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 안도현의 내가 사랑하는 시
안도현 지음 / 나무생각 / 1999년 11월
구판절판


시를 읽어도 세월은 가고, 시를 읽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그러나 시를 읽으며 세월을 보낸 사람에 비해 시를 읽지 않고 세월을 보낸 사람은 불행하다. 시 읽기가 새롭고 다양한 세계에 대한 하나의 경험이라면,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의 경험은 얕아서 찰방거리고 추억은 남루할 테니까 말이다. 추억이란 세월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4쪽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姿勢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53쪽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가탇.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온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맘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69쪽

기차는 간다

-허수경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132쪽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남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중략]
-145쪽

유월의 살구나무

-김현식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 기억나는 일이 뭐,
아무것도 없는가? 유월의 살구나무 아래에서
단발머리의 애인을 기다리며 상상해 보던
피아노 소리 가늘고도 긴 현의 울림이
바람을 찌르는 햇살 같았지 건반처럼 가지런히
파르르 떨던 이파리 뭐 기억나는 일이 없는가?
양산을 거꾸로 걸어놓고 나무를 흔들면
웃음처럼 토드득 살구가 쏟아져 내렸지
아! 살구처럼 익어가던 날들이었다 생각하면
그리움이 가득 입안에 고인다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
살구처럼, 양산의 가늘고도 긴 현을 두드리던
살구처럼, 하얀 천에 떨어져 뛰어다니던 살구처럼,
추억은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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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마다, 어떤 글을 읽더라도 뭔가를 배우게 된다. 양서든 악서든. 신영복선생님의 글은 치우침이 없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지금 이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마구 보이고 생긴다. 주류든 비주류든 관계없이 숲을 만들수 있다는 것... 참으로 인간답게 사는 것은 함께 더불어 길을 걷는 것... 적다보니 추상적인 개념이다... 내가 이해한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다시 풀어 놓는 힘이 부족하다. 알아가는 과정이 감정적인 면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Point1: '다른 사람의 이유가 아니라 자기의 이유로 걸어가야 합니다.(신영복 p78)'  

Point2: '무지無知하면 무지無止하게 용감하다. 그게 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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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신영복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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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그 사람의 역사 속에서 이해하게 되면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 사람의 생각마저도 그가 살아온 인생의 결론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남이 함부로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으 깊이 있는 만남을 통해서 그의 이야기가 아닌 "나 역시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말하자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공감하는 것이지요. 머리로 생각하는 타자화 대상화가 아닌 가슴의 공감을 안게 됩니다. -28-29쪽

우리가 아는 것, 그것의 상당 부분이 주입된 것이라고 생각을 하죠. 현대사회는 막강한 포섭기제를 발전시켜 놓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언어와 기호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개인은 자기 자신이 포획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물리적 강제나 억압 대신에 개인의 정서를 포섭해버리고 있는 것이지요. 개인의 자유는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되고 있는 것이지요. -42쪽

'나'라는 존재는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내가 겪은 수많은 사건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나를 빌딩building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한 개인의 정체성identity이란 그가 맺고 있는 사회성sociality이 그것의 실체라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53쪽

사랑은 굉장한 부담입니다. 한 사람을, 한 생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엄청난 무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한 깨달음입니다. -80쪽

강도한테 칼 맞아 쓰러진 행인을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냥 지나가는데 사마리아인이 구출합니다. 그 차이가 뭔가하면 사마리아인은 쓰러진 행인을 자기 세계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세계를 조직하는 것, 그게 생각이라는 거죠. 가슴 아픈것돠 머리 아픈 것의 차이가 그것을 잘 설명해 줍니다. 가슴 아픈 것은 그것을 자기의 세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슴 아픈 것이지요. 반대로 골치 아픈 것은 자기 세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데 들어오는 경우에 골치 아픈 것이지요. -92쪽

또한 바디우는 니체가 운명에 맞선 용기를 강조했듯이 '용기'를 우리 시대의 방향 상실과 맞서는 주된 덕목이라고 주장한다. 용기란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구성해 나가는 것으로, 불가능 속에서 인내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94쪽

우리 사회 구성원은 각각의 욕망과 고통이 있습니다. 부자건 빈자건, 강자건 약자건 각자의 욕망과 고통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럿이 함께 간다는 점 외에 제도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은가 합니다. 여럿이 함께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로의 전환 말입니다. -110쪽

저는 꿈이란 것은 어원이 오늘 나에게 없는 것을 꾸어오는 것-borrow-을 '꿈'이라고 생각하지요. 아까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보죠. 우리가 문맥에 갇혀 있는 경우, 어디서 꾸어오게 되나요? 빤히 보입니다. 꾸어오는 사람, 꾸어오는 장소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꿈'보다는 '깸'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일단 깨뜨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부족한 것을 꾸어오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꾸어오기보다는 자기가 자기의 이유로 만들어 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지요. -124쪽

타자를 자기의 일부, 다시 말해서 자기 세계에 포함되는 것으로 승인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보지요. 이런 관점에서 자기를 인식한다면 관계성이 곧 자기의 확장이 되는 것이지요. 다른 것과의 관계성 속에서 탈근대 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26-127쪽

서둘러 그릇을 채우기보다는 그릇 그 자체를 키우는 공부를 해야 하고, 지붕부터 그리던 창백한 관념성을 청산하고 주춧돌부터 집을 그리는 튼튼한 사고를 길러야 하며, 자기를 뛰어넘음으로써 오히려 자기를 달성하는 사랑의 비약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찬란한 꽃의 계절로 맞이할 것이 아니라 땅속에 씨앗을 묻는 긴 여정의 출발로 받아들여야 하고, 앞으로 직면하게 될 숱한 과제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기 위하여 짧고 많은 마디로 강고한 밑둥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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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이 있다. 오래동안 읽은 책, 'Invitation to psychoanalysis(이무석)'는 정신분석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하고 몸담아 온 정신분석가의 글이다. 내 마음이면서 나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 또한 최근에 본 영화, 'Unknown(리암니슨 주연)' 의 주인공도 자신이 소망하는 무의식의 모습을 드러낸다. 페이지마다 '비의식'이라는 단어가 눈에 계속 거슬렸다. 이때껏 '무의식'이라는 단어에 익숙해 있었기에... 저자는 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익숙한 '무의식' 대신에 '비의식'을 사용하고 있을까... 나또한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교훈이 되거나 새로운 사실에 밑줄을 긋고 있다. 누군가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무의식이 작동한다... '비의식'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물흐르듯 읽히는 글이다. 카우치에 편히 누워서 읽은 느낌이다. 프로이트가 위대하다. 모든 심리학의 뿌리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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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에로의 초대
이무석 지음 / 이유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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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는 정신기능의 목적을 적응으로 보았다. 인간은 궁극적인 목적 때문에 사는 동물이 아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적응하다 보면 이 적응의 연속이 인생이된다는 것이다. -35쪽

자아는 억압(repression)이라고 하는 심리기제(metal mechanism를 이용하여 불편한 욕구나 생각들을 비의식으로 추방한다. 그래서 의식과 비의식을 나누는 방어기제는 억압이다. -50쪽

비의식은 상식이나 합리성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이 곳에는 '충족되지 못한 본능적 소망들(unsatisfied instinctual wishes)'이 살고 있다. 이 소망들은 육체적 본능에서 나온 성욕과 공격욕(sexual & aggressive drive)이 대부분이다. 이런 욕구들이 욕구를 상징하는 정신적 이미지(mental representations)로 바뀐 것ㄷ르이다. 이들은 비유하자면, 어두운 현관(비의식)에서 밝은 응접실(전의식이나 의식)로 나오려 한다. 그러나 문지기(자아의 검열)가 이들의 통과를 막고 있다. 막고 있는 이 현상이 억압(repression)이라는 방어기제이다. 그러므로 비의식의 소망들이 의식으로 나오려면, 문지기의 검열을 통과할 수 있도록 모양을 바꾸거나, 자신의 몸을 조각내서 파편(derivatives)으로 만들 수 밖에 없다. -74-75쪽

"성격의 세 가지 측면, 즉 본능적인 면, 이성적인 면, 도덕적인 면을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라고 부릅니다.
......
예를 들어, 본능적인 측면인 이드라는 이름의 성격은 본능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자아 집단도 이드와 같은 목적을 같습니다. 자아는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파악하는 것,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욕구9이드)와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이에서 충돌을 중재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다음은 소위 문화(교양)적 목적을 지니는 세 번째 집단인데, 그것은 개인의 생각과 행동에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양심의 기능을 하는 초자아입니다. 초자아의 기능은 개인이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목적입니다(안나 프로이트의 하버드 강좌] 제1강 중에서, 이무석.유정수,2000)"-120-121쪽

'정신분석의 목적은 무엇인가?'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정신분석의 목표는 갈등을 푸는 데 있다. 즉 증세를 만드는 갈등이 비의식에 있기 때문에 환자 자신도 모르게 환자의 행동을 지배하고 증세를 만드는데, 이 비의식의 갈등을 의식화시키고 푸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비의식에 있어서 자라지 못하고 있는 아이를 의식 세계로 데리고 나오는 것이다. 꼭 의식 세계가 아니더라도 자아의 영역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다. 아이 때의 불안과 아픔은 이미 지나간 것이고,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의 고통이 아이 때의 것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 정신분석이다. 깨달으면 갈등이 풀리고, 갈등이 풀리면 환자의 성격은 성숙해진다. 불필요한 정신 에너지의 낭비가 없어지므로 의용기 회복된다. 대인관게가 좋아지고 즐겁고 의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치료의 핵심은 명백하다.
-203쪽

분석은 저항과 전이를 다루고 있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219쪽

이처럼 분석과정을 방해하는 행동을 저항(resistance)이라고 부른다. 흥미있는 것은 이런 저항이 나타날 때, 저항의 밑에는 의미 있는 내용(repressed material)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항을 인식하고 분석하는 것은 정신분석의 필수적인 요소다. -253쪽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분석의 종결 시점이 갈등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긴장과 갈등은 인생살이 어디에나 있는 거싱고, 인간 자체가 갈등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석의 종결 기준은 갈등이 완전히 제거되는 시점이 아니라 갈등을 발견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때이다. 바꿔 말하면 정신분석은 분석을 종결하고 난 후에도 환자가 혼자서 분석작업을 계속하도록 환자를 준비시키는 치료이다. -298쪽

우리는 주로 우리의 관심사에 우리의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우리의 귀를 환자의 말에 맞추어서 경청하면 우리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기억과 상상의 파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의미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종종 환자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언어도 들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보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상대바으이 말을 듣는 능력에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도 크게 관여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것도 배울 수 있는데, 즉 분석가가 자신의 일을 수행할 때 쓰는 도구중에서 가장 유용한 것은 자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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