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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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가을이 지나고 또 겨울이 지나고, 그러면서 언니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미움에 대해서. 시멘트가 굳는 걸 상상하면서, 화장실이 만들어지고 부엌이 만들어지는 걸 상상하면서, 언니는 미워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70-71쪽)

이혼을 하고 나자 그는 아내의 많은 것들이 생각났다. 아내는 쫄면을 좋아했고 그는 콩국수를 좋아했다. "쫄면 좋아하는 여자와 콩국수 좋아하는 남자. 무슨 영화 제목 같지?" 아내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는 아내의 중학교 단짝 친구들과 고등학교 단짝 친구들도 알았다. 아내가 중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는 늘 수수하게 입고 나간다는 것도. 그중 한 친구와는 스무 살 때 의절했다가 스물여섯 살에 화해했다는 것도. 중학교 때 친구와 가출을 했는데 강릉터미널에서 선생님에게 붙잡혀 돌아왔다는 것도. 아내와 이혼을 하고 난 뒤에야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세상에. 자기는 아직 아내에게 행복마트 평상에서 낮잠을 자던 어느 여름방학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그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152쪽)

태어나서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가 와도 타지 않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좀, 춥고, 싶었다. 울고 싶다. 보고 싶다. 자고 싶다. 가고 싶다. 떠나고 싶다...... 나는 싶다로 끝나는 말들을 떠올려보았다. 에취, 재채기가 났다. 일곱번째로 버스가 왔고 나는 타고 싶다, 타고 싶다,라고 중얼거리며 버스를 탔다. (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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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한 순간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한 적이 몇번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더라도, 혼자서 무엇을 할 때에도, 지금 여기의 나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마음은 언제나 달아나 다른 일과 사람으로 가득차 있고, 건성으로 대강으로 마주하고 있은 적이 많았다. 요즘 혼자가 할 수 일들이 이름까지 붙여 넘쳐나고 있다. 혼밥, 혼술... 혼자 가는 미술관에서 옛기억을 마주하여 지금을 조망하는 그녀의 글에서는 앞으로 나이 들어가는 우리네 일상들을 대하는 자세로 딱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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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미술관 - 기억이 머무는 열두 개의 집
박현정 지음 / 한권의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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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만큼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도 없다." -배영환 (33쪽)

"우리가 역사와 신화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우리와 상관없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데 비극이 있다. 망각은 인간에게 치유와 동시에 불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서용선 (90쪽)

"나는 정말이지 어깨동무하는 것처럼 신체가 길게 늘어나서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 그러나 삶 속에선 같은 여성들끼리도 잘 닿아지지 않는다." -윤석남 (104쪽)

"우정이란 두 사람이 서로를 괴롭혀서 서로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가는 것" -프란시스 베이컨 (166쪽)

"시간이 예전보다 빨리 흘러간다고 느끼는 것은 사건이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즉 경험이 되지 못한 채 빠르게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버리기 때문" - 한병철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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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 단어를 마주할 때, 세상을 향하여 나 자신을 향해 연결지어서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관찰하기'가 떠올랐다. 상상의 날개로 나에게 '접목'시켜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과정과 현실의 틈새로 '스며드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혹당하는 게 우선이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매혹당해야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간의 많은 읽기가 그 자리에 머물러 고개만 끄덕이며 그렇구나만 반복했다는 반성도 뒤따른다. 나는 왜와 연결하여 가장 작은 단위의 질문까지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혼자가 되어 있을 거다. 그러면 지금의 상황과 연결된 대상의 본질('언제든 외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두 사물 혹은 두 대상 사이의 경험적 차이는 아니다. 본질이란 주체의 중심에 있는 어떤 최종적인 성질의 현존으로서, 주체 속에 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프루스트는 말했다.(309쪽)')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본질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또 다른 생각과 사건이 된다. 책을 덮는 순간 고통을 덮으려는 시도나 너와 나의 일로 이분되는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게 하는 소비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세히 바라보고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 태도, 지속적으로 작금의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괴로워야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시월은 '우리도 사랑일까' 영화를 보면서 시작했다. 알랭드보통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가 겹쳤다.  순전히 제목 때문이지만, 원제는 'take this waltz', 'the romantic movement'.

설레임이 익숙함으로 새것이 오래된 것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어떤 지점과 어디까지가 사랑일까라고 묻고 있는... old 한 것은 이전에 new 였음을 기억한다면, 사랑일까라는 질문은 우문에 불과하다. 떨림만 사랑이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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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되는 책들
최원호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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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이해하고 분류하려는 두뇌의 오랜 욕망에 앞서 몸과 마음이 먼저 작품과 연결되는 순간은 각별한 데가 있다. 전시물이라는 매개를 통해 관람자인 `나`의 일부와 작가의 일부가 만나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감상을 이끈다. 일조으이 공명현상이다. 누군가가 자기 삶의 일부를 떼어 만든 작품은, 그 떼어진 삶이 가지고 있던 인식 및 감정의 파장을 품고 있다. 이 파장은 감상을 통해 다른 이에게 전달된다. (44-45쪽)

그러나 대개는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대상을 더 알고 싶어지고 이해하고 싶어진다. 사랑은 자신의 세계 바깥에 존재하던 객체를 자신의 세계 속으로 포섭하려는 욕망과 그에 따른 노력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의 대상을 향해 던져지는 질문은 자신이 질문을 던지는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 표현(나는 그를 내 안으로 초대하고 있다)이며, 그 결과로 떠오르는 감상이란 자시닝 앞서 던졌던 질문에 대해 성의껏 구한 답으로서 도출되는 것이다. (57쪽)

에세이란 궁극적으로 매혹에 대한 이야기이고, 매혹은 사랑의 시발점이며, 사랑은 그 성패가 아니라 사랑을 품에 안고 있엇던 동안의 삶으로서만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105쪽)

윌터 머치는 관객들이 영화에서 감동을 받는 건 바로 그 모호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영화 안의 복잡한 서사 및 편집 구조에는 객관적인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 빈 공간이 발생하는데, 관객의 내면이 그 빈 공간을 점유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그 영화는 관객의 일부가 된다. 즉 `이 영화는 나를 위한 영화`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130쪽)

사진은 우리 인간들이 서로에게 그러하듯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 내가 공유할 수 없는 신비를 소유함으로써 나에게서 존중받는 타자-다르지만 동등한 존재-가 된다. 감상자는 사진을 먹어치울 수 없고 사진과 대화해야 한다. (138쪽)

행동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텍스트는 스펙터클의 형태로 소비되며, 그 과정은 `하나의 대중적인 취미활동, 분리된 영역에 대한 분리된 비판의 확대된 장`의 형성에 그친다. 종교가 아편과 같은 것이라면 독서로 종료되는 혁명은 알코올이다. 여기에 취할수록 육신의 힘은 풀리고 암울한 현실을 마주할 엄두를 내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오직 감탄하기 위해 좀더 세련되고 강렬한 텍스트-이론을 찾아 헤매는 여정은 보다 완벽한 꿈을 꾸기 위해 보다 많은 생을 잠에게 내어주는 꼴이다. (151쪽)

파크 픽션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언젠가 소망들이 집을 떠나 거리로 나갈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삶에 대해 사고한 텍스트들이 책으로부터 거리로 쏟아져나와, 정말로 사람들 곁에 실재하는 벗의 형태로 서려는 광경이다. 어떤 텍스트가 그 텍스트를 해독할 수 있는 지적 계급을 방어하는 장벽으로 작용하는 대신에 실재하는 장벽들을 무너뜨리려는 도구가 되어 길 위로 나서려는 시도다. 이 시도는 언제쯤 몇몇의 성공 사례가 아니라 하나의 패턴으로, 궁극적으로는 시스템으로 정착할 수 있을까? (158쪽)

곱게 손질한 슬픔은 당의정처럼 고통의 겉에 더씌어져 그 고통을 독자들이 삼키기 쉽게 해준다. 고통은 감상을 통해 변된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감동시키는 글은 고통 그 자체를 바라보게 하는 대신에 고통을 수단으로 삼은 다른 무엇을 바라보게(소비하게)한다. 그러면 질문은 거기서 끝나고 고통은 책을 덮는 순간 함께 덮이고 만다. (183쪽)

자기 아닌 존재에 대한 경외를, 또는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마음이 채워지는 경험 없이 어른이 된 인간들로 가득한 세계는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곳이다. 인간은, 타인은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타인은 수단이고 사물이며 장애물이 된다. 이런저런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인간이 그 지경에 다다랐다면 이미 인간 외의 `것`들은 치욕스러운 꼴을 당한 지 오래일 것이다. (226쪽)

그가(미야자키 하야오)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그저 아이들이 인류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 아니라, 아이일때만 체득할 수 있는 `나다움`이야말로 요동치는 세계를 헤쳐 나갈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다움을 간직한 채 성장한 아이들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다가와도 쉽게 비틀어지거나 쓰러지지 않는다. (235쪽)

그런데 모른다는 게 답이다. 드레즈너는 모름을 인정하기야말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임을 은영중에 설파한다. (255쪽)

[일본 섹스 시네마]는 핑크 영화들끼리 또는 동시대의 다른 예술 장르와의 연결점 역시 다양하게 제공한다. 연결점의 개수는 독자 자신이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 링크들이 당장 무슨 의미를 제공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장르내에서 `차이와 반복`을 발견하는 건 늘 재미있는 일이며, 그렇게 열린 시야는 다른 무언가를 볼 때에도 더 넒은 시각을 제공하게 마련이다. (264쪽)

삶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체계를 증거하고 그 체계는 또다시 다른 생각과 사건들을 꽃처럼 피워낸다. (285쪽)

세상을 사랑한다고 해도 막연한 애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상대를, 세계를 내 안에서 전유하지 않고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또는 그러려고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존재론이나 문학론의 여부를 떠나서 삶의 양식에 대한 질문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302쪽)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죽음이 앗아간 것들에 대해 말할 때뿐이다. 소중한 추억들, 다시 만나지 못하는 사랑을 받아드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시간들, 어째서 사랑을 잃어버리는 고통이 신앙에 있어 필요한 시련인가라는 물음("내게(...) 종교적 위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당신은 모른다`고 나는 의심할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슬픔의 형태, 그렇게 형태가 달라지는 슬픔을 바라보며 이것이 나아감인지 아니면 후퇴인지를 가늠할 수 없을 때의 혼란......이 종잡을 수 없는 조각들이 [헤아려 본 슬픔]의 전부다. (316-317쪽)

아무도 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순간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아무도 우리의 슬픔을 가늠하지 못할 것처럼, 사랑이 오직 하나이므로 죽음 역시 오직 하나일 뿐이다. (320쪽)

가장 짧은 시간과 영원한 시간 사이의 틈에는 모든 존재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정확히 지금 이 우주만큼 광활하지만 어떤 각본이나 기대나 운명으로부터도 자유로운(또는 버려진) 빛들로 이루어진 `틈의 우주`다. 빛과 소리의 떨림이(또는 은총의 전달 체계가) 언어를 대체했으므로 모든 피조물들이 의미로부터 벗어나 홀로 자신을 위해 노래하는 곳. 필립 퍼키슨는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모두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인 것들 사이로 가기. 틈의 일부가 되기. "저 자연 속에 존재하는 변화무쌍한 공간, 울림, 빛, 공기, 움직임, 살모가 죽음에 조응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밖으로 나가서 내`자신`을 찾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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