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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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아였을때'

나의 이 제목에 대한 집착을 해결하지 못하고 리뷰를 쓰고 있다.

왜 '내'가 아니고 '우리'지?

따져보면 작품 중에 주인공 크리스토퍼만 고아로 나오는 것이 아니긴 하다. 어릴 때부터 크리스토퍼의 친구였던 아키라도 부모가 안 계셨고, 그가 어른이 된후 런던에 와서 알게 된 여인 세라 헤밍스도 어릴 때 부모님이 안계셨다고 하며, 나중에 크리스토퍼가 부모를 잃은 제니퍼를 입양하는 얘기도 나온다. 그런데 왜 이 사실들이 하나의 제목 '우리가 고아였을때'의 '우리'로서 함께 다가오지 않는것인지 모르겠다.

상하이에서 아편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그것을 은근히 반대하는 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 크리스토퍼. 어느 날 아버지가 실종, 어머니도 따라서 실종되고 졸지에 고아가 된다. 하지만 부모가 안계시다고 곧바로 불우한 생활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런던의 이모 집으로 보내진 크리스토퍼는 제대로 잘 교육받고 키워진다. 명문 케임브리지를 졸업하고 소망하던 사설탐정 일을 시작하면서 런던의 인맥도 쌓아간다. 

부모님과의 마지막이 실종때문이라는 것, 그것을 풀고 싶고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던 크리스토퍼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상하이로 떠나고, 옛날에 살던 집을 찾아가보면서 부모님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어릴 때 둘도 없는 친구 아키라와의 해후, 아버지가 실종되었을 때 수사를 담당했던 쿵 경감을 만나 부모님이 아직까지도 억류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짐작되는 장소를 알아내는 등, 일생의 과업이라고 생각하던 문제를 조금씩 풀어나가던 중 예전에 런던에서 서로 관심을 두었던 사이인 세라 헤밍스를 다시 상하이에서 만나게 된다. 세라는 그당시 남편인 세실을 두고 크리스토퍼에게 함께 마카오로 밀항할 것을 제안하는데 과연 크리스토퍼에게 부모님의 행적을 추적하는 일과 세라와의 결합중 어느 것이 더 우선순위였을까?

끈질긴 추적 끝에 부모님 실종 전말을 알게 되고, 놀랄만한 배후사실도 알게 된 크리스토퍼는 런던으로 돌아오고, 사고로 부모를 잃은 제니퍼를 후견하기를 계속하며 혼자 무심하고, 그러나 만족하면서 여생을 보낸다.

<남아 있는 나날>이 1989년에 발표되었고 <우리가 고아였을때>가 발표된 것이 2000년이니까 이 작품이 훨씬 나중에 나온 작품인데 내가 <남아 있는 나날>을 먼저 읽어서인가 <남아 있는 나날>에 조금 더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아마도 두 작품이 공통적인 색깔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남아 있는 나날>에 훨씬 깊은 성찰과 집중된 서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아였을때>에는 부모님을 따라 타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작가의 실제 경험이 많이 참조가 되었겠다 싶게 구체적이고 자연스런 묘사가 돋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서사에서 어쩔 수 없이 보이는 헛점이랄까, 한줄로 엮이기에는 약간 산만한 구성, 관련된 인물이나 사건들이어야 함에도 약간씩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 개연성의 부족, 우연하게 벌어지는 듯한 일들, 등이 별로 대단하지 않은 나 같은 독자의 눈에도 조금 거슬려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고아였을때의 '우리'에는 그가 절묘한 타이밍이 아니라면 함께 마카오행을 했을지도 모르는 여자 세라, 어린 시절 또다른 자기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친구 아키라, 부모 없는 크리스토퍼 자신 처럼 스스로 책임져주고자 한 고아 제니퍼가 포함된다. 역자가 해설에서 썼듯이 크리스토퍼가 서로 다른 이 세 인물들에게 끌린 이유, 의식한 이유는 어쩌면 같은 운명들끼리 서로 알아보는 잠재 의식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타국이 제2의 고향이 되어 살아가는 가즈오 이시구로에게는 그런 잠재 의식이 특별히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엔 <녹턴>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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