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는 모르는 소리 마라. 사람 사는 일 중에 함께 밥 먹고 잠자고 하는 일처럼 중요헌 게 또 있간? 니가 그걸 모르니까 여태 시집도 못 가고 그러고 있는 거여.-43쪽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브레히트라는 시인의 [나의 어머니]라는 시입니다.-97-98쪽
그런 날이 있다. 모든 것이 비 탓이라고 느껴지는 날, 혹은 눈 탓이라고. 다시 말하면 그저 무슨 탓을 하고 싶은 날. 그런 날은 웬만하면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했다. 평소에 잘 지내던 사람인데도 그가 하는 말이 이상하게 다 거슬려서 괜히 시비 걸고 싶어지니까.-163쪽
그래, 그런 것 같아.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듯이 모든 일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어. 작별도 끝이 아니고 결혼도 끝이 아니고 죽음도 끝이 아닌거지. 생은 계속되는 거지. -189쪽
소통의 매개체는 '언어'다. 언어가 서로 다르면 말 뿐만 아니라 그안에 여러가지가 아주 많이 다르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므로서 소통의 부재를 겪게 된다. 동일한 단어를 사용해도 청자와 화자의 내용이 다를 수 있다. 소통이 된다는 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기본 하에, 소리로 나왔을 때 함께 웃을 정도는 되어야 소통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 영어연수 받을 때가 생각났다. 외국인은 모두 웃고 있는데, 우리 몇몇은 멀뚱거린 기억이 났다. 만약 그속에 나혼자만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학교에 오기 싫다는 아이들 또한 소통의 부재 때문이리라. 무슨 말인지 모르는 소리를 몇시간씩 듣고 있자니 얼마나 힘들까... 차이를 알게 되면 사이를 좁힐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차이를 알기까지가 힘든 세상인데, 소통하려고 몇번씩 언어의 손길을 내밀었다. 나의 바램과는 차이가 크다. 그래서 사이가 멀다. 아주.
생물이 생존하는 것은 단순히 육체라는 한 개체로서생명을 이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전까지 축적한 다양한 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지만, 고등하다는 것은 그만큼 축적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고 그래서 수명도 긴 것이다. -46쪽
통역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교신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통역은 언어가 장사 도구인 셈이다. 앞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이란 사물 그 자체는 아니다.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이기 때문에, 가령 내가 사과를 한 알 건넨다면 사과 자체를 상대에게 직접 건넬 수 있지만, 이것을 말로 건네게 되면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은 건네받는 상대의 문제가 된다. 이것은 통역뿐 아니라 말을 전달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겪는 일이다. 말을 할 때 그것이 상대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항상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67쪽
사람의 입에서 말이 나오는 과정은 모호함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개념이 표현된 것을 문자나 소리로 인식했을 때 그 내용을 듣거나 읽어 해독한다. 그러고 나서 '아, 이것을 말하고 싶었구나'하고 그 모호한 대상의 정체를 인식한다. 모호한 대상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자 그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통역을 할 때는 이 모호함을 다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즉 말이 생겨난 과정을 다시 한 번 거쳐야만 한다. 말이 생겨나고 그것을 듣거나 읽고 해독해 무엇으 말하고 싶은가 하는 개념을 얻어서 그 개념을 다시 한 번 말로 한다. 코드화해서 소리나 문자로 표현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살아 있는 말이 될 수 없다. 결과만, 즉 말만 옮기는 것이 빠를 것 같지만 사실은 앞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빠르다. 왜냐하면 말이란 그 부품인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120쪽
앞서 말했지만 '국제화'라고 할 때 일본인이 말하는 국제화는 국제적인 기준에 자신들이 맞춘다는 의미다. 지구촌, 국제사회에 맞춰간다는 의미. 미국인이 말하는 그로벌지제이션은 자신들의 기준을 세계에 보편화한다는 의미다. 자신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들은 정당하고 정의롭다. 자신들이 법이다. 이것을 세계 각국에 강요하는 것이 글로벌리제이션이다. 똑같이 국제화하고 하지만 자신을 세계의 기준으로 하려는 '글로벌리제이션'과 세계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국제화'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도랑이 있는 것이다. 정반대의 의미다. -133쪽
어수선한 상담실, 동료의 무능력하고 미루는 태도, 믿었던 수호신의 입장... 다운, 다운되면서 점점 화가 났다... 그 순간에는 어쩔 수 없었기에 나에게 손내밀었고, 그렇게 대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이해했다... 머리와 가슴은 멀기도 하다...
"따뜻한 사람의 품이 그립다. 애쓴다고 토닥여주고 안아주면 좋겠다. 그런 보살핌을 받고 싶다. 그런 손길이 그립다. 어디에 기대어서 한참 울고 싶다. 달래줄 때까지.(p200)"
완상품 가운데도 서화는 바라볼 수만 있지 만져볼 수는 없다. 하지만 연적은 다르다. 사람의 촉각이란 다름 감각과 달라서 정보의 양은 적으나 지속력은 가장 크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좋으면 만져보고 싶고 쓰다듬고 싶어진다. 만지면 그 기억이 영원토록 오래 가므로. 박물관이나 전시장에서는 귀한 유물들을 만지지 못하게 진열장 안에 넣는다. 이는 모두 그 물건을 손끝으로 느껴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리라. -49쪽
아참, 세상이 그랬었지. 떠난 사람은 산 사람의 가슴에만 남아 있을 뿐. 산 사람은 다시 누군가와 피와 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거지. 눈물은 아래로 흘러도 밥숟가락은 위로 다시 올려야 살아남게 되는 거지. 그처럼 떠난 자를 애통해 하던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위로가 되고, 그 빈자리는 다른 사람에 의해 메워진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 같던 슬픔도 아쉬움도 시간을 넘어설 수는 없다. 오로지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만 영원할 뿐이다. 변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 있음을 통째로 느끼며 사는 것.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사실'만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진실이 아닐까. -70쪽
몸이 편안한 순간이 곧 마음도 편안한 순간이다. 그동안 편안한 몸을 하고도 왜 그리 마음이 불편한 순간이 많았던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몸을 앞세우면 될 것을 왜 그리 마음이 앞서나가 몸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던지. 왜 그리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누고 살았던지. 몸은 참 단순하다. 제때 밥 먹고 충분히 쉬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다른 많은 욕심은 마음에서 나온다. 몸이 앞엣 제대로 잘살면 마음도 뒤에서 그럭저럭 따라간다. 그런데 마음이 몸을 젖히고 앞으로 나서는 순간 몸도 마음도 제자리를 잃고 힘들어한다. -174-175쪽
감당이란 말이 참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참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같을지 몰라도 시작부터 다르다. 참는 것은 싫어하는 마음으로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만, 감당하는 것은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 것. 언젠가 이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이 현실을 인정하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고통과 내가 하나라는 걸 알고 나에게서 이 고통을 떼어놓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고통과 함께 하는 것. 고통도 나의 일부임을 알고 고통을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85-186쪽
고통의 시간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나만의 것은 아니고, 어쩌면 고통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은 울음을 과장한 것일 수도 있다. 고통을 견디는 것은 내 몫이다. 참 외롭고 눈물 났지만 말이다. 다 울었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다란 없다. 아직도 외롭고 쓸쓸하다. 혼자 견뎌야 하는 일이라 그렇다. 따뜻한 사람의 품이 그립다. 애쓴다고 토닥여주고 안아주면 좋겠다. 그런 보살핌을 받고 싶다. 그런 손길이 그립다. 어디에 기대어서 한참 한참 울고 싶다. 달래줄 때까지.-200쪽
거리를 두고 받아들이기.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다면 이제는 조금 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와 아버지를 비교하지 말고, 엄마에게 힘든 것 강요하지 말고, 내 속에 엄마에 대해서 무시하고 싫었던 것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엄마와 외할머니, 그리고 이모들, 외갓집 식구들에게서 느끼던 싫었던 점들. 그것이 나의 그림자였음을, 내 속에도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2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