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우리에게 다가올 때 남겨질 사람의 삶에서 이런 사소한 많은 것들을 앗아간다. 사소한 것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가장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관련이 있는 사소한 것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35쪽
타인과 감정을 나누는 것을 꺼린다고 해서 정직해질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니 말이다. 정직함이 사적인 감정을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직은 '내 비애의 양파껍질 벗기기'란 이름으로 블로그를 개설하는 것하고는 다르다. 정직은 정직하고자 하는 다짐일 뿐이다. 그 누구보다도 당신 스스로에게 말이다. 타인과 함께 나누고 싶지 않다면 당신 자신에게만이라도 슬픔을 털어놓으라. -89쪽
수치심은 슬픔의 여러 측면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얘기하길 꺼리는 부분이다. 우리는 슬픔과 죽어가는 과정에 결부된 문제를 두고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 수치심을 느끼는지 알고 놀랐다. 죽어가는 이가 어찌해볼 수 없는 문제뿐 아니라 인간이면 자연히 겪는 불가피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수치심을 느꼈다. -102쪽
인간이 피 흘리고, 뼈가 부러지고, 눈물 흐리며, 똥을 싸다 소멸하는 육체의 주인임을 용서하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서, 바로 그 사람이 없다고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스스로를 용서하라. -110쪽
슬픔은 신처럼, 때로는 신보다 더 강한 존재로 느껴질 만큼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유머는 슬픔이라는 거인을 말뚝 한두 개로 쪼그라뜨리고, 그 힘을 빼앗고, 파이로 내리쳐서 음울한 위엄을 약화시키는 방법이다. -152쪽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퍼하고 있다면 추태나 부적절한 생각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실제로는 죽음에 대한 분노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91쪽
슬픔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심리적 특전은 슬픔이 애매모호함을 이해하게 해주고, 삶의 진실이 절대 하나가 아니라 적어도 둘, 보통은 그 이상임을 일깨운다는 점이다. 슬픔은 자기 이야기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변화시킨다. -246쪽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잘 살아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마침내 삶에 제대로 적응하면 떠나보낸 사람 없이도 괜찮은 것 때문에 다시 죄책감을 느낀다. -249쪽
슬픔은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자신이 사랑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자신이 사랑한 누군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또 그가 함께한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동시에 그 없이 살아야 하는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다. 슬픔은 자기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252쪽
문제는, 슬픔에 빠져 있을 때는 의미가 소망을 정면으로 강타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이 남긴 의미가 제 역할을 못하면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그 남자를 만나고 싶고 그 여자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이런 갈망 때문에(세상을 떠나서 고귀해진)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옆에 없다는 사실을 억지로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영화 구경을 시켜주고 초밥을 먹으러 나가는 것일 때는 말이다. 철학은 한 깨 식사만 못하고, 환상은 절대 현실과 같을 수 없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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