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시티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작품

장르 : 액션 스릴러 호러 판타지 러브 로망

(다섯 개 만점)

 

액션과 폭력으로 점철된 펄프 느와르! 그리고... 판타지와 비애!


지금부터 거론되는 스타들...! 브루스 윌리스, 미키 루크, 제시카 엘바, 클라이브 오웬, 닉 스탈, 파워스 부스, 룻거 하우어, 일라이저 우드, 로자리오 도슨, 베니치오 델 토로 제이미 킹, 드본 아오키, 브리터니 머피, 마이클 클락 던칸, 칼라 구지노, 알렉시스 블레델, 조쉬 하트넷 마리 쉘톤,  마이클 매드슨...! 이 모든 스타들이 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비현실적인 가능성! 이들 몸값만 합쳐도 블록버스트 한 편의 제작비가 나온다는 계산은 이러한 캐스팅이 도저히 나올 수 없다고 합리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현실적인 캐스팅을 합리적으로 처리한 두 괴물이 있었으니 그들은 헐리웃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영화 악동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두번째 에피소드를 연출한 타란티노는 로드리게즈와의 우정을 과시하듯 단돈 1달러의 연출료만 받았다고 한다! 과연 영화광답다!

(이제부터 시작될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온전하게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리뷰를 읽지 말것!)

 

기본적으로 씬시티는 미국의 삼류 펄프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녹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치게 황당무계하고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마치 만화처럼! 아닌게 아니라 원작은 프랭크 밀러의 만화다! 미국 개봉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북미지역에서만 7천만불이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평단의 평도 무척 호의적이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가 일찍이 포기한 것 처럼보이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바로 대담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비전(vision)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화려한 디지털 영화. 디지털 시네마 기술과 영화제작의 예술, 양쪽 측면 모두에서 영화는 한단계 점프한다.""이 영화야 말로 순수한 펄프 메타픽션이다." 등의 찬사가 이어졌던 것이다!

 

개인적인 평을 내려보자면 위의 화려한 수식들은 이 영화가 가진 만화적 특성처럼 좀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실제로 또 과장됨을 미덕으로 하는 영화기에 과장됨을 미덕으로 찬사할 법도 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이제껏 보지 못한 화려하고 색다른 영화임에는 틀림없고 그것은 창작의 관점에서 분명 환영할 만한 사건이다. 스타일리쉬의 발전도 철학적 주제의 숭고함 만큼이나 영화 창작의 중요한 일부분이니까! 모든 영화가 오슨 웰즈나 페데리코 펠리니 같아야 훌륭하다는 법은 없으니까.

 

영화는 일차적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고 본다. 눈과 귀를 지루하게 하는 대신 네 인생에 무언가 커다란 철학을 던져주었지 않느냐, 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다. 눈과 귀도 즐겁고 무언가 커다란 철학을 던져준다면야 두말할 것도 없이 걸작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재미없는 영화를 만들어놓고 그래도 주제가, 철학이, 사상이 들어가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은 팔리지 않는 소설을 쓴 작가들이 연합해서 만들어 낸 '핑계'에 다름없다고 본다! 그네들은 이렇게 말할테지. 그래도 우리는 '순수'한 '문학'을 한다고! 웃기는 소리다! 그들은 다만 자기 만족을 위한 개인적인 '학문'의 '수순'을 밟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책상서랍속의 일기장이나 필사본과 같은 것이다.

 

각설하고, 이 영화는 재미있다. 시종일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반드시 제공해야할 일차적인 서비스, 관객들의 돈과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는 '재미'를 이 영화는 확실히 만족시켜 준다. 그래서 일단 별 세 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이쯤에서 이 영화가 주는 거부감에 대해 일견을 가질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말해보겠다. 블랙 느와르를 싫어하는 사람, 하드고어 잔혹 호러의 폭력 자극에 비위가 상하는 사람, 오락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도덕적 주제가 남기를 원하는 사람, 현란한 스타일리쉬 영상에 눈이 아픈 사람,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며 저건 너무 만화 같잖아, 라고 빈정대는 고상한 사람, 팝콘 무비, 펄프 무비에 일말의 매력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영화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일 테다.

 

마침 다행인지는 몰라도, 필자는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영화를 딱 좋아하는 사람이다! 오우삼과 하드보일드 소설이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킨 '데스페라도', 장르의 벽을 파괴해버린 '황혼에서 새벽까지', 스크림의 신체 강탈자의 침입 버전 '패컬티', 007의 유쾌한 아동버전 '스파이 키드' 등 그의 작품은 적어도 영화를 보는 재미라는 측면에서 필자를 만족시켜주었다. 철학적인 것을 원한다면 언제라도 테리 길리엄의 작품을 보면 되는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로드리게즈에서 테리 길리엄을 찾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영화적으로 비유하자면 '데어데블'+'데스페라도'+'펄프픽션'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데어데블보다 과장된 상상력을 자랑하고 데스페라도보다 현란한 스타일리쉬를 추구하며 펄프픽션보다 과격한 느와르를 지향한다. 참으로 이 영화에 비한다면 데어데블, 데스페라도, 펄프픽션이 점잖게 느껴질 정도니. 이정도면 이 영화가 어떠한 스타일의 영화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에피소드가 엮어진다. 첫번째 이야기 '힘든 이별'은 하룻밤을 같이 한 여신(창녀)의 죽음에 대해 괴력의 사내가 펼치는 복수극이다. 세 에피소드 중 가장 만화적인 상상력이 큰 작품이다. 그만큼 가장 화끈한 에피소드다. 두번째 이야기 '엄청난 살인'은 창녀들로 이루어진 비밀 킬러조직이 한 부패 경관의 죽음을 두고 벌이는 사투다. 칼을 쓰는 미호라는 여자 킬러가 무척 인상적인 에피소드다. 세번째 에피소드 '노란 녀석'은 은퇴를 앞둔 경관이 '악질'에게 납치된 소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으로 나뉘어져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이고 브루스 윌리스가 맡은 하티건이라는 캐릭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각각 그다지 특별하다고 할 만큼 창의적이지는 않다. '펄프픽션'이 그러했듯 이 영화는 아주 창의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승부를 거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50년대 미국 펄프지, 하드보일드 추리물, 비정파 소설 등에서 찾을 수 있는 진부한 복수극, 추격, 암투 등을 역으로 이용하여(참으로 두 감독은 영리한 천재들이다) 식상함을 향수와 애수로 승화함으로써 관객들을 매료시켰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기획 방식을 필자는 두 손 다 들 만큼 축복한다. 조금 경우는 틀리지만 류승완 감독의 작품 중 '다찌마와 리'가 바로 이러한 기획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50년대 펄프지, 싸구려 하드보일드 소설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와 비장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 중심의 스토리라인과 그것을 화려하게 포장해주는 과격한 영상미가 그것을 입증해준다. 엄청난 스타 플레이 만큼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각양각색의 캐릭터들도 이 영화의 볼거리다. 또한 펄프 픽션 구성이라 할 수 있는 시간과 인물의 교차와 재분배 등도 흥미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게 된 것에는 조금 다른 이유도 작용한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만이 가진 '애수'였다. 그 애수란 것은 코넬 울리치의 작품이나 레이먼드 첸들러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애수'다. 겉모양으로 본다면 틀림없이 과격한 폭력물임에도 이 영화에는 전반적으로 도시 속에서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슬픔과 비장미가 묻어난다. 그것은 의외로 고혹적인 미학이다. 피와 복수, 암투와 죽음이 난무하지만 그 모든 사건들과 그 모든 인물들 속에는 그러한 미학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괴물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도시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어찌할 수 없는 고독의 쓸쓸한 뒷맛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죽어가는 이들은 두려움에 비굴해지기보다 씁쓸하게 웃어버린다. 참으로 코넬 첸들러 적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나레이션으로 내뱉는 말들에 많이 매료되었다. 그럴때면 정말로 한 편의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멋진 말들이 많이 나오고 그것은 하드보일드 답게 조금은 거창하고 조금은 감상적이고 아주 많이 비장하다. 그러나 비장미를 필자는 꽤 선호하는 편이고 그래서 브루스 윌리스의 마지막 대사가 무척 가슴에 와닿았다.

 

"늙은이는 죽고, 젊은 여자는 산다. 공평한 거래다!"

 

이 외에도 밑줄 긋고 싶은 대사는 많았다. 일일이 기억해서 기록할 수 없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객관적으로 평하자면 로드리게즈와 타란티노의 팬이라면 필견의 가치가 있는 영화다. 둘 중 한 명의 팬이라고 해도 볼만한 영화다. 데어데블, 데스페라도, 펄프 픽션을 잊지 못하는 팬들에게도 볼 만한 작품이다. 또는 무수한 스타들 중 어느 누구의 팬이라고 해도 볼 만한 작품이다. 특히 브루스 윌리스와 미키 루크는 상당한 호연을 펼친다. 제시카 알바는 굉장히 예쁘게 나온다.(다크 엔젤의 그녀)

 

이 영화는 미국 및 서양 쪽에서 큰 인기를 끈 반면 국내에서는 비교적 저조한 흥행을 기록 중이다. 아마도 국내 정서와는 별로 맞지 않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저변에 녹아있는 배경은 대다수 미국 및 서양 문화의 아이콘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정서가 국내 정서와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안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미국의 팝콘 문화, 하드보일드 펄프 문화를 정서적으로 잘 소화하는 편이라 이 영화에 별 넷 정도는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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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링''주온''디아이'로 이어지는 아시아 '특급 공포'의 뒤를 이어갈만하다,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링, 주온, 디아이, 셔터로... 갈수록 그 힘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이정도면 굉장히 잘 만든 공포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이 오랜 시간동안 구상을 해왔고 '제대로 된 호러'를 보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던데, 과연 그 노력의 면면이 보였습니다.(이미 헐리웃에서 리메이크 결정이 났음)

 

귀신 찍는 카메라, 라는 익숙하지만 신선한 아이디어가 우선 영화 전체를 힘있게 이끌어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피소드와 에피소드가 촘촘한 복선으로 꽉 짜여져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공포영화가 절대적으로 본받아야 할 부분이지요. 조금은 익숙한 설정이라고 할 지언정, 각본상에서 대충 '공포로 때우기'식의 전개가 나오면 영화는 아주 망쳐버리죠! 우리나라 공포영화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최근 유행하는 성공한 '공포영화'들의 '공포장면'을 차용해 오는 것 만으로 어깨에 힘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셔터가 좋았던 이유는 공포영화가 가질 수 있는 매력을 아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몇 몇 장면은 감독의 호러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진짜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었지요) 적어도 감독은 관객이 어느 때에 지루해할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관객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감각적인 연출력을 보였고 '아주 걸작'이 아닌 이상 그정도면 관객은 대게 만족하는 편입니다. 복선은 치밀하게, 반전은 단 한번의 스트레이트로, 플롯은 복잡하지 않고 타이트하게, 공포는 화끈하게, 대략 이정도면 호러 매니아들을 만족시키기엔 충분할 겁니다. 간단해보이지만 사실 이게 쉬운 게 아니죠! 복선은 산만하게, 반전은 시시한 잽으로, 플롯은 복잡하고 늘어지게, 공포는 짜증나게,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기 십상이죠!

 

특히 마지막 반전과(물론 예상 가능한 반전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앞뒤가 딱맞아 떨어지는 반전은 그 자체로 충분한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줌) 함께 이어지는 최후의 공포는 역시 이 작품이 꽤나 수작일 수 있는 이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질질 짜면서 슬픈 호러, 감동 호러를 표방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각본상으로 안 되면 꼭 이런 식으로 한국인의 눈물 정서를 자극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공포 같지 않은 공포, 많이 봐 왔죠...!

 

크게 기대하고 본다면 크게 만족할 만한 영화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편차에 따라 시시하네, 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링, 주온, 디아이도 시시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주관적, 객관적인 평을 종합적으로 아우러 볼때 '셔터' 정도면 상당히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섬뜩했고, 으스스했고, 이야기가 재미있었으며, 무엇보다 귀신이 무서웠으니까요!  

 

-> 남자 주인공이 '리마리오'를 닮았다고들 하던데, 조금 닮긴 닮았더군요. 리마리오가 조금 더 샤프해지면... 검색해보니, 이제 겨우 81년생의 태국 영화계 스타더군요. 어쨌거나 남녀 주인공이 상당히 잘생기고 예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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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등뼈 (2001)

감독 : 기예르모 델 토로

 

한편의 성장소설 같은, 그러나 무섭고 참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린 주옥같은 호러영화!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를 본 것이 도대체 얼마만이던가. 아주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극장가를 돌며 거대한 간판에 붙여진 무시무시한 그림들이 뿜어내던 광기의 아우라에 매혹되곤 했던 그 시절의 황홀한 공포감은 언제부턴가 필자의 마음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실제로 그 때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13일의 금요일''블랙 후라이데이''나이트메어''공포의 여대생 기숙사''버닝''헬나이트''서스페리아''캐리''이블데드''후라이트 나이트''아쿠아리스''더플라이'등의 작품들은 초등학생이라는 신분의 격차를 극복할 수 없어 가슴에 한이 사무쳤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삼류극장에 걸렸을때 미친듯이 달려가 만나보았던 그 때의 흥분이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시간히 흘러 중학생이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극장에서 본 '나이트 메어5'라던가 '바탈리언' 같은 영화들은 더 이상 그 옛날의 짜릿한 흥분 같을 제공하지 않았다. 마치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어. 호러영화가 좋았던 시절은 벌써 지났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재미는 있으되 무섭지 않은 영화들, 이런 영화들에선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 특유의 황홀한 공포감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사탄의 인형' '영혼의 목걸이' 같은 영화에서 필자는 그런 것을 느꼈고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묵직한 공포를 안겨다줄 수 있는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진정 보고싶었다. '스크림''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다'를 그래서 필자는 엄청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들 영화 역시 '재미'는 있으되 '공포'는 없는 영화들이었다. 어째서 공포영화가 안무서워 진 거지, 하는 공허함에 시달려 공포영화에 대한 사무쳤던 감정마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아무튼 요 근래 '식스센스''링''주온''디아더스' 같은 영화가 필자로 하여금 그 잊혀진 황홀한 감각을 되살려주었다. '왓 라이즈 비니스'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근래 개봉한 영화 중에서는 '엑스텐션' 정도면 대 만족이다. '캠퍼스 레전드''컷''발렌타인' 같은 영화들만 안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던 중 제대로 된 물건을 발견한 것이다. '악마의 등뼈'는 이런저런 소식지를 통해 잘 된 영화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국내 미개봉이고 비디오로도 없으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영화였는데 얼마전 드디어 그 '제대로 된 물건'과 조우할 수 있었다.


대략의 줄거리를 말해보라면, 열 두살의 카롤로스가 마을에서 엄청 떨어져있는(차를 타고 가도 왕복에만 한나절이 걸리는) 외딴 고아원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고아원은 원장인 카르멘을 위시로 좌파를 돕는 일종의 비밀 기지로 우파에 발각되는 날에는 처형당할 위기를 안고있다. 그곳에서 카를로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지하실의 유령 '한숨짓는 아이'와 조우하게 되고 '한숨짓는 아이'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라이벌 제이미와도 격돌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간의 마찰은 곧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덮어지고 그들은 '한숨짓는 아이'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그들만의 모험을 강행한다. 그러던 중 좌파의 붕괴가 눈앞에 다가오고, '한숨짓는 아이'는 카롤로스에게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고, 부랑자 카신토는 끔찍한 살육을 계획하며, 고아원에는 걷잡을 수 없는 참담함 공포가 엄습하게 된다.


이 영화의 라스트는 '특별'하다. 그 특별함 속에는 공포와 충격, 스릴과 서스펜스, 감동과 비애, 그리고 참혹함과 의외의 반전이 모두 담겨있다. 스페인 내전이라는 배경이 이 영화의 주제를 어떤 식으로 상징화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가 본 이 영화는 어떤 '유령'에 관한 보고서였다. 그 어떤 '유령'은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두려움, 탐욕, 비밀, 절망, 애수, 원한, 살의, 회한, 그리고 자아찾기까지. 때문에 유령은 곧 인간 내면의 탐구이며 문명 내면의 탐구였다. 정말로 '한숨짓는 아이'의 유령과 둘러싼 이 미스터리 모험담은 그 모든 고찰을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그러한 주제나 사상을 전달함과 동시에 관객의 시각적 재미에도 무척 충실하다는 것이다. '공포'적인 측면에서 감독이 정교하게 만들어낸 몇 몇 장치들은 심장이 요동칠만큼 만족스러웠다. 특히 '한숨짓는 아이'는 호러영화 캐릭터를 다시 정리할만큼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물속을 부유하듯 흐너적거리는 그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은 과연 압권이었다. '공포'적인 측면 외에도 이 영화의 스토리는 너무나 꽉 짜여진 재미를 선사한다. 고아소년이 겪게 되는 여러가지 위기와 마찰은 성장소설적인 재미를 안겨다주고, 인물들간에 펼쳐지는 기이한 관계와 욕망들은 숨막히는 심리 스릴러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전형적인 '유령의 집' 스토리라인을 거부하는 충격적인 시나리오의 힘은 모험 미스터리의 흥미마저 느끼게 하며 그 끝을 쉽게 예측할 수 없게 한다.  


한 마디로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였다. 스페인 내전이라는 무거운 배경을 깔고가면서도 이토록 아기자기한 호러 미스터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다들 별로라고 말하는 '미믹'도 필자의 경우는 꽤 흥미롭게 보았던지라 필자는 이 감독의 '호러적 재능'에 피터 잭슨, 샘 레이미 못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2001년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같은 해 개봉한 '디아더스'에 가려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지는 못했지만 당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그 해 최고의 공포영화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디아더스'와 비해서 한점 뒤떨어질 것이 없는 작품이었다. 어째서 국내 개봉이 되지 않았는지 그것이 의문일 따름.(물론 개봉해도 '디아더스'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수 있었을지 역시 의문이지만. '디아더스'만큼 감칠맛 나는 자극은 없기에)


끝으로 몇 가지 덧붙이자면, 카를로스와 제이미, '한숨짓는 아이' 역을 맡은 아역배우들의 연기가 놀라울 정도로 눈부셨다는 것이다. 연기의 자연스러움(자연스러운 척, 연기 잘하려는 척, 그런 척 하는 것이 아닌 절실하게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애들이었다. 중견 연기자들의 연기력이야 거론해서 무엇하랴, 싶을 만큼 최고였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로베르토 베니니의 장모 역을 맡았던 그 여배우의 장애인 연기도 좋았고 악역을 맡았던 '오픈 유어 아이즈'의 주인공, 에두아르도 노리에가의 연기도 정말 찔러 죽이고 싶을 만큼 완벽했다. 극중 이름은 잘 기억 안나지만 '카르멘'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수호천사적인 노의사 페데리코 루피의 연기는 가장 여운이 남았다. '산티' 역을 맡은 젊은 여배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순수한 영혼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듯한 그 미모가 다른 많은 작품에서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히 그녀가 건네는 '체력 한알'은 정말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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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발간 즉시 100만부가 팔렸다는 호러베스트셀러!!

빨리 구입해서 보고싶다~!

그런데 이 작품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그렇다면 '착신아리'의 원작소설?

'착신아리'도 분명 엄청 히트한 원작소설이 있다고 했으니-

아마도 이 '베이비 메일'이 '착신아리'의 원작소설인가 보다!

전화 메일로 죽음이 찾아온다는 설정 또한 비슷한 것을 보니!!!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는 제대로 된 공포소설인 것 같다.

그래서- 가슴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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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빌 2
Kill Bill: Volume 2

 

 

복수의 끝은 비애!

 

 

타란티노는 분명 90년대가 탄생시킨 최고의 감독이다. <저수지의 개들><펄프픽션>은 천재 감독의 탄생을 알렸고 타란티노 이전 영화, 이후 영화라는 큰 획을 긋게 했다.(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이전은 고루함, 이후는 답습) 서부극, 홍콩 쿵푸영화, 일본 애니메이션과 사무라이 영화, 오우삼의 느와르, 드 팔머의 스릴러등 다양한 문화적, 장르적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만들어낸 타란티노는 기존의 장르 관습을 해체, 재구성 하면서 잔혹하고 감각적인 테크닉으로 포장하며 헤모글로빈을 분출케 했다.

그런 그가 <킬빌>이라는 신작을 내놓았을 때 필자는 타란티노로 하여금 두 가지 사실을 짐작하게 했다. 우선 그가 전작인 <재키 브라운>으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었을 것이라는 것. 또 한 가지는 그렇기 때문에 <킬빌>을 만들어 보여 복수를 하고 싶었다는 것. <재키 브라운>은 타란티노가 밝혔듯이 <저수지의 개들><펄프픽션>보다 재미 없는 영화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가장 만들고 싶어 했던 영화였다. <재키 브라운>은 <저수지의 개들><펄프픽션>이 보여준 시간의 재구성과 거미줄같은 캐릭터의 구성이 한층 치밀하고 복잡해진 영화였다. 전작들에서 보여진 현란한 잔혹 영상미가 줄어든 대신 서로 얽히고 설키는 뒷골목 인생들의 시니컬한 스토리가 꼼꼼하게 스케치된다. 타란티노의 많은 재능 중 필자가 가장 최고로 꼽고 싶은 것은 놀라운 입담이다. 그에 의해서 창조되는 무수한 캐릭터들은 그들이 내뱉는 불꽃튀는 대사들의 향연으로 생명력이 결정되어질 정도다.(헐리웃 내에서 그의 대사 처리 능력은 '특A급'으로 정평이 나있다. <크림슨타이드>의 경우 토니 스콧 감독이 완성된 각본을 일부러 타란티노에게 손보게금 했을 정도. 물론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크림슨 타이드>는 보석같이 빛나는 대사들의 향연으로 품격이 올라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뒷골목 3류 인생들의 저급한 농담에서부터 시니컬한 비애까지 훤히 꿰차고 앉아 자유자재로 캐릭터를 뽑아낸다.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들은 스스로 살아숨쉬고 스토리를 만들어나갈 정도다. 그러한 살아 숨쉬는 캐릭터와 꽉찬 스토리의 힘은 <재키 브라운>에서 가장 미끈하게 뽑혀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키 브라운>은 타란티노가 가장 애착이 갈만한 작품이고 그래서 가장 타란티노 다운 작품인 것이다. 타란티노는 <재키 브라운>의 아쉬움을 6년 후 마침내 <킬빌>로 풀어낸 것이다. 정말로 그가 하고 싶어서 온 몸이 근질근질했던 이야기, <재키 브라운>으로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한 그가 몸살 날만큼 보여 주고 싶었던 이야기, 그 이야기의 애너지를 <킬빌>로 분출시킨 것이다.

그는 <킬빌>에서 <재키 브라운>과의 차이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바로 승부수가 되었다. 전작이 관객과의 소통에서 실패를 한 원인을 그는 재빠르게 캐취해낸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만의 전매특허 헤모글로빈의 시가 부족했던 탓이리라. 분명 <킬빌>은 <재키 브라운>과 일면 닮은 부분이 있다. 느와르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 그 여자 주인공이 거대한 세력에 휘둘리면서도 재치있고 당당하게 맞선다는 것.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느와르, 이것이야말로 타란티노가 오래도록 가슴 속에 품어왔던 이야기일런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완성된 <킬빌>을 두 조각으로 나눈다. 1부에서는 관객들이 자신에게서 그토록 목말라하던 헤모글로빈의 시를 현란한 테크닉으로 마음껏 분출시킨다. 피가 낭자하는 청엽옥의 결투씬, 오렌 이시이의 머리가 날아가는 충격영상으로 관객들의 얼을 빼놓은 후 그는 살며시 2부를 내보인다. 빌은 왜 그녀를 죽여야만 했는가, 그녀는 왜 빌을 죽여야만 하는가, 빌은 누구이고, 그녀는 누구인가? 퍼즐처럼 흩어져 있던 비밀의 조각들이 하나 둘씩 끼워지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타! 란티노는 <킬빌 1>을 통해 관객들을 강렬하게 끌어당긴 후 비로소 <킬빌 2>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를 완성시켜 나간다. 자극적인 영상미에 이끌려 흘려보낸 무수한 수수께끼들의 답은 오직 <킬빌 2>에 있는 것이고 관객들은 '상'권을 읽은 지금, 반드시 '하'권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 챕터를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

이러한 전략은 탁월했다. 타란티노는 다시한번 장르적 특성을 활용해 자유자재로 관객들을 쥐고 흔든다. 전편에 암시되어졌던 브라이드의 살아있는 딸이 등장하고, 어째서 빌이 브라이드를 암살하려 했는지에 대한 배경이야기가 나오고, 브라이드가 페이 메이로부터 무술을 전수받는 과정이 나오고, 브라이드가 빌을 떠나게 된 이야기, 그리고 빌과의 최후의 대결이 그려진다. 재미있는 것은 숨겨진 사연들에 대한 타란티노만의 놀라운 입담이다. 술집에서 해결사 노릇이나 하며 보스로부터 온갖 구박을 당하는 3류 건달로 전락한 버드의 사연이나, 한쪽 눈을 잃게 된 엘 드라이버의 사연, 브라이드가 조직을 떠나게 된 사연 등. 그들이 뿜어내는 대화의 힘은 전편의 청엽옥 결투씬 만큼이나 압권으로 와닿는다.(그만큼 살아있는 대사의 힘은 너무나 훌륭했다) 특히 빌의 사연이 절정을 이룬다. 잔인무도하고 얼음같이 차갑게만 비쳐졌던 전편의 이미지를 반전시키는 애수짙은 빌의 모습은 가히 놀랍다. 브라이드의 결혼식장에 악기를 연주하며 나타난 빌, 자신을 찾아온 옛여인 앞에서 딸과 함께 노는 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브라이드를 향해 모든 진심을 얘기하는 빌, 그러한 빌의 진면목들은 전편의 관객들을 정서적으로 공략한다. 이처럼 계산된 감독의 연출에 관객들은 보기좋게 빠져들며 빌과 브라이드 두 캐릭터 누구의 손도 들어줄 수 없게 되버린다. 결국 피할수 없는 최후의 대결은 운명처럼 다가오고 복수의 끝이 남긴 가슴저린 비애만이 관객들의 정서를 지배한다. 그리고 대서사시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강렬했던 두 권짜리 펄프 픽션은 막을 내린다.

우리가 <킬빌 2>에서 기대할 것은 청엽옥 결투나 오렌 이시이와의 진검승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1편을 한번더 보며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 복수의 서사시는 vol 1과 vol 2 즉, 상, 하권으로 나누어진 하나의 이야기다. 총 10개의 챕터를 가진 한 편의 소설이다.(장르는 느와르 혹은 하드보일드쯤) 싸구려 소설 제목 같은 '피의 복수를 다짐한 여자'가 있고 그녀의 잔혹한 복수극이 있고 후반부로 갈수록 숨겨져 있던 비밀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무수히 읽어 보았음직한 이런 류의 소설들, 그 틀을 우리는 알고 있다. 타란티노 역시 알고 있고 그는 그러한 소설들을 헤밍웨이나 포크너보다 숭배시한다. 이점을 잊지 말자. 우리모두 헤밍웨이나 포크너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을 원했던 것이다. 그는 그 장르에 충실했다. 혀를 내두르는 잔혹함으로 책장에 몰입하도록 만들었고 유려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과시하며 다음 챕터가 끊임없이 궁금하도록 만들었다. 챕터가 거듭될수록 비밀은 밝혀지고 최후의 대결만이 남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을 그는 적재적소에 배치한 음악과 현란한 영! 상미 감각적인 테크닉으로 포장했다. 이제 <킬빌 2>에서 복수는 마침표를 찍었고 우리들은 vol 3이 나오기를 혹은 그의 신간이 출간되기만을 기다려야 할 테다.

장르를 충실하게 활용하면서 그것에 변칙을 가하는 것, 그러면서 그것을 멋지게 포장하는 것, 이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공식을 타란티노만이 능숙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그의 펄프 픽션은 언제나 유쾌하고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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