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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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책이 주는 감흥이 좋아 더디게 읽게 되는 책이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일면식도 없던 사람을 마치 밀어를 나눈 사이처럼 깊고 내밀한 사이로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책이 가진 힘이다. 항상  아까워 단한번에 읽어 내지 못하는 책이 있다면 지체없이 나는 장석주의 책을 꼽는다. 마치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많은 부분을 공감케 하는 능력자. 장석주,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걷는 즐거움을 같이 누리곤 하였다. 치열하게 읽고 사색하고 쓰는 삶이 전부인 삶, 동경해 마지 않는 삶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호사스러운 취미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외롭고 힘겨운 일이다. 책이라는 물성이 지닌 특성이 그렇다. 책을 읽으면서 확장해 가는 지평들은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닌데다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절대 객관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외로운 일이다. 오르한 파묵이 자신의 상상력을 작동시키기 위해 '외로움'이라는 고통이 필요하다고 하였던 것처럼 책을 읽고 쓰는 삶은 외로움이 동반해야 가능한 삶이다. 그렇게 책을 읽는 것은 몽상과 고독한 상상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결국 긴 우회로를 거쳐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이다라고 한 것처럼 책의 길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길이다.  

 

세상의 속도와는 다르게 천천히 흐르는 시골에서 조급성과 가속화로 몸살을 앓는 시대에는 천천히 들길을 걸으며 제 존재 안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밤하늘의 별들을 우러르며 삶의 의미를 숙고하던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숙고는 고요의 침잠에 가깝다, 숙고는 들뜸과 소란스러움에 깃들지 않는다. 차라리 숙고는 고요의 잉태이고, 그것의 출산이다.

 

책은 기억의 접착제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고, 상처를 아물게 한다.

잊으면 안 되는 것에 대해 경고를 발한다. 살면서 생긴 가혹한 생채기에서 나오는 피를 멎게 한다.”

   

오늘날같이 지적 생산이 풍요롭게 이루어지는 문명세계에서는 철저하고 깊이 있게 책들을 읽지 않는다면 그 흐름을 쫓아가기 힘들다.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제 의지대로 방향을 잡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변화 속에서 좌충우돌하거나 시행착오를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삶은 피상적이고 밀도는 성기고, 그리고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쉽다. 독서인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책 읽기의 최종 목적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다. 스스로 사유를 하는 것! 책 읽기를 통해 지식의 전체상에 접근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식을 통섭할 수 있는 사유 능력의 총량을 키워야 한다. 읽는 행위의 능동성은 뇌 회로를 새롭게 여는 수단이 되고 궁극적으로 사유의 복잡성을 견뎌 낼 수 있게 한다. 책 속의 지식과 지식들이 충돌하며 일으키는 사유의 불꽃들과 함께 타오르며, 즉 책 읽기의 열락을 사유의 향연으로 바굴 때, 그리하여 독서의 총량을 지렛대 삼아 지식 생산자로 나설 때 비로소 진정한 독서인이 될 수 있다, 진정한 독서인만이 자기를 넘어서서 초인류가 될 수 있다. -p114

   

디지털 세상에서도 행복은 광속이 아니라 아날로그이 속도로 온다. 그러니 인터넷을 끄고, 스마트폰도 놓아라! 멈추고, 깊이 호흡하고, 삶의 속도를 늦추어라 ! 나를 감싼 세상을 돌아보라!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 다른 대상을 추구하고 집중함으로써 돌연 얻어지는 기쁨으로 온다, 행복의 유예만이 행복을 발견하게 한다! 행복은 그것이 아니라 다른 대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행복의 부조리함이다, 삶이 그렇듯이 행복도 부조리하다 

 

여전히 인생에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리곤 한다. 책을 읽어 내 삶이 달라지거나 변한 것은 없지만 인생의 고비마다 책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매 삶을 축복처럼 여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책 읽기의 힘이었다. 책을 읽으며 사는 삶, 그 안에는 상상하지 못하였던 세계의 지평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배우는 지혜의 열락은 상상이상의 즐거움을 상쇄시킨다.생동하는 봄기운 속에서 피어나는 아지랭이조차 희망이라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불면의 밤은 깊어가고 견딜 수 없는 삶의 고통속에서 책 하나만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면 장석주 시인의 책이야기를 꼭 들어야 한다. 

육체는 슬프도다, 오호라,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읽었노라.

La chair est triste, helas! et j'ai lu tous les liv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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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4-0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독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요새들어 `책이 없었으면 어쩔뻔했나...`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외로울때도 힘들때도 늘 곁에 있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淸隱청은 2015-04-24 13:25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조심하세요.. ㅎㅎ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외로워지거든요...
가끔은 외로움에 깔려버릴까 두려워질 때도 있더이다...

치료탑 2015-04-22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들어 책을 천천히 읽는게 힘드네요. so many books. so little times. 일단 한번 읽은 책은 다음에 읽으려니 하고 책장에 꽂아둡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 날이 올까하는 생각에 슬프기도 하구요. 욕심이려니 싶고 나쁜 버릇이려니 싶으면서도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사고 마네요.

淸隱청은 2015-04-24 13:2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고
새로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지만
시간이 없다는 거....


이런들 엇떠하리 저런들 엇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엇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읽던 읽지 못했던 , 백년안에 우리 인생에 책의 역사는 끝이날텐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