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1 - 태조에서 세종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1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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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일 없는 하루를 산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 하루가 나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 미시적으로 역사를 본다는 것은 이 별 볼일 없는 하루에서 특별한 순간을 포착한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거대한 허리케인을 몰고 오듯 역사는 미시와 거시의 두 관점으로 살펴보아야 시대의 삶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 삶은 그야말로 예측불허이며 어떤 변수를 가져올지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예측불허의 삶을 예측가능한 삶으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통로라는 함의이다. 따라서, 다각도의 채널로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역사서는 사고의 지평뿐 아니라 고착되어 있는 이론에 유연성까지 더해주며 시대흐름을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선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연코 최고라 할 수 있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역사저널 그날을 한번 보고는 계속해서 챙겨보게 되었다.  역사를 잘 알아서 챙겨본 건 아니고  프로그램에 나오는 패널들이 흥미로왔던 이유다. 실은 류근 시인을 시집으로만 볼 때는 조금 시니컬하고 심하게는 니할리스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송에서 보니 많이 달랐다. 게다가 정말 좋아했던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의 작사가라는 것도 의외였다. (이제까지 김광석 작가인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논리정연하면서도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류근 시인과 쌍벽을 이루는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용 감독과의 만담 같은 대화도 시종일관 웃음을 주는 요소였다.  

 

KBS역사저널 그날 제작팀은 삶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를 ' 만남'이라 하며 한 시대를 운명지었던 '그날'에 주목한 역사보따리를 꾸렸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만남은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자 운명이다. 500년이라는 거시적 역사의 흐름에서 주목한 미시적 만남의 순간들은 조선 역사안에서 숨겨져 있던 나비의 수많은 날개짓이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은 조선이라는 새 나라의 창조를 가져왔다. 정도전은 조선의 정신적 지주로  이성계는 실질적 지주로서 실리에 입각한 '합리'라는 개념으로 세워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나라(당시 시대상으로는 최초)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은 조선의 정신이라 할 수 있지만 반면 정도전과 이방원의 만남은 조선을 당쟁과 역모의 시작을 보여주는 작은 날개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도전을 죽인 후 왕이 되자 죽을 때까지 태조 이성계의 미움을 받으며 살았던 이방원이 적장자였던 양녕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못하면서 시작된 왕권다툼은 세종이후 조선 역사를 권력과 대립의 나라로 물들어 갔으니 지나친 비약도 아닐 것이다. 양녕과 어리의 어긋난 만남은 양녕을 왕세자에서 폐위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조선 역사에 세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집현전을 부활시키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며 위로는 4군 6진을 설치하고 아래로는 대마도를 정벌하며 조선 최초로 국민투표가 열리고 한글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은 이렇게 아주 작은 사건들이 모여서 이룩해 낸 허리케인인 것이다.

 

작년 민음사에서 나온  민음한국사 '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에서는 태조, 태종, 세종,성종에 이르는 전근대를 그 어떤 시대보다 중요하게 보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이 책을 보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기존 한국사에서 부정적인 측면만 보아오던 것과 달리 '역사저널 그날'은 정도전과 이성계가 꿈꾸었던 이상의 나라위에 세워진 조선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살아있는 역사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새롭게 회자 되고 있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고 말한 처칠의 유명한 문장처럼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조선의 그날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구한 역사에 있다. 다행이도  2017년 부터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선정 되었다. 역사가 아닌 영어가 필수과목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모순된 교육현장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이제라도 시작한다는 것자체를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책과 프로그램을 같이 보다보니 서평이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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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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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나는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어린왕자가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그림이 떠올랐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외형적 프레임은 다 알다시피 모자이다. 아무리 보아도 코끼리를 삼킨 뱀을 그린 어린왕자의 그림은 모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그 전에도 이 그림을 떠올린 적이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엽기적인 사진 가운데 전갈을 삼킨 채로 죽어 있는 뱀의 사체를 보면서도 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떠올렸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이 유명해진 것은 모자로만 보여지는 단순한 그림프레임 안에 담긴 본질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사고의 확장(창의성)에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로 코끼리와 같이 자신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삼키다가 배가 터져 죽은 뱀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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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춘삼월, 경남은 진보와 보수의 접전이 가장 치열한 곳이 되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특히 거창은 한 차례 법조타운 건립으로 진보와 보수간의 한 차례 전쟁을 치른 후라 약간의 소강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온라인에서는 무상급식에 대한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은채 소리없는 전쟁중이다. 무상급식 중단이 전국적 이슈가 된 것은 선별적 복지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보수진영에서 차기대선 주자인 도지사가 기존 무분별한 교육 예산에 대하여 감사를 받을 것을 제안하자 진보 진영의 교육감이 이를 거부하게 되면서 사안이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이들 밥그릇을 가지고 정치적 논리로 어른들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복지라는 커다란 프레임으로 볼 때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할 충돌이라 보여진다. 이렇게 보수와 진보의 마찰은 미국만의 문제뿐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정치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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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저명한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이러한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프레임의 문제로 해석한다.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형상을 한 모자라 할 수 있다. 뱀이 코끼리를 먹어도 뱀이라는 형상은 변하지 않는다. , 내용에 상관없이 프레임은 고정불변인 것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가 행동한 결과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커다란 틀로서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만드는 제도를 형성한다. 그렇기에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다. 따라서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말은 곧 사회 변혁을 의미한다.

 

 

 

 

  프레임은 직접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프레임은 우리 인지과학자들이 인지적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다. 인지적 무의식이란 우리 뇌 안에 있는 구조물로서, 의식적으로는 접근할 수 없지만 그 결과물을 통해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이른바 상식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이고 자연스러운 추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추론은 우리의 무의식적 프레임에서 나온다. -p11

  

저자는 책 제목인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을 듣는 즉시 머릿속에서는 코끼리라는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것에 착안하여 프레임을 정의한다. 우리가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반대로 그 프레임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논의하는 프레임의 재구성은 정직성과 도덕성에 기초하고 있다, 프레임 재구성은 의견이 상반되는 이들을 이해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책에서는 '이중개념주의'라는 전문용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은 쉽게 말해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간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중개념주의는 정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서 이 책에서 등장하는 유권자는 이해시키기 위한 대상자인 불특정 다수를 뜻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원리를 바탕으로 한 엄격한 아버지의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다면 진보주의자들은 자상한 부모 유형의 도덕성으로 보살핌과 배려의 도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구별되며 저자는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과 '중간층'인 유권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방법을 인지과학분야와 미국 정치상황의 사례를 통해 비교 설명하여 주며 기존의 고착화되어 있는 프레임을 새롭게 재구성하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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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진보가 흔히 믿는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진보의 헛된 희망일 뿐이라 한다. 인간의 뇌가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지과학에서 밝히고자 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진보가 보수를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현실이나 한국의 현실에서 진보는 '중간층'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그 점에서는 참 안타깝다) 저자는 진보가 보수를 설득하기 위한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진보가 수용해야 할 문제점이라 본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프레임은 모자였지만 현실의 보아뱀은 무리한 시도로 배터져 죽은 뱀의 형상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세월호 이후 현재의 무상급식까지 진보와 보수가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소위 '중간층'들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무리하게 코끼리를 삼키다가는 이내 배가 터지는 상황이 되지 않으려면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을 과학적인 토대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결국 진보와 보수의 싸움 사이에 낀 새우들만 등터지는 격이니 말이다.

   

# 당신이 진보라면 읽어볼 만한 구절

-여러분이 응대하는 보수주의자에게 반드시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라. 상대방에게 존중을 표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라. 그들의 말에 단 한 마디도 동의할 수 없더라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진심으로 대하라. 비열한 언행을 삼가라. 그쪽에서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악을 악으로 갚아봤자 좋을 것이 없다. 어쨌든 상대방을 존중하고 다른 뺨도 돌려대라. 여기에는 남다른 품성과 긍지가 필요하다. 품성과 긍지를 보여주어라.

-소리 지르면서 싸우지 마라. 급진... 우익은 문화 전쟁을 필요로 한다.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러한 문화 전쟁의 담론 형식이고, 교양 있는 담론은 '보살핌 도덕'의 담론 형식이다. 토론이 예의를 갖추기 시작하면 우리가 이긴다. 우리를 소리 지르게 만들면 그들이 이긴다.

-하지만 정당한 분노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정당한 분노는 품을 줄 알아야 하지만 표출은 절제된 방식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절제력을 잃으면 그들이 이긴다.

-정상적인 보수주의자와 역겨운 이념가를 구분하라.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사람됨과 친절함과 호의의 감정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침착하라. 침착함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표시다.

-유머 감각을 발휘하라. 선량한 유머 감각은 자기 자신을 편안하게 느끼고 있다는 표시다.

-세상에는 맣은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화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할 일은 품위 있고 존중받는 위치를 확보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완고한 보수주의자들을 개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상대방의 주장을 부인하는 흔한 실수를 저지르지 마라. 대신에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프레임으로 구성되지 않은 사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사실을 진술하고 그 사실이 상대편의 주장과 모순됨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프레임이 사실 이긴다. 프레임은 유지되고 사실은 튕겨나간다.

-상대편의 진짜 목적이 그가 말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는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예의바르게 그의 진짜 목적을 지적해주고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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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2015-04-07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아요^^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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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책이 주는 감흥이 좋아 더디게 읽게 되는 책이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일면식도 없던 사람을 마치 밀어를 나눈 사이처럼 깊고 내밀한 사이로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책이 가진 힘이다. 항상  아까워 단한번에 읽어 내지 못하는 책이 있다면 지체없이 나는 장석주의 책을 꼽는다. 마치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많은 부분을 공감케 하는 능력자. 장석주,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걷는 즐거움을 같이 누리곤 하였다. 치열하게 읽고 사색하고 쓰는 삶이 전부인 삶, 동경해 마지 않는 삶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호사스러운 취미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외롭고 힘겨운 일이다. 책이라는 물성이 지닌 특성이 그렇다. 책을 읽으면서 확장해 가는 지평들은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닌데다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절대 객관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외로운 일이다. 오르한 파묵이 자신의 상상력을 작동시키기 위해 '외로움'이라는 고통이 필요하다고 하였던 것처럼 책을 읽고 쓰는 삶은 외로움이 동반해야 가능한 삶이다. 그렇게 책을 읽는 것은 몽상과 고독한 상상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결국 긴 우회로를 거쳐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이다라고 한 것처럼 책의 길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길이다.  

 

세상의 속도와는 다르게 천천히 흐르는 시골에서 조급성과 가속화로 몸살을 앓는 시대에는 천천히 들길을 걸으며 제 존재 안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밤하늘의 별들을 우러르며 삶의 의미를 숙고하던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숙고는 고요의 침잠에 가깝다, 숙고는 들뜸과 소란스러움에 깃들지 않는다. 차라리 숙고는 고요의 잉태이고, 그것의 출산이다.

 

책은 기억의 접착제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고, 상처를 아물게 한다.

잊으면 안 되는 것에 대해 경고를 발한다. 살면서 생긴 가혹한 생채기에서 나오는 피를 멎게 한다.”

   

오늘날같이 지적 생산이 풍요롭게 이루어지는 문명세계에서는 철저하고 깊이 있게 책들을 읽지 않는다면 그 흐름을 쫓아가기 힘들다.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제 의지대로 방향을 잡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변화 속에서 좌충우돌하거나 시행착오를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삶은 피상적이고 밀도는 성기고, 그리고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쉽다. 독서인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책 읽기의 최종 목적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다. 스스로 사유를 하는 것! 책 읽기를 통해 지식의 전체상에 접근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식을 통섭할 수 있는 사유 능력의 총량을 키워야 한다. 읽는 행위의 능동성은 뇌 회로를 새롭게 여는 수단이 되고 궁극적으로 사유의 복잡성을 견뎌 낼 수 있게 한다. 책 속의 지식과 지식들이 충돌하며 일으키는 사유의 불꽃들과 함께 타오르며, 즉 책 읽기의 열락을 사유의 향연으로 바굴 때, 그리하여 독서의 총량을 지렛대 삼아 지식 생산자로 나설 때 비로소 진정한 독서인이 될 수 있다, 진정한 독서인만이 자기를 넘어서서 초인류가 될 수 있다. -p114

   

디지털 세상에서도 행복은 광속이 아니라 아날로그이 속도로 온다. 그러니 인터넷을 끄고, 스마트폰도 놓아라! 멈추고, 깊이 호흡하고, 삶의 속도를 늦추어라 ! 나를 감싼 세상을 돌아보라!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 다른 대상을 추구하고 집중함으로써 돌연 얻어지는 기쁨으로 온다, 행복의 유예만이 행복을 발견하게 한다! 행복은 그것이 아니라 다른 대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행복의 부조리함이다, 삶이 그렇듯이 행복도 부조리하다 

 

여전히 인생에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리곤 한다. 책을 읽어 내 삶이 달라지거나 변한 것은 없지만 인생의 고비마다 책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매 삶을 축복처럼 여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책 읽기의 힘이었다. 책을 읽으며 사는 삶, 그 안에는 상상하지 못하였던 세계의 지평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배우는 지혜의 열락은 상상이상의 즐거움을 상쇄시킨다.생동하는 봄기운 속에서 피어나는 아지랭이조차 희망이라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불면의 밤은 깊어가고 견딜 수 없는 삶의 고통속에서 책 하나만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면 장석주 시인의 책이야기를 꼭 들어야 한다. 

육체는 슬프도다, 오호라,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읽었노라.

La chair est triste, helas! et j'ai lu tous les liv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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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4-0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독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요새들어 `책이 없었으면 어쩔뻔했나...`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외로울때도 힘들때도 늘 곁에 있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드림모노로그 2015-04-24 13:25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조심하세요.. ㅎㅎ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외로워지거든요...
가끔은 외로움에 깔려버릴까 두려워질 때도 있더이다...

치료탑 2015-04-22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들어 책을 천천히 읽는게 힘드네요. so many books. so little times. 일단 한번 읽은 책은 다음에 읽으려니 하고 책장에 꽂아둡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 날이 올까하는 생각에 슬프기도 하구요. 욕심이려니 싶고 나쁜 버릇이려니 싶으면서도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사고 마네요.

드림모노로그 2015-04-24 13:2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고
새로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지만
시간이 없다는 거....


이런들 엇떠하리 저런들 엇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엇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읽던 읽지 못했던 , 백년안에 우리 인생에 책의 역사는 끝이날텐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
 

신경숙의 서늘한 고백에 따르면
˝사랑은 점점 그리움이 되어갔다. 바로 옆에 있는 것, 손만 뻗으면 닿는 것을 그리워하진 않는다. 다가갈 수 없는 것,금지된 것, 이제는 지나가버린 것,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향해 그리움은 솟아나는 법이다..... 그리움과 친해지다보니 이제 그리움이 사랑 같다......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그 마지막 문장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슬프다.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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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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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지를 쓰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습니다. 아니  편지지 가득 넘쳐나는 감정의 편린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고 해야 더 진솔한 표현이겠지요. 그러나, 문득 편지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바로 이 책 《작가란 무엇인가 》라는 책 때문입니다. 읽는 동안 벅차오르는 감동을 누르기가 힘들었습니다.  행간 가득히 넘쳐나는 작가들의 인터뷰는 인고의 고통으로 태어나는 진주처럼 고귀함으로 반짝거립니다. 작가들의 삶과 생각, 세상을 관통하며 읽어내는 진리의 파편들이 날아와 가슴에 돋을 새김으로 새겨집니다. 작가들의 언어는 제 심장에 타투를 새기는 것처럼 강렬했습니다. 이어 온몸에 퍼지는 문장의 온도는 작가의 마음이 전이되듯 뜨거웠습니다

 

 페르시안 문학과 서구문명과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문화적 갈등을 문학에서 보여주고 있는 오르한 파묵이 국내에서 위험한 정치인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었던 터키의 정세를 들으면서 문학이 파생하는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을 하며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키치의 세상을 마주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헤밍웨이가 작가로서 가지고 있던 긍지나 일상이 빛나 보이고 필립 로스가 문학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삶의 틈새를 발견하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문학의 틈새를 작가들의 눈과 입을 통해 메꾸어 주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사랑의 행위라고 하는 움베르토 에코,  포크너의 책을 읽고 삶이 달라졌다는 오르한 파묵, 일본의 삶을 그리고 싶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곧 글쓰기라는 폴 오스터, 인간 본성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악이었다는 심리 스릴러의 대가 이언 매큐언, 도덕적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필립 로스 등, 그들의 이야기는 가슴에 스며들어와 또 한번의 파란을 일으킵니다. 소설처럼 진지하고 시처럼 아름답고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합니다.

 

작가의 삶을 같이 느끼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무척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도 절대 만나지 못할 이들을 이 한권으로 만났다는 것만으로 즐거웠습니다. 호수의 수면 같이 깊고 아름다운 작가의 내면에 침잠되어 있는 고독과 외로움을 보며 작가는 자신을 태워 삶을 잉태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장에 타투를 새기듯 작가의 삶을 읽겠습니다. 닿지 않을지라도 쓰겠습니다. 사랑과 존경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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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4-03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쓰려는 큰딸에게 택배하고 나는 아직 못 읽었는데... 님 덕분에 꼭 읽어봐야지 다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