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그은 글을 올리자 마자 갑자기 몰려 온 일감들로 이제야 페이퍼쓰기를 한다. '베개를 베다'의 소설은 지금 내가 한 일 처럼,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평소같은 일들이 소소하게 잔잔히 들어 있다. 누구에게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흔하디 흔한 일들이, 잠깐의 한눈이 엇갈린 길을 만난 듯이, 그냥 평소대로 흘러간다. 그 안에서 아픔도, 슬픔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들어있다. 이 자잘한 일상들이 나에게 주어질 때, 할 일을 하면 된다. --할 일이라는 게 없는 사람도 있고, 그게 다른 일 때문에 방해받을 수도 있고, 과거의 후회와 미련이나 미래의 걱정과 불안이 지금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꾸만 뒤돌아보고 미루고 후회하고 걱정하는 일상들은 다시 과거로 묻히고 또 다시 오늘의 삶을 살고 있는. 그러면서, 이때껏 옆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아무리 지나 다녔어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이제사 발견하기도 하고, 매일이 똑같아 보이지만 어느날 조금 다른 시간들로 다시 보이게 되고 느끼게 되고 의미가 된다. 어쩜 이리 우리 삶을 제대로 보여주는지, 쫀쫀하게 재밌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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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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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가을이 지나고 또 겨울이 지나고, 그러면서 언니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미움에 대해서. 시멘트가 굳는 걸 상상하면서, 화장실이 만들어지고 부엌이 만들어지는 걸 상상하면서, 언니는 미워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70-71쪽)

이혼을 하고 나자 그는 아내의 많은 것들이 생각났다. 아내는 쫄면을 좋아했고 그는 콩국수를 좋아했다. "쫄면 좋아하는 여자와 콩국수 좋아하는 남자. 무슨 영화 제목 같지?" 아내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는 아내의 중학교 단짝 친구들과 고등학교 단짝 친구들도 알았다. 아내가 중학교 친구들을 만날 때는 늘 수수하게 입고 나간다는 것도. 그중 한 친구와는 스무 살 때 의절했다가 스물여섯 살에 화해했다는 것도. 중학교 때 친구와 가출을 했는데 강릉터미널에서 선생님에게 붙잡혀 돌아왔다는 것도. 아내와 이혼을 하고 난 뒤에야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세상에. 자기는 아직 아내에게 행복마트 평상에서 낮잠을 자던 어느 여름방학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그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152쪽)

태어나서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가 와도 타지 않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좀, 춥고, 싶었다. 울고 싶다. 보고 싶다. 자고 싶다. 가고 싶다. 떠나고 싶다...... 나는 싶다로 끝나는 말들을 떠올려보았다. 에취, 재채기가 났다. 일곱번째로 버스가 왔고 나는 타고 싶다, 타고 싶다,라고 중얼거리며 버스를 탔다. (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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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한 순간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한 적이 몇번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더라도, 혼자서 무엇을 할 때에도, 지금 여기의 나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마음은 언제나 달아나 다른 일과 사람으로 가득차 있고, 건성으로 대강으로 마주하고 있은 적이 많았다. 요즘 혼자가 할 수 일들이 이름까지 붙여 넘쳐나고 있다. 혼밥, 혼술... 혼자 가는 미술관에서 옛기억을 마주하여 지금을 조망하는 그녀의 글에서는 앞으로 나이 들어가는 우리네 일상들을 대하는 자세로 딱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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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미술관 - 기억이 머무는 열두 개의 집
박현정 지음 / 한권의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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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만큼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도 없다." -배영환 (33쪽)

"우리가 역사와 신화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우리와 상관없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데 비극이 있다. 망각은 인간에게 치유와 동시에 불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서용선 (90쪽)

"나는 정말이지 어깨동무하는 것처럼 신체가 길게 늘어나서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 그러나 삶 속에선 같은 여성들끼리도 잘 닿아지지 않는다." -윤석남 (104쪽)

"우정이란 두 사람이 서로를 괴롭혀서 서로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가는 것" -프란시스 베이컨 (166쪽)

"시간이 예전보다 빨리 흘러간다고 느끼는 것은 사건이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즉 경험이 되지 못한 채 빠르게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버리기 때문" - 한병철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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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과 단어를 마주할 때, 세상을 향하여 나 자신을 향해 연결지어서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관찰하기'가 떠올랐다. 상상의 날개로 나에게 '접목'시켜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과정과 현실의 틈새로 '스며드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혹당하는 게 우선이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매혹당해야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간의 많은 읽기가 그 자리에 머물러 고개만 끄덕이며 그렇구나만 반복했다는 반성도 뒤따른다. 나는 왜와 연결하여 가장 작은 단위의 질문까지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혼자가 되어 있을 거다. 그러면 지금의 상황과 연결된 대상의 본질('언제든 외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두 사물 혹은 두 대상 사이의 경험적 차이는 아니다. 본질이란 주체의 중심에 있는 어떤 최종적인 성질의 현존으로서, 주체 속에 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프루스트는 말했다.(309쪽)')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본질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또 다른 생각과 사건이 된다. 책을 덮는 순간 고통을 덮으려는 시도나 너와 나의 일로 이분되는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게 하는 소비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세히 바라보고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 태도, 지속적으로 작금의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괴로워야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시월은 '우리도 사랑일까' 영화를 보면서 시작했다. 알랭드보통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가 겹쳤다.  순전히 제목 때문이지만, 원제는 'take this waltz', 'the romantic movement'.

설레임이 익숙함으로 새것이 오래된 것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어떤 지점과 어디까지가 사랑일까라고 묻고 있는... old 한 것은 이전에 new 였음을 기억한다면, 사랑일까라는 질문은 우문에 불과하다. 떨림만 사랑이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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