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단순히 낯선 지역으로 가서 다른 일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공간에 가서 일상을 천천히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산책'과도 같은 매력이었고 그것이 '간사이'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간사이는 한 시간 남짓만 날아가면 도착한다. 소담스러운 일상이 어울리는 간사이 지방의 풍경이 나를 이끈 것이다. -25쪽
그것은 나에게 빈틈을 만드는 일이었다. 살면서 빈틈을 만드는 일은 삶을 무언가로 채우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만큼 쉽지 않다. 언제나 그랬다. 중요한 건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마련하고 싶은 내 생의 빈틈은 '산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때로는 '여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겹겹이 쌓여진 일상에서 어떤 빈틈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면에서 산책과 여행은 닮은꼴이었다.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혹은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5월의 미루나무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의 의지 같은 것이어서 자주 나를 바깥으로 내몰았다. -54쪽
당신과 나는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셨다. 생각해보면 당신과 나는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셔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당신이 슬며시 떠오른 까닭은 아메리카노를 시켜두고 자주 당신을 기다린 탓인 듯하다. 기다리는 내내 당신을 떠올리며 커피 잔을 들었다 놓았던 반복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65쪽
철학자의 이름은 단지 종이 위에 쓰인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것만으로 사색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이 그러했다. 실개천을 곁에 두고 2킬로미터 가량 이어지는 철학자의 길은 이름만으로 사색과 명상을 하기에 적합한 산책로였다. 나무가 우거져 풍경이 고즈넉하고 실개천이 흘러 호젓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것은 부과적인 수식어에 불과했다. 나는 이제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에 맞는 사색과 명상을 하며 산책을 하면 될 터였다. -148-149쪽
모 대학 사진과 수업 중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한 팔을 잃어도 자신을 '나'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다리 하나를 잃어도 여전히 자신을 '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잃는다면 그때는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자신의 팔이 내 팔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팔을 내 팔이라고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160-161쪽
시계가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 시간이 되면 빛은 풍경들을 조용하게 어루만진다. 나는 빛이 어루만지는 그 풍경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오후 네 시의 빛은 적당히 기울어져 주목받지 못한 풍경들까지 닿을 수 있고, 그때 풍경에 번지는 연한 미소를 훔쳐볼 수 있다. 나를 어루만지는 연한 손을 기억해본다. 이내 입가에 번지는 내 미소를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 버린다. -197쪽
이 기분. 이번 여행의 최고의 수확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내부를 통해서 외부를 바라보는 일, 혹은 외부를 통해서 자신의 내부를 바라보는 일이 이뤄질 수 있는 시간의 산책은 특별했다. 걸음걸이의 속도, 산책의 속도, 여행의 속도, 삶의 속도... 속도에 대해서 생각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서둘러서 놓치고 사는 것보다 느리샇게 여운을 남기고 사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사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에서 뭔가 대단한 결심이 서거나 인생의 큰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곳에서의 조용한 시간이 오랜 잔상으로 남아 마음이 시끄러울 때에 이따금씩 나를 토닥여 준다면, 그거면 족하다.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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