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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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쿤1 여름날에는 오싹한 것을 찾기도 하잖아요. '환상 특급2', '기묘한 이야기3', '전설의 고향4' 등을 아시는지요? 저는 어릴 적에 보면서, 무서울 때는 이불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지요. 낮의 더위에, 열대야에 지친 우리 가족에게 서늘함을 주는 시간이었어요. '삼복지간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라는 속담도 있잖아요. 그 삼복지간에 더위를 잊게 해주는 시간이었지요. 특히 구미호5 이야기는 여름철에 단골손님으로 오는 서늘함이었고요. 그리고 강지영의 소설, '개들이 식사할 시간'도 저에게 서늘하게 다가오네요.


 '"사람 병신 되는 거 참 한순간이에요. 동네서 낡아 떨어진 자전거 한 대만 없어져도 사람들 눈이 어떤 줄 알아요? 저 새끼, 사람 죽인 놈, 전과 있는 놈, 저놈이 가져다 팔아먹었겠지. 딱 그거라니까요. 내가 지들보다 돈 잘 버는 건 안중에도 없어요. 입이 근질거릴 때마다 씹을 게 필요한데, 마침 개만도 못한 내가 한마을에 사는 거라. 얼마나 편리하겠어요. 뭐든 나한테 뒤집어씌우면 그만이잖아요.(……)"' -'개들이 식사할 시간' 중에서 (36쪽).


 '"하고많은 개들 중에 왜 이놈만 살아남았는지 알아요? 이놈은 지가 개새끼인 걸 너무 잘 알아요. 사람 새끼인 척 아양 떨면서 손바닥 핥는 다른 놈들하곤 질적으로 다르더라니까요. 곧 죽게 생긴 놈이 배고프다고 지 마누라 노릇하던 암컷도 잡아먹은 놈이에요. 개가 개같이 굴어야지 정승처럼 굴면 그것도 참 숭해요. 난 그래서 이놈이 좋아요."' -'개들이 식사할 시간' 중에서 (40쪽).


 이 소설의 첫 단편, '개들이 식사할 시간' 안으로 들어가요. 어머니의 부고로 고향에 가는 이강형. 그는 아버지 사후에 어머니의 동거인이 된 이창갑을 만나요. 아버지의 술친구였던 그. 이강형에게는 '장갑 아저씨'로 기억되지요. 아버지의 폭로. 이강형이 어린 시절에 한 도둑질과 거짓말. 그것들로 이창갑은 마을 안에서 홀로 나락에 떨어진 사람이 되지요. 이강형은 잊었다가 다시 기억하게 되고요. 그리고 지금, 이창갑의 앙갚음을 당하네요. 어린 시절의 잘못과 잊음. 그리고 앙갚음. 또, 마을 사람들의 비정함. 이 단편은 그것들을 이야기해요.


 '"어떤 해파리는 영원히 살 수 있대. 살다 싫증이 나면 우산처럼 몸을 접고 바위에 딱 달라붙어버린다지. 거기서 잠깐만 웅크리고 있으면 다시 젊어지는 기적을 일어난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나도 몰라.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따라붙는 건 아니잖아. 중요한 건 걔들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생체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는 거야. 영원히 죽지 않는 해파리한테 가장 소중한 건 뭐라고 생각해? 먹이나 애인? 동료나 가족? 어쩌면 필요할 때 달라붙을 수 있는 바위가 아닐까."' -'스틸레토' 중에서 (123쪽).


 '해파리가 끝없이 재생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바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의 연막 아래에서 먹이를 구하는 물고기들. 대를 이어 아주 천천히 해파리 독에 면역을 쌓아온 어떤 이들. 그들의 생존욕구가 해파리의 재생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스틸레토' 중에서 (128쪽).


 '스틸레토'라는 단편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해요. 해파리처럼 영원을 사는 혜림. 해파리의 바위처럼 혜림의 사람은 영원을 살게 하지요. 혜림은 사람에게 기생해요. 혜림의 바위였던 나. 이제 다른 바위에 혜림을 양도해야 해요. 그런데, 혜림에게 아들 규석을 바위로 넘겨주지 않으려는 나. 그리고 혜림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 그들의 비정한 얼굴도 그리고 있어요.


 '『개들이 식사할 시간』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강지영 작가의 이야기 골격은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일종의 우화나 환상적 기법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조금씩 낯설게 보여주는 이러한 수법은 2000년대 이후로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활용된 것이며, 장르문학의 문법에 있어서도 그렇게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일련의 소설들에서 드러나는 이야기의 힘은 그러한 수법을 비틀어 보다 강한 놀라움을 주는 방식에 있다.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비밀'을 깔아두고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데 충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기대 이상의 전개를 통해 놀라움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다소 비극적인 결말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무정한 인간에의 발견, 세상에 대한 암울한 인식을 수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끝맺음'을 넘어서는 돌발성을 통해 독자를 동요시키며 그저 결말에 찬동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해설 '강지영이라는 고유명', 박인성(문학평론가) (294쪽).


 책의 끝에 실린 해설이에요. 비밀과 비정함을 끝맺음의 강한 비틀기로 우리에게 동요와 함께 가져다준다는 설명. 동의해요. 다소 섬뜩한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 '환성 특급', '기묘한 이야기', '전설의 고향' 같아요. 특히 '전설의 고향'의 구미호 이야기 같아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 이 소설도 아홉 개의 이야기를 갖고 있네요. 그 아홉의 나뉨이 다채로와요. 그러면서, 비밀과 비정함을 담고 있지요. 구미호 이야기에도 비밀과 비정함을 담고 있잖아요. 인간이 되려는 구미호. 그렇지만 마지막에는 비극을 맞이하지요. 또 구미호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비정함도 보이고요. 그런 구미호 이야기 같은 이 소설. 정말 서늘해요. 더위를 잊을 수 있어요. 그런데, 강한 비틀기의 끝맺음이 있는 이 서늘함은요. 저에게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서늘함이네요. 너무 서늘해요. 춥기까지 해요.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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