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사실들은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 경험에 의해 형성된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되기 마련이지. 과거의 기억은 사실들의 기억이 아니라 사실들에 대한 상상의 기억이고 따라서 나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나타내거나 ‘허구가 없는 삶‘을 그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가는 고지식한 것이지. (18쪽)
나의 존재 자체가 어머니의 필립이지만, 세상의 풍파 속에서 나의 역사는 아버지의 로스로 시작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34쪽)
나는 그가 여자친구에 대해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었는데, 아침에 기숙사로 여자친구를 데리러 가서 둘이 함께 캠퍼스를 가로 질러 강의실로 간다는 것이었다. 내 마음을 움직인 건 그 낭만적인 목가보다 사실성이었다. (67쪽)
나는 개신교인이 대부분인 버크넬 학생들에게 유대인 사교 클럽이 어떻게 인식되었을지 알지 못한다. (82쪽)
그리고 5퍼센트를 차지하는 유대인 학생들이 주류 스타일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한은 - 그런 일홛르과 관찰들이, 이야기되는 과정에서 이미 아무리 허구화되었다 해도, 문학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중략) 어떻게 예술이 시간과 공간, 혹은 선과 악, 혹은 외양과 실재의 수수깨끼와 아무 관련이 없는 뉴어크 유대인 동네에 뿌리를 둘 수 있단 말인가? (91쪽)
열여덟 살에는 아버지의 구속에서, 열아홉에는 무의미한 유대인 사교 클럽 활동에서, 스물에는 우호적인 동아리의 편안한 범상성에서 거리를 두는 데 성공했던 나는 나 자신의 도덕론에서조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116쪽)
나는 모든 걸 거꾸로 안 것이었다. 혼돈의 역사를 지닌 조시는 그런 끔찍한 배경에서 살아남았기에 용기와 힘을 지닌 여자로 보였다. 게일은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곱게 컸기에 영원히 소녀로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게일은 훌륭한 배경에서 자랐기에 의존적이고 조시는 형편없는 배경에서 자랐기에 독립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건 노이로제가 아니라 순진한 것이다. 우리는 아주 똑똑해도, 그리고 아주 어리지 않아도 순진할 수 있으니까. (134쪽)
그녀의 정직성을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 만일 그때 그녀를 의심했더라면 스물네 살의 나는 - 그녀의 혹독한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다 받아 들이지 않고, 그녀가 나에세 가까이 가져온 비유대인 가족의 미지의 무질서, 우리 조부모님의 비유대인 혐오적 건설들의 토대가 된 그 더럽고 지저분하고 불행한 현실에 그토록 빠져들지 않고 - 그녀가 평생 자신을 학대해온 남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자기표현에 냉정한 시선을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151쪽)
우리 세대의 유대인 아이들이 전후의 미국에서 충일감 -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그 어느 것에서도 배제될 수 없다는 경이로운 감정 -을 안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살고 있고 속해 있는 민주주의의 무한함에 대한 믿음 덕이라고 할 수 있다. (179쪽)
내게 유대인이 된다는 건 그 곤경의 역사 속으로 태어나는 것이지 책 몇 권을 읽고 선택할 수 있는 신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내 아내가 잭 코헨-분별 있고 헌신적인 인물이긴 하지만-과 공부를 좀 한 걸로 평생 유대인이 되어 사는 건 내가 윈스큰 처칠에게 영문학 석사 학위를 보이고 영국 국민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184쪽)
즉 내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오래 가장 깊이 헌신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권리를 다시는 절대로 국가와 사법부에게 맡겨선 안된다는 교훈을 하룻밤 사이에 잊을 순 없었으니까. (중략) 게다가 그동안 결혼생활이 남긴 증오를 치유해주었던 메이 앨드리지의 사랑과 의리에도 더는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완전하게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남자가 될 결심이었다.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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