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늙을까 -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너 애실이 전하는 노년의 꿀팁
다이애너 애실 지음, 노상미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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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자기 집에서 자신이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사는 날까지 살다가 죽고 싶어 한다. (24쪽)

나는 인간이란 모름지기 젊어서는 자식을 돌보고 늙어서는 자식의 돌봄을 받는 게 자연의 이치라 생각한다. (25쪽)

`일흔이 넘었다`는 건 늙은 것이다. 나는 돌연 그 사실에 좌초해, 늙은 게 뭔지 여러모로 따져보고 헤아려볼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45쪽)

나이든 여자에게 외모는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싶어서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 때문이다......나는 확실히 우리 할머니 세대보다 같은 나이에도 더 젊게 느끼고 더 젊게 행동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칠십대로 접어들면서 가장 분명해진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게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늙어 보이지도 않고 또 그렇게 늙었다는 느낌이 안 들지 몰라도 나는 이제 더 이상 성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다. (48쪽)

그 고통스럽던 밤에 내가 슬퍼한 건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내 오랜 친구를 잃어서가 아니라 나의 젊음이 사라졌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염병할, 그녀에게는 있지만 나한테는 더 이상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갖지 못할` 젊음의 상실이 슬펐던 것이다. (61쪽)

성욕이 감퇴하면서 나타난 중요한 현상은 다른 일들이 더 흥미로워졌다는 것이다. 성은 젊은 여성의 개성을 지워버린다. 젊은 남성들의 경우는 덜한데, 이는 남성보다 여성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이 성에 이용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이런 차이가 대부분 교육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어보려 해 봤지만 헛된 노력이었다. 교육은 그 차이를 강화할 뿐이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생물학적 기능의 문제다. 남성은 섹스를 한 후에 등 돌리고 가버리지 못할 신체적 이유 같은 게 없다. 반면 여성은 자신이 행한 모든 섹스 행위가 평생 자신의 존재 방식을 바꿀지 모를 잠재성을 안고 있다. 남성은 그저 또다른 인간이 존재하는 데 시동을 걸 뿐이지만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 또 하나의 존재를 만들어 자기 안에 품고 좋든 싫든 그 존재와 유대를 맺어야 한다. (77-78쪽)

우리 영역 안의 삶이라는 부분, 인생이라는 그 단순한 실상은 그 자체로 충분히 신비롭고 흥미롭지 않은가? 또 삶의 잔혹함은 최소화하고 인생의 아름다움은 최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건, 신이 우리에게 부과한 의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긴급하고 필요한 일이 아닐까? (82-83쪽)

그렇다면 글이라는 건 어떻게 작용하는 걸까? 독자의 어떤 부분이 글을 흡수하는 걸까? 아니면, 그것은 이중적인 문제일까? 그러니까 텍스트를 읽는 사람의 어떤 부분이 텍스트의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는 걸까? 내 생각에는 독자 내면의 결핍된 뭔가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의식적 반응의 기저나 옆에서 텍스트가 제공하는 뭔가를 취하는 것이다. (91-92쪽)

우리같이 나이든 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경계 안의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기 때문에 모든 게 나빠질 거라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귀는 더 안 들리고, 눈은 더 침침해지고, 식욕도 갈수록 줄어드는데, 아프기는 더 많이 아프고, 친구들은 떠나고, 나도 곧 죽게 될 것이고...., 그러니 당연히 남은 인생 전반을 비관하기 쉬운데, 그렇게 되면 사는 게 매우 지루해지고 그렇잖아도 쓸쓸한 말년이 더욱 쓸쓸해진다. (109-110쪽)

내가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가 젊었을 적보다 훨씬 세련돼서 대다수가-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은 확실히 그렇다-우리 때보다 손윗사람들과 훨씬 잘 지내는 것 같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 할 거라 기대하거나 동년배 치눅에게 청할 일을 그들에게 청해서는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 그드링 너그러이 베푸는 건 뭐든 즐겁게 받으시라.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112-113쪽)

모든 사람이 동일한 속도로 나이가 드는 건 아니라서 결국 대다수는 누굴 돌보거나 누구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전자가 후자보다는 분명 낫지만, 그렇다고 그 일이 즐거운 건 아니라는 사실을 딱히 나만 몰랐던 건 아닐 것이다. (143-144쪽)

누구든 여든아홉 해를 되돌아본다면 후회로 점철된 풍경을 보아야만 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자기 자신의 결함과 나태, 빠뜨리고 간과한 것, 다른 사람이나 더 너은 사람들이 세운 기준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이 세운 이상에도 미치지 못한 무수한 면모를 훤히 알게 되니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분명 유감스러운 수많은 사건을 토해냈겠지만-정말이지 확실히 그렇다-내 시야에서는 사라져버렸다. 후회?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한다. 무슨 후회? 그 일들이 보이지 않는 건 상상력보다는 상식이 앞선 탓도 있으리라. 그러니까 후회란 부질없는 것이니 잊자는. 하지만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계속 운이 좋다면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 되고 말지 않을까. (199쪽)

그보다는 우리가 이 세상에 거의 보이지는 않아도 실제적인 뭔가를, 유익하든 해롭든 간에 남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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