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진한 추석명절을 보냈다. 두편의 영화를 보고 맛집탐방을 했다. 휴유증으로 온몸이 쑤시고 심한 두통, 감기몸살이 왔다. 주말내내 잠을 잤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손놓고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머리 속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달팽이의 삶, 안단테. 안단테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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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안단테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지음, 김병순 옮김 / 돌베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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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우리 삶에 의미와 목적을 불어넣지만 질병은 놀랍게도 그러한 확실성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린다.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순간순간을 참고 이겨내는 것이 다였다. -20쪽

대개 생존은 특정한 목표, 관계, 믿음, 또는 가능성의 언저리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희망 같은 것에 의존한다. 혹은 그것들보다 더욱 덧없는 어떤 것, 어쩌면 뚫고 지나갈 수 없을 것처엄 보이는 단단한 유리창을 통과해서 담요를 따뜻하게 덥히는 햇살,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두터운 담벼락 너머로 커다랗게 들리는 바람소리 같은 것 덕분에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는지도 모른다.-29-30쪽

시간이 많으면 많은 대로, 반대로 시간이 적으면 적은 대로 우리는 시간의 인질이다. 사람에 따라 하루에 몇 분, 혹은 몇 시간을 더 살거나 덜 살 수는 없다. 모두 똑같은 시간을 산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병이 난 뒤로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돌아서 그야말로 시간 속에 파묻혀 있다고 느꼈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은 산처럼 쌓여서 달에 가 닿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무엇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시간은 그냥 하염없이 나를 질질 끌고 갔다. 너무 시간이 없어서 쩔쩔매는 친구들을 보면 내가 쓸 수 없어서 넘쳐나는 시간을 그들에게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아무리 바라는 것을 얻었다 한들 건강이 이 모양이 되었으미 그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나 하는 생각에 착잡해졌다. -56쪽

우리 인간은 다섯 가지 감각이 있고 길을 찾을 때는 주로 시각에 기대지만, 달팽이는 모든 것을 후각, 미각, 촉각, 세가지 감각에만 의존한다. 특히 후각이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달팽이는 완전히 귀머거리였다. 따라서 달팽이가 사는 곳은 침묵의 세계다. -71쪽

내 침대는 황량한 바다와도 같은 방 안에 외롭게 떠 있는 섬이었다. 그러나 나 말고도 전 세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수많은 시골 마을과 도시에는 다치고 병들어 집 안에서만 틀어 박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볼 수는 없지만 하나의 공동체였다. 나는 비록 여기 침대에 누워 있지만 그들 모두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102쪽

생물학자 로만 비쉬니액은 연못의 물 한 방울에 사는 극히 작은 동물들이라도 그들 나름의 개성과 상호관계, 다툼이 있다는 사실에 언제나 경이로움을 느꼈다. 다른 종이나 동물 집단이 어떻게 서로 소통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동물은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어떤 종도 없지 않을까?-119-120쪽

잡아먹히기 쉬울 것 같아 보이는 달팽이의 느린 이동속도가 사실은 달팽이의 생존수단일지도 모른다. 포식자들은 대개 먹잇감이 되는 대상의 빠른 움직임을 포착해서 사냥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또한 달팽이가 소리 없이 기어서 이동하는 것도 소리로 사냥감을 포착하는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135쪽

고립은 사람을 더욱더 깊이 병들게 한다. 그때 유일하게 존재를 규정하는 법칙은 불확실성밖에 없으며 그 속에서 유일한 움직임은 시간의 흐름뿐이다. -151쪽

겨울 몇 달이 지나고 내가 달팽이를 관찰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지난봄, 내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달팽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움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 몸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달팽이를 지켜보는 일이 인내심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얼마만큼 몸이 회복되어야 달팽이의 세계에서 마음이 떠날까.-172쪽

어미 달팽이는 내게 가장 좋은 길동무였다. 녀석은 한 번도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 적이 없었다. 또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기를 바란 적도 없었다. 나는 달팽이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고 잘 견뎌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달팽이가 그저 묵묵히 미끄러지듯 기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고 깨달음이었으며 아름다움이었다. 달팽이의 타고난 느린 걸음걸이와 고독한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헤매던 나를 인간세계를 넘어선 더 큰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달팽이는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그 아주 작은 존재가 내 삶을 지탱해주었다. -180-181쪽

병 때문에 언제나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동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나 자신의 생존이나 내가 속한 종의 생존문제가 아니라 생명 자체가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임을 깨달았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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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은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다. 글의 내용 보다는 사진이 압권이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정자, 고택, 생가, 성당이 말을 걸어 온다. 살아온 흔적이 그대로 보인다. 사람의 얼굴과 같다. 사진만 보고 있어도 된다. 그리고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딸과 같이 도란도란,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부럽다.

창밖엔 비가 온다. 명절의 쓸쓸함이 묻어난다...수험생 아들 덕에 밤늦도록 책읽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또한 서울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입과 눈이 즐거운 주제로 추석을 보낼 거다. 영화 구경과 맛집탐방을 할 생각이다. 즐건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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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 딸과 떠나는 여행시리즈 1
이용재 글.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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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스무 살 때 갈 길을 결정했고, 갈 것이고, 아무도 날 말릴 수 없다.
"딸, 갈 길 결정했니?"
"응, 아빠는 어떤 길 가는 거야?"
"어진 길."
"어진 길 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
"인문학 서적 독서."
"책만 읽으면 되는 거야?"
"문화유적 답사 병행."
"난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길 갈래."
"머라."-9쪽

자네도 잘 알겠지만
어떤 때는 지나치게 과욕을 부린 적도 있었지
하지만 그런 모든 일을 겪는 도중
의심이 생길 땐 전적으로 믿었다가도
딱 잘라 말하기도 서슴지 않았어
모든 것과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난 당당했고, 내 방식대로 해냈던 거야
사랑도 해봤고, 웃기도, 울기도 했었지
가질 만큼 가져도 봤고, 잃을 만큼 잃어도 봤지
이제, 눈물이 가신 뒤에 보니
모두 즐거운 추억일 뿐이야
내가 했던 모든 걸 생각하니
쑥스럽지만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
(중략)
항상 내 방식대로 해결했어
그래, 그건 나만의 방식이었어
나 역시 내가 결정한 방식이 있어서 그대로 따른 거야
때론 그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그 길을 따를까도 생각했었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했어-45쪽

식영정의 건립경위를 적은 [식영정기]를 보자. 석천 왈. 푸른 시내 위 차가운 소나무 아래에 이름 있는 좋은 터를 얻어 작은 정자를 지었는데, 모퉁이마다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는 텅 비었으며 흰 띠로 덮고 대나무 자리로 둘렀으며, 바라보면 그림으로 장식한 배 위에 새가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모양이다. 그대 장자의 말을 들었는가. 옛날에 그림자를 무서워한 사람이 있었다. 낮에 달려가는데 그림자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 역시 쉬지 않고 따라오는 것을 보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 역시 쉬지 않고 따라오다가 나무 그늘에 이르러서야 문득 보이지 않았다. 본래 그림자는 사람을 따라다니므로 사람이 엎드리면 그림자도 엎드리고, 사람이 쳐다보면 그림자도 쳐다보며, 가면 가고 쉬면 쉬는 것이 오직 물체를 따르므로 그늘에서나 밤에는 없어지고 불빛에서나 낮에는 생기게 되니 사람의 처세도 이와 같은 것이다. 옛 말대로 꿈과 그림자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조물주와 더불어 대지 위에 놀며 그림자마저 없도록 하여 사람이 바라보고 손으로 가리킬 수도 없게 함이니 이름을 식영이라 함은 또한 마땅치 않은가.-86쪽

딸을 '인문학적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 시작한 여행이라고 들었다. 이용재가 생각하는 '인문학적 아이'는 어떤 사람인가?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아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재산은 독서임을 아는 아이. 부모에 대한 가장 큰 불효는 자살임을 아는 아이. 돈을 쫓아다니지 않고 덕을 베풀어 돈이 모여들게 하는 아이. 돈을 버는 이유는 좋은 일에 쓰기 위한 것임을 아는 아이. 인문학적 아이는 어떠한 고난과 좌절이 와도 남을 원망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헤쳐 나간다. -141쪽

'이병기 선생 묘.' 1969년 후학들은 전주 다가공원에 시비를 세우고 '시름'을 새겼다.
아아, 슬프단 말 차라리 말을 마라.
물도 아니고 돌도 또한 아닌 몸이
웃음을 잊어버리고 눈물마저 모르겠다.-196쪽

한옥이 과연 현대 건축으로 가능한가?
"현대라는 시대에 맞게 한옥이 지어질 수 있다. 그게 호텔일 수도 있고 레스토랑일 수도 있다. 그렇게 스스로 한옥이 진화할 수 있다고 본다. 한옥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나도 '전통은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머릿속에 주입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직접 한옥 작업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한옥은 스스로 건축으로, 특히 현대 건축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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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가을, 여전히 땀이 밴다... 그러나 아무일도 없었고, 아주 조용했다. 아주 편한 자세로, 음악을 들으며, 과자까지 먹으며 책을 읽었다... 더더구나 전화까지 조용했다... 일년에 한번정도 올까하는 꿈의 직장이었다... 뚜벅뚜벅,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임을 확인하는 중이다... 책은 또 책을 낳고, 더불어 마음은 깊어만 갔다... 죽을 만큼 힘들다는 아주 어린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시절로 되돌아갔다... 삼십대는 절망이었고 오로지 혼자였었는데... 가만 들어주고, 손 잡아주고, 토닥토닥, 따뜻한 눈빛을 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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