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 볼만한 공포비디오 10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여름 밤에 보는 공포영화의 묘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죠!!

이미 이 곳을 통해 볼만한 공포영화들을 소개했던 관계로 중복되는 것도 있을 겁니다~~


1. <디 아더스> -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메가 히트작~ 공포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자 진정한 공포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천재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놀라우리 만치 정교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각본은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명시나리오지요~! 창백한 표정연기의 니콜키드만의 열연이 돋보이는 고품격 호러무비입니다. 회자가 되었던 엄청난 반전과 심장을 멎게하는 충격적인 라스트가 압권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이라면 꼭 감상해보세요!!


2. <세션 나인> - 요 근래 제가 본 공포영화 중 최고작입니다! 폐허 직전의 정신병동에서 벌어지는 으스스한 공포와 다섯 남자의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치열한 심리묘사가 일품입니다. 젊은 신예 브래드 앤더슨 감독의 데뷔작으로 이제 껏 나온 공포물들과는 다른 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감독의 순수한 열정이 높이 평가될만한 작품입니다. 실제로 해외 언론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저예산 공포영화가 추구해야할 표본을 제시했습니다. 전혀 다음 상황을 쉽사리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탄탄하고 으스스한 각본의 힘은 치밀하게 깔아놓은 복선의 묘미와 함께 라스트의 이르러 소름끼치는 반전과 전율을 선사합니다!! 감상하는 이에 따라서 자칫 지루하다고 느낄수도 있겠으나 다섯 남자의 팽팽한 심리전과 귀신들린 정신병동의 으스스한 분위기에 빠져들다 보면 잔혹하리만치 쇼킹한 라스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3. <할로윈 2> - 약 1년 전쯤에 무삭제 오리지널 판이 출시되어졌습니다. 북미지역에서만 7천만불 이상의 흥행수익을 기록한 78년 작 <할로윈>의 오리지널 속편입니다. <할로윈>의 라스트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사건전개가 1편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호감이 갈 만합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로리(제이미 리 커티스)와 로리를 좇아 병원내로 침입하는 부기맨과의 사투가 압권입니다. 지금 보면 다소 밋밋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오는 허접한 3류 호러물들과는 느낌부터 틀립니다. 시리즈 중 <할로윈>의 명성을 유일하게 이을만한 작품이며 1편 다음으로 가장 성공한 영화입니다. 정통 슬래셔 무비를 즐기시는 분들이나 제이미 리 커티스의 팬이라면 필견의 작품입니다!!

4. <언브레이커블> - 정통 호러물은 아니지만 <식스센스>의 신화를 창조한 샤말란 감독의 작품이라 오싹한 전율과 독특한 스릴러의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전복된 열차에서 외상하나 없이 홀로 살아남은 자의 비밀이라는 기발한 설정의 도입부는 관객들을 영화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력이 있습니다. 천재 각본가답게 사건 전개는 예측불허로 치닫고 강렬한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지는 라스트와 이어지는 최후의 반전까지 시나리오의 힘은 빛을 발합니다. <식스센스>에 비한다면 턱없이 약한 반전이지만 기발한 설정과 아무도 눈치 못채게 깔아놓은 복선의 묘미가 돋보이는 최후의 반전은 역시 반전의 대가다운 솜씨였습니다. 우리가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는 슈퍼맨따위의 영웅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과 그 탄생배경에 대한 기막힌 가설이 놀라우리만치 세심한 감독의 연출력과 더불어 스릴러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걸작입니다~


5. <왓 라이즈 비니스> - 히치콕 풍의 스릴러에 첨단 그래픽을 도입해서 완성한 호러스릴러. 미스테리와 호러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마지막까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여름 밤에 보기엔 더없이 좋을 잘만들어진 공포영화.


6. <후라이트 나이트> - 흡혈귀 영화에 신세대적인 감각을 도입한 하이틴 호러물. 초등학교 3학년때 극장에서 보고 충격먹은 영화입니다. 특히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서 웃고 있는(장난이 아니고 정말로 귀 밑까지 찢어진...) 공포스런 포스터가 무척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유쾌하면서도 무시무시하게 잘만들어진 최고의 흡혈귀 영화. 이웃으로 흡혈귀가 이사오게 되고 우연히 그 흡혈귀의 정체를 알게된 고교생 찰리의 고군분투,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설정입니까~ 요즘은 정말 이런 공포영화 한 편이 아쉽습니다~!


7. <여곡성> - 한국형 호러의 최고 걸작. 지금 보아도 충분히 먹혀들 끔찍한 귀신분장은 정말 압권입니다! 순수 국산 호러가 나가야 할 방향~!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말이 더할나위 없이 딱맞는 공포영화 입니다. 언젠가는 리메이크 되어져 공포의 유행코드로서 작용할 작품. (김지운 감독의 차기작 <장화 홍련>에서 벌써 이러한 조짐이 보이고 있음)


8. <나이트 메어> - 당연히 1편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악몽속을 헤매이는 듯한 공포스런 초반부와 <스크림>식의 유쾌한 후반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웨스 크레이본 최고의 걸작. 슬래셔 무비의 변종을 알렸으며 프레디라는 가공할만한 엽기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킨 대단한 작품.


9. <바탈리언> - 천재 감독의 탄생을 알린 기발한 공포영화. 흐느적 거리는 좀비가 아닌 굉장한 순발력을 자랑하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향연. <리빙 데드> 시리즈의 1편이며 시리즈 중 최고~! 유쾌한 호러를 지향하는 분들에게 적절한 호러물~!


10. <링2> - 너무나도 유명한 <링>의 오리지널 속편. 1편에 비해 신선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순간순간 오싹한 전율을 선사하는 명장면들로 가득합니다. 나카다 히데오, 스즈키 코지 콤비의 기지가 돋보이는 미스테리 심리호러~!


이상 10편을 소개해 드렸는데 기회가 된다면 숨겨진 작품들 중 정말 괜찮은 작품들로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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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영웅전설 - 박민규

오후 네시 - 아멜리 노통

사라진 시간 - 빌 벨린저

나이트메어 룸 - 스타인

카스테라 - 박민규

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선물 - 스펜스 존스

오 고독이여 - 니체

두려움과 떨림 - 아멜리 노통

사랑보기 - 릴케

하루키 단편걸작선

꿈꾸는 인큐베이터 - 박완서 외

20세기 소년

동경 바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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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계의 대모(代母)! FM영화음악의 정은임

 

불현듯, 울먹이며 마지막 인사를 하던 마지막 방송이 귓가에 아른거리네요~

 

그날 방송에서 정은임 아나운서는 자신의 '내 인생의 영화' 5편을 소개했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주제곡 '마지막 인사'를 내보냈죠~

 

내가 웃는 모습을 보여 줄게

너도 웃으며 나를 봐

내가 우는 모습을 보인 데도

웃으며 안아 줘

한동안 기쁨이 없었지

슬픔이 없었던 것처럼

내가 웃는 모습을 보여 줄게

너도 웃으며 나를 봐

내가 우는 모습을 보인 데도

웃으며 안아 줘

 

"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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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와 막대사탕을 든 희극지왕

 

 

성치 형님의 영화는 무.조.건. 극장에서 봐 주어야 한다,는 '주성치 열혈 매니아'로서 이번 신작을 열렬히 기다려왔었다. 매스컴을 통해 주성치가 '소림축구' 이후 한 단계 업그래이드 된 대작 '쿵푸허슬'로 3년만에 돌아온다는 기사를 접했을때 우리 시대 최고의 '희극지왕'이 이번에는 과연 어떤 '물건'을 만들었을까 하는 호기심에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더구나 그가 그의 인생이라고 표현했던 '쿵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니 그 기대치는 하늘을 찔렀다.  

내한과 함께 개봉된 '쿵푸허슬'은 성치매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지난주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2년전 국내 개봉한 '소림축구'의 오프닝 성적을 능가하는 수치다. '소림축구'가 최종적으로 78만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아마 '쿵푸허슬'이 그 기록을 깨지 않을까 싶다. 이미 홍콩에서는 5천5백만 홍콩달러를 돌파하며 '무간도'의 흥행기록을 넘보며, 나아가서 역대 최고인 '소림축구'의 6천만 홍콩달러 기록까지 갈아치울 기세다. 물론 대만, 중국에서도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기록을 다시 쓰는 중이다. 아울러서 3월에는 전미 1500개극장에서 일제히 개봉한다고 하니 헐리웃 박스오피스도 귀추가 주목된다.(이번에는 성공하리라고 본다!)

이야기로 들어가서,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설픈 건달 싱은 구태여 '악당'이 되고자 한다. 이유는 '선'해서는 결코 세상의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라도 그의 이러한 가치관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처가 아닌 이상. 때문에 악인인 척 하는 싱은 사실 진정한 악인이라 할 수 없다. 그저 현대인을 대변하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악당 '도끼파'의 일원이 되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부와 명예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포부는 '돼지촌'이라는 빈민마을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별볼일 없어보였던 돼지촌에는 사실 숨은 고수들이 강호를 떠나 조용히 살고 있었던 것이다. 벌집을 들쑤신 꼴이 된 싱은 약삭빠르게 '도끼파'에 붙게 되고, 마침내 '돼지촌' 고수 대 '도끼파'의 전면전이 시작된다. '도끼파'는 '돼지촌'을 멸하기 위해 계속해서 킬러들을 보내고 건드려서는 안 되는 절대 악 '야수'까지 불러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싱은 어린 시절, 자신이 구해주었던 벙어리 소녀와 재회를 하게 되고, 무공의 참 진리도 깨닫게 되어, 잠자고 있던 내공에 눈을 뜨게 되고, 여래의 경지에까지 오르게 된다.

시각적 효과는 '소림축구'에서 몇 단계 업그래이드 되었다. '쿵푸'액션은 이제껏 보아왔던 '최고'의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롬비아'측의 막대한 제작비가 낳은 현란한 CG와 '원화평', '홍금보' 콤비의 무술 액션이 환상적 조화를 이루어내니 현존하는 '최고'의 '쿵푸액션'이 나올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눈과 귀의 즐거움은 충만했다. 생각보다 '액션'은 엄청 거대하고 오래도록 이어졌다. 대신 상대적으로 '코믹'이 조금 줄어든 것은 아쉬움이었다. 또한 주성치의 전작들에 비해 '주성치'의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움이었다. '액션'이 '주성치'마저 밀어낸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영화들이 주성치의 압도적인 원맨쇼였다면 이번에는 골고루 분배를 한 주성치의 전략이자 배려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필자가, 주성치의 매니아가, 주성치의 영화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 '쿵푸허슬'에는 있었다. 3년간의 기다림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희극버라이어티로 그는 팬들에 보답을 한 것이다. 확실히 그는 누가 뭐래도 이 시대 '최고'의 희극지왕이다. 이번 영화에서 필자가 정말 좋았던것은, 개인적으로, 벙어리 소녀와의 짧지만 강렬한 여운이 남는 로맨스였다. 특히 극 중반에 우연히 마주친 그들이 서로를 알아보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명.장.면.이.었.다. '구원자'소년이 '약탈자'건달이 되어 나타난 그 절묘한 상황에서의 물결치는 듯한 음악과 영상의 조화는 말못하는 벙어리 소녀의 애틋한 심정만큼이나 보는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적셨다. 주성치가 정말로 '감동'의 깊이를 조절을 할 줄 아는 명장의 반열에 들어섰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패러디 장면들도 영화를 보는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극 초반에 '소림축구'를 의식한 듯한 대사나, 김용의 소설 '신조협려'를 패러디한 설정들, 뮤지컬 고전 '탑햇'의 명장면을 연상시키는 극적인 재회장면. 그러나 무엇보다 압권은 '샤이닝'의 한 장면을 '공포'스럽게 패러디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개인적으로 과연 주성치다운 허를 찌르는 발상이었다, 라고 생각한 장면. 주성치가 호러영화에도 관심을 가졌을 줄이야, 하는 감탄과 함께)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악인'이 어떻게 '선인'으로 거듭나느냐 하는 이야기다. 그것을 주성치는 '도끼'와 '막대사탕'으로 대치시켜 절절하게 '인생'이야기를 그려낸다. '소림축구'는 물론 '식신''파괴지왕''희극지왕'등에서 무수히 다루어졌던 힘없고 나약한 '서민'들의 애환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처절함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진실한 사랑이 이 영화속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도끼'를 주형하는 금속액처럼 뜨겁고 강렬하게, '막대사탕'을 만드는 설탕과 색소처럼 달콤하고 아름답게!

이런 영화라면 정말로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세속의 '악'에 찌든 현대인 누구라도 '싱'처럼 아련히 간직하고 있을 어린 시절의 순수한 '선'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마법같이 자극하는 '라스트'의 특별한 여운은 세상살이에 시달리는 '삭막한 가슴'에 뿌려지는 '단비'같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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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리스도의 수난이 보여준 무서운 감동!

 

 

우선 이 영화의 대한 개인적인 평을 하기에 앞서 몇 가지 밝혀두고 싶은 것은 필자가 종교에는 완전 문외한이라는 사실과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종교적인 관점에서가 아닌 영화 자체의 작품적인 면만을 두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제부터 쓰게 될 영화 평으로 인해 종교적인 공방이 일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정치와 종교만큼 대립간의 접점을 찾기 힘든 문제도 없을 것이니, 모두 자신의 믿음을 마음속으로 깊이 간직하고 그것에 신념을 가지면 그만일 것이다)

예수 최후의 12시간을 다룬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이제껏 만들어진 무수한 종교영화와 분명 판이하게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이 영화만의 고유한 장점이 될 수도 비난의 여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영화 개봉 이후 끊임없이 논란의 축이 되어 온 여러 문제들, 이를테면 반유대적 영화라느니, 배경 설명의 부재라느니, 성서의 왜곡이라느니 등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도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앞서 말했 듯 그런 문제들에 입장을 밝힐 만큼 필자 스스로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부족한 지식으로 나름의 입장을 내세워 본들 속사포같은 반박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입장 표명은 별로 재미도 관심도 없다.

그러니 이제 불필요한(혹은 필자가 잘 알지 못하는) 외적 파장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멜 깁슨의 세 번째 연출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고어 영화를 방불케하는 잔혹함으로 가득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못할 사실일 것이다. 영화는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된 예수가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까지 12시간의 수난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가시 회초리와 채찍으로 멀쩡했던 예수의 몸이 서서히 짓이겨지고 피로 물들며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여과없이 내보낸다. 또 거대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도중 계속되는 매질과 고문, 마침내 당도한 언덕 위에서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고 창에 찔려 확인 사살까지 당하는 참혹한 모습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예수의 잔혹한 수난을 보여주는 것에만 영화는 80퍼센트 이상을 할애하며 관객들을 괴롭게 한다. 그 시각적 잔혹함에서 오는 살떨림은 필자가 본 그 어떤 강도높은 고어 영화보다 더 잔인하고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관객들은 그러한 장면들에 압도되어 예수의 고난에 감화되어 갈 수 밖에 없다. 예수의 살점이 파헤쳐질때마다 관객들의 마음 속에도 무시무시한 금속 채찍이 날아와 박힌다. 피와 살점이 엉겨붙은 예수의 몸은 그 자체로 관객들, 즉 관망자들을 죄인으로 만들며 그들(죄인들)을 바라보는 죽어가는 예수의 눈빛은 고통스런 속죄의 대못으로 치환되어 우매한 군중들의(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심장을 파고든다.

여기서 멜 깁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는 헐리웃 내에서 3천만 불에 달하는 최고의 몸값을 받는 특급 배우이다. 동시에 성공한 감독으로서 헐리웃 시스템을 주도하는 최고의 파워맨 중 한 사람이다. 필자가 본 멜 깁슨은 대단히 매력적이며 또한 영리한 사람이다. 그는 전작 <브레이브하트>로 아카데미 상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등극했다. 그것은 그의 영화적 열정에 대한 오랜 땀과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그의 감독으로서의 천부적 재능을 보여준 예이기도 하다. 그는 열정적인 사람이면서 동시에 영화적 시스템을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면서 동시에 상업적으로 성공할 영화를 만드는 비법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기도 하다.

멜 깁슨에게 세계적 거장이라는 명성을 안겨준 <브레이브하트>는 여러가지면에서 파격적인 영화로 기억된다. 기존의 시대극에서 볼 수 없었던 빠른 전개와 드라마틱한 영웅담, 무엇보다 사실적이고 잔혹한 전투장면은 기존의 시대극 모두를 잊게 만들었다. 칼로 목을 깊게 베어버리고 철퇴로 머리를 짓이기는 잔인한 장면들의 연속은 관객들의 얼을 빼놓기에 충분했고 스크린 속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그러한 과도한 폭력 위에 멜깁슨은 감정에 호소하는 고전적 장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감동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어쩌면 그러한 감동은 과도한 폭력으로 인해 감정이 극도로 치솟아 오른 관객들을 쉽사리 감화시켜버리는, 강요되는 감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는 휴머니즘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극적인 감동이 아닌 진짜 생활속의 감동을 원한다면 TV에서 방영하는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다큐 프로그램 같은 것을 봐야 할 것이다.
영화는 시대의 반영이기도 종합예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장사의 의미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그러한 상업적인 면이야 말로 영화 산업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일지도 모른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종교 영화가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나의 영화가 성공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낳는 데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들이 존재한다. 이 것 때문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딱부러지는 공식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때문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두고 단지 잔혹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말 할 수 있는 것은 감독으로서의 멜 깁슨은 놀라운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기획할 당시 '성령이 나에게 임했으며 나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복음을 전파하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가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고 이 영화를 자비 2천 5백만불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분명 그는 종교적 열정을 가진 독실한 신자임이 분명하다. 한편으로 그는 예수라는 인물의 신화성을 상업적으로 활용한 능숙한 헐리웃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내내 관객들을 괴롭게 만들었던 예수의 고문 장면은 필자로 하여금 멜 깁슨의 전작 <브레이브하트>에서 공개 처형으로 죽어간 윌리엄 월레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예수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다 이루었도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이 말은 곧 윌리엄 월레스의 최후의 외침 '자유 freedom'와 일치하는 듯했다.
또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가장 심금을 울린 부분인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마리아의 곁을 지나치다 넘어지는 장면, 여기서 어린 시절 예수의 모습이 교차되며 고통과 추억, 슬픔과 안식이 대비되는 이 명장면 역시 <브레이브하트>에서 윌리엄 월레스가 죽기 직전 죽은 아내의 환영과 평온한 조우를 하는 극적인 대비를 연상시켰다.
이는 멜 깁슨이 이제 관객들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줄 아는 거장의 반열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치밀한 상업적 전략가로서의 기질을 엿보게 했다.
필자에게 있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바로 이런 양면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게 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런 양면적인 재능이야 말로 수년 전 만들어진 파졸리니의 <마태복음>, 스콜세지의 <예수 최후의 유혹>이 이루어지내지 못한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으리라.

멜 깁슨은 4대 복음서를 기초로 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예수 마지막 12시간을 장중하게 그려냈다. 그는 따분한 배경 얘기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모든 죄를 덮어쓰고 살이 파헤쳐지는 예수의 신체에 카메라를 밀착시켰다. 또 적재적소에 회상씬과 교차편집을 넣어 피 흘리며 죽어가는 메시아의 모습에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멜 깁슨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받는 육체를 영화 전면에 내세우며 이제껏 그 어떤 종교 영화도 이루지 못했던 극적인 부분들을 이끌어낸다. 묵묵히 고통을 인내하는 예수의 초인적인 한계가 그러했고, 미치광이 처럼 보여진 광폭한 집행인들이 그러했고, 예수가 흘린 피를 닦으며 내내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의 모습이 그러했고, 처절한 고통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악마의 유혹하는 눈동자가 그러했고, 우매한 군중들의 야유가 그러했고, 십자가를 등에지고 클로즈업으로 느리게 쓰러지는 예수의 모습이 그러했고, 뿜어지는 피의 비가 그러했고, 그 공포에 전율하며 죄인이 되어버린 듯한 관객들의 압박감이 그러했다. 이러한 극적인 장치들이 종교적 사회적으로 어떤 식의 비난이 될지에 대해서는 필자로서 별로 궁금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논란들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그리스도의 가혹한 수난이 보여준 무서운 감동 앞에 그저 시시한 말장난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으니.

어떤 구구한 논란도 이 영화의 위력 앞에서는 보잘 것 없는 것이 된다. 피범벅이 되어 죽어간 예수의 모습과 교차되는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말은 심장에 와서 박히는 묵직한 대못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니! 종교인이든 무교인이든 그 근본주의적인 가르침에는 모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 가르침이야말로 전쟁, 테러, 정치분쟁 등으로 얼룩져 서로를 헐뜯기에 급급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니!

p.s 아주 개인적인 느낌 하나 - 시종일관 극적인 리얼리티로 감정을 뒤흔들던 영화는 오히려 예수의 죽음 이후 뭔가 엄청난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필자의 기대를 착 가라앉게 만들었다. 때문에 마지막에 부활하는 예수의 모습도 경외롭기 보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도 다시 살아나서 다행이다, 라는 느낌 혹은 마리아가 이제 울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는 느낌이랄까...(필자가 무신론자라 그런 식의 인간적인 해석만을 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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