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이다 - 세상의 모든 찌질이들에게 바치는 헛소리 모음집
조지수 지음 / 지혜정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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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이라는 정도만 알았을뿐, 본명이 무엇인지, 뭐하시는 분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궁금은 했지요. 하지만 본명이나 직업이 무엇인지 보다는 그걸 내세우기 싫어하시는 이유가 뭘까가 더 궁금했습니다. 읽으면서 밝혀질거라 기대하며 읽으니 안그래도 빨리 읽히는 책이 더 빨리 읽혔습니다.

내가 보기로 인간은 모두 '찌질이'다. (8)

동감입니다. 신이 아니라면 찌질한 구석 없는 사람 있을까요. 찌질함엔 위계가 없다는 말씀도요. 단어가 좀 고급스러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찌질하다는 말 만큼 인간적인 단어가 어디 있을까, 이만큼 인간을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생각합니다.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이고, 중대한 큰일보다 사사로운 작은일에 더 마음쓰고, 이미 지난 일에 연연하고, 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자기도 찌질하면서 남을 비난조로 말할때만 찌질하다 하는 인간. 우리 모두 그런 인간임을 인정하고 나면, 즉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겸손해져요. 패배감이 아니라 평화에 가까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삶은 불가해하고 하루하루는 고통이고 내일은 불안이다. 이것이 삶이다. 의미 없다. 삶의 습관과 죽음의 공포가 하루를 연장한다. (9)

아니, 한 페이지 넘어가기 무섭게 이렇게 공감 백배 문장을 마구 날리시면 어쩝니까. 뒷부분에선 또 그러셨더군요. 사랑, 행복, 어쩌구 하는데 그거 본 사람 있냐고.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실체도 불분명한 것에 그렇게 의미를 두고 가치를 두는게 맞냐고요. 나중에 말 바꾸지 않으셔서 그것도 맘에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게 중요해' 이 말을 비꼬는 뜻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로 알아들어야 하는 시대에, 마스칼러지 (Maskology) 라는 용어까지 만드시어 이 책의 한 챕터를 할애하여 쓰신 기발함에도 박수요.

생명을 탄생시키거나 키우고자 한다면 일찍 잃을 수도 있거나 필연적으로 잃게 될 결과를 생각하라. 우리가 베푸는 사랑과 보살핌의 대가는 언제나 상실의 고통이라는 것도. 그것도 사랑을 베풀기 이전에. 위대한 희랍 철학자가 가능태보다 현실태를 선행시켰듯이. 운명의 결과는 우리 노력과 상관없이 먼저 준비되어 있듯이. 이것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거나 키울 자격이다. 여기에 두려움은 없다. 사랑과 상실이 우리를 얼마나 성장시키는가. (110)

Wheeler 라는 개를 키우신 경험을 쓰신 글 중 한 대목이지요. 동물조차 죽음의 순간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데 인간만이, 찌질한 인간만이 호들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기 만드는 공학자로 일하던 제자가 갑자기 판검사가 되기 위한 사법고시를 보기 위해 일을 그만 두고 법대 진학을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자격증의 비극에 대해 쓰셨지요.

자격증이 개인에게 부여하는 비극은 삶에서 더 큰 가능성과 다채로움을 향하는 어떤 지적인 노력도 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을 재미없고 권위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안전과 안정은 개인의 인간적 가능성에는 자멸적 영향을 끼친다. 사람은 생각보다 관념적이지 못하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안정이 창조적인 역량을 부여할 시간과 부를 약속한다는 이상주의자의 논리는 언제나 깨진다. 인간이란 계속되는 노력만이 살아나갈 기반을 마련해줄 때 노력하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동물이다. 갱신으로 삶에 대응해 나가고 날카롭고 깨어 있는 의식으로 인생을 바라볼 때 거듭된 진보가 약속되는 것이지 이제 지위와 돈밖에 더 이상 바라지 않고 골프와 술이 그들의 여가를 차지해나갈 때에는 무엇도 약속되지 않는다. (204)

이렇게 인용하는 대목들은 최소한 저는 모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만, 현실은 글과 다르다는 이유로 공감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연연하진 않으시겠지만요.

결점없는 인간 없고, 죄 짓지 않고 평생을 사는 인간 없으리라 봅니다. 남에게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요행이 따라준다고 해도 결국 덜미를 잡는 것은 남의 눈이 아니라 바로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양심'이더라고, 그게 어쩌면 남의 눈보다 더 무섭더라고, 저도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양심의 기능에 대해 이렇게 명쾌하게 써주셨네요.

자신의 판단과 행동의 근거가 위장과 양심의 어디쯤 위치하는가에 대한 솔직한 자기인식이 중요하다. 이것이 위선을 막는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서 희망을 주는 것은 인간은 때때로 자기 양심에 따라 자기 이익을 포기한다는 사실이다. 도덕의 근거이고 인간의 가치이다. 나는 거기서 심지어 신성의 번뜩임조차 본다. (210)

인간이 가끔 신성을 번뜩일때는 바로 그 양심이 작동하는 시간이군요.

본래 우리의 의식은 무의식의 껍질에 지나지 않고 우리의 지성은 우리 의지의 노예이다. (220)

이 말도 정말 멋있습니다. 찌질한 인간이라는 말과 어찌보면 상통하는 말인데 이렇게 멋지게 표현될 수도 있네요.

 

만나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즐거운 얘기만 쓰신 것도 아닌데도 즐거웠어요. 필명을 쓰신 이유는 아마 이미 많이 알려진 본명이 주는 선입견을 주기 싫으셨던가요?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본인 스스로 느끼는 그 이름의 무게에서 자유롭게 쓰고 싶으셨는지요.

좋아하는것, 싫어하는것 목록 써보기는 저도 당장 해보려고요. 사실 이것 역시 저도 잠깐 생각했던 적 있답니다. 좋아하는게 뭐냐, 싫어하는게 뭐냐는, 단순하면서 자주 듣는 질문이 의외로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더라고요.

다른 저서들도 어쩐지 찾아 읽어볼것 같습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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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0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0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지 2017-08-2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저자의 <원 맨즈 독>을 일부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저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는 기억입니다. 괜찮으셨나 보군요. 어쩐지 저도 좋아할만한 책인듯. 남의 은밀한 편지를 엿보듯 어쩐지 평소와 좀 다른 느낌의 리뷰여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hnine 2017-08-21 11:53   좋아요 1 | URL
저자가 첫장부터 작정하고 막 삐딱하게 글을 써나가는 데, 사실 제 좁은 소견으로는 반감이 생기기도 했었는데 계속 읽다보니까 이 사람 내면은 참 소심하고 또 소심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반감 대신 이해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더라고요. <원 맨즈 독>도 그렇고 이분의 적지 않은 저서들중 최소한 몇권은 더 읽어볼 참이랍니다.

조중걸 2023-10-3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롭게 소설 한 권 또 싸질렀습니다. 주소와 전화번호 geandna@naver.com 으로 보내시면 사인본 보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