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치는 바다
이덕자 / 여성신문사 / 1994년 5월
평점 :
품절


 

(나온지 오래된 소설이라 알라딘에서 상품검색해도 제목만 나올 뿐 사진도 뜨지 않는다.)

 

 

 

 

 

 

 

 

 

 

 

 

 

 

이 덕자라는 이름. 현재 투병중인 이 소설가의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나도 거의 잊고 지낼 만큼 그녀의 작품 발표가 한동안 없었고 더구나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거주중인 작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오래만에 그녀의 새로운 출판 소식을 접했는데 그것도 소설이 아닌 시집이라는 기사에 깜짝 놀라 시집은 물론, 그녀가 오래 전에 발표했던 소설들을 다시 구입해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청소년이 주인공이었던 작가의 다른 소설 <햇귀>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녀 소설의 주인공들은 미국 거주중이고, 결혼 생활 끝에 자기 정체성에 고민을 하며 다른 돌파구를 모색, 가부장적인 남편보다 더 자기 삶을 옭매인 것은 자신이었다는 자각을 하는 여자들이다. 작가 자신이 결혼하여 수십년 미국 이민자로 살고 있기 때문에 작품 속 많은 부분 그녀의 경험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하며 읽게 되고, 엔딩에 더 신경이 쓰이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는 두 작품이 실려 있다. <소리치는 바다>와 <겁 (怯)>.

다음은 작가의 말이다. 그녀의 작품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

사는 것이 겁나는 분들과 나는 이 책을 나누어 읽고 싶다.

그리고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마침내 자살도 생각해보는 분들과 또한 나는 이 책을 나누어 읽고 싶다.

겁은 우리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그것에 잡아먹히면 그때는 끝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소리쳐 우는 분들과 진실로 이 책을 같이 나누어 읽고 싶다. 내 친구 순이의 말대로 소리쳐 우는 바다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94년 4월 달라스에서, 이덕자

여기서 '겁은 우리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그것에 잡아먹히면 그때는 끝이다'라는 문장도 어쩐지 눈에 익다. <햇귀>에서 그녀는 겁 대신 우울이라는 단어를 넣어, 그것에 잡아먹히면 끝이라는 말을 한 적 있다.

그녀의 소설들을 몇편 읽어보면 처음 읽으면서도 이거 예전에 읽었던가 하는 착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만큼 서로 비슷하다. 어쩌면 작가가 소설 속에 풀어내고 있는 것은 한가지 주제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녀 마음 속의 응어리 (결국 이런 것들이 소설로 세상에 나오는 동기가 된다면)는 여러개가 아니라 하나의 아주 단단한 덩어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책중 <겁>을 읽으면서도 나는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소설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흔한 이름도 아닌데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소리치는 바다>에서 여자 정해는, 남편없이 억척스럽게 살아온 속물근성 엄마와, 엄마가 다른 남자 사이에서 낳은 배다른 오빠 정초와 함께 살고 있다. 이모 집 가정교사로 있던 가난하지만 일류대학 출신 남자와 결혼해서 전형적인 아내 역할로 살아온 그녀는 이제 대학생이 된 딸, 아들을 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고 문제거리가 없어 보이는 가정 주부이지만 자식들이 모두 집을 떠나 남편과 둘만 남게 되자 비로소 남편과의 관계와 자신의 존재를 되돌아보고 나는 이제 어디에서 가치를 찾아야하는가 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여자를 우습게 보고 그녀의 얘기를 한번도 진지하게 듣지 않는 남편을 떠나기로 하지만 결말에서 결국 떠나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다. 드물게 배경이 미국이 아니고 주인공이 이민자가 아닌 작품이다. 미국으로 이민했다 돌아오는 사람이 보조인물로 등장하긴 하지만.

 

<겁>은 서로 친구인 세명의 여자, 봉이, 두해, 달구의 이야기가 서로 번갈아 나오는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다소 복잡하고 산만하다. 셋중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계속해나가는 사람은 한명도 없어서, 봉이는 결혼 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던 노교수의 격려 속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로 하고, 두해는 가부장적이고 아내를 무시하는 남편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떠나며, 달구 역시 남편을 떠나 아버지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는다. 단편적인 내용만 몇줄로 적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이들 셋의 지나온 세월에 대한 반추, 후회, 자기 모색, 그리고 앞으로는 달라지고자 결심하기까지의 갈등, 고민, 방황으로 채워져있다. 그러면서 버지니아 울프를 자주 언급한다. 그녀의 생을, 그녀 작품 속의 자유롭지 못한 여성을 작가는 자기 작품 속에서 재현해보고 싶었을 수도 있고, 작품을 써가면서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되는 버니지아 울프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이 출판된 1994년이면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이니 지금 상황이 많이 달랐다. 세월이 흘러 읽어도 여전히 와닿는 작품들도 있고, 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에게 여전히 많이 읽히고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는, 아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그 가치가 더해가서 고전이라고 부르는 작품들도 있다. 그건 아주 혜택받은 몇 안 되는 작품의 경우이겠다. 이덕자의 소설들은 1994년 당시 읽었을때 처럼 새롭지도 않았고 일부 대화는 신파로 보이는 점도 없지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들이 하고 있는 고민에서 지금의 여성들은 자유로운가? 이제 더이상 그런 결혼 생활, 그런 속박으로 자기 생을 소모해가는 여성은 없는가? 어쩌면 페미니즘 이론서를 읽는 것과 또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문제를 피부에 와닿게 느낄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20대, 한참 그런 생각들로 머리를 채우고 있을 때 이덕자의 소설들을 찾아 읽었고 그래서 고민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고민과 문제를 더 넓히고 깊어지게 해버렸다. 이덕자의 소설들은 그런 관점에서 읽는 것이 더 잘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신한 스토리로서가 아니라, 나에게도, 내 친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얘기를 마치 수기를 읽듯이,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용하지만 피흘리는 싸움의 과정을,그리고 결과를 눈으로 읽어가듯이.

 

벌써 몇년 째 투병중이라는 작가. 부디 회복되어서 그동안 그녀 안에서 다듬어지고 새로 태어난 성찰의 결과를 새로운 작품 속에서 또 만나고 싶다.

 

* 이 리뷰의 제목 <왜 그녀들은 절망하는가>는 책 속의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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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9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1-29 19:47   좋아요 0 | URL
리뷰에도 썼지만 지금 읽으면 약간 신파조 같은 대화, 표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전 이 작가의 첫 소설을 읽었던때의 느낌 때문에, 그리고 이 작가를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분들에겐 아마 거슬릴지도 모르겠어요. 처음 이 작가의 소설을 읽었을때 저는 결혼, 연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때였고,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 또한 매우 강렬했던 때였기 때문에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 작가의 소설들을 그냥 마구 흡수했던 것 같아요. 주제를 막론하고 책이란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쪽으로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지 않나요? ^^ 전 그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