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자신들의 환상에 아첨하는 작품을 원한다." 플로베르의 말처럼, 나 역시 환상에 아첨하여 내 삶을 크게 흔들지 않는 독서를 해왔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25쪽
이 책(플로베르의 앵무새)에 실린 두 개의 연보가 보여 주듯이, 플로베르의 삶은 하나이지만 그 삶은 득의양양한 성취로 기억될 수도 있고 고통스러운 좌절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진짜인가는 영원히 오리무중. 그러므로 결국 남는 것은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주관적 시선이 아니냐고 브레이스웨이트는 회의합니다. 진짜 삶, 진짜 인간, 진실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아니, 설령 존재한다 해도 인간이 그것을 알고 살아 낼 수 있는가에 대해 그는 회의적입니다.-29쪽
소위 일류 대학이라는 카이스트에서도 학생들이 잇달아 목숩을 끊었습니다. 그들은 왜 죽었을까요? 막다른 벽에 부딪힌 절망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어린 시절의 결핍 때문에, 심해진 우울증 때문에...... 저마다 죽음을 택한 이유가 있겠지요. 하지만 살아남은 우리가 맨 먼저 할 일은 이유를 따지는 것이 아리라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자유 죽음]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에셰크(echec(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포옹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든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죽음을 줄이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요. 진단과 치료는 그런 뒤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해도 좋을 겁니다. -109쪽
지나간 시간들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묻힌 것이며 다가올 시간은 지금의 내게서 나와 내게로 돌아오는 것, 그러므로 "아무것도 다시 시작하지 않고 아무것도 사라지지않는" 것이었지요.-114쪽
다시 말해, 농민들이 자유롭고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종자 자원을 사용하는 생산의 민주성과, 시민들이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다양한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소비의 민주성이 보장되어야만 식량 안보도 종자의 미래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156쪽
마음의 상처를 받고 고통을 겪는 이들은 분명히 어느 사회에나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정신적 문제를 질병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에서 반드시 작동하기 마련인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세계적 표준으로 통하는 '정신 질환 진단 분류 체계'는 "고통스런 감정을 낯선 이에게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성향과 심리적인 고통을 의료 문제로 보는 성향을 동시에 가진 유일한 국민"인 미국인에게 맞는 것일 뿐, 다른 성향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다른 기준이 필요한 것이지요.-192-193쪽
국가들의 기억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국가는 공동체가 아니며 그런 적도 없었다. 어떤 나라의 역사가 한 가족의 역사처럼 보이더라도 사실 정복자와 피정복자, 주인과 노예, 자본가와 노동자, 인종 및 성별상의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이해관계의 격렬한 갈등을 감추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세계에서 가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생각 있는 사람이 할 일이다.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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