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시티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작품

장르 : 액션 스릴러 호러 판타지 러브 로망

(다섯 개 만점)

 

액션과 폭력으로 점철된 펄프 느와르! 그리고... 판타지와 비애!


지금부터 거론되는 스타들...! 브루스 윌리스, 미키 루크, 제시카 엘바, 클라이브 오웬, 닉 스탈, 파워스 부스, 룻거 하우어, 일라이저 우드, 로자리오 도슨, 베니치오 델 토로 제이미 킹, 드본 아오키, 브리터니 머피, 마이클 클락 던칸, 칼라 구지노, 알렉시스 블레델, 조쉬 하트넷 마리 쉘톤,  마이클 매드슨...! 이 모든 스타들이 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비현실적인 가능성! 이들 몸값만 합쳐도 블록버스트 한 편의 제작비가 나온다는 계산은 이러한 캐스팅이 도저히 나올 수 없다고 합리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현실적인 캐스팅을 합리적으로 처리한 두 괴물이 있었으니 그들은 헐리웃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영화 악동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두번째 에피소드를 연출한 타란티노는 로드리게즈와의 우정을 과시하듯 단돈 1달러의 연출료만 받았다고 한다! 과연 영화광답다!

(이제부터 시작될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온전하게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리뷰를 읽지 말것!)

 

기본적으로 씬시티는 미국의 삼류 펄프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녹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치게 황당무계하고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마치 만화처럼! 아닌게 아니라 원작은 프랭크 밀러의 만화다! 미국 개봉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북미지역에서만 7천만불이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평단의 평도 무척 호의적이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가 일찍이 포기한 것 처럼보이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바로 대담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비전(vision)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화려한 디지털 영화. 디지털 시네마 기술과 영화제작의 예술, 양쪽 측면 모두에서 영화는 한단계 점프한다.""이 영화야 말로 순수한 펄프 메타픽션이다." 등의 찬사가 이어졌던 것이다!

 

개인적인 평을 내려보자면 위의 화려한 수식들은 이 영화가 가진 만화적 특성처럼 좀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실제로 또 과장됨을 미덕으로 하는 영화기에 과장됨을 미덕으로 찬사할 법도 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이제껏 보지 못한 화려하고 색다른 영화임에는 틀림없고 그것은 창작의 관점에서 분명 환영할 만한 사건이다. 스타일리쉬의 발전도 철학적 주제의 숭고함 만큼이나 영화 창작의 중요한 일부분이니까! 모든 영화가 오슨 웰즈나 페데리코 펠리니 같아야 훌륭하다는 법은 없으니까.

 

영화는 일차적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고 본다. 눈과 귀를 지루하게 하는 대신 네 인생에 무언가 커다란 철학을 던져주었지 않느냐, 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다. 눈과 귀도 즐겁고 무언가 커다란 철학을 던져준다면야 두말할 것도 없이 걸작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재미없는 영화를 만들어놓고 그래도 주제가, 철학이, 사상이 들어가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은 팔리지 않는 소설을 쓴 작가들이 연합해서 만들어 낸 '핑계'에 다름없다고 본다! 그네들은 이렇게 말할테지. 그래도 우리는 '순수'한 '문학'을 한다고! 웃기는 소리다! 그들은 다만 자기 만족을 위한 개인적인 '학문'의 '수순'을 밟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책상서랍속의 일기장이나 필사본과 같은 것이다.

 

각설하고, 이 영화는 재미있다. 시종일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반드시 제공해야할 일차적인 서비스, 관객들의 돈과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는 '재미'를 이 영화는 확실히 만족시켜 준다. 그래서 일단 별 세 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이쯤에서 이 영화가 주는 거부감에 대해 일견을 가질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말해보겠다. 블랙 느와르를 싫어하는 사람, 하드고어 잔혹 호러의 폭력 자극에 비위가 상하는 사람, 오락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도덕적 주제가 남기를 원하는 사람, 현란한 스타일리쉬 영상에 눈이 아픈 사람,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며 저건 너무 만화 같잖아, 라고 빈정대는 고상한 사람, 팝콘 무비, 펄프 무비에 일말의 매력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영화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일 테다.

 

마침 다행인지는 몰라도, 필자는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영화를 딱 좋아하는 사람이다! 오우삼과 하드보일드 소설이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킨 '데스페라도', 장르의 벽을 파괴해버린 '황혼에서 새벽까지', 스크림의 신체 강탈자의 침입 버전 '패컬티', 007의 유쾌한 아동버전 '스파이 키드' 등 그의 작품은 적어도 영화를 보는 재미라는 측면에서 필자를 만족시켜주었다. 철학적인 것을 원한다면 언제라도 테리 길리엄의 작품을 보면 되는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로드리게즈에서 테리 길리엄을 찾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영화적으로 비유하자면 '데어데블'+'데스페라도'+'펄프픽션'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데어데블보다 과장된 상상력을 자랑하고 데스페라도보다 현란한 스타일리쉬를 추구하며 펄프픽션보다 과격한 느와르를 지향한다. 참으로 이 영화에 비한다면 데어데블, 데스페라도, 펄프픽션이 점잖게 느껴질 정도니. 이정도면 이 영화가 어떠한 스타일의 영화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에피소드가 엮어진다. 첫번째 이야기 '힘든 이별'은 하룻밤을 같이 한 여신(창녀)의 죽음에 대해 괴력의 사내가 펼치는 복수극이다. 세 에피소드 중 가장 만화적인 상상력이 큰 작품이다. 그만큼 가장 화끈한 에피소드다. 두번째 이야기 '엄청난 살인'은 창녀들로 이루어진 비밀 킬러조직이 한 부패 경관의 죽음을 두고 벌이는 사투다. 칼을 쓰는 미호라는 여자 킬러가 무척 인상적인 에피소드다. 세번째 에피소드 '노란 녀석'은 은퇴를 앞둔 경관이 '악질'에게 납치된 소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으로 나뉘어져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이고 브루스 윌리스가 맡은 하티건이라는 캐릭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각각 그다지 특별하다고 할 만큼 창의적이지는 않다. '펄프픽션'이 그러했듯 이 영화는 아주 창의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승부를 거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50년대 미국 펄프지, 하드보일드 추리물, 비정파 소설 등에서 찾을 수 있는 진부한 복수극, 추격, 암투 등을 역으로 이용하여(참으로 두 감독은 영리한 천재들이다) 식상함을 향수와 애수로 승화함으로써 관객들을 매료시켰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기획 방식을 필자는 두 손 다 들 만큼 축복한다. 조금 경우는 틀리지만 류승완 감독의 작품 중 '다찌마와 리'가 바로 이러한 기획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50년대 펄프지, 싸구려 하드보일드 소설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와 비장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 중심의 스토리라인과 그것을 화려하게 포장해주는 과격한 영상미가 그것을 입증해준다. 엄청난 스타 플레이 만큼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각양각색의 캐릭터들도 이 영화의 볼거리다. 또한 펄프 픽션 구성이라 할 수 있는 시간과 인물의 교차와 재분배 등도 흥미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게 된 것에는 조금 다른 이유도 작용한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만이 가진 '애수'였다. 그 애수란 것은 코넬 울리치의 작품이나 레이먼드 첸들러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애수'다. 겉모양으로 본다면 틀림없이 과격한 폭력물임에도 이 영화에는 전반적으로 도시 속에서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슬픔과 비장미가 묻어난다. 그것은 의외로 고혹적인 미학이다. 피와 복수, 암투와 죽음이 난무하지만 그 모든 사건들과 그 모든 인물들 속에는 그러한 미학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괴물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도시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어찌할 수 없는 고독의 쓸쓸한 뒷맛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죽어가는 이들은 두려움에 비굴해지기보다 씁쓸하게 웃어버린다. 참으로 코넬 첸들러 적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나레이션으로 내뱉는 말들에 많이 매료되었다. 그럴때면 정말로 한 편의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멋진 말들이 많이 나오고 그것은 하드보일드 답게 조금은 거창하고 조금은 감상적이고 아주 많이 비장하다. 그러나 비장미를 필자는 꽤 선호하는 편이고 그래서 브루스 윌리스의 마지막 대사가 무척 가슴에 와닿았다.

 

"늙은이는 죽고, 젊은 여자는 산다. 공평한 거래다!"

 

이 외에도 밑줄 긋고 싶은 대사는 많았다. 일일이 기억해서 기록할 수 없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객관적으로 평하자면 로드리게즈와 타란티노의 팬이라면 필견의 가치가 있는 영화다. 둘 중 한 명의 팬이라고 해도 볼만한 영화다. 데어데블, 데스페라도, 펄프 픽션을 잊지 못하는 팬들에게도 볼 만한 작품이다. 또는 무수한 스타들 중 어느 누구의 팬이라고 해도 볼 만한 작품이다. 특히 브루스 윌리스와 미키 루크는 상당한 호연을 펼친다. 제시카 알바는 굉장히 예쁘게 나온다.(다크 엔젤의 그녀)

 

이 영화는 미국 및 서양 쪽에서 큰 인기를 끈 반면 국내에서는 비교적 저조한 흥행을 기록 중이다. 아마도 국내 정서와는 별로 맞지 않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저변에 녹아있는 배경은 대다수 미국 및 서양 문화의 아이콘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정서가 국내 정서와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안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미국의 팝콘 문화, 하드보일드 펄프 문화를 정서적으로 잘 소화하는 편이라 이 영화에 별 넷 정도는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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