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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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소유하는 순간부터, 아직 첫 페이지도 펼치지 않은 책이라 해도, 어떤 면에서 그 책이 내 삶을 바꾸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내 책을 옷이나 신발이나 음반을 다루듯 한다. 책은 내가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킨들로는 절대 이렇게 할 수 없다. (31쪽)

북클럽은 독자가 뭔가 대화에 보탤 것이 있다는 자기 본위의 착각을 중심축 삼아 돌아간다. 아니 뭘 보태겠다는 건데? 책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오가는 일련의 논쟁들이고 독자는 그중 어느 논쟁에서도 승산이 없다. 제임스 조이스가 관여하는 논쟁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북클럽 회원들이 공유하는 독서 경험은 내밀하지가 않다. 북클럼 참가자는 책에 대해 자신과 아주 똑같이 느끼는 사람들하고 연결되기를 원한다. 독서 토론회는 사실 독서와 거의 무관하다. 이런 토론회에서 좋은 책을 좀체 선정하지 않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토론 참가자들은 만장일치를 원하지만 좋은 책은 만장일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75쪽)

나는 내가 딱 맞는 책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읽던 책을 덮고 새 책을 펼치는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게 아니다. 사실상 내가 읽기 시작한 책은 모두 다 나한테 맞는 채깅라고 할 수 있다. 실은 그 책들이 다 좋게 때문에 서둘러 끝을 보고 싶지가 않고, 그래서 독서를 중단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책은 후다닥 해치울 수 있다. 문제는 간단하다. 좋은 책은 너무 많고, 난 적어도 그 책들을 전부 맛보기라도 하고 싶다. 독서는 루브르 박물관 관람과 비슷하다. 티치아노에 열광한다고 해서 베리니에게 끌리지 말란 법은 없다. 인생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109쪽)

나는 나쁜 책은 정말 나쁜 책이라는 시각을 버린 적이 없다. 하지만 그 형편없음이 존재하기에 좋은 책들이 돋보인다. 나쁜 소설은 좋은 소설의 단물 다 빠진 버전 같다. (206쪽)

너무나 분명히 금세 깨달은바, 파리는 작가들을 위해 생긴 도시였다. 이름난 작가들은 이르만 책을 파리에서 썼다. 이름난 작가들은 파리의 묘지에 묻혔다. 이름난 작가들은 파리에서부터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필라델피아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 점에 대해서라면 미국 어디에도 비슷한 것이 없었다. (252쪽)

책을 읽는 경험은 각기 다 개인적이죠. 지금 이 순간밖에 없는 거에요. 독서는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할 수 있어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독서 경험을 재창조(recreate)해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다고 봐요. (334쪽)

사람은 어릴 때 행동 패턴이나 어떤 문제를 처리하는 보상 기술 일체를 계발한다. 그러나 문제가 이미 오래전에 해결됐다고 해서 기존의 행동 패턴이 자동으로 폐기되거나 교정되지는 않는다. 임대주택에서의 쓰라린 날들은 수 십 년 전 일이었으나 나는 여전히 미친놈처럼, 거의 필사적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현실은-예전에 비하면 훨씬 좋은 나의 새로운 현실조차도-결코 책 속의 현실만큼 숭고하지는 않았으니까.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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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힘든 상태가 계속되고, 입안팎이 훨어 있고, 오가기 싫은 일터에서, 마주한 본문,

 

어린 물고기 두 마리에게 나이 든 물고기 한 마리가 인사로 건넨 말,  "잘 있었지, 얘들아? 물이 괜찮아?" 어린 물고기가 서로에게 말하길, "도대체 물이란 게 뭐야?"

 

내가 몸 담고 있는 곳과 하고 있는 모든 행동, "물은 뭐지?"

"자각 있게, 어른스럽게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이것은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든 일입니다(143쪽)."

무의식적으로 디폴트세팅된 나의 모습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힘든 일이다. 그래서 힘이 드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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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물이다 - 어느 뜻깊은 행사에서 전한 깨어 있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생각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 / 나무생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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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극히 당연하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중요한 현실이 사실은 가장 보기 힘들고 논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14쪽)

성인이 되어 날마다 겪어야 하는 인생의 최전선에서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이야말로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15쪽)

우리가 의미를 구축하는 것이 실제로 개인적이고 의도적인 선택이며 의식적인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 (34쪽)

나 자신도 모르게 확신하기 쉬운 것들이 사실은 대부분 완전히 잘못 알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었다는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39쪽)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은 어떤 방법으로든 전해지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반면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직접 일어나는 일이며, 절박하고, 실존하는 현실입니다. (47쪽)

우리의 디폴트세팅을 조절하는 작업에 있어 실제로 지식(knowledge)과 지성(intellect)이 과연 얼마나 많이 관련되느냐. (52쪽)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59쪽)

여러분이 받는 인문학 교육의 진가......성인으로서의 삶을 그저 편안하고 순조롭게, 그럴싸한 모습으로 죽은 사람같이 살지 않는 방법, 무의식적인 일상의 계속이 아닌 삶을 사는 방법, 또한 자기 머리의 노예, 허구한 날 독불장군처럼 유일무이하며 완벽하게 홀로 고고히 존재하는 태생적 디폴트세팅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66쪽)

나는 무엇에 주의를 기울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84쪽)

그러다 보니 이 세상 다른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저 내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일 뿐이며, 내 길을 가로막고 있는 이 빌어먹을 인간들은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85쪽)

여러분이 생각하는 법, 주의를 기울여 사물을 관찰하는 법을 진실로 배웠다면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터입니다. (100쪽)

혼잡한 데다가 후덥지근하고 서비스는 느려터진 소비자의 지옥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은 사태를 변화시켜 의미심장할 뿐만 아니라 성스럽기까지한, 별을 빛나게 하는 기운만큼이나 찬란한 체험으로 만드느냐 못 하느냐가 여러분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 즉 연민, 사랑 온갖 만물의 내면에 존재하는 융합을 체험하고자 하는 선택입니다. (101쪽)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육의 자유, 정서적 안정을 성취하는 배움의 자유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즉, 무엇이 의미 있는 일이고 무엇이 무의미한 일인가를 여러분 자신이 자각적으로 결정하는 자유 말입니다. (103쪽)

진실로 중요한 자유는 집중하고 자각하고 있는 상태, 자제심과 노력, 그리고 타인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능력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사소하고 하찮은 대단치 않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128-129쪽)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무의식 상태, 디폴트세팅, 그리고 극심한 ‘생존경쟁‘밖에 없습니다 - 전에는 자기 것이었던 무한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끊이지 않는 고통밖에 남지 않는 것이지요. (130-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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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무겁다고 느껴지고 막상 펼치기 힘든 성서를 경쾌한 목소리로 교양서처럼 소개하고 있지만, 현대인으로 살고 있다면 이 정도는 읽어줘야 하지 않나하는 묵직한 권유가 느껴지는, 성서 입문서이다. 어쩜 이렇게 재미있게 썼는지, 막힘없이 한번에 꿰뚫어 준다. 독자의 크기만큼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독자의 크기를 논하지는 않는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의심과 의문을 흔쾌히 받아주고 위로까지 주고 있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앞으로도 새로운 해석을 더하며 가장 오랫동안 읽히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서에 대한 나의 마음의 무게는 엄청났는지, 후련한 느낌이다. 번역을 아주 잘했다. 이 분만이 할 수 있는 번역같았다... 봄 바다를 보러 동해로 가려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와 함께한 스파이더맨(자동차 애칭)은 폐차장으로 보냈다... 사물에 대한 애정도 오래갈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몇 번을 돌아보고 바이바이했지만, 마음으로는 수없이 더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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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교양 - 3천년 인문학의 보고, 성서를 읽는다
크리스틴 스웬슨 지음, 김동혁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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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람들이 믿는 바(또는 안 믿는 바)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전달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하여 성서를 더 잘 이해하고 성서를 교양 있게 대하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또 성서에서 온 표현이다 개념을 더 잘 인식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돕고, 왜 사람들이 성서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쉽게 흥분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12쪽)

오늘날의 성서를 이루는 내용 중 대부분은 책이란 것이 존재하기 이전, 즉 사람들 대다수가 글을 읽을 줄 알기 이전부터 발전하여 온 것이다. 이러한 성서 이전의 본문들은 대개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문서들이었는데, 많은 경우는 옛 구두 전승을 반영한 것들이었다. 이런 성서 이전의 본문들이 당시 글을 읽고 쓸 줄 알던 소수 엘리트들의 손을 거쳐 다시 쓰이고 편집.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21쪽)

대부분의 학자들은 신약에서 가장 먼저 쓰인 책이 바울이 기원후 50년경에 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중 하나(데살로니가전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은 20년 뒤인 기원후 70년경에 쓰였는데, 이것은 예수 사후 한 세대(40년)를 채운 뒤의 일이었다. (51쪽)

안타깝게도 성서가 말해 주는 역사에 의문을 품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의문을 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믿는 신자들이 많다. (72-73쪽)

먼저 말해야 할 것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사용했던 히브리 성서는 ‘히브리어‘도 아니었고 ‘성서‘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직 고정되지 않은, 경전의 지위를 얻지 못한, 히브리어 두루마리들의 그리스어 번역을 그들의 성서로 사용하였다. 또 하나는 예수를 처음 따르는 이들이 예수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 모두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그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에 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102쪽)

예수의 특별한 본성에 대한 믿음, 즉 예수가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하게 만든 분이라는 그 믿음이 신약의 저자들로 하여금 붓을 들게 했다. 그들은 예수의 일대기(복음서들)을 쓰고, 교회의 역사(사도행전)를 쓰고, 구너고, 교훈, 격려의 편지(그 외의 책들)를 썼다. (267쪽)

사실 바울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관해 말하는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예수의 특별한 본성, 즉 신인 동시에 인간인 근원적 독특성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밝히는 데에 힘을 집중하였다.....그가 전한 것은 부활한 메시야, 예수에 대한 믿음이었다. 예수의 특정한 행위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 말이다. (277-278쪽)

성서는 가부장적 문화와 사고방식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렇기 대문에 성서 본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영향 아래 있던 저자들이 전제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들로 하여금 붓을 들게 한 동기가 무넛인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318쪽)

마지막으로 말할 것이 있다. 예수가 당대의 가부장적 전제들 중 몇몇에 도전한 것은 사실이다. 또 초기 기독교 교회가 예수의 그러한 점을 계승해 여성 지도자 몇을 세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 세계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여성들의 실제 삶과 형이상적 신학 모두에는 여전한 억압과 제한이 있었다는 점을 또한 기억해야 한다. 신앙을 가진 이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성성의 표현과 이미지에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것을 최종적으로 그려 내는 것은 결국 독자의 해석이다. (446쪽)

믿는 이들이 수천 년 동안 성서를 공부해 왔지만 그럼에도 성서의 지위는 여전하다는 사실에 위로받기 바란다.....실제 성서 본문을 해석하고 사용할 때는, 사람들의 개인 경험, 가족력, 문화적 배경, 신앙의 전통이 지식을 다루는 방법을 형성한다. 성서의 항구성이 증언해 주듯, 성서는 끝없이 변화하는 우리 환경 속에서 새로운 반복과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독자와 내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랜 후에도 사람들은 성서를 생각할 때 도움이 되는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해석을 계속 할 것이라는 점이다. (4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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