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우의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와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번갈아 가며 읽고 있다. 목차를 보면 나에게서 시작하여 너와 우리로 나아간다. 책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나를 비추어 볼 수 있고, 나를 찾을 수 있고, 부족을 채울 수 있고, 더불어 함께 나눌 수 있다. 이권우의 글은 막힘없이 그냥 읽힌다. 강신주의 글은 조금 무겁고 마디가 있다. 속도에서 세배의 차이가 난다. 각각 재미있다. 바쁨 속에서 보물캐듯이 짬짬히 읽었다. 한가지 일이 되기 위해 몇명을 거쳐야 하는 일이 요즘 나의 일이다. 마음이 울컥, 부르르 화가 치밀때, 슬몃 언짢아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p13)' 를 붙여봐라. 그러면 괜찮은 이유들이 고구마 줄기 딸려나오듯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해피할거다. 그래서 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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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이권우 지음 / 해토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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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을 오락가락 읽으며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나 되돌아 보았다. 얼마 생각할 필요도 없디 얼굴부터 화끈거렸다. 그것이 옳다고 여기면 타당한 비판도 들으려 하지 않은 어리석은 날들도 있었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려 하지 않은 한심한 날들도 있었다. 좌이든 우이든, 흑이든 백이든 반드시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 나날도 있었다. 생각과 방법을 달리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열린 마음보다 싸우고 이겨야 한다고 여긴 적도 많았다. 늘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우를 범하며 살아온 것이다. 때늦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으니, 앞으로는 반성과 회의, 조화와 균형을 화두로 삼아 용맹정진하려 한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이래서 생긴 모양이다. -18쪽

책 읽기의 가치는 남을 이해하는 데 있다. 어차피 책을 쓴 사람은 남이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귀를 기울이며 나의 세계를 넓혀 나간다. 나는 다시 읽으며 이번에는 작품을 쓴 작가가 아니라, 그 책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을 이해하기로 한 것이다. -89쪽

가난은 원조나 시혜로 해결되지 않는다. 원조는 경제종속을 부른다. 개인적으로 베푸는 자는 도덕적 우월성에 빠지고 받는 자는 도덕적 안일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한 상품에 담긴 익명성의 장막을 걷어 내고, 그 속에 담긴 일하는 이들의 땀을 본다면, 가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보인다. 일찍이 맹자도 말했다. 남의 어려움을 보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어짊의 실마리라고 말이다. -112쪽

조한혜정의 글에는 386세대에 대한 적확한 비판이 담겨 있다. 이 세대가 한마디로 성찰성과 심미적 성향이 약하다는 것이다. 이 세대를 길러낸 것이 군사독재였으니, 태생적으로 그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한국 사회를 바꾸어 낼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지금의 386세대들이 가장 고심해야 할 과제는 바로 상대주의적 사고력과 심미적 감수성을 길러 가는 일이 아닐까"라는 말은 이 세대가 가슴에 새겨 둘 만한 말이다.
......

"강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수동적이지 않은 성찰적 주체가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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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지금의 일본상황에서 바로 쓴 글같다. 글의 줄거리보다는 글자를 하나하나 눈으로 읽어나갔고, 간간히 느낌만 남아있다. 지진으로 시작하는 내용이라 읽게 되었다. 6개의 이야기는 제각각이지만 지진이라는 상징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와 무척 가까운 사람이 나와 전혀 관계없는 일로, 또는 자연현상으로, 나의 잘못이 아닌 일로,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일로 관계를 끊고자 한다면, 끊어진다면, 끊어졌다면...그러나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나고 꿈을 꾸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힘이 되고자 한다. 다음과 같이... '도시를 폐허의 산더미로 바꾸어버리는 지진의 둥지가 있다. 그것들 역시 지구의 율동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물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p110)'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설을 쓰자, 하고 준페이는 생각한다. 날이 새어 주위가 밝아지고, 그 빛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꼭 껴안고, 누군가가 꿈꾸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소설을. 하지만 지금은 우선 여기에 있으면서 두 여자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가 누구든, 영문 모를 상자 속에 넣어지게 해선 안 된다. 설사 하늘이 무너져내린다고 해도, 대지가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고 해도(p235-236)'     

오랫만에 피아노를 쳤다. 아주 오랫만이라 어둔하다. 네개의 음표가 보이지 않고 두개만 보인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영어를 공부하고, 심리학, 특수교육, 상담을 공부했다. 요즘은 책만 읽는다. GBY자녀양육교실에 갔다.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 적어도 위안이라도 받고 싶다. 그런데 조별활동을 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잘난체 하는 이가 있다. 그냥 듣기만 해도 되는데... 마치고는 파주프리미엄아울렛으로 달렸다. 도로가 주차장이다... 지나쳐서 임진각까지 봄바람에 실려 갔다. 따사로운 햇살과 얕은 갯벌을 갖고 있는 서해안을 따라 그냥 오가는 길이 좋았다. 그야말로 자유로다. 장단콩으로 만든 초콜렛을 먹으면서 조금 걸었다. 이곳까지 사람들이 많다. 놀이동산까지 있다. 뭔가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무관하리라고 생각한 관계없는 일들이 관계있는 일들로 되어있다. 임진각, 서울, 일본, 파주프리미엄아울렛, 전혀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다.         

 ps) 지진이 일어난 지 닷새 후에 고무라의 아내가 집을 나가면서 남긴 편지가 내내 마음에 머물었다. "문제는 당신이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거에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내부에는 나에게 주어야 할 게 아무것도 없단 말이에요. 당신은 다정하고 친절하고 멋있지만, 당신과의 생활은 마치 공기 덩어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은 물론 당신 한 사람의 책임만은 아니에요...(p17)"  아내의 행동을 그저 관찰만 하고 자신의 불편함이 있지만 그저 가만히 있어 주는 것만으로 상대를 위했다고 생각하는...관계있는 것은 그사람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그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때문에 그렇게 가만히 있을까를 최소한 고민정도는 해보야 되지 않을까. 지루하고 지리하지만 관계의 끈을 붙잡고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그녀, 그를 보는 것이 필요하리라. 무늬만의 관계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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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최초의 연작소설,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 / 2010년 10월
구판절판


닷새 동안 그녀는 온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은행과 병원 빌딩이 무너져내리고, 상점가가 불길에 휩싸이고, 철도와 고속도로가 끊어져내린 풍경을 그냥 잠자코 노려보고 있었따.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고무라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머리를 흔들거나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따. 자신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리는지 아닌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아내는 야마가타 지방 출신으로 고무라가 아는 한, 고베 근교에는 친척이나 친지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침부터 밤중까지 텔레비전 앞은 떠날 줄 몰랐다. 적어도 그가 보고 있는 앞에서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도 않았다. 화장실조차 가지 않았다. 이따끔 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텔레비전 채널을 바꾸는 것 외에는 몸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13-14쪽

신문은 여전히 지진에 대한 기사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그는 좌석에 앉아 조간신문을 구석구석까지 읽었다. 사망자 수는 지금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물과 전기가 많은 지역에서 끊어진 채였고 사람들은 살 집을 잃었다. 비참한 사실이 차례차례 밝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무라의 눈에는 그러한 상세한 모습이 이상하게도 단조롭게 느껴져 깊이가 없는 것으로 비쳐졌다. 모근 울림은 멀고 단조로웠다. 약간만이라도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자꾸만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아내뿐이었다. -22쪽

우리의 마음은 돌이 아닙니다. 돌은 언젠가 무너져내릴지 모릅니다. 모습과 형태를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형태가 없는 것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디까지고 서로 전할 수 있는 겁니다. -112쪽

"지진이라는 건 참 이상한 거예요. 우리는 밟고 있는 땅이 아주 단단하고 움직이지 않는 거라고 전적으로 믿고 있지요. '땅에 발을 붙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견고해야 할 땅이나 바위가 마치 액체처럼 흐물흐물해져버리잖아요?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요. 액상화液狀化라고 했던가요? -127쪽

준페이는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돌아와 그대로 일상생활로 되돌아갔다. 텔레비전도 켜지 않았고, 신문도 제대로 펴보지 않았다. 지진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면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아득한 옛날에 땅속에 묻어버린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메아리였다. 대학을 졸업한 이래로 그는 그 도시에 발을 들여놓은 일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비쳐진 황폐한 풍경은 그의 마음속 깊이 감추어져 있던 상처의 흔적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그 거대하고 치명적인 재해는 그의 생활 양상을 조용히, 그러나 뿌리부터 변화시켜버린 듯했다. 준페이는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깊은 고독을 느꼈다. 뿌리라고 할 만한 게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어디에도 마음을 붙일 곳이 없었다.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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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만드는 일로 분주하고 머리가 무겁고 마음은 까실대며 까끄럽다.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밀려오다, 그까이껏하는 마음까지 오간다.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사람들 사이를 오늘도 많이 오갔다. 글자 하나까지 서로의 의견이 다르니... 어찌되었든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협조공문을 보내고.. You might as well enjoy the pain that you can't avoid.. 중얼거리며 출장을 나왔다. 재미가 있어 술술 넘어가는 '살인의 해석'에서 햄릿의 대화(to be or not to be - 보통 '죽느냐 사느냐'로 번역함)와 오디푸스 콤플렉를 다시 해석해 보게 되었고, 밤 늦게 책읽는 나를 꿈속에서도 보게 되었다.(책읽다가 졸고 있는 내모습을 깜짝 깨어서 알게 된 것) 내가 지금 하는 일과 내 모습, 관련된 사람들을 다시 해석해 보는 것, 모든 행동에는 동기가 있지요. 오디푸스콤플렉스든, 미해결과제든.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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