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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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절대로 억압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배움은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이다. 결국 미술은 ‘마음대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수영의 기본을 익히고 꾸준히 훈련해야 저기 보이는 섬까지 자유로이 헤엄쳐갈 수 있듯, 미술도 보는 능력을 키워야 ‘마음대로‘ 보는 감상이 가능한 것이다. (43쪽)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들어올림‘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일이 됐건, 사랑이 됐건, 공부가 됐건, 그 노력이 때로 코믹하거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할지라도 궁극은 그렇다는 것이다. (71쪽)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처음부터 나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중요했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 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 (88쪽

아직 뉴욕이 낯설었던 지역, 매우 다른 풍경이 주는 매우 다른 기대감,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서점과 커피집이 가까이에 있다. 낡은 옷을 입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는 이곳이 편안하다. 거의 이상적이다. (119쪽)

어떤 사람을 말해주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반복해서 생각해서 하다보면 결국 하나의 태도, 삶에 임하는 태도가 되는 것이다. (142쪽)

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몸은 어차피 극장과도 같다. 기능과 장식, 보호와 파격, 보임과 드러냄이 끊임없이 갈등과 긴장을 빚어내는. (193쪽)

[뉴요커]의 미술비평가 피터 셸달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바라는 대로 되는 세상이라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집엔 어디나 모란디의 그림이 걸려 있었으면 좋겠다. 눈과 정신, 그리고 영혼이 매일 훈련을 하는 김나지움이 될 것이다." (196쪽)

노년은? 재밌게도 이 시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이 그 안에 있으면서 완전히 그 밖에 있게 되는 그런 시기야. 내내 자신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계속되는 활력 때문에 그 소멸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 심지어는 완전히 독립된 것 같기도 하지. (209쪽)

부자가 멋진 소파를 사는 ‘좋은 취향‘으로 정의를 얻는다면, 가난한 이들은 ‘변형의 힘‘을 갖는 취향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변형의 힘이 있는 취향에는 그걸 보는 눈이 필요하다. (중략) 아름다움을 보려면 마음이 가난해져야 한다. 마음이 가난하면 눈이 밝아지고 눈이 밝은 사람들이 많아져야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된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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