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편견을 부탁해 - 낯선 생각을 권하는 가장 따뜻한 사진
강윤중 글.사진 / 서해문집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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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지와 그로 인한 숱한 편견을 인정하는 것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나는 가난하지 않아 가난한 이의 한숨을 모르고,이성애자라 동성애자의 고통을 모르고, 늙지 않아 나이 든 어르신의 외로움을 모른다. 죽음을 부르는 병에 걸린 적이 없어 죽음을 앞둔 이의 두려움을 모르고, 남의 땅에서 일해 보지 못해 이주노동자의 절망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나는 `안다` 또는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무지와 편견으로 무장한 채 누군가의 삶에 대해 참 쉽게 말하며 살아온 것이다. (4쪽)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고시합격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난민 인정에는 야박하고 인색하다. 2001년 우리나라 첫 난민 인정자가 된 에티오피아 출신 데구는 차별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갔다고 한다. (68쪽)

재개발 광풍에 서울의 달동네들이 사라진다. 달동네를 밀어낸 자리엔 예외 없이 아파트가 솟는다. 달동네가 자취를 감추면서 그곳에서 몸을 부비고 살던 삶도 함께 흔들리며 쓸려 간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쯤 되는 변두리에서 또다시 밀린 삶은 서울 밖 어느 먼 곳에서 다시 남루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신림동, 봉천동, 옥수동 등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들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배갓마을은 아직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린다. (94쪽)

게이들을 만나면서 "그건 선입견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야 했다. 해영 상처가 될까 말을 가려 한다고 했지만 참 어려웠다. 게이들을 만나며 머리에서 또 입 안에서 지우고 삼켜 버린 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성애자들이 말하는 `게이는 OO인 것 같다`는 식의 문장은 웬만하면 편견에 기인한 것들이었다. 이성애자들의 특성을 쉽게 정의하지 않듯이 동성애자도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개성의 소유자인 것이다. 게이를 이성애자와 다른 별난 존재로 치부하는 어떤 정의에도 재빠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126쪽)

`파퀴벌레`는 파키스탄 사람을, `짜장`은 중국동포를, `쓰레기`는 동남아 국적의 외국인 전체를 지칭한다. 이른바 외국인혐오현상인 `제노포비아(Xenophobia)`가 만든 신조어들.
외국인을 혐오하는 이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무장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서민 경제를 파탄시켰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소위3D업종에 종사한다. 이들에 대한 혐오는 `근거 있는` 혐오라기보다 경제난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현지인들이 그 원인을 외국인에게 돌리며 분노를 표출하는 이른바 `수평적 폭력`에 가깝다. 경제난의 주범은 외국인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즉 구조에서 기인할 때가 훨씬 많다. (154쪽)

오랜 세월 쌓여 온 삶의 흔적이 눈앞에서 불과 몇 분 만에 사라졌다. 비닐집이 없어진 곳에는 검붉은 흙바닥이 드러났다. 여성 철거민들은 고통스럽게 철거 과정을 지켜봤다. 지쳐서더 이상 고함도 지르지 못하고 망연히 이를 바라보는 나이 든 철거민들 앞에서 앳된 얼굴의 용역업체 직원들은 서로 잡담하며 낄낄대고 있었다. 철거민과 용역의 상반되 표정이 엇갈리는 이 공간이 비현실적이었다. 마지막까지 버텼던 철거민의 비닐집은 그렇게 확실히 제거되었다. 누구도 거침없이 집행되는 철거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시종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서 꼭 보도해 달라는 철거민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였다. 사진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철거 집행 관계자에게 다가가 "동절기에는 강제 철거를 금지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도 아닌 질문 수준으로 말한 것이 고작이었다. (193쪽)

아파트를 나서면서 윤수 씨가 했던 얘기가 귓전에 맴돌았다.
"억울하지 않으세요? 비장애인의 날은 없잖아요. 비장애인, 장애인 다른 게 있나요? 날을 정한 것 자체가 차별입니다. 모든 게 그때 집중되고,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지요."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그녀를 찾은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장애란 것은 `옷`이에요. 병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죠. 난 평생 못 갈아입는 옷을 입은 거구요. 그 곳이란 걸 가지고 날까지 만드는 거,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 장애인의 날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232쪽)

진정한 애도란 `기억`하는 것.정말 애도한다는 것은 이 사태를 불러온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놓지 않는 것이다. (271쪽)

분단국가에 함께 살면서도 북한의 포격을 바라보는 불안과 공포의 크기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연평도 주민과 외지인이 인식하는 포격에 대한 구체성이 같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폐허 앞을 지나는 마을 사람들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포격 현장에 굳이 시선을 두려하지 않았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내 마을에, 내 집 앞에 떨어진 포탄의 공포는 그렇게 구체적인 것이었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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