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습 - 김승옥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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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은 ‘60년대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작가다. 1964,서울로 현대문학을 공부했던 나로서는 무척 익숙하기도 하면서 현대문학의 굵은 획을 그었던 거장의 소설을 읽는 감회는 감격 그 자체였다. 김승옥 전집이 출간되자마자 구매해 놓고는 시간의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가 다시 꺼내보기 시작한 건 무진의 명물이라던  안개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내가 만나는 안개가 보여주던 관념의 세상, 그 관념의 색이 분명해질수록 김승옥이라는 작가의 소설들이 머릿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그가 그리는 신산한 삶의 풍경속에는 내 유년기와 중첩되는 배경이 있다. 

 

 격동의 현대사가 온몸을 관통하던 시대의 배경이란, 늘 그렇듯 파편화되어 가는 서민들의 애닮은 삶이 주재료다. 사변 이후, 이데올로기가 휩쓸고 지나간 소도시의 살풍경을 그려낸 건()과 같은 소설은 어린소년이 바라보는 세상이다. 6.25가 끝나고 빨치산들의 공격으로 폭격을 맞은 소도시에  대비되는 천진난만한 소년의 시선에는  병원건물에 불이나고 빨치산의 시체를 발견하는 일이 그저 학교친구들과  재미있는 이야기꺼리가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천연덕스러운 생의 농담인가. 또 거기에 등장하는 어느 동네나 다 있던 동네이쁜언니 윤희언니 등장은 시대를 관통하는 불안함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소년의 형, 무리들이 강간을 모의하는 것으로 짓밟혀질 예정이다. 소년에게 일본으로 피난 간 짝사랑 미영이를 연상케하던 꽃처럼 이뻤던 동네누나는 그렇게 불행을 예고한다. 사회 전반의 우울함과 암울함이 곳곳에에서 숨을 쉬던 시대였던 것이다. 

편모슬하에 자란 세 남매이야기  생명연습은 여수까지 피난한 후, 생선장수를 시작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찍 여읜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어머니의 애인들, 야간학교를 다니는 누나와 폐가 나빠 다락방에서 은거중인 형과 주인공은 어느 날, 어머니를 죽이기로 한다. 물론 누나와 주인공은 가담하지 않지만 다락방에서 점점 괴물이 되가던 형은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월부책장사를 하던 남자가 아내가 죽고 나서 가난 때문에 시체를 병원에 팔고 자살을 시도하는 『서울,1964』,  바닷가 촌마을에서 도시로 돈 벌러 간 누이의 눈물『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  검열에 걸려 직업을 잃게 된 만화가가 세들어 사는 다세대주택의 미싱소리와 함께 1970년이 병풍처럼 그려진다. 새벽시장에서 꽃을 팔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누운 며느리대신 무허가로 염소탕을 팔던 시어머니는 경찰단속반에 걸린다. 처음 마주하게 된 경찰관의 서슬퍼른 눈동자는 누나에게 향하고, 그 날 이후 누나는 꽃대신 버스안내양이 된다. 소년과 할머니는 누나의 버스가 지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른다. 『염소는 힘이세다』  제주도 비행기 안에서 첫눈에 반한 여인, 결혼까지 성공하지만 나중에야 그 예쁜 아내가 호스티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울의 달빛0章』은 1977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현대사의 광풍속에서도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던 서민들의 삶의 파편이 곳곳에 스며들어 시절의 배경들을 연상케 한다.  월남전 파병, 유신체제 발동으로 격변하던 시대와 경제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무너져가던 전통윤리를 그리며 자본주의의 급격한 흡수로 물질만능주의가 틈새를 파고드는 찰나의 순간들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비극적인 붕괴가 시작되던 시대의 피해자로서의 서민들의  단편들이 획기적이고도 충격적이며 기발하다. 한을 품은 여귀가 내뿜는 입김과 같은 안개, 그 안개 너머로 보는 세상은 현대화라는 기차를 타고 가족과 사회와 공동체를 빠르게 해체해 갔다. 무진기행이 담아내는 도시는 그래서 몽환적이다. 잡으려 하지만 잡히지 않고 보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안개같은 세상, 그것이 바로 현대라는 이름의 세상인 것이다. 김승옥의 소설은 그 세상의 치밀한 엿보기다. 파편화된 사회를 조각조각 이어주며 치열한 생의 고민이 이 소설들 안에 담겨 있었다.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한마디로 얼마나 기막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과정 속에는 번득이는 철편이 있고 눈뜰 수 없는 현기증이 있고 끈덕진 살의가 있고 그리고 마음을 쥐어짜는 회오悔悟와 사랑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봄바람처럼 모호한 표현이 아니냐고 할 것이나 나로서는 그이상 자세히는 모르겠다. -<생명연습> 중에서

 

불륜이 비어홀처럼 만연해지며 신종 오락처럼 그 유행을 시작한 1970년대는 마치 낚시꾼이 찌를 노려보듯 사회현상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는 소설가에게는 소설 소재의 황금어장이었다. 전통윤리 또는 절대가치가 붕괴되는 시대에는 모럴리스트들이 할말이 많아지는 법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미안해요, 어머니, 라고 누이는 말하고 싶었던 거다. 하루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무서운 사건이 세계의 은밀한 곳에서 벌어지고 그리고 다음날은 희생자들이 작은 조각에 몸을 기대고 자기들의 괴로움을 울며 부유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뭐냐, 인간이라? 저 도시가 침범해오지 않는 한, 우리는 한 고장을 지키기에 충분한 만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영원의 토대를 만든다는 것, 의지의 신화들을 배운다는 것, 우는 법을 배운다는 것, 침묵을 배운다는 것, 그것만이 인간인 것이냐? 인간의 허영이 아닌가, 라고 나는 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질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을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무진기행

 

오래 전에 읽었던 무진기행을 다시 손에 들었다. 새벽에 산에 가려고 집을 나서면 나를 먼저 반겨주는 건 산이 아니라 자욱한 안개였다. 그때마다 무진기행이 떠올렸다.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이라던 그 안개가 나를 감싸고 나는 그 여귀가 삼켜지도록 보내온 먹잇감처럼 빨려 들어가곤 했다. 안개를 통과하여 걸어가던 그 몽환의 새벽길에는 그리움의 계단이 하늘까지 닿아있다. 나는 늘 그 계단을 올랐다. 무진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주인공이 관념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아늑한 장소로 무진을 떠올르듯이 그 새벽의 안개는 내게도 추억을 소환하는 마술을 보여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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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 - 평생 가난할 운명에 놓인 청년들
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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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25개 선진국의 2005년과 2014년 가계소득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 효과를 감안한 실질 가계소득이 증가하지 않은 가구가 65~70%에 달했다.(참고:김창환의통계인사이트)  10년간 경제가 성장하였지만 가계소득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이런 그래프로 가다보면 청년 세대에는 더 빈곤해질 것임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10.7%
2017년 2월 한국의 청년실업률이다. 이 가운데 청년주거 빈곤율은 36퍼센트에 이른다. 미국보다 더 악화한 수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3년부터 3년 연속 청년실업률이 상승한 나라는 한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핀란드 프랑스 터키 등 6개국뿐이다. 한국의 공식 청년실업률이 미국을 추월한 것은 우리나라의 청년 일자리 형편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이다. 미국은 고용과 해고가 유연한 데다 취업과 연계한 직업훈련,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인프라 투자와 창업 지원 등의 정책으로 2010년 18%대까지 치솟았던 청년실업률을 6년 만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낮췄다.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면서 비정규직 보호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OECD 권고가 작년 5월에 나왔지만 노동개혁법안의 국회 처리만 기다리며 과감한 구조개혁에 나서지 못한 정부 책임이 무겁다.

 

우리나라가 유난히 청년실업률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젊은이 망령은 몽둥이로 고치고 늙은이 망령은 고기로 고친다.’ 이런 속담을 봐도 알겠지만 유독 젊은이들에 대해 박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역시도 그렇다. 신조어를 보면 젊은이들에 대한 평은 더욱 가혹해진다. 일 시켜줬으니 열정이 곧 페이다라며 적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아 떠돌던 ‘열정페이’라든지, 졸업생 90%가 논다는 뜻의 '인구론‘, 20대에 다시 백수가 되었다 해서 ’돌취생‘ , 이와 같은 신조어들은 젊은 세대들의 사회적 조건이 얼마나 가혹하고 불안한 것인지를 대변해주는 듯하다.

『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 이 책은 희망을 잃은 일본 청년들에 대한 보고서다.
이 책의 저자는 사회복지사로서 빈곤의 리얼미터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은 표현이다. 그는 비정규직 고용의 확대, 블랙 아르바이트나 블랙기업(청년들을 혹사시키는 기업), 학자금 상환 연체, 국민연금 보험료나 국민건강 보험료의 체납, 부모와의 동거, 높은 청년 자살률, 저출산까지 청년들의 삶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조사하며 대안까지 책에 소개하고 있다. 지금의 청년들의 빈곤은 일시적인 취업난이나 해결할 수 있는 빈곤이 아니라 급격히 변해버린 고용환경으로 인해 ‘평생 빈곤’이라는 굴레가 되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정책이나 지원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워킹푸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골자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 청년세대를 일컬어 ‘빈곤세대’라고 부르기로 했다.(-p11)

하지만 비단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청년들을 빈곤세대라해도 누가 잘못된 표현이라 하겠는가. 이미 청년들의 실업을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고 그 빈곤을 탈출할 비상구는 한국사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1장
방치되어 상처 입은 빈곤세대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유흥업소를 다니는 여대생, 생활보호대상자로 근근히 생계를 연명하는 스무 살의 청년들,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빚이 점점 불어나 파산신청을 한 청년,어디서가 본 듯한 , 현대를 사는 우리 젊은이들의 초상과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가혹한 기대와 능력지상주의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청년들 뿐만아니라 우리들은 노력이 아닌 자신의 힘을 쥐어짜여 초과시켜여만 하는 ‘노오력’이라는 말에 모두 지쳐있는 상태다. 또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노오력의 사회가 된 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는 것 또한 우리는 모르지 않다. 그 가운데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금수저와 흙수저의 빈부격차에서 오는 갈등이다.

 

청년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 저자는 가장 먼저 청소년을 향한 잘못된 인식을 꼽는다. 실제로 청년들이 정신질환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고 자살률 또한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에 내몰리고 있고, 가난 때문에 부모로부터 독립과 결혼은 꿈도  못 꾸는 일이고, 이로 인해 자연히 저출산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청년들을 사회복지정책에서 제외시키는 것자체가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청년지원의 부실함이 저출산이 인구감소를 적극적으로 감소시켰으며 사회전반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타성에 젖은 전통적인 사회 시스템이나 교육 시스템이 급속히 변화한 노동시장과 어긋나게 되면서 청년 실업자들을 배출하는 원인이 되었다.’-p127

 

#결론
지금의 청년들이 매우 불행하다는 것은 기성세대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다. 허나 이제 6.25 세대이후 가장 가난한 세대를 맞이하게 될 아이들의 미래는 기성세대인 바로 우리들의 탓이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이 적어도 빈곤이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있던 가치를 세금과 부의 재분배에 관해 머리를 싸매고 같이 고민해야 한다. 빈곤이 발생하는 본질적인 원인과 계층과 계층간의 이해관계를 돌이켜보며 청년들은 자기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마지막은 저자의 말로 대신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예산도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빈곤세대를 위해 분배되지 않을 것이다. 큰소리로 변화를 요구하는 힘이 강해지면 정치도 결코 그들을 무시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정치에서 본격적으로 빈곤세대를 향해 움직이려는 징조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시종일관 자기책임론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청년들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무슨 정책을 내세워도 아무 저항이 없다는 것을 핑계 삼는다. 결국 힘든 상황은 더더욱 가속화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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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두기 -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힘
임춘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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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의 '간격'이란 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불이 타버린 숲에 서 보니 나무와 나무 사이의 울창함이 적당한 간격때문이라는. 그렇다 우리의 삶에 간격이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사랑하여 서로를 안으면 피를 흘리게 되는 고슴도치의 숙명정도는 아니더라도 김수영의 팽이처럼 서로의 간격을 지켜주는 '거리 두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오랜만에 [쌤앤파커스]에 서평 신청을 했다. [거리두기]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지만, 이 삶이라는 팽이를 돌리려니 홀로 도는 것이 너무 고루하고 지루할 때가 있다. 내가 홀로 도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같이 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그 삶의 팽이를 잘 돌리게 해줄 채찍은 타인에게서 나온다. 그런데 이 타인이라는 존재가 참 묘하다. 사랑하는 사이처럼 좋아지내다가도 어느 한 순간에 실망을 하게 되면 모르던 사이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느라 바쁘다. 그 생채기에 쓸리고 할퀴어 가슴 달래다가 다시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하게 되기도 한다.  그 점에서 '휘둘리지 않고, 헤매지 않고, 혼자 속 끓이지 않고 스스로 중심 잡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법'의 소제목은 어쩌면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잡고 싶은 동앗줄이 아닐까.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속 모를 사람들이 모인 거대한 의문부호'로 만들어진 세상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마디로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세상을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이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세팅이라 한다면, 이 관계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사이존재'라는 것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나와 민낯의 세상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또한 알몸의 나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나와 세상 그 사이에는 분명히 무엇이 있습니다. 아니,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나와 세상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내가 세상에서 폼 나게 살 수 있고, 세상이 나를 품 안에 보듬어줄 수 있습니다. 민낯과 알몸의 나와 세상은 서로 이기적인 존재이며, 서로의 주장으로 상대를 생채기 내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세상 그 사이, 나와 세상의 관계 그 사이 공간에는 무언가가 있습니다.(중략)

그 사이, 사이의 존재를 선명하게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이존재입니다.-p27

 

이 사이존재에 대한 이야기의 모험이 책을 펼쳐지며 시작된다 . 저자는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며 '나'에 대한 생각의 페이지를 약간의 지면으로 할애하고 있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을 절로 하게 된다. 살면서 나에 대한 응시를 이제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자각이 들자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책과 함께 오랜만에 독서삼매경이라는 것에 빠져보기도 하였다. 옛사람들은  '나'를 알기 위해서 평생공부로 수신하였다. 사색이 부족한 현대의 시간들에서 나를 들여다보며 생각을 정립하고 삶을 고민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을 만나보고 싶다면 최고의 책이 아닐까한다.

 

 

 

 

 

 

휘둘리지 않으려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당신과 당신에게 소중한 상대 또는 가치 사이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매개자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당신은 합리적인가요? 나와 당신은 괜찮은 사람인가요? 나이와 경험, 그리고 학력과 학습, 이것만으로 나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또한 외모, 성격검사, 호불호로 당신을 규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나는 나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 특별한 내가, 각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더 잘, 더욱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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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16 2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만 드림모노로그 님을 그동안 못뵌건가요?
아님 스파이처럼 활동을 하셨던 건가요? 뜬금없는 반가움을 밑도 끝도 없이 놓고 가면서.. ^^

드림모노로그 2017-02-17 08:30   좋아요 2 | URL
ㅎㅎ 그동안 너무 바빴어요 ^^ 책은 그래도 꾸준히 읽었는데 쓰는 일이 시간이 많이 걸리다보니 ~ 블로그에 다시 돌아오는 게 녹녹치가 않았네요^^
오랜만에 들려도 반가이 맞아주시니 고맙습니다.^^
늦었지만 정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장소] 2017-02-17 12:08   좋아요 0 | URL
ㅎㅎ네에~ 네에 안보이신게 사실였네요 . 저만 못보는 곳에서 살고 계셨동계 아니라니 ㅡ 퍽 이상한 안도 ...ㅎㅎㅎ 반가워요! 반갑고말고요!^^ 자주 뵈어요!^^
아, 새해 복많이 북많이~^^!!!

서니데이 2017-02-17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지요??^^

드림모노로그 2017-02-17 08:31   좋아요 2 | URL
네 덕분에 건강히 잘 지냈습니다. 댓글에 감동이.....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 많이많이 생기는 해 되세요~^^

AgalmA 2017-02-26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했는데 좋은 글로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새해에는 더 여유로운 시간 많아지시길 기원드립니다. 좋은 글 쓰시는 분이 시간에 쫓겨 글을 제대로 못 쓰신다는 건 늘 마음 아픈 일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7-02-27 15:00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 자주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주식회사 대한민국 -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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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의 자발적 복종에는 이런 말이 있다. '멍에를 지고 노예 상태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도 전 세대가 어떤 삶을 누렸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재산,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더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출생 당시부터 주어진 삶의 조건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기게 된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불리워지기 시작했다. 신조어가 시대상을 대변하여 탄생하는 언어라한다면 대한민국의 체감온도로서의 헬조선은 보편적 정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러시아에서 귀화한 박노자 교수의 심층적인 분석이 담긴 책이 출간되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유명사 앞에 주식회사라는 이익집단의 수식어가 첨언된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가 계급화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가 꼽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자본의 탐욕을 견제하고 사회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스스로 '기업국가'화되어 자본의 이익 보호에 집중하고 사회적 약자의 연대는 막아선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주식회사에 견주어본다면 상황은 더욱 명확해진다. (주)대한민국의 주주는 누구인가? "경영 참여는 꿈도 못 꾸고, 하라는 대로 잔업과 특근을 하느라 일주일 실질노동시간이 50~60시간이나 되는, 40대 이상 되면 근골격계 질환이나 신경질환을 앓게 되는 대한민국의 '피곤한 노동자'들은 과연 '주주'인가?"(11쪽)


대기업의 대주주나 임원, 고급공무원, 혹은 땅부자 등 고액재산보유자들이야말로 (주)대한민국의 진짜 주주라 할 수 있을 터인데, 이들은 서로 겹치거나 혼맥 등 긴밀한 사회적 네트워크로 연결되기까지 해서 매우 공고하고 배타적인 집단이 되었다. 그러기에 (주)대한민국은 기업 중에서도 악질기업이 되기 쉽다. 오로지 주주들의 배당금 극대화만을 위해 분투할 뿐, 피고용자에 대해서는 그저 주주 배당금 극대화의 '재료'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하도급중소기업으로,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경제구조를 보자. 재벌들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직접 고용을 하며, 대부분은 각종 하도급, 영세업체에 고용되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거나 비정규직 혹은 '알바'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고용 형태의 차이가 아니다. 의료, 교육 등 본인의 생존과 자녀의 성장에 가장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부터 기업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꾸려나가기 힘들다. 실업수당, 국민연금 등 각종 사회적 임금들은 그 지급 기간이 짧거나 조건이 까다롭거나 생활이 불가능한 작은 액수다. 결국 정규직 직장이 없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측면에서 비정규직 양산은 현대판 천민계급 만들기와 다름없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출판사 서평중에서

 

일례로 교육부 고위 관직에 있던 관료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사건을 기억해보자. 지금은 파면되었지만 교육부의 고위 관료는 거기에 한 술 더떠 신분제를 공고화 해야 한다고까지 하였다. 이러한 발언은 평소 본인이 가지고 있던 이데올로기를 잘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공직자들이 대한민국을 계급제 사회라 인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연일 폭염으로 전기세 걱정에 누진세율이 직접적인 경제부담으로 공론화 되는 와중에 청와대는 고가의 송로버섯과 샥스핀요리로 오찬을 하여 빈축을 사고 있는 일들이 다시한번 공직자들의 마인드 자체를 의심하게 한다.

 

박노자 교수는 이런 우픈 대한민국의 현실에 메스를 들이대길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에 대한 종속적인 관계를 마다하지 않으며 헬조선에 살면서도 오히려  데모하는 사람들을 종북이라 핍박하는 나라,  노동자 탄압을 예사롭게 하는 나라, 촛불을 들기보다는 이민을 원하는 젊은이들, 종북 사냥에 묻혀있는 지배층의 속내인 분단의 영구화, 박정희 시대가 결국은 기적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는 것과 친일청산이 이뤄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기형적 세습화는 요지부동일 것이라는 것,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서 복지국가 최하위에 접어들었으며 노인들의 가난한 죽음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것, 국민의 생존도 보장 못하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지옥도나 다름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그 무엇,  랑시에르가 자발적 복종에서 말했듯이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이  노예의 삶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에 길들여져 사유의 불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런 사회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개돼지일지도 모르니까. 

 

-본문중에서-

국가와 개인이 일체화되면 늘 벌어지게 되는 가장 무서운 일이 개인이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떠한 자율적·독립적·비판적 평가조차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비판도 가능하다.

 

'헬조선'의 피해자들이 이 사회를 연대해서 바꾸지 않는 이상 살길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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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2016-08-16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천 꾸욱...!!!

드림모노로그 2016-08-1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 -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힘
사이토 다카시, 박성민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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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라면, 삶에 대해 고민하라!”

 

삶에 대한 고민은 무거운 돌덩이를 이고 산을 오르는 시지프스의 고뇌마냥 언제나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고민을 쉬이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삶 자체가 정답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노동으로 그저 이 힘든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이것은 공자의 철학의 기본이자 밑바탕에 깔려있는 정신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공자는 천하를 거지로 주유하면서도 자신의 기량을 펼칠 주군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살아내어야 한다는 삶의 힘겨운 주문을 조금은 더 가볍게 할 수는 없을까? 그 방법이 있다면 논어를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는 공자의 살아내어야 하는 삶의 주문 앞에서 언제나 정면승부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는 책이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생하게 겪었던 경험으로 엮어져 있기에 깨달음의 강도도 높을 수밖에 없다.

 

살아내기 위한 가장 좋은 처방을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하루를 더 나아지는 삶’, 즉 향상심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다. 논어의 제 1장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배움과 실천의 삶은 살아내어야 하는 삶을 기쁨으로 채우며 더 나아지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그렇기에 현대에도 2500년전의 공자의 삶의 방식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다.

 

 

세상이 어지럽다 한들 들짐승이나 날짐승과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와 함께 살아간단 말이냐. 만약 지금 천하에 도리가 행해지고 있다면 나 역시 세상을 바꿀 마음은 없다.” -18편 미자

 

여기에 아름다운 보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상자에 넣어 보관해두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후한 값을 쳐주는 사람을 찾아가 파는 것이 좋을까요?”

그러자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제값을 쳐서 나를 사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9편 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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