 게이를 이성애자와 다른 별난 존재로 치부하는 어떤 정의에도 재빠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126쪽)

`파퀴벌레`는 파키스탄 사람을, `짜장`은 중국동포를, `쓰레기`는 동남아 국적의 외국인 전체를 지칭한다. 이른바 외국인혐오현상인 `제노포비아(Xenophobia)`가 만든 신조어들.
외국인을 혐오하는 이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무장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서민 경제를 파탄시켰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소위3D업종에 종사한다. 이들에 대한 혐오는 `근거 있는` 혐오라기보다 경제난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현지인들이 그 원인을 외국인에게 돌리며 분노를 표출하는 이른바 `수평적 폭력`에 가깝다. 경제난의 주범은 외국인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즉 구조에서 기인할 때가 훨씬 많다. (154쪽)

오랜 세월 쌓여 온 삶의 흔적이 눈앞에서 불과 몇 분 만에 사라졌다. 비닐집이 없어진 곳에는 검붉은 흙바닥이 드러났다. 여성 철거민들은 고통스럽게 철거 과정을 지켜봤다. 지쳐서더 이상 고함도 지르지 못하고 망연히 이를 바라보는 나이 든 철거민들 앞에서 앳된 얼굴의 용역업체 직원들은 서로 잡담하며 낄낄대고 있었다. 철거민과 용역의 상반되 표정이 엇갈리는 이 공간이 비현실적이었다. 마지막까지 버텼던 철거민의 비닐집은 그렇게 확실히 제거되었다. 누구도 거침없이 집행되는 철거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시종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서 꼭 보도해 달라는 철거민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였다. 사진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철거 집행 관계자에게 다가가 "동절기에는 강제 철거를 금지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도 아닌 질문 수준으로 말한 것이 고작이었다. (193쪽)

아파트를 나서면서 윤수 씨가 했던 얘기가 귓전에 맴돌았다.
"억울하지 않으세요? 비장애인의 날은 없잖아요. 비장애인, 장애인 다른 게 있나요? 날을 정한 것 자체가 차별입니다. 모든 게 그때 집중되고,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지요."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그녀를 찾은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장애란 것은 `옷`이에요. 병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죠. 난 평생 못 갈아입는 옷을 입은 거구요. 그 곳이란 걸 가지고 날까지 만드는 거,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 장애인의 날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232쪽)

진정한 애도란 `기억`하는 것.정말 애도한다는 것은 이 사태를 불러온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놓지 않는 것이다. (271쪽)

분단국가에 함께 살면서도 북한의 포격을 바라보는 불안과 공포의 크기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연평도 주민과 외지인이 인식하는 포격에 대한 구체성이 같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폐허 앞을 지나는 마을 사람들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포격 현장에 굳이 시선을 두려하지 않았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내 마을에, 내 집 앞에 떨어진 포탄의 공포는 그렇게 구체적인 것이었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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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다 둔 책을 이어서 읽었다. 시에 관한 이야기다. 추상과 현실사이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고 싶은 이성복의 진한 고백이다. 평소 시를 즐겨 읽고 인용하기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했다. 표지의 부제처럼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에서 만약 나에게 시가 없다면 하고 고민했다... 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일까지, 모든 현실을 아주 적은 단어만으로도 단번에 명쾌하게 확실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단어 하나를 고르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딱 맞아 떨어지는 조사를 구하기까지 수많은 밤을 새웠다고 본다. 명사뿐 아니라 조사에서 동사, 부사, 전치사 하나까지. 마침표와 쉼표. 점점점까지 고르고 골라서 나에게까지 왔으니, 그 안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내 맘을 틈새하나 없이 꼭 집어 주었다. 시없이 살 수는 없다. "시를 읽는 것은 읽는 사람 자신의 삶을 읽는 것이다.(163쪽)" 현실을 가장 많이 비추고 있고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는 시를 읽는 것은 나의 삶을 읽는 것이기에 나는 시없이 살 수 없다.

최근에 읽은 시는 마종기 바람의 말/ 꽃의 이유, 문정희 키 큰 남자를 보면, 정끝별 장미차를 마시며, 문정희 목숨의 노래, 김선우 화비/ 그날이 오면, 김용택 참 좋은 당신/ 꽃 한송이, 박시교 봄날은 간다, 문태준 봄비 맞는 두릅나무, 김경미 엽서 엽서, 김이듬 겨울휴관, 이성복 편지, 나희덕 거리, 박정만 쓸쓸한 봄날, 임영준 5월의 그대여, 목필균 4월이 떠나고 나면/ 목련에게 미안하다, 이향아 벚꽃잎이, 나해철 봄날과 시, 반칠한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김재진 헤어져 있는 동안/ 사랑이 내게로 왔을 때/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구두에게 물어보네/ 마음길, 정현종 이 느림은, 김사인 화양연화, 문병란 호수, 도종환 인연, 한용운 사랑....  수없이 많은 단어와 단어들, 그 속에 담겨 있던 내 마음, 그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고 다시 쓸어담았던 기억들... 그 순간 내게 다가와 위로와 쓰담쓰담을 해준 많은 시들이 있었기에 지금껏 살고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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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형식들 -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 - 이성복 산문
이성복 지음 / 열화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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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주위에는 속세로부터 멀리 헤엄쳐 나가 뭇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배수진을 치고, 황홀과 고뇌의 기도를 올리는 자들이 가끔 있다. 그들은 속인들의 기억 속에 안온히 소일하는 것보다는 수시로 비참과 횡포의 자연에 뛰어들어 기꺼이 무가 되려 한다. (9-10쪽)

시는 우리가, 세계 속에 묶여 있는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의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러므로 시에 대한 어떤 사변적 논의도 정당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63-64쪽)

무엇보다 시는 우리와 세계의 새로운 관계 맺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는 새로운 각도에서 사물의 의미를 되찾도, 그로 인해 우리 자신의 의미를 되찾게 합니다. (65쪽)

그러니까 시는 어떤 기발한 이미지가 아니라 이 진행, 이 살아 있음의 순간적인 양태가 시입니다. 우리는 어떤 내용을 이미지로 바꿀 수도 있고, 혹은 바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힘`입니다. 한 이미지를 다음 이미지로 연결시켜 주는 것은 이 살아 있는 힘이며,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면 이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달리 말해 무한히 자유롭고 싶어 하는 우리들의 열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다시금 `우리가 살아 있다`는 그 사실에 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우리 삶은 훼손되어 있습니다. 삶은 부족하고 부자유스러운 것이며, 행복은 오직 이미지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를 쓰게 됩니다. (66쪽)

`시`는 우리가 끝내 파악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쓰는 시는 우리와 현실의 타협점일 뿐이지요. (68쪽)

한 편의 시가 주는 감동은 어떤 사회적 현실이 시인의 의식 내부에 불러일으킨 감동으로 독자에게 전달될 때 생겨나는 것이지, 사회적 현실 자체에 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75쪽)

그러니까 시가 얼마만큼 땅으로 내려설 수 있는가, 또 거기서도 시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저의 관심사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시인은 어떻든 자기가 발 딛고 있는 현실사회 속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시인이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눈 감으려고만 할 때, 시의 운명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될 것 같아요. 저는 공동체라든가 현실사회를 우리가 들어가야 할 문으로 생각해요. 우리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지, 문을 등에 지고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술은 현실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현실을 통해 해방이지요. (81쪽)

현실. 유일한 스승이며 길잡이. 지금까지 내 문학의 실패와 앞으로 내 문학의 갱생의 실마리는 현실에 있다. 아무리 반복해도 모자랄 정도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현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현실에 대한 `관심`이다. 그 관심이 현실을 현실로 존재하게 한다. 정말 내가 문학하기를 바란다면, 지금부터라도 문학 얘기는 집어치워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아편처럼 말초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문학에 매달리지 말고, 현실 앞에 마주 서서, 현실과 부딪치고, 현실을 넘어서야 한다. 물론 지금 나에게 현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습관에 의해 박제되고 관념으로 경직된 현실이다. 깊은 의미에서의 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끈질긴 관찰이 필요하고, 관찰로 이끄는 관심이 필요하다. 사랑의 다른 이름인 관심은 `삶에 대한 탐구` 혹은 `죽음에 대한 준비`의 원동력이다. (96쪽)

어쩌면 시의 품성은 실사보다는 허사, 명사나 동사보다는 전치사와 접속사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텅 빈 말들이 사물들과 사건들의 가랑이를 벌려 놓는 단단한 쐐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126쪽)

하루에도 수만 개씩 바뀌는 우리 몸의 세포처럼, 마음도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인데. 그 많은 마음들이 한 마음으로 보여지는 것은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이라지요. 모래시계에서 흘러내리는 모래나 열 지어 가는 개미들이 멀리서 보면 연속된 띠처럼 보이는 것처럼 말이에요. "마음을 새로 내서, 앞의 마음을 뒤의 마음이 보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대상과 싸우게 된다"는 말씀도 전도망상의 근원이 되는 `마음과의 동일시`를 경계하는 것이지요. (135쪽)

우리 자신에게도 말할 수 없고, 하물며 아내나 자식이나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 그러나 명명백백히 존재하는 어떤 것.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전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치 사랑을 나누는 두 남녀가 상대의 쾌감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저는 그것이 언제나 잴 수 없는 깊이로 우리 삶 속에 존재한다고 봅니다. 정서적인 차원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일 수 있겠고, 의식적인 차원에서는 정치. 사회적인 현실이 될 수도 있겠고, 무의식적 차원에서는 맹목적인 생의 본능과 원죄로 밖에 돌릴 수 없겠지요. (141쪽)

시를 읽는 것은 읽는 사람 자신의 삶을 읽는 것이다. 시는 우리가 미처 짐작하지 못한 진실에 눈뜨게 해 준다. 우리 삶은 미세한 실핏줄들로 얽혀 있다. 나날의 습관과 고정관념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 실핏줄들은 끊임없이 삶에 영양을 공급하고 노페물을 실어 나른다. 시를 쓰는 것은 바로 그 미세한 혈관들의 지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163쪽)

나는 다 채워지기를 바라는데 삶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다 채우기를 포기할 때 삶은 우연히, 뭐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채워 주기도 한다. 그것이 삶의 너그러움이다. 그것이 나의 조급함과 애살에 대한 삶의 처방이며 훈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이 큰 욕심이기도 하지만 크게 나무랄 일은 못 된다. 왜냐하면 그 욕심이 없었다면 어떻게 삶의 충고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며, 받을 수 있기를 소망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삶에 바쳐야 할 예의이며 도리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나는 삶을 믿지 못하는가 보다. (206-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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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몇 시간의 기차를 타고 읽은 글이다. 상큼하고 깔끔하다. 오가는 길은 멀고 힘이 들었다. 몸이 무겁고 아팠다. 한주 내내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불편하고 힘든 감정을 마주하기 싫어 쉴새없이 아이들을 만나서 애써 아닌척 모른척 했다. 관계에서 파생된 감정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상대의 감정이 태반이고 결정하는 이도 상대가 해야 하는데 자꾸 내가 관여하려 한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의 경계가 애매하다. 어떤 이는 일일이 알아봐 주기를 원하고, 어떤 이는 손내밀 때 잡아주기를 원한다. 어떤 관계냐에 따라 한참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때문에 파생되어 시작된 감정이지만 그 감정을 용인하고 받아들인 것은 너이기에, 결정은 너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면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될까. 애증이 섞여서 쌓인 해묵은 감정까지 끊어내고 정리하는 건 어려울테지만. 스스로 선택하여 건너오는 그 마음을 갖고 싶다. 혼자서 설 수 있는 걸 도와 주고 싶다.

나의 짬뽕같은 머리와 감정에 비하면 이태준의 두서없이 기록했다는 글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다. 나의 상황과 글과의 큰 괴리, 이열치냉으로 다스리며 읽었다.      

 

"그의 수필에서는 반세기의 세월을 무위하게 할 만큼 마치 방금 따온 과일과도 같은 신선한 빛과 향기가 숨이 막히도록 풍기는 것이다. 철 지난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케케묵은 군내나 빛바랜 흔적이 전연 없고, 시체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조차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작 30대의 나이로 이룬 글인데도 그 원숙한 관조의 세계와 심오한 경지, 동양적 수필의 진수로 삼는 관조와 경지를 그는 불과 30대의 나이에 터득한 것이다. (187쪽, 박재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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