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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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제목 같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제목 같기도 한 이 책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원제는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이다. 제목이 친숙한 이 책에 대해서 언제 처음 들어봤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마 저자인 제임스 조이스 때문이었을 것이고, 이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통해서 그 유명한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리라. 과연 이 책을 읽어보니 얼마 안 가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이 어떤걸 말하는지.

1882년 아일랜드 태생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문학사적 의미나 가치에 비해 기대만큼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작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하여 기숙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가족 구성원과 친구들 그리고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그의 예술관이 어떻게 자리잡아 가는가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성격이 각양각색인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대립을 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주입해주는 지식에 대해 반항하여 반항적 경향의 문학가가 최고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성장기 소년인만큼 마음에 두는 여학생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사창가의 여인을 찾기도 했던 일로 인해 깊은 고뇌를 겪기도 한다.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는 기법이라는게 어떻게 보면 얘기가 옆길로 수시로 빠졌다 돌아왔다 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차이는 옆길로 빠지는 과정이 무작정 뜬금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감각의 연상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문장으로서 매끄럽고 문학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66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운동장에서 스티븐 친구들이 크리켓 경기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여기저기서 크리켓 방망이 소리가 부드러운 잿빛 공기를 통해 들려왔다. 방망이들은 픽, 폭, 퍽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분수대의 철철 넘치는 낙수반 위로 물방울들이 천천히 떨어지며 내는 소리 같았다.

어! 그런데 크리켓 방망이 소리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로 연결되는 이 구절이 91쪽에 다시  나온다.

애들은 크리켓 공으로 멀리 던지기라든가 커브 공 및 느린 공던지기 등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 부드러운 잿빛 공기의 정적 속에서 그는 공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조용한 공기를 뚫고 크리켓 방망이 소리가 들려왔다. 픽, 팩, 폭, 퍽. 분수대에서 철철 넘치는 낙수반 위로 물방울이 조용히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크리켓 방망이 소리와 분수대 물 소리는 작가에게 확실한 어떤 연상 고리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인 5장에 가면 스티븐의 예술에 대한 가치관과 주관이 거의 성립되어 있음을, 그가 친구에게 하는 말을 통해 알수 있는데 친구에게 하는 말이라고 보기엔 매우 진지하고 깊은 내용들이 많아 줄을 치며 읽었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예술은 동적이 아니라 정적이어야 하는데,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욕망을 즉각적으로 충동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초월적인 경지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로서 과거 여러 철학자나 사상가의 생각들을 인용해서 친구에게 주장한다. 아퀴나스가 미(美)의 정의를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해서 즐거워지면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것을 인용하고 거기서 나아가 스티븐, 즉 제임스 조이스의 예술에 대한 정의는 "미적인 목표를 위해 감각적인 것과 이지적인 것을 인간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아름다움을 진실의 광채라고 하여 참된 것과 아름다운 것이 서로 비슷한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해 가능한 것들의 가장 원만한 관계에 의해서 충족되는 지성이 포착하는 바가 진실이요, 반면에 지각 가능한 것들의 가장 원만한 관계에 의해 충족되는 상상력이 포착하는 바가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이런 정의들은 한번 읽어서 머리에 바로 들어오진 않지만 반복해서 읽어보면 결코 이해 못할 말들은 아니다. 마치 대학때 미학 시간에 배운 것들을 미학 책이 아닌 문학 작품 속에서 다시 복습하는 듯한 읽기가 수십 페이지에 걸쳐 계속 되었다. 같은 사람의 주장이나 말들이라도 이렇게 문학 작품 속에서 읽으면 더 맛있고 멋있다.

이 책은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기법이 시도된 정도이고 본격적인 기법은 그의 또다른 작품 <율리시스>에 잘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번역자가 예전의 번역을 전면 개편하다시피 다시 내놓은 것이라서, 페이지마다 해설이 아주 자세하고 친절하게 붙어 있었다. 그것이 때로는 도움도 되고 방해도 되었다. 하지만 번역자가 한 문장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완벽을 기하려고 노력한 기색은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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