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힘든 상태가 계속되고, 입안팎이 훨어 있고, 오가기 싫은 일터에서, 마주한 본문,

 

어린 물고기 두 마리에게 나이 든 물고기 한 마리가 인사로 건넨 말,  "잘 있었지, 얘들아? 물이 괜찮아?" 어린 물고기가 서로에게 말하길, "도대체 물이란 게 뭐야?"

 

내가 몸 담고 있는 곳과 하고 있는 모든 행동, "물은 뭐지?"

"자각 있게, 어른스럽게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이것은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든 일입니다(143쪽)."

무의식적으로 디폴트세팅된 나의 모습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힘든 일이다. 그래서 힘이 드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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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물이다 - 어느 뜻깊은 행사에서 전한 깨어 있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생각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 / 나무생각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극히 당연하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중요한 현실이 사실은 가장 보기 힘들고 논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14쪽)

성인이 되어 날마다 겪어야 하는 인생의 최전선에서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이야말로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15쪽)

우리가 의미를 구축하는 것이 실제로 개인적이고 의도적인 선택이며 의식적인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 (34쪽)

나 자신도 모르게 확신하기 쉬운 것들이 사실은 대부분 완전히 잘못 알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었다는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39쪽)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은 어떤 방법으로든 전해지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반면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직접 일어나는 일이며, 절박하고, 실존하는 현실입니다. (47쪽)

우리의 디폴트세팅을 조절하는 작업에 있어 실제로 지식(knowledge)과 지성(intellect)이 과연 얼마나 많이 관련되느냐. (52쪽)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59쪽)

여러분이 받는 인문학 교육의 진가......성인으로서의 삶을 그저 편안하고 순조롭게, 그럴싸한 모습으로 죽은 사람같이 살지 않는 방법, 무의식적인 일상의 계속이 아닌 삶을 사는 방법, 또한 자기 머리의 노예, 허구한 날 독불장군처럼 유일무이하며 완벽하게 홀로 고고히 존재하는 태생적 디폴트세팅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66쪽)

나는 무엇에 주의를 기울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84쪽)

그러다 보니 이 세상 다른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저 내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일 뿐이며, 내 길을 가로막고 있는 이 빌어먹을 인간들은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85쪽)

여러분이 생각하는 법, 주의를 기울여 사물을 관찰하는 법을 진실로 배웠다면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터입니다. (100쪽)

혼잡한 데다가 후덥지근하고 서비스는 느려터진 소비자의 지옥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은 사태를 변화시켜 의미심장할 뿐만 아니라 성스럽기까지한, 별을 빛나게 하는 기운만큼이나 찬란한 체험으로 만드느냐 못 하느냐가 여러분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 즉 연민, 사랑 온갖 만물의 내면에 존재하는 융합을 체험하고자 하는 선택입니다. (101쪽)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육의 자유, 정서적 안정을 성취하는 배움의 자유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즉, 무엇이 의미 있는 일이고 무엇이 무의미한 일인가를 여러분 자신이 자각적으로 결정하는 자유 말입니다. (103쪽)

진실로 중요한 자유는 집중하고 자각하고 있는 상태, 자제심과 노력, 그리고 타인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능력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사소하고 하찮은 대단치 않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128-129쪽)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무의식 상태, 디폴트세팅, 그리고 극심한 ‘생존경쟁‘밖에 없습니다 - 전에는 자기 것이었던 무한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끊이지 않는 고통밖에 남지 않는 것이지요. (130-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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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무겁다고 느껴지고 막상 펼치기 힘든 성서를 경쾌한 목소리로 교양서처럼 소개하고 있지만, 현대인으로 살고 있다면 이 정도는 읽어줘야 하지 않나하는 묵직한 권유가 느껴지는, 성서 입문서이다. 어쩜 이렇게 재미있게 썼는지, 막힘없이 한번에 꿰뚫어 준다. 독자의 크기만큼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독자의 크기를 논하지는 않는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의심과 의문을 흔쾌히 받아주고 위로까지 주고 있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앞으로도 새로운 해석을 더하며 가장 오랫동안 읽히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서에 대한 나의 마음의 무게는 엄청났는지, 후련한 느낌이다. 번역을 아주 잘했다. 이 분만이 할 수 있는 번역같았다... 봄 바다를 보러 동해로 가려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와 함께한 스파이더맨(자동차 애칭)은 폐차장으로 보냈다... 사물에 대한 애정도 오래갈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몇 번을 돌아보고 바이바이했지만, 마음으로는 수없이 더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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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교양 - 3천년 인문학의 보고, 성서를 읽는다
크리스틴 스웬슨 지음, 김동혁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사람들이 믿는 바(또는 안 믿는 바)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전달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하여 성서를 더 잘 이해하고 성서를 교양 있게 대하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또 성서에서 온 표현이다 개념을 더 잘 인식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돕고, 왜 사람들이 성서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쉽게 흥분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12쪽)

오늘날의 성서를 이루는 내용 중 대부분은 책이란 것이 존재하기 이전, 즉 사람들 대다수가 글을 읽을 줄 알기 이전부터 발전하여 온 것이다. 이러한 성서 이전의 본문들은 대개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문서들이었는데, 많은 경우는 옛 구두 전승을 반영한 것들이었다. 이런 성서 이전의 본문들이 당시 글을 읽고 쓸 줄 알던 소수 엘리트들의 손을 거쳐 다시 쓰이고 편집.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21쪽)

대부분의 학자들은 신약에서 가장 먼저 쓰인 책이 바울이 기원후 50년경에 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중 하나(데살로니가전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은 20년 뒤인 기원후 70년경에 쓰였는데, 이것은 예수 사후 한 세대(40년)를 채운 뒤의 일이었다. (51쪽)

안타깝게도 성서가 말해 주는 역사에 의문을 품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의문을 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믿는 신자들이 많다. (72-73쪽)

먼저 말해야 할 것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사용했던 히브리 성서는 ‘히브리어‘도 아니었고 ‘성서‘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직 고정되지 않은, 경전의 지위를 얻지 못한, 히브리어 두루마리들의 그리스어 번역을 그들의 성서로 사용하였다. 또 하나는 예수를 처음 따르는 이들이 예수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 모두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그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에 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102쪽)

예수의 특별한 본성에 대한 믿음, 즉 예수가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하게 만든 분이라는 그 믿음이 신약의 저자들로 하여금 붓을 들게 했다. 그들은 예수의 일대기(복음서들)을 쓰고, 교회의 역사(사도행전)를 쓰고, 구너고, 교훈, 격려의 편지(그 외의 책들)를 썼다. (267쪽)

사실 바울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관해 말하는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예수의 특별한 본성, 즉 신인 동시에 인간인 근원적 독특성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밝히는 데에 힘을 집중하였다.....그가 전한 것은 부활한 메시야, 예수에 대한 믿음이었다. 예수의 특정한 행위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 말이다. (277-278쪽)

성서는 가부장적 문화와 사고방식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렇기 대문에 성서 본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영향 아래 있던 저자들이 전제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들로 하여금 붓을 들게 한 동기가 무넛인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318쪽)

마지막으로 말할 것이 있다. 예수가 당대의 가부장적 전제들 중 몇몇에 도전한 것은 사실이다. 또 초기 기독교 교회가 예수의 그러한 점을 계승해 여성 지도자 몇을 세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 세계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여성들의 실제 삶과 형이상적 신학 모두에는 여전한 억압과 제한이 있었다는 점을 또한 기억해야 한다. 신앙을 가진 이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성성의 표현과 이미지에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것을 최종적으로 그려 내는 것은 결국 독자의 해석이다. (446쪽)

믿는 이들이 수천 년 동안 성서를 공부해 왔지만 그럼에도 성서의 지위는 여전하다는 사실에 위로받기 바란다.....실제 성서 본문을 해석하고 사용할 때는, 사람들의 개인 경험, 가족력, 문화적 배경, 신앙의 전통이 지식을 다루는 방법을 형성한다. 성서의 항구성이 증언해 주듯, 성서는 끝없이 변화하는 우리 환경 속에서 새로운 반복과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독자와 내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랜 후에도 사람들은 성서를 생각할 때 도움이 되는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해석을 계속 할 것이라는 점이다. (4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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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이 책읽기의 즐거움만 한 것을 글쓰기에서 한번도 느낀 적이 없다는 고백에 의거하여, 그가 분명 읽은 책에서 추려 낸 서문들을 따라 가 본다. 나 또한 책을 구입할 때 서문과 목차가 중요한 한 몫을 차지하기에, 따로 모아 논 서문을 읽으면서 글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었다. 저자들이 책을 출판하기 위해 읍소하는 내용도 있지만 자신이 쓴 글이 독자들에게 오독과 오해를 방지하고,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몸과 맘을 다하여 노력한 흔적들이 묻어 나온다. 본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았을까, 그 애씀이 마음을 두드리는 울부짖음같다.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느새 4월로 성큼 들어왔고, 한달넘게 이어져온 갈등은 막을 내렸다. 새로운 일터에 처음 온 사람이 이견을 제시한 것 자체가 생소하고 항명 그 자체이고, 그러면 안되는 일을 맞 받아치고, 주어진 대로 해야 하는데 감히 어기려고 하는 내가 그들에게도 무척 낯선 경험이지 않았을까... 이또한 힘의 싸움일까... 승리를 맛보지만 씁쓸하다. 갈등자체를 힘들어 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윽박과 강요가 난무하다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더 이상 잃을거도 없고 아닌 것을 아니라 하는데 뭘 더 말하리요, 싶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나 또한 서문을 열었으니, 그들에게 비친 나의 모습은 이러하고, 이렇게 일을 하리라는 큰 도장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첫 인상, 첫 단추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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