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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 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 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맟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詩 함민복



Photo : 플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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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많이 흘린 사람은 눈물을 적게 흘린다...는 중학교때 내가 좋아하더 수학 선생님의 말씀도 생각이 났고, 예전에 읽은 공지영의  '절망을 건너는 법' 이었나? 하는  제목의 소설도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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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5-30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민복님의 시를 좋아하시나 봐요?
뼈저린 가난, 그렇지만 꿋꿋하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
저도 뭉클하네요.

hnine 2006-05-31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비자림님.
전 이런 꿋꿋함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기도 해요.