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가 태어난 모천을 떠나 3년만에 꼭 그 곳으로 돌아와 죽는 이야기, 엄숙하고 장엄하고 고귀하고 무겁다. 연어의 일생으로 한편의 큰 오페라를 보는 것 같다. 인간의 하루가 너무 가벼운 느낌이 들어, 그냥 살아 버릴까 하다가도 아니, 소중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야지라는, 두가지 마음이 든다. 그저 태고적부터 주어진 알 수 없는 연어의 회귀를 보면서, 우리도 인생의 코드를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 정해져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따라 살고 있으니, 그 마음이란게 도대체 무엇인지, 하루에도 몇번이나 바뀌는 거 같지만, 들여다 보니 나를 위한 마음이다. 하루를 살아내는 게, 그 누구의 마음을 내 마음에 맞추려는 노력이며, 내 맘을 알아달라는 신호를 부단히 보내고 있는 노고인 거같다. 하루를 살더라도 어떻게 살아야될까...

드디어 번역을 끝내고 에디터 손에 넘겼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제사 조금 알게 된다. 얼마나 내 고집에 잡혀 있는지, 놓치고 싶지 않은 단어와 문장들을 다시 앞뒤에 맞추고 편안하게 둥글게 만드는데 쓸데없이 망설였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정리했다. 오래되고 지금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자꾸 머뭇대는 손이다. 그러나 정리했다. 이제는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 누군가가 좋아하고 필요한 것을 주는 것도 좋지만, 그 누군가가 싫어하는 일을 안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유지라는 말에는 보이지 않는 수고와 노력이 가득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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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물고기 - 연어 이야기
고형렬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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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과거의 구석 아무데서나 찾아온다. 머릿속에 그런 자잘한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고 박혀 있다는 것이 재미있어서 비스듬히 누워 웃었다. (17쪽)

‘나‘가 이곳에 없을 때 ‘이곳‘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나‘가 이곳에 있으니 다른 곳에 ‘나‘가 자리를 비운 것이다. (72쪽)

바다는 겨울을 보내고 봄의 파랑으로 또 스산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사라지고 다른 형상의 그림자들이 찾아오고 지나가면서 교차하느라 시장이며 길이며 물이며, 세상 곳곳이 두런거리며 분주하다. 검푸른 바다 속에서 쇠미역이 너울거리고 이미 진부령, 새령에선 개머루 줄기빛이 다르다. 마풍이 나뭇가지를 붙잡고 놀자고 자꾸 보채는 이른 봄철이 화살처럼 달려간다. (79쪽)

치어들이 모두 바다로 들어간 뒤, 온 세상은 조용하다 못해 평화롭다. 봄빛은 그 평화를 아는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하고 슬프게 한다. 모든 것이 떠나갈 때는 기다리는 것이 없고 남은 자만이 서 있다. 진아도 같이 그 길을 떠나고 싶을 뿐이다. 연어의 치어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3월의 양양과 속초 바다의 바람을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97-98쪽)

쿠릴 열도는 수많은 섬으로 이어져 있는, 징검다리와 같은 경계로서 수심이 낮다. 말하자면 연어들은 이 수심이 낮은 쿠릴 열도를 징검다리 삼아 북양으로 건너간다. 이곳은 플랑크톤이 풍부한 해류들이 만나 천천히 맴도는 거대한 바다다. 식이회유하고 산란회유하는 연어들이 휴식할 수 있는 먹이가 풍부한 곳이기 때문에 이곳을 경유하지 않는 연어는 없다. (143쪽)

그러나 분명한 일은 아시아계 연어들은 연해주, 캄차카, 아무르 강, 북해도, 오호츠크 해 등의 극동 일대를 회유하면서 해류와 수괴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류의 방항과 유속에 따라 그리고 계절에 따라 먹이를 찾아서 그들은 이동해간다. 그 신비한 회유의 길은 인류가 탄생하여 이동하기 훨씬 이전부터 있어왔다. 알류산, 캘리포니아, 알래스카, 쿠릴 해류가 이 지구상에 형성되면서부터 그들은 그 길을 오고갔다. (153쪽)

그들이 돌아가는 곳이 바로 그들이 태어난 곳이다. 배링해에서 아무렇게나 떠돌고 있는 것 같아도 그들을 끝까지 추적해보면 그들은 어느 한 하천이나 강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그들이 태어난 고향이다. (214-215쪽)

거대한 해양, 끝없이 연안으로 이어져 있는 대륙붕이 있고 수많은 해안과 포구들이 있지만, 그 모슨 유혹을 뿌리치고 마침내 어떻게 컬럼비아 강 연어는 컬럼비아 강으로 돌아가고 남대천 연어는 남대천으로 돌아오는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20쪽)

나는 노인의 검버섯이 아름다운 뺨을 바라보며 정신이 번쩍 드는 연어들이 지나가는 하천 물속에 슬쩍 손을 넣어 그들을 만지고 싶었다. 연어의 검은 등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3년간 달려갔다가 달려오는 그들을 위하여, 훌쩍 몸이 큰 그들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었다. (286-287쪽)

아름답다. 연어의 귀도가. 그들의 먼 물길이, 저 작은, 흐르고 파도치는 자궁 같은 동해로 나오고 있는 가을의 오십천과 왕피천과 남대천, 저 북쪽의 모든 하천들이, 그리고 고요한 시간이. 찬란한 해일의 아침이. 어수선한 소음의 물속에서 쏜살같이 민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훤칠한 암수의 연어들이. 그리고 어둠이. 그리고 사람들의 시간이 없는 절대고요의 시간 속에서 아침저녁이 반복되는 것이. 그 시간에 가닿고 싶은 까닭은 그곳에 인간들의 덧있음과 초월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91쪽)

연어에게게는 한 가지 불가해한 일이 있다. 연어는 모천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어떠한 생명도 일체 건드리지 않는다. 즉 연어는 살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하천으로 돌아도면서부터 그들은 일체의 먹이를 입에 대지 않는다. 오직 물만을 삼켜서 아가미 쪽으로 내보낸다. 암수가 똑같이 굶는다. 마치 먹는 일을 잊어버린 것처럼. 연어의 영물다운 면모는 바로 이 점이다. (337쪽)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먼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격식 있는 생사법이 있어서 그들은 연어다운 일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산행의 장례가 사라진 것처럼 연어들도 인공으로 수정되고 몸은 피로 처분될 뿐이다. (4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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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며, 지난해 갔던 곳이 나오며 반가워서 성큼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  그랬지, 아, 이런 부분이 있구나, 아쉽다. 등으로 격한 공감과 아쉬움을 드러내면서 파리를 다시 보았다. 올해는 필히 좀 더 세밀하게 보리라. 문 닫을 시간에 도착해 문밖에서 아쉬워했던 피카소 박물관과 위고 박물관을 필히 가보리라. 마레지구에서는 조르쥬 깡 공원을 봤어야 했어. 생 쉴피스 성당의 분수가 아니라 오르간도... 등등. 목수정이 권해 준 파리를 올해 또 다시 가보려 한다. 새로운 아줌마 다섯명이 느릿느릿 자유여행으로.  알고서 가니 좀더 다르겠지. 그러나 첫번째 두근대는 마음은 꼭 가지고 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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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파리
목수정 지음 / 꿈의지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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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공간에는 그곳만의 기운이랄지, 운명이랄지 하는 것이 있는 것일까. 이제 보쥬 광장은 과거의 기능과 임무로부터 놓여나 평화로운 그림처럼 마레 지구의 한 구석을 지키고 있지만, 종종 이곳에선 세상을 뜨겁게 하는 스펙터클이 벌어지곤 한다. (53쪽)

페르 라세즈, 얼핏 아기자기한 빵집을 연상케 하는 달콤한 이름을 가진 이 공동묘지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나는 도무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서울과 그 어느 한구석도 닮지 않은 도시가 파리지만, 공동표지의 풍경은 다름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었다고나 할까. (85쪽)

각별히 실내장식이나 서비스를 논할 것도 없지만, 중앙의 분수대와 생 쉴피스 교회, 광장을 한눈에 품을 수 있는 카페 테라스에 앉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아무런 불만을 갖지 않는다. 선물상자를 눈앞에 두고 설레는 아이처럼, 생 쉴피스에 가면 흥분된다. 거기서부터 사방으로 펼쳐진 그 어떤 골목으로 발을 디뎌도, 초콜릿 상자 속의 저마다 다른 초콜릿 조각들처럼 감미로운 맛을 풍겨내는 길들이 펼쳐진다. (164쪽)

곰브리치 예술사에 나오지 않는, 우리가 역사의 뒤안길에 뒤쳐진 사람들이라 여겼던 그 잘반의 세계가 만들고 누려온 삶이 장막 뒤에서 나와 장관을 이루며 움틀거리는 기운을 느끼게 하는 곳, 거기가 바로 께브랑리 박물관이다. (211-212쪽)

흐뭇해하는 관광객을 마주칠 때면, 난 다시 한 번 그들의 눈으로 내 일상의 공간을 바라보게 된다. 익숙해져서 더 이상 난 볼 수 없게 된 거기에서 저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그들을 통해 첫 만남의 풋풋한 시선을 회복할 수 있길 기대하며 말이다. 만남이 거듭되면 우린 비로소 맨들거리던 겉포장을 뚫고 속살로 들어간다. 습기가 스미고 손때가 타고 얼룩이 남으면서, 그곳은 더 이상 내가 처음 보았던 그곳의 이미지를 간직할 수가 없다. 낯선 시선을 회복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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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le 홀을, Solo 홀로, 읽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구멍들, 어쩌면 내가 알기도 전에 먼저 있었던 구멍도, 살다보니 생긴 구멍도, 산다는 건 그 구멍들을 메우기 위한 일이 아닐까. 이 구멍을 메우다 보면 또 다른 구멍이 생기고 크기도 깊이도 각각 다르다. 어떤 것은 평생 가지고 가야할 것도 있다. 동일한 일로 구멍이 깊어지고 깊어져 나중에는 그곳에 빠져 죽을 거 같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구멍이 가장 치명적인 거 같다. 요즘 나의 구멍과 관계된 사람들을 많이 생각한다. 그들은 각자의 마음만큼 구멍을 만들었다. 똑같은 일로 똑같은 방법으로, 어쩌면 그리 하나같이 똑같은 지점인지, 가슴이 저려온다. 정성껏 메워준다는 느낌도 있었다. 처음에는 나와 자신의 구멍을 함께 메우는 일을 했을 거다. 어떠다 보니, 상대에게 구멍을 내고 있더이다... 

온 몸의 감각기관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고 마음의 솜털은 듬성듬성하여 내가 알고 있던 내맘이 아닌 거 같다..  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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