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쿤1 여름날에는 오싹한 것을 찾기도 하잖아요. '환상 특급2', '기묘한 이야기3', '전설의 고향4' 등을 아시는지요? 저는 어릴 적에 보면서, 무서울 때는 이불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지요. 낮의 더위에, 열대야에 지친 우리 가족에게 서늘함을 주는 시간이었어요. '삼복지간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라는 속담도 있잖아요. 그 삼복지간에 더위를 잊게 해주는 시간이었지요. 특히 구미호5 이야기는 여름철에 단골손님으로 오는 서늘함이었고요. 그리고 강지영의 소설, '개들이 식사할 시간'도 저에게 서늘하게 다가오네요.


 '"사람 병신 되는 거 참 한순간이에요. 동네서 낡아 떨어진 자전거 한 대만 없어져도 사람들 눈이 어떤 줄 알아요? 저 새끼, 사람 죽인 놈, 전과 있는 놈, 저놈이 가져다 팔아먹었겠지. 딱 그거라니까요. 내가 지들보다 돈 잘 버는 건 안중에도 없어요. 입이 근질거릴 때마다 씹을 게 필요한데, 마침 개만도 못한 내가 한마을에 사는 거라. 얼마나 편리하겠어요. 뭐든 나한테 뒤집어씌우면 그만이잖아요.(……)"' -'개들이 식사할 시간' 중에서 (36쪽).


 '"하고많은 개들 중에 왜 이놈만 살아남았는지 알아요? 이놈은 지가 개새끼인 걸 너무 잘 알아요. 사람 새끼인 척 아양 떨면서 손바닥 핥는 다른 놈들하곤 질적으로 다르더라니까요. 곧 죽게 생긴 놈이 배고프다고 지 마누라 노릇하던 암컷도 잡아먹은 놈이에요. 개가 개같이 굴어야지 정승처럼 굴면 그것도 참 숭해요. 난 그래서 이놈이 좋아요."' -'개들이 식사할 시간' 중에서 (40쪽).


 이 소설의 첫 단편, '개들이 식사할 시간' 안으로 들어가요. 어머니의 부고로 고향에 가는 이강형. 그는 아버지 사후에 어머니의 동거인이 된 이창갑을 만나요. 아버지의 술친구였던 그. 이강형에게는 '장갑 아저씨'로 기억되지요. 아버지의 폭로. 이강형이 어린 시절에 한 도둑질과 거짓말. 그것들로 이창갑은 마을 안에서 홀로 나락에 떨어진 사람이 되지요. 이강형은 잊었다가 다시 기억하게 되고요. 그리고 지금, 이창갑의 앙갚음을 당하네요. 어린 시절의 잘못과 잊음. 그리고 앙갚음. 또, 마을 사람들의 비정함. 이 단편은 그것들을 이야기해요.


 '"어떤 해파리는 영원히 살 수 있대. 살다 싫증이 나면 우산처럼 몸을 접고 바위에 딱 달라붙어버린다지. 거기서 잠깐만 웅크리고 있으면 다시 젊어지는 기적을 일어난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나도 몰라.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따라붙는 건 아니잖아. 중요한 건 걔들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생체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는 거야. 영원히 죽지 않는 해파리한테 가장 소중한 건 뭐라고 생각해? 먹이나 애인? 동료나 가족? 어쩌면 필요할 때 달라붙을 수 있는 바위가 아닐까."' -'스틸레토' 중에서 (123쪽).


 '해파리가 끝없이 재생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바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의 연막 아래에서 먹이를 구하는 물고기들. 대를 이어 아주 천천히 해파리 독에 면역을 쌓아온 어떤 이들. 그들의 생존욕구가 해파리의 재생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스틸레토' 중에서 (128쪽).


 '스틸레토'라는 단편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해요. 해파리처럼 영원을 사는 혜림. 해파리의 바위처럼 혜림의 사람은 영원을 살게 하지요. 혜림은 사람에게 기생해요. 혜림의 바위였던 나. 이제 다른 바위에 혜림을 양도해야 해요. 그런데, 혜림에게 아들 규석을 바위로 넘겨주지 않으려는 나. 그리고 혜림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 그들의 비정한 얼굴도 그리고 있어요.


 '『개들이 식사할 시간』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강지영 작가의 이야기 골격은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일종의 우화나 환상적 기법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조금씩 낯설게 보여주는 이러한 수법은 2000년대 이후로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활용된 것이며, 장르문학의 문법에 있어서도 그렇게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일련의 소설들에서 드러나는 이야기의 힘은 그러한 수법을 비틀어 보다 강한 놀라움을 주는 방식에 있다.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비밀'을 깔아두고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데 충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기대 이상의 전개를 통해 놀라움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다소 비극적인 결말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무정한 인간에의 발견, 세상에 대한 암울한 인식을 수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끝맺음'을 넘어서는 돌발성을 통해 독자를 동요시키며 그저 결말에 찬동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해설 '강지영이라는 고유명', 박인성(문학평론가) (294쪽).


 책의 끝에 실린 해설이에요. 비밀과 비정함을 끝맺음의 강한 비틀기로 우리에게 동요와 함께 가져다준다는 설명. 동의해요. 다소 섬뜩한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 '환성 특급', '기묘한 이야기', '전설의 고향' 같아요. 특히 '전설의 고향'의 구미호 이야기 같아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 이 소설도 아홉 개의 이야기를 갖고 있네요. 그 아홉의 나뉨이 다채로와요. 그러면서, 비밀과 비정함을 담고 있지요. 구미호 이야기에도 비밀과 비정함을 담고 있잖아요. 인간이 되려는 구미호. 그렇지만 마지막에는 비극을 맞이하지요. 또 구미호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비정함도 보이고요. 그런 구미호 이야기 같은 이 소설. 정말 서늘해요. 더위를 잊을 수 있어요. 그런데, 강한 비틀기의 끝맺음이 있는 이 서늘함은요. 저에게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서늘함이네요. 너무 서늘해요. 춥기까지 해요.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간 <하우스프라우>를 읽고 서평을 작성해 주실 분을 모집합니다.




대담한 성() 묘사와 섬세한 심리 묘사가 교차하는 소설!

낯선 나라 스위스에 갇힌 현대판 안나 카레니나





여성의 삶과 내면을 다룬 강렬한 소설 『하우스프라우』 출간


미국의 작가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의 데뷔 소설 『하우스프라우』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 시인으로만 활동했던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이며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질 알렉산더 에스바움의 작품이기도 하다. 제목인 <하우스프라우Hausfrau>는 독일어로 가정주부, 기혼 여성을 뜻한다. 주인공은 스위스인과 결혼해 그곳에서 사는 미국인 안나이다. 우울과 외로움 속에서 안나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기 시작한다. 작가는 파국으로 빠져드는 한 여성의 삶과 내면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현대판 안나 카레니나>로 독자와 평론가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상당히 높은 수위의 성행위 장면 역시 눈에 띄는 특징이지만, 문학성과 화제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출간 즉시 10여 개 언어로 번역 계약이 이루어졌고, 독일 ․ 프랑스 ․ 이탈리아 등 전 세계 15개국에서 출간되었다. 데뷔 소설로서 흔한 일은 아니다. 단순히 불륜이 소재라서, 또는 노골적이고 선정적이어서가 아니라 대담한 성(性) 묘사에 섬세한 심리 묘사가 어우러졌기에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절묘한 사건들의 배치, 영어와 독일어 단어들을 이용한 세련된 언어유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 서평단 신청 방법

1. 본 게시물을 스크랩해 주세요. (전체 공개)

2. 스크랩한 페이지를 본인의 SNS에 홍보해 주세요. (다양한 SNS 가능/전체 공개)

3. 스크랩 주소와 함께 서평단 신청 이유를 아래 댓글로 남겨 주세요.

4. 본인의 댓글에 대댓글로 도서 받으실

   주소/연락처/성함을 비밀 댓글로 남겨 주세요.


★ 반드시 위 네 가지 모두 지켜야 합니다.


* 모집 인원: 5명

* 모집 기간: 7월 19일~7월 24일(6일 간)

* 당첨자 발표 및 도서 발송: 7월 25일 (화) 예정


* 서평단 활동 방법

도서를 받으신 후, 8월 9일까지

알라딘 서재와 개인 블로그(또는 타 SNS: 인스타/페이스북 등)에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남겨 주신 리뷰는 당첨자 발표 페이지 아래에 댓글로 주소를 남겨 주세요.

★ 도서 수령 후 리뷰를 올리지 않으신 분들은 이후 이벤트에서 당첨 제외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케미스트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제임스 본드(James Bond)1 이야기들, 제이슨 본 (Jason Bourne)2 이야기들. 애런 크로스(Aaron Cross)3 이야기. 에단 헌트(Ethan Hunt)4 이야기들. 비밀 요원인 그들. 맡겨진 임무를 멋지게 해결하지요. 그들의 이야기에는 끝없는 궁금증, 넘치는 긴장감, 화려한 볼거리, 달콤한 사랑이 잘 녹아들어 있어요. 그렇게 이야기는 저에게 상쾌한 물감으로 다가오고요. 그리고 저도 그 물감에 녹아들지요. 여기, 제가 녹아들 상쾌한 물감이 또 있네요. '케미스트'라는 소설이에요.

 

 '그녀를 잡으러 오는 사람들은 희생자 대신 포식자를 발견하리라. 그녀의 섬세한 함정 뒤에 숨은 독거리를.' -15쪽.

 

 '알렉스는 대상을 다치게 하지 않고 정보를 빼내는 데 최고의 실력자였다.' -56쪽.

 

 이름은 줄리아나. 그렇지만, 알렉스 외 수많은 다른 이름이 있는 여성. 화학자이자, 전직 비밀 요원이지요. 그런데, 국가와 조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어요. 자백제를 만들어 테러리스트를 심문하던 일을 6년이나 했었는데요. 이제는 살기 위해 떠돌지요. 3년째예요. 함정을 설치하고, 방독면을 쓰고 자는 줄리아나. 그런데요. 옛 상사인 카스턴으로부터 이메일이 와요. 대니얼이라는 남자에게서 정보를 얻으면 더 이상 쫓지 않겠다는 제안이었지요. 생화학 무기로 테러를 일으킬 사람이라는 그. 보기에 교사인 대니얼 비치. 과연 함정일까요? 아니면, 기회일까요?  

 

 '그녀는 이제 다른 자아, 그 부서에서 ‘케미스트’라 불렀던 자아를 불러냈다. 케미스트는 기계다. 냉혹하고 끈질긴 괴물이 이제 풀려났다. 바라건대 그의 괴물도 나와 주기를.' 107~108쪽.

 

 '"나는 당신에게 끌리는 것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끌린 적이 없었어요. 난 당신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끌렸어요. 이건…… 중력에 대해 읽는 것과 처음으로 낙하하는 것만큼 달라요."' -316쪽.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내 약점이 되어주어서 기뻐요. 고마워요. 당신이 있어서."' -471쪽.

 

 줄리아나는 대니얼을 잡아 심문하는데요. 결국, 서로 사랑하게 되지요. 케빈과 밸은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게 하고요.

 

노래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그것뿐.

 나는 내 입으로 잔을 가져가며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 짓는다.


예이츠 (1865~1939)

 

 A DRINKING SONG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s;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William Butler Yeats (1865~1939)


'민음사 세계시인선 11 '첫사랑', 민음사, 예이츠 지음, 정현종 옮김'에서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고 한 시가 있지요. 대니얼에게 자백제는 혈관으로 들었고, 사랑은 눈으로 들었나 봐요. 한숨 짓지 않고, 줄리아나와 예쁜 사랑을 하는 그. 그렇지만, 암살과 배신, 반전과 두뇌 싸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줄리아나와 함께 소용돌이에 들어가게 되지요. '케미스트'에는 이렇게 사랑 안에 모험이 있어요. 달콤한 사랑 안에 끝없는 궁금증, 넘치는 긴장감, 화려한 볼거리가 녹아들어 있어요. 그래서 '케미스트'만의 색을 가진 상쾌한 물감이 되었고요. 저는 그 상쾌한 물감에 기꺼이 녹아들었네요.

 '트와일라잇'의 작가 스테프니 메이어. 역시 사랑 이야기를 섬세하게 잘 그려요. 길게 그려진 글이지만, 잘 읽혀요. 글솜씨가 있어요. 위의 책 소개 영상(book trailer)에서 액체에 빠르게 녹아드는 것처럼 이 이야기에 빠르게 매혹돼요. 그나저나 책 앞에서 '제이슨 본과 아런 크로스(애런 크로스)에게 바친다'고 헌사했는데요. 본(Bourne)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이지요.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비밀 요원의 이야기였어요. 이 여름에 만난 비밀 요원의 사랑 이야기. '케미스트'는요. 아주 상쾌했어요.  

북폴리오 2017 하반기 서포터즈로서 읽고 씁니다.


  1. 007 이야기들의 주인공.
  2. 본(Bourne) 이야기들 가운데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제이슨 본'의 주인공.
  3. 본(Bourne) 이야기들 가운데 '본 레거시'의 주인공.
  4. 미션 임파서블(Misson: Impossible) 이야기들의 주인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바나 스토리콜렉터 56
마리사 마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북로드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에게 조카가 있어요. 여자 아이에요. 조카가 어릴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지요. 특히,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 1937)를 좋아했어요. 덕분에 저도 여러 번 봤고요. 아는 내용이지만, 재밌더라고요. 상상하게 했고요.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어요. 가르침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런 동화의 인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든 이야기가 있네요. 바로, 루나 크로니클(Lunar Chronicle) 이야기들이에요. 신데렐라, 빨간 모자, 라푼젤, 백설공주의 이야기들이지요. 신데렐라는 사이보그 정비공 신더, 빨간 모자는 우주선 조종사 스칼렛, 라푼젤은 인공위성에 갇힌 천재 해커 크레스, 백설공주는 여왕의 폭정에 맞선 혁명가 윈터라고 해요. 아쉽게도 저는 SF Romance Fantasy인 루나 크로니클(Lunar Chronicle) 이야기들과 아직 대화를 나누지 못했네요. 그렇지만, 그 프리퀄(prequel)인 '레바나'를 만났어요. 대화도 나눴고요. 신더의 이모이자, 윈터의 의붓어머니인 레바나! 제가 '레바나'와 나눈 대화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해요.

 

 짝사랑하는 열여섯 소녀 레바나. 상대는 왕실 근위병인 에브렛 헤일 경이에요. 그런데 그는 유부남이에요. 그의 아내 이름은 솔스티스. 임신을 했지요. 안타깝게도 솔스티스는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요.

 

 '레바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온몸을 쾅쾅 때리며 울려대는 음악을 몰아내보려고 했다. 손님들의 조롱 섞인 웃음. 언니의 비웃는 말들. 채너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레바나는 단순히 에브렛의 죽은 아내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헌신하고, 더 많이 신비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언젠가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 것이다.' -98쪽.

 

 루나의 공주인 레바나. 부모님의 죽음으로 여왕이 된 언니, 채너리. 레바나는 에브렛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해요. 채너리는 이해하지 못하지요. 채너리는 남자들과 뒷소문을 만드는 여인이었으니까요.

 

 '레바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보려고 했다. "모르겠나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원래 그런 거예요. 도무지 통제되지 않는 모순되는 감정과 휘몰아치는 격정. 늘 속이 뒤틀리면서 그 사람에게서 도망가야 할지…… 아니면 그 사람과 '함께' 도망쳐야 할지도 결정할 수 없는 그런 기분."' -104쪽.

 

 결국에는 레바나와 에브렛이 결혼하지요. 레바나는 윈터의 의붓어머니가 되고요. 그런데, 언니인 채너리가 질병으로 사망해요. 딸인 셀린을 놓고요. 그래서 레바나가 섭정 여왕이 되지요. 그런데, 얼마 후 셀린마저 화재로 사망 선고를 받게 되지요. 이제 레바나가 여왕이에요.

 

 '언니의 말이 되돌아와 레바나의 귀를 천둥처럼 울리고 가슴 속 빈 곳을 속속들이 채웠다.

 사랑은 정복이야. 사랑은 전쟁이라고.

 '이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야.'' -231쪽.

 

 레바나의 사랑을 놓아두는 에브렛. 그를 잃으며 레바나가 한 생각이에요. 사랑은 정복이고, 전쟁이라고요.

 

 '남자는 복종을 힘들어하고 여자는 뭔지 모를 결핍을 갖고 있다'

-자크 라캉(프랑스의 정신분석가)

 

 레바나에게는 사랑 결핍이 있었어요. 결핍은 욕망의 뿌리가 되었고요. 언니인 채너리가 어린 레바나에게 화상을 입게 했지요. 그래서 레바나는 마법으로 외모를 아름답게 했고요. 그렇지만, 거울에는 레바나의 민낯이 보이지요. 흉터 있는 레바나는 받지 못한 사랑을 반격했어요. 사랑 결핍을 과잉 보상받으려고 했지요. 그래서 이루기 힘든 유부남인 에브렛에게서 사랑받으려고 했고요. 또, 왕좌를 이어받아 백성에게 사랑받으려고 했어요. 에브렛과 왕좌, 둘 다 얻었지만, 불안정했어요. 기대치가 높았던 레바나. 불평과 원망이 일어났고 미움과 적대감으로 이어졌지요. 게다가 레바나의 사랑을 내려놓는 에브렛. 그를 잃으며 레바나는 악녀가 되었지요. 사랑은 정복이고, 전쟁이라고 하면서요. 사랑 결핍이 잘못된 욕망으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자신을 파괴했어요.

 

 '레바나는 마법으로 완벽한 미모를 만들어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다. 자신의 어머니보다, 채너리보다, 루나의 왕좌에 앉았던 그 어느 여왕보다 아름다운 여왕이 되려고 했다.' -184쪽.

 

 '그의 말이 맞을까? 내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이 아름다움과 완벽함 뒤에 숨어 있으면, 그는 나를 결코 알 수 없고, 신뢰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걸까?' -153쪽.

 

 이 책 '레바나'의 원제는 'Fairest'라고 해요. 여기에서는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뜻이겠지요. 레바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가 아름답지 못해서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사랑받고 싶었으니, 가장 아름답고 싶었고요. 가장 아름다운 아내, 가장 아름다운 여왕이고 싶었지요. 마법으로요. 그런데, 이루지 못했어요. 그리고 깊은 수렁에 빠졌고요. 그 마법에는 진실이 없었으니까요. 레바나를 신뢰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사랑받지 못했으니까요.  

 

 루나 크로니클(Lunar Chronicle) 이야기들의 프리퀄(prequel)인 '레바나'는요. 제게 감탄사였어요. 감탄에 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동화가 가진 상상력, 감동, 가르침을 품고 있었고요. 또, 거기에 매혹하는 힘까지 갖고 있었어요. 좋네요.

 

 

 

 

 

 

스토리콜렉터스 2017로서 읽고 씁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7-22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결핍이 심하면 집착이 심해져요.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하게 보일려고 상대방을 통제합니다.

사과나비🍎 2017-07-22 18:5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cyrus님의 말씀! 맞는 것 같아요~^^* 그럼,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랄게요~^^*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 성경, 전도서 3장 2절 상반절


'생자필멸(生者必滅)1', '회자정리(會者定離)2'

 

 가까운 분들이 하늘로 가셨어요. 언제나 함께 계실 줄 알았던 분들. 한 분, 한 분 떠날 때 마음이 아팠어요. 떠나시기 전, 이별을 준비하시던 분들도 계셨지요. 저를 바라보시던 그분들. 오래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년, 아버지께서 암 수술을 하셨어요. 췌장과 직장의 암을 수술하셨지요. 특히, 예후(豫後)3가 좋지 않다는 췌장암. 재발과 전이의 위험이 아직 남아 있어요. 아버지와 저의 이별이 가까이에 있을 것 같아 두려워하고 있네요. 그 이후,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가 많아졌는데요. 이제 노인이 되신 아버지. 아버지께 드린 게 너무 없더라고요. 너무 부족한 저예요.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생자필멸', '회자정리'라고 하지만, 이별은 너무 아파요. 그런데, 이별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어요.

  

 '이 책은 기억과 놓음에 대한 이야기다. 한 남자와 그의 손자,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주고받는 연서이자 느린 작별 인사다. (……중략……) 쓰다보니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서서히 잃는 심정, 아직 내 곁에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내 아이들에게 그걸 설명하고 싶은 바람을 담은 짧은 글로 발전했다. (……중략……) 이것은 거의 한 쌍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랑과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독자 여러분께 (7쪽).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 그의 이별 학습 이야기예요. 사랑스러운 손자에 대한 아쉬움.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 데면데면한 아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사라져 가는 기억에 대한 두려움. 이렇게 할아버지의 여러 감정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어요.

 

 '"우리,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여기 온 거예요, 할아버지?"' -74쪽.

 

 '"제 손을 왜 그렇게 꼭 잡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이는 다시 속삭인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보답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더욱 세게 잡는다.' -80~81쪽.

 

 "머릿속 말이에요. 머릿속이 아프냐고요."
 "아픈 느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단다. 건망증이 하나 좋은 게 그거야.
 아픈 것도 깜빡하게 된다는 거."
 "어떤 기분이에요?"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열쇠로 시작해서 사람들로 끝나는 거야." -103~104쪽.

 

 기억과 놓음. 사랑과 두려움의 이야기예요. 또, 시간의 이야기고요. 여럿이 어우러지며, 슬프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이야기가 되지요. 연서이자, 느린 작별 인사가 되지요.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1926' 중에서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의 서문인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4 것은 다 님이다. (……중략……)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어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님의 침묵'의 님은 조국, 절대자(부처, 진리), 연인5이라고 하지요. 저도 '님의 침묵'의 님을 그리운 분들로 더 넓게 생각해봤어요. 하늘로 가신 가까운 분들로 생각해봤어요. 곁에 계시지만 그리운, 암 수술하신 아버지도 생각해봤고요. 또, 이 책의 기억을 읽어가는 할아버지를 생각해봤어요. 생각하니,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시어를 되뇌게 되네요.

 

 

 또, 장혜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라는 노래가 있어요. ​'이제는 울지 않을래. 이별은 너무 아파요. 다시 떠난다 해도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기억하지는 않아도 지워지지가 않아요. 슬픔 뒤 밀려드는 그리움. 세월이 변한다 해도 언제까지나 그대로 내 곁에 머물러줘요.'라는 노랫말. 사랑의 이별을 노래한 것이겠지만요.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도 그 뜻이 이어지네요. 이별은 너무 아프지요.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 거고요. 언제까지나 그대로 내 곁에 머물기를 바라지요.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을 읽으며, 이 노래를 읊조렸어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요. 글은 짧지만, 여운은 길어요. '피플 매거진'의 글처럼 '씁쓸하고도 달콤'해요.​ 슬프지만, 부드럽고 따뜻해서 아름다워요. 그 아름다움이 깊은 울림을 주네요. 잃고 싶지 않은 분들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제 곁에 머물기를 바라지만요. 어느덧 찾아온 이별의 날. 저도 제게 남은 사랑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世皆無常 會必有離(세개무상 회필유리) 세상은 모두 무상하나니,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도다. -<유교경遺敎經>​

 그리고 이제 저도 세상의 무상함을 알고, 슬프지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고요. ​

나나흰 6기로서 읽고 씁니다.



 

  1. <불교>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음. 존재의 무상(無常)을 이르는 말이다.
  2. <불교>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짐. 모든 것이 무상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3. 1 .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전망함. 또는 그런 병의 증세. 2 . 병이 나은 뒤의 경과.
  4. 기루다: [방언]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하다(전북).
  5. 님의 침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4161&cid=46645&categoryId=466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