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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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둘이다. 김동영, 김병수.

김동영은 처음 들어보지만 김병수라는 정신과 의사는 알고 있었다.

원래 환자와 의사 사이에 오고간 진료 기록은 비밀에 부쳐져야 하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가 되나보다. 환자로서 7년째 진료를 받고 있는 김동영이 그동안 환자와 의사로서 둘 사이에 오고간 대화 내용들을 책으로 내보자고 김동영이 먼제 의사인 김병수에게 제안하였다고 하니 말이다. 이 책은 환자로서 김동영과 의사로서 김병수가 서로 번갈아 쓰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럼 환자로서 진료를 받고 있는 김동영의 문제는 무엇인가. 많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무려 서른 몇가지의 병력을 열거해놓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모두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님에도 본인은 아직도 자기는 정상적인 생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고 고통스럽다고 한다. 오히려 <이미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라는 장에서 자기의 고통을 녹여버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까지 하지 않는가.

-규칙적인 생활

-가벼운 운동

-담배 끊기

-매일 해를 삼십 분 이상 보기

-건강한 식단

이라고. 그런데 김동영에게는 이것들을 모두 지키는게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에게만 어려운게 아닐 터인데. 이럴때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치료법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그중 하나가 <이기적으로 살 것>이었다고 한다. 대개 소심하고 표현못하고 안으로 삭이는 사람들의 문제점이라는 걸 알고서 한 조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로 다음장에 김병수가 쓴 장의 제목은 <누구나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은 A와 B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데 둘 사이에서 결정을 못하고 갈팡질팡을 계속하는 것, 즉 결심과 드러나는 행동의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마음 속에서 A라고 결정하든 B라고 결정 내리는 그 이익과 손실이 50대 50이야 라고 여기고 있다는 뜻이란다. 그럼에도 상대가 하는 걱정과 갈등을 계속 들어주는 이유는, 말을 통해 전달되는 관심과 애정으로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불꽃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이라고. 우리가 누군가의 고민과 푸념과 걱정을, 반복해서 들어준다고 할때 우리의 역할은 그에게 꼭 어떤 해결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행위를 통해서 그에게 마음의 평화와 의욕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다.

에밀리 디킨슨, T.S. 엘리엇, 스콧 피츠 제럴드, 빅토르 위고, 막심 고리키, 존 키츠, 헤르만 헤세, 실비아 플라스, 유진 오닐, 어니스트 헤밍웨이, 톨스토이, 버지니아 울프, 존 러스킨, 에밀 졸라. 이들은 모두 우울증이나 조울증과 같은 기분장애를 앓았던 작가이며 이 외에도 무수히 많다고 한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약을 처방받아 먹는게 이상한 일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울증과 조울증은 공감 능력, 현실 감각, 창조성, 회복탄력성을 키워준다는 말에 의아하기도 했으나, 이런 경험을 겪고 나면 (잘 겪어내고 나면), 타인의 아픔에 더 공명할 수 있게 되고, 절망적인 시대 상황에서도 시대정신을 냉철하게 읽어내는 현실감각을 유지하게 도와준다고. 마음의 고통을 이겨낸 경험은 현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나는 예술 혹은 창조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보면, 자세히 관찰하려고 애쓴다.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하지만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호기심때문이다. 내가 내린 결론 중에 하나는 창조적인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어려움을 더 많이 겪고, 그것을 더 많이 참아낸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술가에게 정신적 광기가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힘든 인생을 살았어도, 극복하고 이겨내고 그 경험을 재창조하고 승화해낸 사람이 예쑬가라는 것.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사람만이 창조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묵묵히 견뎌내며 시간이 바꾸어놓은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하고 나는 믿고 있다. (80쪽)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기분 장해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생각해서 옮겨보았다. 묵묵히 견뎌내며 관찰하고 기다리는 것.

141쪽 <불안의 대가>라는 장에서는 고통을 견뎌내는 시간, 그 자체가 치유일 거라는 말도 했다.

인도게르만어로 자유 (freiheit),  평화 (friede), 친구 (freund)의 어원이 모두 사랑하다 (fri)라는 것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친구와 사랑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셈이라면서, 진정한 자유는 혼자가 아니라 나 아닌 누군가와 함께할 줄 아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진정한 평화는 혼자가 아니라 사랑과 우정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 묶여있지 않음으로서 자유를 느낄 수 있는게 아니며 혼자보다 둘이 되어야 평화로워질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라고. 둘 이상이 함께 가야만 하는 길이 우리의 삶이라고 했다. 꼭 부부나 애인 같은 관계를 말하는것은 아니라고 본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의 존재를 귀찮아 하거나 내게 불편함을 주는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그들과 잘 관계 맺는 방법을 생각하며 살라는 의미로 본다.

우리가 불안하고 고통스러울때 찾게 되는 안정제는 내 손에, 내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정신과 의사는, 그리고 책은, 그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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