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라는 나라 - 고정애의 영국 편력기
고정애 지음 / 페이퍼로드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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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시내 한복판에 수백년 내려오고 있는 오래된 건물이 있고, 그 사이에 최신 경향의 실험적 건축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 있는 나라. 오래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나라. 분명히 다른 영국인의 유머. 알면 알수록 더 모를 것 같은 나라 영국이다. 우리가 너무 미국 중심의 서구 문화에 익숙해져 있어서일까 생각하지만 이것 역시 잘 모르겠는건 마찬가지.

 

책 제목이 <영국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영국이라는 _ 나라> 로 되어 있다. 우리는 그냥 "영국"이라고 말하고 쓰지만 이것을 영어로 표기한다면 잠시 고민해야 한다. England, Great Britain, United Kingdom 중에서 뭐라고 써야하나 하고. 책을 들춰보면 첫 장 (chapter) 소제목이 "영국은 없다"인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영국이라고 할때 우리는 쉽게 한 나라 단위로 얘기하지만 알고 보면 그 속에 영국,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라는, 또다른 의미의 "나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정체성의 나라 영국. 거기엔 긴 역사가 있고 배경이 있고 이유가 있는데 이것은 잠깐의 여행 경험을 통해서는 물론 아니거니와 몇년 살다 왔다고 해서 저절로 알아지지도 않는다. 알려고 하는 의지와 파헤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처럼. 어쩌면 영국인 그들 조차도 그럴지 모르겠다.

 

역사학자 박지향은 그의 책 <클래식 영국사>에서, '근대 영국의 진정한 기적은 혁명을 겪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너무나 많은 혁명들을 실제 혁명에 귀의시키지 않고도 동화시켰다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며 '전제정, 외국의 침입, 혁명으로부터 면제됐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여러 제도가 옛모습 그대로 남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영국은 진정으로 제도를, 사회를 개혁할 기회를 잃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이네들에겐 자신들의 역사, 제도, 관습 등이 지속될 것이란 믿음이 있다. (152쪽)

 

위의 인용은 영국에 999년 계약이 가능한 배경으로 이러한 신뢰가 자리하고 있음을 간파한 저자의 설명 부분이다.

 

입만 열면 출신 계급이 드러나는 (옷차림이 아니라) 나라이다. 말하는 즉시 신분을 알 수 있단 얘기이고 어떤 영어를 어떻게 구사하느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케이트 폭스라는 인류학자의 말을 빌면, 영국에서 한 사람이 입을 열면 그것은 사회적 GPS 역할을 하여, 그가 계급 지도의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려준다고 까지 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할 얘기가 많지만 자제하고.

저자와 현지인들과의 인터뷰 내용도 여러 군데 삽입되어 있어 흥미로왔는데, 이중엔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 화제가 된 책의 저자, 런던에서 300년 동안 내려오고 있는 와인상 주인, <셜록> 두 주연 배우 등, 저자의 발로 뛴 노력과 열성이 보이는 부분이다.

영국에 거주하면서 쓴 달달한 생활기나 여행담이 아니다. 마치 영국에 대한 칼럼을 쓰듯이, 재미보다는 정보를 주기 위한 팩트에 충실한 책이라고 할수 있다. 최근이랄 수 있는 2014년부터 3년간 런던 특파원을 지낸, 저자의 직업은 기자. 현재 영국의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문화에 대해 알고 싶다면, 역사적 배경을 알고 싶다면 권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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