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밀란 쿤델라. 언젠가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해오고 있었으나 그 바램이 그리 강하진 않아서, 아마도 훨씬 더 나중에 읽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화한 <프라하의 봄>을 대학생때 극장에서 보며 다른 건 다 잊어도 너무나 야한 영화였다는 느낌은이무려 이십 년 넘게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고 편견과 선입견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밀란 쿤델라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면 작가의 이면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이 책을 읽기 전 기대였고, 결과를 말하자면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못하다.

 

모든 것은 내가 바보 같은 농담이나 즐기는 치명적 성향을 지녔고, 마르케타는 농담을 절대 이해 못 하는 치명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52)

 

농담이 농담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때는 농담을 듣는 사람이 농담을 하는 사람의 의도를 이해 할 수 있을 때이다. 그것은 듣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쪽에서 미리 헤아리고 하는 것이 옳다. 농담엔 진담이 어느 정도 섞여 있기 때문에 농담과 진담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농담은 그런 개인적 성향 차이보다는 시대적 상황에서 오는 해석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그 시대적 상황이라는게 이 소설에서는 체코에서 있었던 1948년 2월 혁명으로 대표할 수 있을 텐데, 이 혁명을 계기로 체코에는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고 구 소련의 영향권 내에 들어가게 된다. 주인공 루드비크가 좋아하던 여자 마르케타에게 쪽지에 써보낸 농담이 둘 사이에 변화뿐 아니라 루드비크의 이후 몇년 인생 행로를 바꿔놓게 되는 사건은 바로 이 1948년 2월 혁명이 있은 다음 해에 일어난다.

그 쪽지에 쓴 내용이란,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였다.

다만 장난치려고 했다는 루드비크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 루드비크는 학교에서 추방당할 뿐 아니라 도로 작업, 탄광 노동 등의 강제 노역으로 몇년을 보내게 된다. 마침내 사회로 복귀된 그는 자기의 추방을 찬성했던 사람들을 찾아 복수심에서 비롯된 행동을 한다. 학생위원장이었던 제마네크, 그의 부인 헬레나와 육체적인 애정을 나누지만 정작 제마네크는 부인인 헬레나를 두고 다른 애인을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복수행위에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되는 루드비크. 더구나 제마네크 역시 예전의 제마네크가 아니었다 (사람은 변한다!).

수용소 생활 당시 만난 루체라는 여인을 만나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끝내 육체적인 사랑을 허락하지 않고 루체는 떠나게 되고 이후의 루체를 거두어준 코스트카는 이 책의 4명의 화자중 한 사람이다. 루드비크의 옛친구이기도 한 코스트카와 야로슬라프와의 만남을 통해 루드비크는 지나간 날들의 진실을 알게 되고, 복수가 무의미하고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다.

내 인생의 모든 일들을 전부 취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일들을 초래한 실수들이 내가 한 실수들이 아니라면 무슨 권리로 내가 그것을 취소할 수 있겠는가? (483)

도대체 우리의 인생에서 정작 우리가 관여하는 부분은 얼마나 되는가 다시 묻게 된다.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 (나를 넘어서는)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483)

 

고향친구 야로슬라프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루드비크는 생각한다.

우리 운명은 죽음보다 훨씬 이전에 끝나는 일도 종종 있다는 생각, 종말의 순간은 죽음의 순간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532)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 한 구절이다.

 

생각보다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으나, 농담이라는 제목 속에 담긴 저자의 대의에 비해 엉뚱하고 (마지막 헬레나의 자살 소동 헤프닝) 아쉬운 부분 (루체라는 여자의 심리에 대한 불충분한 묘사)도 있기는 했다.

저자 소개를 읽업보면 밀란 쿤데라 자신의 인생 행로도 그의 작품 속 인물들 못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국인 체코와 프랑스를 넘나들며 겪은 고초는 작가 자신과 함께 그의 작품들도 겪은 일이기도 하다. 이 작품 <농담>도 체코어로 쓰였었으나 고국에서 추방되는 계기를 제공했을 뿐이고 나중에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출판되고서야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중 일부는 아예 처음부터 프랑스어로 쓰였다고 하는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의 어려움은 어땠을지. 또한 모국어만큼 작가의 역량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을지.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만들어낸 농담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애정에 편중된 방식의 복수극으로 그려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8-03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8-04 05:16   좋아요 1 | URL
아마 취소할 수 있다면 인간은 계속 취소만 하다가 생을 다 소모해버릴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어떤 힘과 제도에 의해 일이 결정되어 버리니 인간은 속수무책이고 벌어진 결과를 취소할수는 더군다나 없다는, 좀 절망적인 의미로 쓰여졌지요.
이런 심각한 주제에 비해 중간중간 너무 가볍게 넘어가거나 엉뚱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좀 이해가 안된다고 했더니 남편이 옆에서 ˝그러니까 제목이 농담이라잖아~˝ 그러더라고요. (참고로 남편은 이 책 안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