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소유하는 순간부터, 아직 첫 페이지도 펼치지 않은 책이라 해도, 어떤 면에서 그 책이 내 삶을 바꾸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내 책을 옷이나 신발이나 음반을 다루듯 한다. 책은 내가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킨들로는 절대 이렇게 할 수 없다. (31쪽)
북클럽은 독자가 뭔가 대화에 보탤 것이 있다는 자기 본위의 착각을 중심축 삼아 돌아간다. 아니 뭘 보태겠다는 건데? 책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오가는 일련의 논쟁들이고 독자는 그중 어느 논쟁에서도 승산이 없다. 제임스 조이스가 관여하는 논쟁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북클럽 회원들이 공유하는 독서 경험은 내밀하지가 않다. 북클럼 참가자는 책에 대해 자신과 아주 똑같이 느끼는 사람들하고 연결되기를 원한다. 독서 토론회는 사실 독서와 거의 무관하다. 이런 토론회에서 좋은 책을 좀체 선정하지 않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토론 참가자들은 만장일치를 원하지만 좋은 책은 만장일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75쪽)
나는 내가 딱 맞는 책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읽던 책을 덮고 새 책을 펼치는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게 아니다. 사실상 내가 읽기 시작한 책은 모두 다 나한테 맞는 채깅라고 할 수 있다. 실은 그 책들이 다 좋게 때문에 서둘러 끝을 보고 싶지가 않고, 그래서 독서를 중단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책은 후다닥 해치울 수 있다. 문제는 간단하다. 좋은 책은 너무 많고, 난 적어도 그 책들을 전부 맛보기라도 하고 싶다. 독서는 루브르 박물관 관람과 비슷하다. 티치아노에 열광한다고 해서 베리니에게 끌리지 말란 법은 없다. 인생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109쪽)
나는 나쁜 책은 정말 나쁜 책이라는 시각을 버린 적이 없다. 하지만 그 형편없음이 존재하기에 좋은 책들이 돋보인다. 나쁜 소설은 좋은 소설의 단물 다 빠진 버전 같다. (206쪽)
너무나 분명히 금세 깨달은바, 파리는 작가들을 위해 생긴 도시였다. 이름난 작가들은 이르만 책을 파리에서 썼다. 이름난 작가들은 파리의 묘지에 묻혔다. 이름난 작가들은 파리에서부터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필라델피아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 점에 대해서라면 미국 어디에도 비슷한 것이 없었다. (252쪽)
책을 읽는 경험은 각기 다 개인적이죠. 지금 이 순간밖에 없는 거에요. 독서는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할 수 있어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독서 경험을 재창조(recreate)해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다고 봐요. (334쪽)
사람은 어릴 때 행동 패턴이나 어떤 문제를 처리하는 보상 기술 일체를 계발한다. 그러나 문제가 이미 오래전에 해결됐다고 해서 기존의 행동 패턴이 자동으로 폐기되거나 교정되지는 않는다. 임대주택에서의 쓰라린 날들은 수 십 년 전 일이었으나 나는 여전히 미친놈처럼, 거의 필사적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현실은-예전에 비하면 훨씬 좋은 나의 새로운 현실조차도-결코 책 속의 현실만큼 숭고하지는 않았으니까.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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