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가도 : 연옥의 교실
모로즈미 다케히코 지음, 김소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사립중학교의 여학생 한명이 자살한다. 죽은 여학생의 아버지는 딸이 학급으로부터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고 믿는다. 결국 그는 딸의 복수를 위해 칼을 들고 학급을 찾아와 아이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그로인해 학급의 반장이었던 여학생이 처참하게 살해된다. 경찰은 팀을 구성해서 이날의 사건을 똑같이 재구성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엇갈리는 진술과 증언들, 그리고 날조된 진실들이 난무하며 사건을 더욱 미궁에 빠뜨린다. 과연 그날 참극의 교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라가도'는 저 유명한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무수한 증인들의 엇갈리는 진술, 그리고 자기위주(개인 혹은 집단)로 구현되는 진실들 속에서 '진짜 진실'에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다. 또한 이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와도 닮아 있다. 날조하려하지 않으려 해도 인간의 기억이란 그리 견고한 것이 아니다. 기억은 대게 그 순간이 지나는 시점부터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해서 마침내는 개개인이 가진 정서 혹은 불안감 등이 뒤섞여서 자기 본위로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기억의 속성이다. 소설은 내내 이러한 기억과 진실의 왜곡이 교차되면서 사건과 연루된 모든 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다. 이 촘촘한 구성으로 인해 불안과 공포는 더욱 증폭되고 그로 인해 라스트에 밝혀지는 최후의 진실은 더욱 섬뜩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 작가는 페이지 하단에 펼쳐지는 표를 통해 문자가 아닌 새로운 방식의 공포전달을 시도한다. 이 독특한 방식은 꽤 성공적이었다. 초중반부에는 표를 통해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중반 이후부터는 새로운 진실에 접근하게 되다가, 마침내 라스트에 이르면 섬뜩한 공포로 돌변한다. 물론 이 작품을 공포소설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 작품은 호러적 색깔을 지닌 미스터리물로 보는 게 좋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작가의 독특한 전개방식을 통해 책을 읽는 내내 으스스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으며 책의 말미에 이르면 적어도 단 한번은 쇼킹한 공포를 체험할 수 있다.

 

라가도는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용어로 최상위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 속에서는 경찰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닌 것으로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이 소설을 다시 해석해본다면 이 소설은 현대 사회에 우리가 모르고 있는 불편한 진실의 한 단면을 꺼내보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금의 시대는 최고급 정보를, 희귀가치가 있는 정보를 손에 넣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는가? 분명 정보를 다루는 최선전에서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작품은 영화 '엑스페리먼트'와 겹쳐진다. 하나의 정보를 손에 넣기 위해 그들은 비인간적이고도 폭력적인 실험을 태연하게 감행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라가도에서 일어나고 있을 '불편한 진실'인 것이다.  

 

p.s. 이 작품은 예상외로 변화무쌍한 전개를 선보인다. 칼을 든 남자의 학급 난입이라는 충격적 도입부를 지나 현 시대의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가 싶더니 후반부로 갈수록 사회 중심부에 뿌리박힌 움직일 수 없는 체제의 모순에 대해 꼬집는다. 그러다가 라스트에 이르면 약간의 비약적 전개를 선보이며 호러와 판타지의 장르를 넘나든다. 이 모든 것을 다 아우르기엔 조금 도가 지나친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작가의 깔끔한 문장력과 다이내믹한 구성 때문에 필자는 꽤 만족스런 독서였다. 약간의 호불호는 있을 듯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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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뷰404호 2021-09-2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결말이 뭘 의미하는건가요?ㅜ 화살표가 한 곳을 가리키는 장면이었던것 같은데 이해가 안되더라그요 무슨 말인지...

살인교수 2021-09-24 19:43   좋아요 0 | URL
워낙 예전에 읽은 소설이라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화살표가 한 곳을 가리키는 하단의 그림은 기억이 나네요. 이 소설은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SF, 판타지로 끝맺는 소설이죠. 대략 그 교실 전체가 신비한 단체의 실험물이었고, 학생들의 정신을 지배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또한 그러한 ‘텔레파시‘ 비슷한 능력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교류 가능했던 거로 압니다. 학생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지만요. 화살이 한 곳을 가리킨 그 장면은 아마도 반장이 죽기 직전 모든 아이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고 그 내용이 ‘반장인 내가(우월존재) 위험에 처했으니 반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을(열등존재) 나 대신 희생시켜라‘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반 아이들은 가장 쓸모없는 피해자가 누가 될지 무의식적으로 한 아이를 가리켰고, 그것이 화살표로 표시된 것입니다. 즉 지목당한 그 아이는 반장을 대신해서 죽어야 하는데, 아마도 텔레파시가 확실히 전달되지 못해서 결국 반장이 희생당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자세한 사항은 책을 다시 읽어봐야 알수 있겠네요. 조금 과한 설정으로 치닫기는 하지만, 그래도 파격적인 상상력과 예측불허의 전개가 꽤 흥미로웠던 소설이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