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차이를 매개하고 해소해줄 보편적인 수단이지만 동시에 그 차이를 드러내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가장 넘어서기 힘든 차이(나아가 차별) 그 자체이기도 하다.-25쪽
역사의 '뜻, 의미, 가치'라는 것이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당시의 개인이나 집단의 뜻에서 끝나지 않고 후대에 사람들이 그것에 어떻게 응답하는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것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니까요.-32쪽
'우리'라고 하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주체이다. 그것은 나와 네가 더불어 형성하는 공동의 주체인 것이다. 하지만 주체는 사물적 존재가 아니라 오직 능동적인 활동으로서만 생성되는 까닭에, 사물적 실체와 주체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 눈에는 '우리'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상상의 공동체'로서 한갓 관념물ens rationis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라는 것은 실체화된 민족을 말하는 것도, 개인 위에 군림하는 억압적 국가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공동의 서로주체의 이름으로서 주체성 또는 능동성과, 수동성 또는 고통을 서로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70쪽
권리와 이익의 공동체는 반드시 그 권리와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별이라는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우리의 이익, 나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과 다 만나서는 안되지요. 그럼 이익을 극대화시키지 못해요. 그래서 어떤 일정한 외연, 틀속에 들어올 수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173쪽
오래 고통받아온 이 나라가 이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그 고통의 역사를 타자들에게 가해자가 되어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그 역사로부터 어떤 새로운 아름다움을 길어내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통받은 역사 속에서 길어낼 수 있는 지혜, 새로운 윤리, 그런 걸 보여줄 수 있고, 또 보여줘야 할 의무도 있지요. 그것을 그냥 관념적인 수준에서가 아니라 현실을 형성하는 원리로 다듬는 것이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259쪽
가해자는 타자를 알지 못합니다. 타자의 고통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수난받은 사람 역시 타자를 알지 못합니다. 오직 저항해본 사람만이, 저항의 경험 속에서 자기와 타자를 끊임없이 견주어봅니다. 저항하기 위해서는, 나쁘게 말해 적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항해본 사람만이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수 있습니다.-266쪽
오직 자기 삶의 목적을 스스로 정립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참된 의미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자기 삶의 목적과 방향을 스스로 자유로이 규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정신적 소질이 요구되는데, 그 소질이 바로 교양이라고 생각합니다......교양은 지식이 아니라 사고방식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교양과는 원칙적으로 상관이 없습니다. 교양이란 무엇을 생각하든 자유인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건강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죠.-347쪽
참된 교양이란 삶을 전체로서 이해하되, 모든 것을 대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고통에 참여함으로써 보편적.총체적 만남의 지평을 더불어 넓혀나가는 마음의 소질과 능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351쪽
선생님께는 처음부터 '나는 무엇이다'라고 적극적positive으로 규정하고 들어갈 수 있는 자기의 정체성 혹은 주체성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타자성을 향해 편견 없이 나아가고, 타자의 고통을 향해 장벽 없이 이행해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없음'에 대한 고통스런 인식이 선생님의 말들을 가능케 한 가능성의 조건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죠-361쪽
정말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이성적이 되어야 하고 '이상적'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저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력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지 못할 때는 유토피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겁니다.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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