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공간에는 그곳만의 기운이랄지, 운명이랄지 하는 것이 있는 것일까. 이제 보쥬 광장은 과거의 기능과 임무로부터 놓여나 평화로운 그림처럼 마레 지구의 한 구석을 지키고 있지만, 종종 이곳에선 세상을 뜨겁게 하는 스펙터클이 벌어지곤 한다. (53쪽)
페르 라세즈, 얼핏 아기자기한 빵집을 연상케 하는 달콤한 이름을 가진 이 공동묘지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나는 도무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서울과 그 어느 한구석도 닮지 않은 도시가 파리지만, 공동표지의 풍경은 다름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었다고나 할까. (85쪽)
각별히 실내장식이나 서비스를 논할 것도 없지만, 중앙의 분수대와 생 쉴피스 교회, 광장을 한눈에 품을 수 있는 카페 테라스에 앉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아무런 불만을 갖지 않는다. 선물상자를 눈앞에 두고 설레는 아이처럼, 생 쉴피스에 가면 흥분된다. 거기서부터 사방으로 펼쳐진 그 어떤 골목으로 발을 디뎌도, 초콜릿 상자 속의 저마다 다른 초콜릿 조각들처럼 감미로운 맛을 풍겨내는 길들이 펼쳐진다. (164쪽)
곰브리치 예술사에 나오지 않는, 우리가 역사의 뒤안길에 뒤쳐진 사람들이라 여겼던 그 잘반의 세계가 만들고 누려온 삶이 장막 뒤에서 나와 장관을 이루며 움틀거리는 기운을 느끼게 하는 곳, 거기가 바로 께브랑리 박물관이다. (211-212쪽)
흐뭇해하는 관광객을 마주칠 때면, 난 다시 한 번 그들의 눈으로 내 일상의 공간을 바라보게 된다. 익숙해져서 더 이상 난 볼 수 없게 된 거기에서 저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그들을 통해 첫 만남의 풋풋한 시선을 회복할 수 있길 기대하며 말이다. 만남이 거듭되면 우린 비로소 맨들거리던 겉포장을 뚫고 속살로 들어간다. 습기가 스미고 손때가 타고 얼룩이 남으면서, 그곳은 더 이상 내가 처음 보았던 그곳의 이미지를 간직할 수가 없다. 낯선 시선을 회복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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