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으로 엉망이 된 일본을 생각하며, 도서관에 들렀을 때, 눈에 띈 책이다. 가만히 거닐던 그곳으로 문득 다시 가고 싶다. 교토는 가만히 거닐기에 딱좋다. 그 곳에서 다시 걸어볼 수 있을까. 눈에 띌듯 말듯한 사람들, 오래되고 낡은 창문을 아침마다 닦던 그네들, 전통이 묻어나는 작은 우동집, 깨끗하고 조용한 그곳, 그들은 들끓는 지금에도 보이지 않는 걸음으로 움직인다. 가만히 움직이고, 가만히 생각한다. 눈이 아플 정도로 깨끗하고 마음이 베일정도로 친절하다. 지금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난 그때의 그길을 걷고 있는데.   

White day! 연애할 때, 만날 때마다 받았던 가나초콜렛, 10년간 받았다. 오늘 또 받았다. 커다란 장미한다발까지... 피아노위에 장미다발이 늘어간다. 몇년을 지나면 장미이파리들은 예쁜 유리병으로 들어간다... 가끔씩 거꾸로 매달린 장미꽃들을 쳐다보는 것도 재밌다. 꼬리표를 달고 있는 리본은 추억을 생각나게 하고 여전한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만히 거닐다 - 교토, 오사카... 일상과 여행 사이의 기록
전소연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월
절판


여행은 단순히 낯선 지역으로 가서 다른 일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공간에 가서 일상을 천천히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산책'과도 같은 매력이었고 그것이 '간사이'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간사이는 한 시간 남짓만 날아가면 도착한다. 소담스러운 일상이 어울리는 간사이 지방의 풍경이 나를 이끈 것이다. -25쪽

그것은 나에게 빈틈을 만드는 일이었다. 살면서 빈틈을 만드는 일은 삶을 무언가로 채우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만큼 쉽지 않다. 언제나 그랬다. 중요한 건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마련하고 싶은 내 생의 빈틈은 '산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때로는 '여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겹겹이 쌓여진 일상에서 어떤 빈틈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면에서 산책과 여행은 닮은꼴이었다.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혹은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5월의 미루나무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의 의지 같은 것이어서 자주 나를 바깥으로 내몰았다. -54쪽

당신과 나는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셨다. 생각해보면 당신과 나는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셔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당신이 슬며시 떠오른 까닭은 아메리카노를 시켜두고 자주 당신을 기다린 탓인 듯하다. 기다리는 내내 당신을 떠올리며 커피 잔을 들었다 놓았던 반복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65쪽

철학자의 이름은 단지 종이 위에 쓰인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것만으로 사색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이 그러했다. 실개천을 곁에 두고 2킬로미터 가량 이어지는 철학자의 길은 이름만으로 사색과 명상을 하기에 적합한 산책로였다. 나무가 우거져 풍경이 고즈넉하고 실개천이 흘러 호젓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것은 부과적인 수식어에 불과했다. 나는 이제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에 맞는 사색과 명상을 하며 산책을 하면 될 터였다. -148-149쪽

모 대학 사진과 수업 중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한 팔을 잃어도 자신을 '나'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다리 하나를 잃어도 여전히 자신을 '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잃는다면 그때는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자신의 팔이 내 팔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팔을 내 팔이라고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160-161쪽

시계가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 시간이 되면 빛은 풍경들을 조용하게 어루만진다. 나는 빛이 어루만지는 그 풍경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오후 네 시의 빛은 적당히 기울어져 주목받지 못한 풍경들까지 닿을 수 있고, 그때 풍경에 번지는 연한 미소를 훔쳐볼 수 있다. 나를 어루만지는 연한 손을 기억해본다. 이내 입가에 번지는 내 미소를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 버린다. -197쪽

이 기분. 이번 여행의 최고의 수확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내부를 통해서 외부를 바라보는 일, 혹은 외부를 통해서 자신의 내부를 바라보는 일이 이뤄질 수 있는 시간의 산책은 특별했다. 걸음걸이의 속도, 산책의 속도, 여행의 속도, 삶의 속도... 속도에 대해서 생각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서둘러서 놓치고 사는 것보다 느리샇게 여운을 남기고 사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사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에서 뭔가 대단한 결심이 서거나 인생의 큰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곳에서의 조용한 시간이 오랜 잔상으로 남아 마음이 시끄러울 때에 이따금씩 나를 토닥여 준다면, 그거면 족하다. -28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살이 따뜻하다. 툇마루대신 벤치에 앉아 봄바람을 맞았다. 이곳이 병산서원 만대루라면, 영호루누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커피, 아이스크림, 초콜렛을 먹으며 조잘조잘, 소근소근 더 바랄 게 없었다.  

이덕무산문은 어렵기도 하다. 각주를 찾느라 책장을 계속 뒤적였다. 각주를 페이지 아래에 적어줬다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간간히 한문이 빠져 있는 이유는 모르겠다. 아는 만큼 읽었다. 그 시절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구해서 읽고 베꼈을까. 궁하면 통하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걸까. 오로지 책읽기에만 전념했던 간서치, 이덕무의 글은 맑다. 그의 품성은 더 맑다.

봄, 지하철 안이 덥다. 사람들에게서 봄내음이 나는 거 같다. 울긋불긋 등산복이 봄꽃같다. 무늬는 봄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나의 숙제다. 숙제를 제때에 마치지 못하고 계속 밀린다. '참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선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구판절판


이덕무李德懋는 1741년 6월 11일, 부친 성호와 모친 반남박씨 사이에서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정종의 아들인 무림군 소이공의 후예로 왕족 출신이지만, 부친이 서자였으므로 사회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운명처럼 따라다니던 가난과 병마는 그를 내성적인 인간형으로 만들었다. 때문에 이덕무는 세상과 어울려 세속적인 영화를 바라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고자 노력했는데, 그 최선이 방책이 바로 독서였다. 그는 일생 동안 오직 책을 대하는 일에 전념했기에, 평생 읽은 책이 이만 권이 넘고 스스로 베껴둔 책도 수백 권에 이른다.
-20쪽

책을 읽지 않는다면, 작게는 정신 없이 잠자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게 되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돈벌이와 여색에 힘쓰게 된다. 아아! 그러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을 읽을 수밖에.-47-48쪽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벗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할 나이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어째서 그런 지극한 즐거움은 드문 것인가? 이러한 즐거움은 일생에 단지 몇 번 찾아올 뿐이다. -118쪽

인내로 노여움을 제어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실패하랴! 부지런함으로 게으름을 이길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 간결함으로 번거로움을 누르고 고요함으로 흔들림을 막을 수 있다. 이 밀을 평생 동안 마음에 새겨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마음을 바로 잡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말이 간결하고 마음이 안정된 것이다. 옛사람을 배울 때에는 오직 실천하는 것을 최선의 공부로 삼아야 한다. -174쪽

호굉胡宏은 "학문이란 해박해야 하고 잡스럽지 아니하며, 요약해야 하고 비루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해박'과 '요약' 두 글자는 '잡됨'과 '비루함'에 치우친 폐단을 각각 막을 수 있게 하므로 배우는 사람은 늘 이 말을 외우고 있어야 한다. -189쪽

때마침 오던 비가 개니, 3월의 푸른 시내에 햇빛은 화사하고 복숭아꽃 붉은 물결은 언덕에 넘쳐흐른다. 오색의 작은 붕어들은 그 지느러미를 세차게 움직일 수 없어서 마름 풀 사이를 헤엄치는데, 거꾸로 서기도 하고 옆으로 뒤집기도 하다가 주둥이를 물결 위로 내 놓고 아가미를 벌름거린다. 진기眞機의 지극함이 샘이 날 만큼 상쾌하고 편안하다. 따스한 모래는 깨끗하고 온갖 물새들은 둘씩 넷씩 짝을 지어 비단 같은 바위 위에 앉기도 하고, 꽃 같은 풀 위에서 지저귀기도 하고, 깃을 씻기도 하고, 모래로 목욕하기도 하고, 물에 그림자를 비춰보기도 한다. 자연 그대로의 평화로운 모습이 절로 사랑스러우니, 요순시대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내 웃음 속에 감춰둔 날카로운 칼과 마음속에 쌓아둔 만 개의 화살, 그리고 가슴속에 숨겨둔 서 말의 가시가 한번에 깨끗이 사라져 한 가닥도 남지 않는다. 항상 나의 생각을 3월의 복숭아꽃 물결이 되게 하면 물고기와 새의 활발함이 나의 순탄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도와줄 것이다. -215-216쪽

한평생을 두고 말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일을 하며 살기는 매우 힘들다. -24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별명은 '무한 이기주의자'.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눈치없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서 그렇단다. 그럼 불편하고 싫은데도 참아야 하고 억지로 해야하나. 눈치가 뭔지도 모르는데 눈치는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원하는 것을 꼭집어 갖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큼 갖는거다. 행여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려 준다. 난 열심히 일해서 번 만큼 쓰고, 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가끔씩 과거가 발목을 붙잡으려 하지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지금-여기에 초점을 두려한다. 지금 여기에서 나와 같이 있는 사람들과 일에 정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방법상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속으로야 얼마든 미워할 수도 있겠지만, 눈치를 모르니 나에 관한 것을 나만 모르는 경우가 왕왕있다. 사무실을 리모델링하는 관계로 타원형의 커다란 책상위에 다섯대의 전화기와 컴퓨터를 두고 다섯명이 이마를 맞대고 있다. 내가 선장이다. 서로의 숨소리와 내면의 소리까지 들린다. 함께 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 하는 나에겐 훈련의 장소다. 동일한 말을 몇번씩 하는 것 또한... 에너지가 쉽게 소진된다. 그래도 해피하게 일해야지...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한 10가지 항목에 대해 서로 척도를 재어봤다. 예로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p47).' 에서 누구는 4점, 누구는 8점, 6점, 8점, 2점까지 나온다. 같이 이야기 나누며 이런 한가한 시간이 또 있을까 싶어, 오늘은 DJ까지 되어 노래를 한곡씩 들려줬다. 다섯명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가만가만 노래를 들었다. 25살 여자애는 빅뱅의 투나잇, 40살 총각은 바비킴의 사랑그놈, 41살 아가씨는 디제이덕과 김장훈의 I believe, 37살 아저씨는 한영애의 조율, 나는 배다해의 어떻게 니가, 그리고 전체를 위한 노래로 백지영의 그남자,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선사했다. 서로에게 힘을 주는 팀이 되고 싶다. 눈치보지 말기 느끼는 대로 말하기 자신을 사랑하기 앞담화하기를 서로 다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