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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의 미카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
평점 :
"겨울 내내 바람 하나가 예루살렘의 소나무 꼭대기를 흔드는데 그 바람은 사라지면서 소나무에게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당신은 낯선 사람이예요. 미카엘. 당신은 밤마다 내 곁에 누워 있지만 낯선 사람이예요."
<나의 미카엘>을 읽은 날 밤에 꿈 속에서 리뷰를 썼다. 제법 시작도 좋았고 문장도 마음에 들었다. 꿈 밖에서 본격적으로 쓰려고 하니 주인공 한나의 우울한 독백들만 머릿속에서 웅웅거리고 그 어떤 문장도 생각나지 않는다. 꿈 속의 리뷰는 잊고 새롭게 써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게 이것은 두 번째 리뷰인지도 모르는 일.
운명같은 만남과 호감, 그리고 마음과 몸이 동하는 호기심. 미카엘과 한나의 처음은 그랬다. 누구나처럼. 한나는 시린 손에 따뜻한 심장이었고, 미카엘은 따뜻한 손에 따뜻한 심장이었다. 어떤 퍼즐과도 같이 왠지 딱 들어맞는 것만 같은 착각. 사랑은 아주 소소하고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법이다. 물론 시린 손과 따뜻한 손의 운명적인 만남은 나의 주관적인 견해다. 시린 내 손에 딱 맞는 따뜻한 손을 찾고 있는 나로서는 그러한 이유로 그 어느 것보다도 그들이 천생연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여자의 차가운 손의 온도와 남자의 따뜻한 손의 온도가 만나 적당하게 따뜻해지는 마법같은 일이라니... "어느 겨울 밤 카페 아타라 안에서 나는 학생인 미카엘 고넨의 수줍음을 사랑했다."
미카엘은 한나가 충분히 호감을 가질 만한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다정하고, 조용하고, 매사 진지한 그의 성격은 연애 시작과 함께 결혼 생활 내내, 그리고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변함이 없다. 문제는 한나가 그런 미카엘의 자로 잰듯한 반듯한 성품에 점차 우울감을 더해 간다는 것이다. "말해 봐요. 뭔가 말을 해요. 당신은 아무것도 애기하지 않죠. 더이상 침묵을 지키지 말라고요. 더 이상 매일매일 알람시계처럼 똑딱거리지도 말고, 더 이상 날 미치게 하지도 말아요. 마침내 미카엘의 눈에 강제된 이해의 빛이 보였다."
예루살렘이 이렇게 침울한 곳이었던가 싶게 한나의 예루살렘은 왠지 쓸쓸하다. 늘 비를 머금고 있는 듯한, 하지만 늘 늦은 비. 그리고 봄과 여름의 계절이 있었나 싶게 가을과 겨울이 주 배경이다. 한나와 미카엘이 만난 계절도 겨울이었다. 그리고 비가 왔다. "비가 오면 예루살렘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어요. 사실은 예루살렘이 언제나 사람을 슬프게 하는데 그것이 매일 매순간, 매년 매시에 종류가 다른 거죠."
"방으로 들어올 때의 얼굴은 엄숙하고 진지했다. 이 남자는 언제 자제력을 잃을 것인가? 아, 한번이라도 저 사람이 겁에 질린 것을 한번만이라도 보았으면, 기쁨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미친 듯이 달리고." 한나는 미카엘과의 결혼 생활에서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느낀다. 늘 변함없이 진지한 미카엘을 못견뎌하고 그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온전히 표현되지 못한 한나의 결핍은 쇼핑 중독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맘의 열을 잠재우지 못해 차가운 물로 자신을 학대하며 자기도 제어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하기도 하고, 낯선 남자들을 바라보며 은밀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미카엘이 집을 나서면 나는 눈물로 목이 멘다. 나는 이 슬픔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도대체 어느 저주받은 곳에 숨어 있다 나와서 슬며시 기어들어와 나의 고요하고 푸른 아침을 망쳐놓는지를."
한나가 자신의 결핍을 마음껏 분출하는 곳은 꿈 속이다. 그리고 끝없는 독백들. 꿈은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 보여주는 곳이 아니던가. 그녀는 꿈에서 자주 공주, 장군이 되어 쾌락과 고통의 흐름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며 자신의 결핍을 채우곤 한다. <나의 미카엘>은 사람들의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형식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한 페이지를 다 차지할 정도로 혼자 묻고 답하는 형식의 문장이어서 아주 호흡이 길다. 따라서 읽다보면 말하는 이의 말투와 생각이 손에 잡힐 정도라고 할까. 대화는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를 하면서 따라가기에 호흡이 가쁘진 않지만 한나의 꿈 속을 표현하는 문장들과 그녀의 독백을 읽다보면 숨이 턱턱 막히고 가빠지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되묻지만 어떤 마음인지는 충분히 알겠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갇히게 된다.
종반부에 가서는 꿈도 아닌, 독백도 아닌 현실에서 한나의 남편에 대한 마음이 분출되고 만다. 그것도 잠자리에서. 내가 보기에는 분명 그것 또한 자신을 향한 자해였다. "나는 남편을 잠에서 깨우곤 했다. 그의 담요 밑으로 파고들고. 온 힘을 다해 그의 몸에 달라붙고. 그의 몸에서 내가 원하는 자기 통제를 쥐어짜내고. 우리들의 밤은 어느 때보다도 더 격렬해졌다. 나는 미카엘이 내 몸과 자신의 몸에 놀라게 했다. 소설책에서 읽었던 다채로운 방법으로 그를 이끌었다..... (중략) ...... 언제나 똑같은 절제된 연민이 있었다. 밤에 수치를 당한 남자라기보다는 거만하고 경험 많은 여자에게 처음으로 구애하는 어린 소년 같았다...... 정말 기만이예요. 정말 끔찍한 덫이죠. 난 지쳤어요. 아, 자고 또 잘 수 있다면."
오, 나의 미카엘. 미카엘에게 죄가 있는가. 한나, 그녀에게도 죄가 있는가. 그들의 처음 만남의 그 모든 문장을 사랑한다. 넘어진 한나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워주며 수줍지만 한나에 대한 호감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녀에게 대쉬를 하며 그녀의 마음 안으로, 그녀의 삶 속으로 용감하게 들어간 미카엘의 그 처음을 사랑한다. 미카엘의 평온함과 진지한 다정함을 알아본 한나, 그리고 그를 사랑이라는 테두리 안으로 자연스레 이끈 한나의 그 처음을 사랑한다.
"사실 이 시기에는 우리 사이에 일종의 불편한 타협 같은 것이 존재했다. 우리들은 마치 장거리 기차여행에서 운명적으로 옆자리에 앉게 된 두 명의 여행자들 같았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어야 하고, 예절이라는 관습을 지켜야 하고, 서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서로 아는 자신들의 사이를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예절바르고 이해심을 발휘해야 하고. 어쩌면 가끔씩은 유쾌하고 피상적인 잡담으로 서로를 즐겁게 해주려고 해야 하고.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으며. 때로는 절제된 동정심을 보이기도 하면서."
사랑을 한다. 연애를 한다. 결혼을 한다. 그 안에 숨겨진 수십 수만 가지의 감정들. 우리는 무모하게 사랑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지. 제때 해소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결국 사랑을, 연애를, 결혼을 점차 좀먹고 나중에는 배가 터질 정도로 꽉 차고 말아서 빠앙 터지고 말지. 사랑도 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상대방으로 인해 내가 우울해질 정도로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오롯이 "나" 일 수 있는 사람이 사랑도, 연애도, 결혼도 현명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나의 미카엘>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나는 미카엘과 한나의 사랑을 맘에 담으며 이 문장으로 끝맺으려고 한다. 그들이 각자의 길을 간다 할지라도 이제는 커다란 기쁨으로 가득차길 바라며. 기쁨으로 가득한 사랑을 하길 바라며. "커다란 기쁨으로 바뀔 수 없는 슬픔이란 세상에 없으니까."
* 참고 : 전자책으로 읽은 까닭에 페이지를 생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