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다 보면 여기 저기 몸의 반응을 알게 된다. 책을 읽고 있는 시점의 마음과 상황을 어루만지는 글귀에서는 소리내어 몇번이나 곱씹게 된다. 단어 하나에서부터 문장들이 살아 몸과 마음을 두드리며, 갖가지 이야기를 속속이 들려주고, 타인의 소리까지 듣게 된다. 그럴수 밖에 없음을, 그래도 해야 했음을, 먼저 마음이 부대끼고 있는 나를 받아주고, 타인을 이해하는 지점까지 나아가게 된다. 요즘, 애쓰고 있는 일들이 어떤 의미일까, 마음이 함께라는 데 의의를 두면 될까. 이해해야 할 타인들 사이에서 나의 지점은 어디쯤이고, 그들간의 서로 상충된 부분에서 나는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 각자의 바램과 지향점에서 공통점은 얼마큼인지. 어려운 질문의 답을 글 속에서 찾아내거나. 나, 지금 잘하고 있는거지를 몇번이나 다짐받게 해주고, 너 잘하고 있다는 말이 쓱 떠오른다. 그런 맛에 책을 읽는다. 수만갈래 마음의 길에서 이정표도 만들어 주고, 가고자 하는 길도 닦게 해준다. 그 누구도 아득한 맘을 몰라줄 때도 책은 언제나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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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읽는 즐거움 - 삶을 바꾸는 우리말 낭독의 힘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단지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닿고 싶은 마음은 아직 그리움이 아니다. 사무쳐야 그리움이다. 쓰라려야 그리움이다. 마침내 그리움과 나를 분리시킬 수조차 없어야 그리움이다. 그 감정의 뿌리가 그리움인지도 모른 채 한참을 방황하다가 비로소 인생의 어느 참혹한 문턱에서 그 황망함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이 그리움이다. 그리하여 그리움은 어쩌면 감정이 아니라 시간일지도 모른다.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시간,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시간, 마침내 마음이라는 액자 속에 영원히 박제되어버린 시간. 그것이 내게는 그리움이다. (28쪽)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태어났잖아. 자라왔잖아. 지금, 살아 있잖아. 스스로를 달랜다. 살아 있다는 것만큼 눈부신 권력이 있을까. 타인에게 군림하는 권력이 아니라 오직 살아 있다는 이유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자유. 그것이 살아 있음의 권력이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것이 바로 출세다. 그 이상의 어떤 출세도 사족일 뿐이다. (91쪽)

반드시 그 사람과, 반드시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그 하나뿐인 순간의 맛을 알기 위해 얼마나 길고 아픈 기다림이 필요할까. (111쪽)

우리는 아내에게, 남편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자식에게, 그리고 부모에게 가는 가장 가까운 마음의 길을 과연 알고 있는 것일까. 그저 `그 사람 마음은 대충 이런 모양이겠지`하고 짐작하고 예단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주 가깝다는 이유로, 매우 오래 보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찬찬히 관찰해보는 첫 마음의 조심스러움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152쪽)

소리내어 읽기는 너무 빨리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글마저 대충 대충 인터넷 화면 넘기듯 읽어버리는 우리의 무딘 영혼을 깨우는 몸짓이다. 글자 한 자 한 자 새겨 마치 하얀 눈발 위에 첫 발자국을 새기듯 읽어가다 보면, 이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인생을 걸었을 작가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고 눈물자국이 만져지는 듯하다. (195쪽)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된다는 것, 그것은 내 상처가 무엇인지, 내 결핍이 무엇인지, 내 한계가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깨닫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주변 환경은 무엇인지, 내가 끝내 혼자서 해쳐나가야 할 삶의 장애물은 무엇인지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된다는 것은 거대한 미디어와 우리 손에 닿지 않는 정치적 권모술수에 내 삶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함부로 분석하고 재단할 수 없게, 그들이 우리 삶을 함부로 통제하고 장악할 수 없게 저마다 삶의 터전을 탄탄히 갈고 닦는 것이다. (226-227쪽)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미; 소리내어 읽으면, 다산의 마음씨가 보인다. `나`를 나답게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았던 크고 깊은 마음이 보인다. 나를 지키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할 때마다 새삼 꺼내 읽고 싶은 글이다.
*여기서 글은 정약용 [수오재기]

어떤 얼굴은 지울수록 더 선명하게 살아난다. 어떤 부담은 덜어내려 할수록 더 무거워진다. 어떤 사랑은 떨쳐내려 할수록 더욱 악착같이 심장에 달라붙는다.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지우려 애쓸수록 더 선연하게 살아나는 당신의 모습을, 평생의 짐처럼 등에 대단 채 살아가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인생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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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결혼, 죽음, 신앙에 비추어 자신의 슬픔에 대하여 통찰한 글이다.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슬픔을 아주 잘게 나누어 헤아려 본, 사랑하는 사람을 실재가 아니라 상상과 이미지로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다시 만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한다. 슬픔은 두려운 감정이고 게으름이고,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사랑하는 이의 부재는 남아있는 자의 많은 것을 가져가 버린다는 것을. 마음으로 그린 이미지에 대한 생각에 머물러 만족할 게 아니라 현실에서 실존하는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거로. 모든 인간 관계는 고통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살아남은 자가 해야 할 일은?

-슬픔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순간 순간 감정 단어를 넣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드러낼 필요가 있다. 건강해진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로 시작되는 영화 '다가오는 것들' 보다. 고양이 판도라가 은유하는, 절대 열어서는 안되는 인생의 뚜껑을 열었다 닫는 순간, 남는 건 희망이다. 그래도 남은 사람은 살아야지, 살아가야지. 이때껏 서로의 습관적인 행동에 매몰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다독여야 한다. 엔딩으로 unchanged melody가 느리게 흐른다. 변하지 않는 건 한때 너를 사랑했다와 너와 사랑한 그때가 행복했다는 점이고. 세월이 지나면 잃어버리거나 잊혀지게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KIAF 2016, 알수 없고 이해 안되는 작품들을 친구와 보다.  

-코엑스에도 테라로사가 있었다. 오랫만에 만난 노처녀 그녀의 사랑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은 빛이 났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설령 헤어진데도, 

-전국에 있는 OO기관을 평가하는 위원으로 이박삼일간 다녀왔다. 정량평가와 정성평가에서 각 부분에서의 타당도의 문제와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평가를 받기 위해 준비한 수고한 손길을 생각하면서 결국에 더 많은 점수?를 받기 위한 자료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리고 아팠다. 마치고 터벅터벅 오면서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고 생각의 집을 여러채 지었다.   

-가을이라고 셀수없는 관광버스들과 나란히 하여 나들이를 다녀왔다. 조금씩 물들고 있는 나무를 보았고, 밤새 맥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오는 길 간간히 비 내리고, 비발디 사계 겨울 2악장이 새롭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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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별이란 결혼한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단절이 아니요. 정상적인 단계 중 하나(마치 신혼여행이 그 단계 중 하나이듯)이다. 우리는 그 단계까지 결혼생활을 충실하게 잘 살아내었으면 하고 바란다." (13-14쪽)

슬픔이 마치 두려움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으나, 그 감정은 무서울 때와 흡사하다. 똑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부절못하며 입이 벌어진다. 나는 연신 침을 삼킨다. 어떤 때는 은근히 취하거나 뇌진탕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과 나 사이에는 뭔가 보이지 않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든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게다. 만사가 너무 재미없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이 옆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집이 텅 빌 때가 무섭다. 사람들이 있어 주되 저희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나는 가만 내버려 두면 좋겠다. (19쪽)

또한 슬픔이 게으른 것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 일상이 기계적으로 굴러가는 직장에서의 일을 제외하면 나는 최소한의 애쓰는 일도 하기 싫다. 글쓰기는 고사하고 편지 한 장 읽는 것조차 버겁다. 수염 깎는 일조차 하기 싫다. 내 뺨이 텁수룩하건 매끈하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불행한 인간은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릴 일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 자신으로부터 끄집어 낼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신이 피료한 사람이 추운 날 담요 한 장 더 얻자고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일어나 이불을 찾아다니느니 차라리 떨며 누워 있는 쪽을 택할 것이다. 외로운 사람이 지저분한 사람으로, 마침내는 더럽고 역겨운 인간으로 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21-22쪽)

만약 하나님이 사랑의 대용품이었다면 우리는 그분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어버렸어야 옳다. 바라던 것을 가졌는데 뭐하러 대용품 따위에 신경을 쓰겠는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둘 다 서로 상대방 이외에도 다른 무언가를 원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어떤 것, 다른 종류의 욕구 말이다. 연인이 서로를 소유하게 된다고 해서 책도 읽고 싶지 않고, 먹고 싶지도 않고, 숨쉬고 싶지도 않더란 말이야? (24쪽)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아주 다양하게, 수많은 각도로, 여러 가지 빛 아래에서, 여러 가지 모습(깨는 모습, 잠든 모습, 웃는 모습, 우는 모습, 먹는 모습, 말하는 모습, 생각하는 모습)으로 보아 왔기 때문에, 그 모든 인상들이 우리 기억으로 떼지어 몰려와 결국엔 그저 흐릿함으로 퇴색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하다. 그 목소리를 생각하면 나는 또다시 훌쩍이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다. (33쪽)

결혼이 내게 주었던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이처럼 아주 가깝고 친밀하면서도 언제나 확실하게 `내가 아닌 남`이며 순종적이지 않은, 한마디로 `살아 있는` 어떤 것의 영향력을 계속 느끼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한데 그 모든 작용이 이제 무위로 돌아가는 것인가? (39쪽)

그리고 슬픔은 여전히 두려움처럼 느껴진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중간한 미결 상태 같기도 하다. 혹은 기다림 같기도 하여 무슨 일인가 일어나기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슬픔은 삶이 영원히 임시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무언가 시작한다는 것을 가치 없어 보이게 한다. (55쪽)

왜 슬픔이 마치 어중간한 미결 상테처럼 느껴지는지 알 것 같다. 그것은 습관처럼 굳어진 수많은 충동이 좌절되기 때문이다. 나의 수많은 생각과 느낌, 수많은 행동들은 H를 향한 것이었다. 이제 그 목표물이 사라졌다. 나는 습관적으로 활에다 화살을 메기지만, 다음 순간 목표물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활을 내려놓아야 한다. 너무나 많은 길들이 H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 나는 그 중 하나를 택했다. 그러나 이제는 건널 수 없는 경계 표시판이 길을 가로막고 버티고 있다. 한때는 그렇게 많은 길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만큼 많은 막다른 길로 변해 버렸다. 좋은 아내는 한꺼번에 여러 사람 역할을 한다. (72-73쪽)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연애 다음에 결혼이 오듯이, 결혼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죽음이 온다. 그것은 과저으이 단절이 아니라 그 여러 단계들 중의 하나이다. 춤이 중단된 게 아니라, 그 다음 표현 양식으로 옮겨 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연인 덕분에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난다.` 그 다음에는 춤의 비극적인 양식에 따라 우리는 여전히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비록 그 육신의 존재는 사라지고 없어도 연인 그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우리의 과거와 추억, 슬픔 혹은 슬픔으로부터의 위안, 자신의 사랑 따위를 사랑하느나 안주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76쪽)

사랑하는 이여, 당신이 떠나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함께 가져가 버렸는지 알기나 하오? 당신은 내게서 나의 과저조차 앗아가 버렸소.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던 과거마저도. 잘려진 부분이 과거와 단절된 고통으로부터 회복되고 있다고 말하다니 틀린 소리였다. 그 고통은 너무나 여러 방면으로 나를 괴롭히면서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드러나는 탓에 내가 속은 것이었다. (89쪽)

하나님에 대한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 자체를, H에 대한 내 생각이 아닌 H 자체를, 그렇다. 우리 이웃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우리 아웃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같은 방에 있는 산 자들을 향해 종종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곤 하지 않는가? 그 사람 자체에게 말 걸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속에 만든 대략의 그림에다 대고 하는 것이 아닌가?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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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그은 글을 올리자 마자 갑자기 몰려 온 일감들로 이제야 페이퍼쓰기를 한다. '베개를 베다'의 소설은 지금 내가 한 일 처럼,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평소같은 일들이 소소하게 잔잔히 들어 있다. 누구에게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흔하디 흔한 일들이, 잠깐의 한눈이 엇갈린 길을 만난 듯이, 그냥 평소대로 흘러간다. 그 안에서 아픔도, 슬픔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들어있다. 이 자잘한 일상들이 나에게 주어질 때, 할 일을 하면 된다. --할 일이라는 게 없는 사람도 있고, 그게 다른 일 때문에 방해받을 수도 있고, 과거의 후회와 미련이나 미래의 걱정과 불안이 지금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꾸만 뒤돌아보고 미루고 후회하고 걱정하는 일상들은 다시 과거로 묻히고 또 다시 오늘의 삶을 살고 있는. 그러면서, 이때껏 옆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아무리 지나 다녔어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이제사 발견하기도 하고, 매일이 똑같아 보이지만 어느날 조금 다른 시간들로 다시 보이게 되고 느끼게 되고 의미가 된다. 어쩜 이리 우리 삶을 제대로 보여주는지, 쫀쫀하게 재밌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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