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향기가 나를 깨우다 처음 여는 미술관 3
진수옥 글.사진 / 인문산책 / 2012년 8월
품절


완상품 가운데도 서화는 바라볼 수만 있지 만져볼 수는 없다. 하지만 연적은 다르다. 사람의 촉각이란 다름 감각과 달라서 정보의 양은 적으나 지속력은 가장 크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좋으면 만져보고 싶고 쓰다듬고 싶어진다. 만지면 그 기억이 영원토록 오래 가므로. 박물관이나 전시장에서는 귀한 유물들을 만지지 못하게 진열장 안에 넣는다. 이는 모두 그 물건을 손끝으로 느껴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리라. -49쪽

아참, 세상이 그랬었지. 떠난 사람은 산 사람의 가슴에만 남아 있을 뿐. 산 사람은 다시 누군가와 피와 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거지. 눈물은 아래로 흘러도 밥숟가락은 위로 다시 올려야 살아남게 되는 거지. 그처럼 떠난 자를 애통해 하던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위로가 되고, 그 빈자리는 다른 사람에 의해 메워진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 같던 슬픔도 아쉬움도 시간을 넘어설 수는 없다. 오로지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만 영원할 뿐이다. 변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 있음을 통째로 느끼며 사는 것.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사실'만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진실이 아닐까. -70쪽

몸이 편안한 순간이 곧 마음도 편안한 순간이다. 그동안 편안한 몸을 하고도 왜 그리 마음이 불편한 순간이 많았던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몸을 앞세우면 될 것을 왜 그리 마음이 앞서나가 몸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던지. 왜 그리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누고 살았던지. 몸은 참 단순하다. 제때 밥 먹고 충분히 쉬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다른 많은 욕심은 마음에서 나온다. 몸이 앞엣 제대로 잘살면 마음도 뒤에서 그럭저럭 따라간다. 그런데 마음이 몸을 젖히고 앞으로 나서는 순간 몸도 마음도 제자리를 잃고 힘들어한다. -174-175쪽

감당이란 말이 참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참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같을지 몰라도 시작부터 다르다. 참는 것은 싫어하는 마음으로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만, 감당하는 것은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 것. 언젠가 이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이 현실을 인정하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고통과 내가 하나라는 걸 알고 나에게서 이 고통을 떼어놓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고통과 함께 하는 것. 고통도 나의 일부임을 알고 고통을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85-186쪽

고통의 시간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나만의 것은 아니고, 어쩌면 고통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은 울음을 과장한 것일 수도 있다. 고통을 견디는 것은 내 몫이다. 참 외롭고 눈물 났지만 말이다. 다 울었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다란 없다. 아직도 외롭고 쓸쓸하다. 혼자 견뎌야 하는 일이라 그렇다. 따뜻한 사람의 품이 그립다. 애쓴다고 토닥여주고 안아주면 좋겠다. 그런 보살핌을 받고 싶다. 그런 손길이 그립다. 어디에 기대어서 한참 한참 울고 싶다. 달래줄 때까지.-200쪽

거리를 두고 받아들이기.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다면 이제는 조금 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와 아버지를 비교하지 말고, 엄마에게 힘든 것 강요하지 말고, 내 속에 엄마에 대해서 무시하고 싫었던 것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엄마와 외할머니, 그리고 이모들, 외갓집 식구들에게서 느끼던 싫었던 점들. 그것이 나의 그림자였음을, 내 속에도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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