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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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 그런데 너 왜 우는 거니?

제가 넘어졌는데요. 친구들이 저를 두고 가버리잖아요.

친구? 네 친구들? 그 애들을 방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아트 슈피겔만의 그래픽 노블 '쥐'는 만화책 사상 유일하게 퓰리처상 수상 작품이다. 사실 이 만화는 오래전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책 표지가 독특해서 집어 들었다가 빽빽한 글자와 칙칙한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내려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책표지에는 '화려한 찬사' 문구로 가득했다. 재미는 없어도 뭔가 훌륭한 만화겠거니, 생각만 했다. 그러다 최근 '쥐'가 합본판으로 나왔다는 걸 알고 다시 이 책에 관심이 갔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만화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완전히 빠져들었다. 책장 줄어드는게 이토록 아까운 적은 또 오랜만이었다.


작가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 블라덱은 아우슈비츠에서 실제로 살아남은 생존자다. 작가는 그런 아버지에게 그때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쥐'를 완성했다. '쥐'는 아버지가 겪은 유태인 학살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액자구성이다. 재미있는 것은 지옥 같은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부자 사이에도 묘한 기류로 남아 꿈틀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작가의 메시지이기도 하고, 또 작가의 심정이기도 하다. 피의 시간을 관통한 '그것'은 형태만 변할 뿐 그 속에 깃든 혼은 그대로 남아 현재까지 떠돈다. '그것'이 인물이 되었든, 이념이 되었든, 역사 그 자체가 되었든- 뿌리 깊숙이 스며든 피비린내는 모든 것을 병들게 만든다. 피의 역사, 그후 남겨진 삶은 그토록 피폐한 것이다.(우리도 충분히 겪고 있는 시간이다) 


아버지 블라덱은 나치 치하에서 지옥을 열두 번도 넘게 경험했다. 위기의 순간마다 그를 구한 것은 그의 뛰어난 머리와 운이다. 사실 운이 80퍼센트 이상이다. 그래서 그는 살아남았음에도 마음 어딘가가 텅 빈듯하다. 이미 가슴엔 수백 발도 넘게 총알구멍이 나 있다. 그토록 너덜너덜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아들에게로 옮겨진다. 전염병처럼... 작가는 현재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아버지의 삶을 기록하고, 만화로 그렸다. 그래도 그는 현재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작가는 말한다. 차라리 아버지와 함께 그 고통을 겪었다면 모든 게 더 분명해지지 않았을까...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을 한 가지 메시지로 축소시키고 싶지 않다. 누구든 원하는 메시지로 이해하길 바랐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아버지의 삶을 아들이 기록한 것이지만, 굉장히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담담하게 그려낸다.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지옥을 경험한 아버지가 흑인에게 편견을 가진 인물임을 감추지 않는다. 이는 일반적인 만화가 가진 통념적 가치관을 무너뜨린다. 가해자와 피해자- 우리는 결국 가해자가 악이고 피해자가 선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피해자 역시 언제라도 가해자의 시선으로 다른 인간을 차별하고 매몰차게 대할 수 있듯, 가해자라고 반드시 절대 악이라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선악의 가치 기준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작가가 우화적으로 그린 쥐, 고양이, 개, 돼지라는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진짜 모습에서 괴물도, 피의 역사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만이 정의라 자처하며,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선악의 가치 기준도 손바닥 엎듯 바꿀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인건 틀림없지만, 그러한 메시지보다- 책 속 스토리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놀라운 가독성이 이 작품의 최대 매력이다. 억압받는 유태인들을 쥐로 그린 것은 '신의 한수'였다. 차라리 인간의 얼굴을 한 유태인이 죽었다면 그렇게 큰 비애감이 들지 않았을텐데, 묘하게도 귀여운 쥐로 의인화한 이들이 고통받고 죽어가자 더욱 씁쓸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광기의 역사가 그토록 많은 쥐들을 아우슈비츠 굴뚝 연기로 사라지게 했다. 그렇게 사라진 연기는 비가 되어 피눈물처럼 대지를 적신다. 피눈물이 흥건한 역사의 현재 페이지를 걷는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p.s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데도 유태인 학살을 다룬 그 어떤 영화보다 더 큰 충격과 전율, 비애와 감동을 느꼈다. 아마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두 영화 모두 이 만화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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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ehyun 2020-03-29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쥐를 워낙 싫어해서 그 자자한 명성에도 책 읽는 내내 마주칠 쥐그림에 집어 들지 못 한 책입니다. 명성대로 좋은 책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